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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허의행 시인의 세 번째 시집 『0그램의 시 』. 키스의 세계를 지향하는 언어들의 윤리적 에로티즘을 드러내는 이번 시집은 어린아이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신비감, 상상계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와 아이 간(이자관계)의 극도의 황홀감을 표현한다.

(투명한)맨살의 언어와 (그로테스크한)키스의 공동체

1994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허의행 시인의 세 번째 시집으로 키스의 세계를 지향하는 언어들의 윤리적 에로티즘.

똥과 똥파리는 우리의 관념 속에 존재하는 더럽고 하찮은 사물이 아니다. 허의행의 시에서 똥은 근원적 물질일 수 있는데, 그것은 몸속을 통과해온 살의 일부분이며 그것의 연장(延長)이다. 시의 시선은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어린아이는 타고난 물질주의자라고 바슐라르는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의 몸을 가장 근원적인 물질로 이해하는 시적 주체의 시선은 어린아이들이 자신의 똥을 바라볼 때 발생되는 순수한 희열감을 불러온다. 어린아이가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면서 느끼는 신비감, 상상계에서 느껴지는 어머니와 아이 간(이자관계)의 극도의 황홀감이 시를 감싸고 있다.
똥은 신비감과 황홀감을 불러일으키는 근원적 물질이다. 똥은 휴지와 똥파리와 마타리꽃과 키스하는 중이다. 똥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똥을 통해 만물이 키스하는 순간적 공동체를 열리게 한다. 허의행의 자기기원의 탐구는 이처럼 횡적인 관계성과 순간의 키스성을 향해 있다.

[차례]

I
빈집 ──── 13
해를 먹는다 ──── 14
가을 ──── 16
밀짚모자 속의 잠 ──── 17
풀잎과 휴지 ──── 18
국그릇 ──── 20
깊은 우물 ──── 21
제삿날 ──── 22
개字처럼 살았을 때 ──── 23
0그램의 시 ──── 24

II
선물 ──── 27
봄 ──── 28
작은 교회 ──── 29
10원 짜리 동전의 헌금 ──── 30
맑은 날 ──── 32
어린 새 ──── 33
아기의 산 ──── 34
인공 수분 ──── 35
공원에서 ──── 36
징검다리 ──── 37
꽃과 순이 ──── 38
철수야 지금 뭐하니 ──── 39
발소리 ──── 40
밤이 오는 풍경 ──── 41

III
가슴과 배의 차이 ──── 45
초보 ──── 46
동부고속 터미널 ──── 47
세 살 버릇 ──── 48
예쁜 누나들이 있었다 ──── 49
볼리비아에서 ──── 50
어머니에게 ──── 52
하루살이 ──── 53
자물쇠 ──── 54
빨간 정조 ──── 55
사춘기·1 ──── 56
사춘기·2 ──── 58
분꽃 ──── 59
서툰 키스 ──── 60
일상 생활 ──── 61
총각선생님 ──── 62
야외 실습 ──── 63
유정란 ──── 64
귀소본능 ──── 65
여름날의 일기 ──── 66
돌 ──── 67
비린내 ──── 68
아버지의 땀 ──── 69
초코파이를 먹었다 ──── 70
개새끼 ──── 72
똥개 ──── 74
닷새 장날 ──── 75
찌든 고등어 ──── 76

IV
눈빛 ──── 79
공원묘지에서 ──── 80
연보라 빛 ──── 82
여백 ──── 83
시편 제 백 삼십 일편 ──── 84
산골 교회 ──── 85
줄리엣 ──── 86
며느리 ──── 87
새끼의 똥 ──── 88
봄나들이 ──── 89
사랑한다는 말 ──── 90
고백 ──── 91
낯선 시간 ──── 92
외딴 집 ──── 93
낡은 전설 ──── 94
섣달 그믐 ──── 95
종소리 ──── 96
산단풍나무 ──── 97
[해설] (투명한)맨살의 언어와 (그로테스크한)키스의 공동체 | 임지연 ────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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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의행 시의 세계는 애무와 키스를 통해 세계와 만난다. 애무와 키스는 타자를 불러온다. 애무와 키스는 타자의 낯선 몸(살)이 주어질 때 가능하다. 나와 타자들의 몸이 애무하고 키스할 때 이 둘은 어떤 순간의 공동체를 이룰 것이다. 그 순간을 포착하여 관계들의 윤리를 보여준다. “애무할 때 입술을 빨아대듯 똥파리들은 정신없이 똥을 빱니다”라는 구절에서 알 수 있듯이 똥파리들과 똥은 그로테스크한 에로스의 관계를 형성한다. 시적 주체의 우연하고 예외적인 행동은 똥과 똥파리를 애무와 키스의 공동체로 가능하게 하며, 시적 주체 역시 이 순간에 함께 참여한다. 거대한 공동체의 순간이 열린다. 따라서 이전의 시가 ‘비정한 리얼리즘’(오규원)이었다면, 이 시집의 시적 방법은 ‘윤리적 리얼리즘’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임지연(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