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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어느 날 갑자기 화석으로 변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여자,
    그녀가 눈에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기록!


    잉게보르크 바흐만과 더불어 20세기 오스트리아 여성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마를렌 하우스호퍼의 장편소설 [벽]이 출간되었다. 1952년 마릴리라는 여자아이의 성정체성 갈등을 그린 단편 [다섯 살]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한 마를렌 하우스호퍼는 장편 [한 줌의 삶] [비밀문] [우리가 죽인 슈텔라] 등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사회에서 소외받는 여성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발표하여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작가의 대표작이자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본질적인 작품이라고 말한 [벽]은 어느 날 갑자기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에 혼자 남겨진 여자가 보이지 않는 벽에 갇혀 보낸 2년 6개월의 삶을 일인칭 시점으로 기록한 소설이다. 죽음보다 깊은 고독, 생존보다 가혹한 노동을 견디며 주인공은 자신처럼 벽에 갇힌 동물들을 돌보며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꾸리고 여성도 남성도 아닌 인간 그 자체의 순수한 삶을 영위해나간다.
    [벽]은 1963년 오스트리아에서 출간되어 꾸준히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오다 핵전쟁에 대한 위기의식과 유럽을 휩쓸던 여성 문학 붐에 힘입어 1983년 독일에서 재출간되면서 ‘하우스호퍼 르네상스’를 일으켰다. 이는 하우스호퍼가 이 소설에서 여성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아남는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는 상황에서도 ‘나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존재를 위해 무한히 강인해질 수 있는 모성의 힘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묻고 있기 때문이다. 암울함과 화사함, 무거움과 가벼움이 공존하고 있는 [벽]에서 생명을 낳고 생명을 보살피는 모성의 고통과 희열은 계절의 순환과 함께 무한 반복된다. 훈훈한 봄바람, 쨍쨍 내리쬐는 여름 햇볕, 세상을 삼켜버릴 듯한 천둥과 소나기, 젖소가 풀을 뜯는 초원의 냄새, 감자가 단단하게 익어가는 가을의 향기, 흰 눈이 덮여 모든 것이 꽁꽁 얼어버리는 혹독한 겨울…… 그 고요한 순환 속에서 어느 하루도 특별하지는 않지만, 또한 다른 날과 같지도 않다. 암소와 암고양이의 배가 불러오고 새끼가 태어나고, 새끼들이 죽어가고, 또다시 배가 불러오는 과정의 반복과 주인공이 그들을 보살피며 살갗으로 느끼는 감각들, 모성을 지닌 여자이기에 느낄 수 있는 감각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하우스호퍼는 이 작품으로 1963년 아르투어 슈니츨러 문학상을 받았다.

    본문중에서

    사촌 내외의 초대를 받아 그들의 산장으로 휴가를 떠난 ‘나’는 도착한 날 저녁, 사촌 내외가 마을에 볼일이 있다며 나간 뒤 혼자 산장에 남는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지난 밤 돌아오지 않은 사촌 내외를 찾아 나섰다가 적막한 숲 속을 둘러싼 투명하고 차가운 벽을 발견하고 그 안에 갇혀 혼자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밤사이 벽 바깥의 세계는 죽음의 폐허가 되었고, 모든 생명체가 돌처럼 굳어 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어느 날 아침 갑충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 소설이 시작하듯, 벽이 생긴 원인이나 과정은 수수께끼로 남은 채 이야기는 시작된다.

    나는 할 수 없이 개를 옆으로 밀치고 혼자 걸음을 내딛었다. 개가 길을 막는 바람에 내 걸음이 느려진 것은 다행이었다. 몇 발짝도 못 가 나는 어딘가에 머리를 세게 부딪치고 말았다. 룩스가 다시 킁킁거리더니 내 다리를 물고 잡아당겼다. 손을 앞으로 내밀어보니 무언가 매끄럽고 차가운 것이 만져졌다. 공기 이외의 다른 것이 있을 리 없는 곳에 매끄럽고 차가운 장애물이라니!

    벽은 차단과 고립을 의미하지만 보호의 기능도 갖는다. ‘나’는 학창시절에는 모범생이었고 결혼 뒤에는 남편과 자식들을 위해 헌신했던 주부였다. 늘 시간에 쫓기고, 고독과 공허에 시달리는 삶, 살벌한 경쟁 사회에서 한숨 돌릴 겨를도 없는 삶을 살아온 ‘나’는 그런 사회(또는 현실)가 파멸한 것에 대해 별로 슬퍼하지 않는다. 사십 년 넘게 자신을 이루어온 세계와 단절된 가운데 ‘나’는 이제 산장지기가 키우던 룩스라는 사냥개, 초원을 헤매다 자신을 찾아온 벨라라고 이름 붙여준 암소, 새끼 밴 고양이와 함께 새로운 삶의 공동체를 형성한다. 주인공이 농사를 짓고, 사냥을 하고, 암소와 암고양이를 돌보는 삶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벽’의 존재가 더이상 언급되지 않는다. 벽은 엄연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부숴버릴 수도 없는’ 삶의 조건 같은 것일 뿐이다.
    벽으로 단절된 주인공은 처음에는 누군가가 자신을 발견하고 데리러 올 것을 기대하지만 머지않아 이를 두려워하게 된다. 벽에 갇힌 지 2년이 지난 어느 날, ‘나’는 손도끼를 들고 나타난 낯선 남자로 인해 가족 같은 동물들을 잃고 사방에서 엄습해오는 공포와 두려움을 이기고자 글을 쓰기 시작한다.

    나는 지금 쓰는 것이 즐거워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성을 잃지 않으려면 무엇이든 써야겠다는 생각에서 쓰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 나를 생각하고 염려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나는 길고 어두운 몇 달 동안의 겨울을 혼자 견뎌야 한다.
    지금까지도 나는 그 낯선 남자가 왜 송아지와 룩스를 죽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나는 휘파람으로 룩스를 불러세웠었다. 룩스는 무방비 상태로 기다리다가 머리를 관통당한 것이다. 그 낯선 남자가 왜 내 동물들을 죽였는지 알고 싶다. 11월이 되어 겨울이 시작되면서 나는 이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이것은 마지막 시도였다.

    그로부터 넉 달 동안 ‘나’는 종이가 바닥날 때까지 사냥개 한 마리, 암소 한 마리, 암고양이 한 마리를 돌보며 살아온 ‘벽’ 속의 날들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 땔감 마련하기, 암소에게 먹일 건초 마련하기, 암소의 젖 짜주기, 사냥하기, 감자밭과 콩밭 일구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한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흐름에 따라 기록된다. 그리고 그 속에서 벽 속에 갇히기 전 주인공이 딸로, 어머니로, 한 남자의 아내로 살았던 지난 삶의 기억이 뜻밖의 깨달음과 맞닥뜨리게 된다.

    문명과 자연의 경계로서의 벽
    벽 이편과 저편은 문명사회와 자연으로 대립된다. 주인공이 갇힌 세계는 사냥을 위한 산장이 있는 숲으로 된 자연 공간으로 여기에 남겨진 문명의 흔적들은 점차 자연으로 대체된다.
    가스관, 화물차, 송유관 등등. 이제는 인간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흉측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것들은 실용적인 물건 이상으로 우상화되어왔다. 이 산속 한가운데에도 그런 물건이 하나 있다. 후고의 검은 벤츠 자동차가 그것이다. 우리가 그 차를 타고 여기 올 때 차는 거의 새것이었다. 지금 그것은 수풀이 우거진, 쥐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기술과 산업의 발달로 대변되는 문명이 자연으로 대변되는 산에서 볼품없는 잔재만 남기고 있다. 낡고 쓸모없이 버려진 기술 문명의 산물들은 인간의 이룩한 문명의 종말을 상징한다. 또한 잡초에 뒤덮여 쥐와 새들의 보금자리가 된 검은 벤츠는 남성 중심 문화의 해체를 알리기도 한다. 문명이 남성으로 대변된다면 자연은 여성성, 모성의 반영이다. 주인공은 문명에서 단절된 자연 속에서 동물들과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해나간다.
    ??벽??의 주인공이 처한 고독의 상태는 외적으로는 로빈슨 크루소와 흡사한 것으로 ‘여성판 로빈슨 크루소’로 불리기도 하지만, 로빈슨 크루소가 기존의 사회를 긍정하고 문명사회에서 배운 지식들로 자연을 이겨나가는 것과는 달리 ??벽??의 주인공은 문명사회를 거부하고 자연의 요소들을 배워간다는 점에서 다르다. 예를 들어 문명사회의 상징인 손목시계와 자명종이 멈추자 시계는 매일 오전 아홉시경에 날아오는 까마귀 소리로 대체된다. 또한 주인공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 않고 동물들의 이름도 종을 표시하는 정도의 이름이 부여되고 있다는 점에서도 주인공의 문명에 대한 거부를 읽을 수 있다.

    고립과 고독의 상징으로서의 벽
    하우스호퍼가 발표한 일련의 작품들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유독 여성의 공간을 나타내는 제목이 많다는 것이다. ‘벽’ ‘비밀문’ ‘다락방’은 집의 내부 공간으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에게 더 가까운 영역이며, 여성들의 내면 공간을 의미하기도 한다. 실제로 두 아이를 키우며 치과 의사인 남편의 진료실에서 간호보조원으로 일하고, 시간이 나면 부엌 식탁에 앉아 글을 쓰던 작가에게 글쓰기는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자 가능성이었다. 이렇듯 [벽] [비밀문]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일기체의 서술 방식은 고립된 화자의 내적 독백이며, 폐쇄된 공간은 글쓰기 보호와 피신의 공간인 셈이다.
    이런 맥락에서 [벽]의 주인공의 글쓰기는 가부장제 사회에 대한 도전이다. 또한 주인공이 시계가 멈추거나 망가졌어도 결코 아쉬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정확한 시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듯한 해방감을 느끼는 것도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벗어나 새로이 여성의 시간을 맞이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하우스호퍼는 주인공의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자아상을 다른 색으로 인해 무리에서 따돌림당하는 하얀 까마귀에게 투사한다.

    까마귀들이 떼를 지어 날아올랐다. 그들은 숲 위를 맴돌며 울어대고 있다. 까마귀들이 보이지 않게 되면 나는 공터로 나가 하얀 까마귀에게 먹이를 줄 것이다. 그녀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하얀 까마귀는 무척 아름답지만 다른 까마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다른 까마귀들이 먹이를 먹고 떠난 다음에야 혼자 숲에 와서 주인공이 주는 먹이를 얻어먹는 외톨이 새다. 다수에 의해 인정받지 못하고 경쟁에서 뒤지지만, 인내심을 가졌으며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인공과 비슷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이 하얀 까마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주인공이 나아가는 마지막 장면은 [벽]의 주인공이 희생과 수동의 상태로부터 자신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에 이르고, 글쓰기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았음을 암시한다.
    이런 의미에서 [벽]은 인류 문명에 대한 비판서이며, 여성의 소외를 밝히고 그 극복을 요구하는 페미니즘 소설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를 위한 제안서이기도 하다.
    (/본문중에서)

    저자소개

    마를렌 하우스호퍼(Marlen Haushofer)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20.04.11~1970.03.21
    출생지 오스트리아 프라우엔슈타인
    출간도서 2종
    판매수 94권

    1920년 북부 오스트리아 프라우엔슈타인에서 삼림감독원의 딸로 태어났다. 린츠에서 가톨릭 김나지움을 다니다 건강 문제로 학업을 중단했다. 1939년 대학입학 자격시험을 치르고 비엔나 대학과 그라츠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공부했다. 1941년 치과의사였던 만프레트 하우스호퍼와 결혼했고, 남편을 도와 병원 일을 돌보는 틈틈이 오스트리아의 신문과 잡지에 작품을 발표했다. 1950년 이혼했다 팔 년 뒤 전남편과 재결합했다.
    1952년 마릴리라는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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