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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인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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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 잉고 슐체의 대작독일 통일 전후 ‘새로운 인생’을 마주하게 된 한 동독 청년의 이야기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 붕괴,
    20년이 지난 오늘 다시 그날을 되돌아보다

    1989년 여름, 동독을 탈출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이미 심각해질 대로 심각해져 있었다. 프라하나 바르샤바 같은 동유럽 국가의 수도를 통하거나, 국경을 개방한 헝가리나 체코슬로바키아 같은 나라를 거쳐서 서독에 들어가려는 동독 국민의 거대한 탈출 행렬이 국제 문제로까지 비화되고 있었다. 그 와중에 동독 정부가 동서독 국민의 자유로운 왕래를 검토하고 있다는 발표를 하자마자 기대감에 들뜬 동베를린 주민들이 장벽 주변에 물밀듯이 모여들었다. 결국 같은 해 11월 9일, 동서 냉전과 독일 분단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갑작스럽게 무너지게 된다. 그리고 이듬해 10월 3일 동독과 서독은 분단 41년 만에 하나의 독일로 통일된다.
    당시 동서독 국민들은 이 역사의 격변기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특히 체제의 변화로 통일 이전과 이후의 차이를 더욱 크게 느꼈을 동독 국민들에게 통일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그사이 그들 개인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맞아 이런 주제와 관련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독일 소설이 출간되었다. 바로 잉고 슐체의 [새로운 인생]이다.

    동독 '3세대' 작가의 선두 주자, 잉고 슐체

    ‘동독의 귀환’이라는 말이 있다. 서독이 동독을 실질적으로 흡수 통일 했지만, 문화적으로는 오히려 동독의 문화가 서독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는 현상을 지칭하는 말이다. 예술 분야에서도 각 장르에서 동독 지역 출신 예술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음은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문학 분야도 마찬가지인데, 통일 이후 독일 문단에서 주목할 만한 문제작들을 내놓은 작가들의 상당수는 이른바 ‘동독 3세대 작가’로 분류되는 작가들이다. ‘3세대’ 작가는, 1920~1930년대에 태어나 ‘진정한 사회주의’ 건설에 대한 기대를 품었던 ‘2세대’ 작가들과는 달리 1950년대 이후에 태어나 그런 모든 것은 ‘아버지 세대’의 옛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세대이다. 그들의 작업은 주로 통일 이후에 이뤄졌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절대적 신념이나 부채감이 없는 새로운 시선으로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를 파헤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현재 독일 문단을 이끌고 있다. 이러한 ‘3세대’ 작가를 대표하는 작가로 잉고 슐체Ingo Schulze를 꼽을 수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귄터 그라스로부터 “진정한 이야기꾼”이라는 극찬을 받은 잉고 슐체는 1962년 구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통일 이후인 1995년 장편소설 [33가지 행복한 순간]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심플 스토리즈](1998), [새로운 인생](2005), [핸드폰](2007), [아담과 에벌린](2008)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제 겨우 5편의 소설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그는 이 작품들로 알프레트 되블린 상, 에른스트 윌너 상, 베를린 문학상, 페터 바이스 상, 튀링거 문학상,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 사구엘 보구밀 린데 상 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다수 수상하는 영예를 안으며, 현재 독일 문단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라면 난 모든 것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새로운 인생]은 2005년 독일에서 출간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수많은 언론과 독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고, 독일의 유명 주간지 [슈테른Stern]이 예상한 대로 그해 가을 독일 지식인들 사이에서 토론의 소재가 되었으며, 한국이 주빈국이었던 그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 소설에서 슐체는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로 하여금 통일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살게 한다. 통일 이전에는 ‘반체제 작가’가 되어 서독으로의 망명을 꿈꾸었던 순수한 문학청년이자, 동독체제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해 훌륭한 연설을 하기도 했던 연극인 엔리코가, 통일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 눈을 떠 사업가로 변모해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감시와 억압이 심했던 동독 구체제,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독일의 통일, 서독 자본주의 체제의 도입 등 당시 독일의 정치 상황이 엔리코에게 미친 거대한 영향력이 실감 있게 묘사되어 있어 독자들에게 역사와 개인 간의 문제에 대해 되짚어볼 기회를 제공한다.

    이 작품은 의미심장한 독일의 역사와 세계정세의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으면서도―혹은 바로 그것을 이야기하기 위해―아주 일상적이며 수줍고 소심한 한 개인의 개인적 변화를 묘사하고 있다. 평범하기 짝이 없어 보이는 주인공 엔리코는 동독에서 태어난 걸 ‘원죄’라고 생각한다. 통일 전이나 통일 후나, 일상생활에서 마음속에 일어나는 크고 작은 욕망이나 좌절 그리고 생활의 이런저런 걱정들과 대치하고 있으며, 때로는 약간 비겁해 보이기까지 하는 인물이다. 물론 역사의 큰 소용돌이 속에 들어 있다는 것을 자각하고는 있지만, 이에 적극적으로 맞설 만한 용기와 결단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동독체제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가해 훌륭한 연설을 하면서도 그의 주된 관심사는 궁극적으로는 언제나 지극히 세속적이며 개인적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친구와의 경쟁에서 지고 싶지 않으며 경제적으로 안정된 삶을 누리고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가능한 한 삶을 풍요롭게 즐기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또한 통일 후에는 사업가가 되어 자본주의 체제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대범한 인물이 된 듯하면서도, 작가가 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 매일 세 명의 연인에게 편지를 쓰기도 한다. 바로 그러한 욕망의 이중성과 모순성 때문에 엔리코는, ‘원죄’라는 핑계를 만들어놓고 부대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매우 많이 닮아 있다. 이런 문학적 보편성은 이 작품에 대한 공감을 넓히고 있다.

    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는 우리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작품을 통해 장벽 너머 동독의 일상을 들여다보면서 북한의 일상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동독은 서양문화권의 국가이며 역사적·정치적 실정도 북한과는 많이 달랐겠지만 어느 정도 공통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것이다. 주민들이 일상생활 속에서도 끊임없이 대치하고 있는 감시 공권력이라든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비현실적이며 과장된 동경이나 선입견, 혹은 정치적 망명으로의 꿈을 읽으며 아마도 북한 어딘가에 실제로 엔리코와 비슷한 소년이 살고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통일을 기점으로 하여 동독이 무비판적으로 서독의 경제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인 이후 현재 독일인들이 겪고 있는 경제적 갈등 상황 역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 작품의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의 모습에는 잉고 슐체 본인의 개인사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슐체는 튀르머처럼 어린 시절부터 작가의 꿈을 꾸었고, 예나 대학에서 공부한 뒤, 알텐부르크로 가서 연극인으로 일하다, [알텐부르크 주간신문]을 운영한 바 있다. 그런 체험을 바탕으로 잉고 슐체는 한 소박한 개인이 겪는 실존적이며 일상적인 변화를 매우 치밀하게 그려냄으로써 뛰어난 문학적 성취를 이룰 수 있었다.

    작품 내용

    이 소설은 주인공 엔리코 튀르머가 누나인 베라, 친구인 요한, 그리고 후에 약혼자가 되는 니콜레타 등 세 명의 연인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형식을 띠고 있다. 편지는 1990년 1월 6일부터 7월 11일 사이에 쓰인 것이다. 베라와 요한에게는 근황을 전하고 있고, 니콜레타에게는 자신의 유년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일들을 정리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 편지의 내용을 시간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소년 엔리코가 서독에 대해 품은 지극히 어린아이다운 동경은 서독 물자에 대한 감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가 동경하는 서독의 모습은 비현실적인 상상력이 뒤섞이며 마치 동화 속 나라를 방불케 한다. 서독의 물건들은 “달에서 온 보석”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아름다운 동화 속 나라이기 때문에 서독은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다다를 수 없는, 아니 다다를 수 없도록 누군가 그 길을 막아놓은 이상향이나 파라다이스이기도 했다.
    엔리코의 눈에 누나인 베라는 ‘서독인의 얼굴’을 지닌 사람이다. 불행하게 암울한 동독에서 태어난 ‘서독인’이었던 것이다. 배우 지망생이었던 베라는 서베를린으로 떠난다. 이 때문에 엔리코와 어머니 엘리자베트는 후에 경찰의 감시를 받고 고초를 겪게 된다.
    엔리코는 반체제 작가가 되어 상상 속의 이상향 서독으로 망명하겠다는 꿈을 품은 채 살아간다. 하지만 동독 체제의 반영인 학교는 그를 옭아매고 구속하며 두려움과 절망에 떨게 한 냉정한 현실세계로 존재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사회주의 이념을 주입하고 강요하는 동독 정부의 하수인이었고 이에 반대하는 학생들을 징벌하고 위협하는 공권력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학교 내의 현실보다도 더 엔리코를 혼란과 절망에 빠뜨린 사람은 친구 요한이었다. 요한은 동독 공산당 산하 자유독일청년회(FDJ)의 푸른색 셔츠를 입지 않았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당당한 병역거부자였다. 엔리코가 상상 속에서만 반정부체제자였던 데 반해 요한은 어른들조차 존경심을 표하는 능동적이며 일관된 반정부체제자였던 것이다. 비겁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소심한 엔리코의 내면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당당하고 용기 있는 요한의 면전에서 엔리코 역시 병역거부자임을 자처해보지만 결국은 실패로 돌아간다. 담임선생님 앞에서 병역거부의 의사를 밝히는 순간 마음속에서 내렸던 결정은 금세 번복된다. 또한 어머니는 엔리코를 설득하여 사회주의 이념과 병역제도를 찬성하는 발표문을 낭독하게 한다. 요한은 결국 퇴학을 당하고 진학하지 못한 채 병역거부자라는 정치범의 신분으로 유일하게 다닐 수 있는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엔리코는 군 입대를 작가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받아들인다. 그곳에서의 비참한 경험이 그에게 무궁무진한 소재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장갑차 운전병이 되어 그럭저럭 잘 지내던 엔리코는 내무반의 동료들에게 무자비한 구타와 폭력을 당한다. 작가가 되기 위해 늘 수첩에 군대 생활을 기록하는 그를 상부가 내려 보낸 프락치라고 오해했던 것이다.
    제대 후 엔리코는 대학을 졸업하고 실연을 겪기도 하면서 평범한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는 알텐부르크의 극장에서 일하면서 미하엘라를 사랑하게 되고 그녀의 아들 로베르트와 한 가정을 이루어 살게 된다. 1988년 동독 공산당의 부정선거 사실이 밝혀지자 동독인들은 분노했고 큰 시위가 열렸다. 바로 그 부정선거가 “동독 체제의 전복을 알리는 조종”이었다. 그때부터 동독인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공공장소나 교회에서 반정부 연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통일이 눈앞에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혀 기뻐하지 않는다. 그는 통일을 원하지 않았다. 엔리코 튀르머가 반체제 인사가 되어 동독에서 서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넘어갈 수 있으려면, 고통 뒤에 오는 행복을 만끽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역경과 탄압에 맞서 투쟁하고 어렵게 탈출한 영웅으로서 서독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분단 상황이 계속 유지되어야만 하기 때문이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바로 직전 시위에 참가했던 엔리코는 경찰들이 소지한 권총을 훔친다. 그는 그것으로 정치인을 살해하는 상상에 빠진다. 늘 그렇듯 상상 속에서만 머문 극단적이고 영웅적인 행동이었다. 그러다 한참 동안 잊고 있었던 집필에의 의욕이 솟아나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마침내 베를린의 장벽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통일을 계기로 자신의 소망을 이루기에는 이제 너무도 늦었다고,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래’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엔리코는 침대에 누워 몇 주 내내 병을 앓으며 폐인과 같은 생활을 한다. 그가 그렇게 침대에만 누워 절망감과 허탈함 속에서 끙끙 앓고 있는 동안에도 사람들은 열심히 시위에 참여했고 ‘새로운 포럼’이라는 정당에 입당하거나 [명백한 주장]이라는 간행물을 만들면서, 통일 후 새로운 민주주의를 건설할 준비에 분주했다. 그는 어느 날 밤, 돌연 병상에서 일어나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 깜깜한 밤의 거리와 숲을 활보했다. 그의 손에는 권총이 들려 있었다. 그 몽환적인 산책길에서 그는 통일 전의 자아로부터 통일 후의 자아로 변신한다. 그것은 참된 언어와 명예를 추구하던 삶을 청산하고, 통일 이후 새로운 방식과 가치관을 추구하며 살게 될 거라는 실존적인 변신이며 통과의례였다. 엔리코 튀르머라는 한 개인의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엔리코 튀르머는 곧 극장 일을 그만두고, 통일 직전과 직후 내내 시위와 연설을 주도하고 통일 이후 민주주의를 동행한다는 슬로건 하에 [알텐부르크 주간신문]을 만들려는 사람들과 합세하게 된다. 그러나 곧 그들의 신문사는 고객과 경쟁력을 잃고 서독의 대기업 신문사의 손으로 넘어갈 위협에 처하게 된다.
    즉시 엔리코는 주로 광고를 위주로 싣는 광고 전문지 [일요신문]을 창간한다. 엔리코가 그렇게 빠른 속도로 통일 이후의 인간형이 되는 데는 물론 신문사를 둘러싼 주변 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그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역할이 컸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확실히 영향을 미친 사람은 클레멘스 폰 바리스타였다. 그는 늑대같이 생긴 개 한 마리만을 데리고 단신으로 알텐부르크에 나타난 구서독 출신의 사업가였다. 바리스타는 엔리코에게 여러 가지 사업 수완을 가르쳐주거나 신문사의 법적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요한 인맥을 만들어주기도 하며 호화로운 카지노나 최고급 자동차, 호텔과 같은 자본주의적이고 물질적인 세상을 보여줌으로써 엔리코로 하여금 도박을 하고 위험을 감수하며 부를 추구하는 자본주의적 삶의 방식을 배우도록 유도한다.
    엔리코는 알텐부르크에서 큰 사업을 벌이자는 바리스타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결국 사업에 실패하고 큰 빚을 지고 도주하게 된다.

    본문중에서

    난 귀여운 빨간 자동차 한 대를 선물 받았습니다. 앞바퀴와 운전석의 문 사이에 밝은색의 막대기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것으로 방향을 잡게 되어 있었지요. 자동차에는 유리로 된 전조등도 달려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말씀하셨지요. “서쪽에서 온 보물이란다.”
    여행용 가방에서는 어머니가 보시도록 자꾸만 새로운 선물들이 나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전기면도기를 내 손바닥에 대며 간질이십니다. 그 모든 것이 황금의 나라 서독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난 내 방의 전면을 건너다봅니다. 낯선 사람은 숨어 있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소곤대며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난 다시금 침대에 누워 낯선 사람들이 오래도록 머물지 궁금해합니다. 난 그들이 우리 집에 이사를 오려는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난 어머니의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난 겁이 나기도 했고 깊은 감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보물 장난감, 그것이 유래한 곳은 황금의 세상입니다. 동시에 그건 우리가 서쪽에서 살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난 이 자동차를 밖에서 가지고 놀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아이들이 이 자동차가 있다는 것을 알아서도 안 됩니다. 그들은 빨간 자동차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모두가 날 시기할 것입니다. 빨간 자동차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건 어디에서 그냥 살 수도 없는 물건입니다. 동쪽에선 아주 극소수의 아이들만이 미니카나 레고 장난감이나 ‘카바’ 카카오 가루 깡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난 서쪽에서 온 셔츠와 바지도 가지고 있었고 먼 훗날이 되면 어린이 초콜릿 위에 그려진 소년처럼 멋지게 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원래는 나도 서독 어린이였으니까요.
    (/ pp.160~161)

    월요일에 담임선생님 뮈슬렙스키가 또 한 번의 개인면담을 위해 나를 지하실로 불렀습니다. 유일하게 나만 두 번이나 불렀다는 사실이 난 기쁘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습니다. 제로니모는 다른 아이들이 모두 알도록 자신이 학교 앞에서 나를 기다릴 것임을 공표했습니다─나를 도와주기 위해, 나를 지지해주기 위해서 말이지요.
    뮈슬렙스키는 국가 인민군(NVA)에 들어가 장교가 되거나 적어도 3년 동안 부사관으로서 손에 무기를 들고 모든 종류의 적들에 대항해 고국을 수호하는 것을 내가 거부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내가 처음 “아니요!” 했을 때부터 그는 분노를 억누르려고 애쓰며 말을 더듬을 지경이었습니다. 갑자기 그는 내게 책 한 권을 내밀었습니다. 그 안에서 모든 필수적인 정보를 읽을 수 있다며 금요일 물리 시간에 침략자 서독 독일연방군에 관해 10분간 발표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와 같은 태도로 내 팔의 위쪽을 두드리는 바람에 난 그만 그에게 감사하며 국가 인민군에 3년간 복무하는 것을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겠다고 말함으로써 그를 기쁘게 하고 싶은 충동이 일었습니다. 아니, 정말이지 난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싫지 않았습니다. 난 옆문을 통해 학교를 빠져나와 버스정류장을 돌아 멀리 피해갔습니다.
    나 자신이 역겨웠습니다. 뮈슬렙스키를 포옹하고 내 편으로 만들고 싶었으며 제로니모에게서 도망치고 싶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 pp.243~244)

    내가 은밀히 바랐던 것은 당연히 군복을 입은 자들의 호위를 받으며 어느 한 간첩단의 보호 속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기차를 타는 장면이었지요. 거기서 난 카메라맨들과 사진사들에게 둘러싸여 내 새로운 인생을 시작한단 말입니다. 빡빡 깎은 이 머리로 이 부대에 입장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그러한 승리를 위한 전제 조건이었지요. 내가 발견한 보물들을 드러내놓고 발표하기 전까지는 지하 세계로 잠입해야 했고 조심해야 했습니다.
    마침내 우리를 태운 차가 출발했고 라데보일을 지날 무렵 난 잠깐 동안이나마 글을 쓰는 자유사상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정부가 추방한 후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하인리히 뵐이나 빌리 브란트의 축사로 위로를 삼는 그런 작가 말입니다. 난 창밖을 내다보며 내 감사 연설의 첫 문장을 생각했습니다. 일종의 고발문이면서도 나를 추방하는 것이 얼마나 큰 실수인가를 동독의 마지막 동무들까지도 다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문장을요.
    (/ pp.327~328)

    저자소개

    잉고 슐체(Ingo Schulz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2~
    출생지 구동독 드레스덴
    출간도서 6종
    판매수 488권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나타난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문학의 형식으로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독일의 작가이다. [양철북]의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귄터 그라스에게서 "이 시대의 진정한 이야기꾼"이라고 극찬을 받은 그는 현재 독일 문단에서 가장 주목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1962년에 동독의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으며, 예나대학에서 문학과 예술사를 공부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알텐부르크 주립극장의 공연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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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명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뒤 독일 마인츠 대학, 베를린 훔볼트 대학과 자유대학, 콘스탄츠 대학에서 고전 그리스어와 라틴어, 천주교 신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현재 베를린에 체류하며 통·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대리석 절벽 위에서],[1조 달러],[아담과 에블린],[핸드폰],[천재가 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드라마],[심플 스토리],[새로운 인생],[언어란 무엇인가]를 포함한 여러 권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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