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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카뮈의 [이방인], 사르트르의 [구토]에 앞선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작

    20세기 유럽 문단의 풍성한 수확으로 평가받는 헝가리의 문호 산도르 마라이는 인생의 운명적인 전환점을 능숙하게 그려낸다. [섬]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외적인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삶의 진실한 의미를 찾아 헤매는 중년 대학교수의 고백을 빌어 삶의 비밀과 존재의 불안을 파헤친다.

    실존주의 문학은 1940~1950년대에 프랑스에 전개된, 실존주의 사상이 짙게 반영된 문학을 일컫는데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등이 그 대표적인 작가이다. 합리주의적 인간관에 대한 의심, 삶에 대한 근원적 반성, 새로운 생존의 길의 모색 등을 보이는 모든 문학을 이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실존철학과 창작활동을 긴밀히 연결시켰던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1943)에서 인간 존재의 우연성, 의식과 대상의 관계, 인간이 타고난 괴로운 자유, 타인과 나의 존재론적 관계, 일정한 상황 속에서의 주체적인 선택을 통해서 생성되어 나가야 할 우리의 운명 등에 관해서 이론적으로 설명했다. 카뮈는 [이방인](1942)과 [시시포스의 신화](1942)에서 이른바 부조리성을 부각시켰다.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윤리의 모색을 시도한 이들의 문학을 ‘실존주의 문학’이라고 한데 묶어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프랑스 이외 지역의 작가로는 콜린 윌슨이나 그레엄 그린 등이 주목을 받아왔다.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작이라 불릴 만한 산도르 마라이의 [섬](1934)은 카뮈의 [이방인](1942), 사르트르의 [구토](1938)에 앞서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불안과 부조리를 심도 있게 그려낸다.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처럼 아슈케나시도 외부세계에 대한 무관심과 이질감, 존재의 갈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섬]의 주인공 아슈케나시는 호텔방에서 형편없는 노래를 부른다는 이유로 여인의 목숨을 빼앗고, 뫼르소는 해변에서 태양이 눈부시다는 이유로 아랍인에게 총을 겨눈다. 두 사람의 영혼은 현실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만의 세계에 침잠하는 닮은꼴을 보인다. 인간 실존의 문제가 크게 부각하던 시기에, [섬](1934)은 [이방인](1942)보다 8년 앞서서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예술적으로 뛰어나게 그려냈다.

    삶의 비밀을 찾아서
    “왜 만족은 존재하지 않는가?”

    주인공 아슈케나시는 철저하게 고독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아내도 친구도 주변의 그 누구도 그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고립되어 절망적인 외로움에 갇혀 있다. 산도르 마라이는 이런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심리적 흐름을 냉철한 분석과 심오한 성찰을 토대로 치밀하고 능란하게 묘사한다. 그와 동시에 자기 자신과 인간의 본성을 가차 없이 분석하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인간사회의 모습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특히 인간과 인간을 맺어주는 ‘말’에 초점을 맞추어 언어의 표현 가능성과 한계, 소문의 진원과 실상, 말과 현실의 괴리 등을 다양한 관점에서 예리하게 파고든다. 사람들은 흔히 안이하게 삶을 몇 개의 고정관념으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지만, 말은 결코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 진실을 표현하기에는 불충분하고 허점 있는 경우가 많다.

    [열정]을 비롯한 다른 작품들에서처럼 이 소설에서도 마라이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진부한 소재에 진지하고 심오한 테마를 담아낸다. 삶에 불만을 품은 중년 남자의 방황과 외도는 인류사에서 이미 자주 일어났으며 또 언제든지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고로써, 언론에 진수성찬을 마련해주고 호기심에 굶주린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사건이다. 이런 진부한 소재를 빌어 인간 존재의 무거움과 근원적인 결핍을 시적으로 뛰어나게 형상화시키는 것에서 마라이의 뛰어난 예술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연극처럼 시작한다. 주변 인물들이 먼저 등장하여 분위기를 한껏 조성한 후에, 끝으로 주인공이 등장하고 사건이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렇듯 정교한 극적 구성, 현재와 회상이 교차하는 이중적인 구조, 입체적이고 치밀한 묘사, 생생한 어조, 간단히 말해 예술적 형식과 언어적 유희와 심오한 내용이 하나로 어우러져 심층적인 고도의 예술작품을 빚어내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진한 여운을 남긴다. [섬]은 산도르 마라이의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지적 독자들을 위한 독특한 글 읽기의 기회를 제공하고, 현대사회의 급속한 발전과 물질적인 현란함에 휘말려 자칫 삶의 중심을 잃고서 외면적인 삶의 노예가 되기 쉬운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돌아보게 해준다.

    왜 ‘섬’인가?
    섬, ‘세상을 감지하는 최후의 신경’

    아슈케나시가 삶에 대한 회의로 절망적인 모험을 한 끝에 찾아간 섬은 “여기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아슈케나시가 움찔거리며 세상을 감지하는 최후의 신경”이다. “이성이 등 돌린 그 공허한 세계가 무심하게 펼쳐진” 바다를 앞에 둔 섬에서 주인공은 신과 독대하며 인간의 부조리한 삶에 대한 끊임없이 질문을 쏟아낸다. ‘이성’ 이전의 세상(바다)에 우뚝 솟은 섬에서 ‘이성’의 편협한 어휘를 부정하면서도 ‘이성’의 언어로밖에는 자신을 설명할 수 없던 아슈케나시는 섬에 와서야 비로소 세상에 던질 수 없었던 존재에 대한 깊은 의문을 풀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라고 절규한다. 경찰관에 잡혀 떠나는 아슈케나시 뒤로 “섬은 강렬한 햇살 아래서 선명하고 날카로운 윤곽을 드러”낸다.
    ‘섬’인가, ‘신’인가는 분명하지 않다, 아슈케나시가 절박하게 묻는 대상이. ‘이성’ 이전의 세계를 상징하는 ‘바다’에 한줄기 빛처럼 비추는 ‘섬’은 이 대답을 알고 있을까? 산도르 마라이는 이 책에서 이 모든 질문에 답을 구하고 있다.
    줄거리 따라가기》
    “인간은 선이 아니라 악을 통해 구원받는다.”

    학식 높은 고매한 신사 빅토르 아슈케나시는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지위, 정숙한 아내와 귀여운 딸 등 외적으로는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삶의 의미와 비밀을 애타게 찾아 방황한다. 그러나 이 세상 그 무엇도 그의 공허한 마음을 채워주지 못하고, 갈구하는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길거리에서 러시아 출신의 무용수 엘리즈를 만난 후에, 지금까지 누려온 안온한 삶을 홀연히 뒤로한다. 낯선 여인 엘리즈는 아슈케나시에게 평범한 일상이나 인습이 아닌 비밀스럽고 특별한 뭔가를 의미한다. 아슈케나시는 그 낯선 여인과의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무의미하고 지루한 삶에서 탈출하여, 그토록 오랫동안 갈망하던 행복과 순수한 정열의 문에 이르길 기대한다. 그는 미련 없이 아내를 버리고 엘리즈를 선택함으로써 삶의 모든 물음에 대한 답변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그러므로 낯선 여인과의 만남은 인생의 중반에서 뒤늦게 타오르는 사랑과 열정의 분출이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필사적인 열망의 표현이다. 그래서 엘리즈에게 아내가 되어달라고 하는 편지에서 부드러운 애정 표현을 한마디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아슈케나시는 처음에 육체적인 사랑이 공허한 마음을 채워줄 수 있다고 믿는다. 엘리즈 곁에서 육체적으로 더 젊어지는 것 같고, 때로는 거의 행복하다고 느낀다. 그러나 그 열정은 결코 완벽한 만족감과 성취감을 선사하지 않고, 그토록 갈구하던 삶의 비밀로 인도하지 않는다. 엘리즈는 삶의 진실을 향한 모험에서 잠깐 머무르는 경유지일 뿐 안주할 수 있는 목적지가 아니다. 아슈케나시는 행복한 듯 보이는 몇 주일을 보낸 후에 유감스럽게도 아무런 대답을 얻지 못하고서, 처음 찾아왔을 때처럼 홀연히 엘리즈 곁을 떠난다. 아슈케나시의 절망적인 모험, 삶에 대한 회의는 결국 휴양지의 호텔에서 뚜렷한 동기 없이 한 여인을 살해하는 것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후 섬에 이른 아슈케나시가 신과 독대하며 쏟아내는 긴 독백은 고백을 넘은 도전이며 단연 이 책의 압권이다.

    본문중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견해에 따르면, 인간은 지상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유일한 보답으로서 ‘행복’이나 ‘만족’이라고 불리는 특별한 마음 상태를 부여받는다. 아슈케나시가 낯선 여인과 함께 석 달 남짓 살았을 무렵, 그 ‘행복’이나 ‘만족’이 실제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에 대해 놀라기 시작하였다. 아슈케나시가 체험한 것은 분명 ‘행복’이었지만, 그것은 이상하게도 결코 쾌적하다고 일컬을 수 없는 불편하고 복잡한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행복의 열기를 견디기가 힘들었다. 평일에도 아침 일찍부터 진종일 연미복과 실크해트 차림으로 돌아다니듯, 왠지 과장되고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 p.131)

    인간은 선함을 통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야, 안간힘을 쓰며 생각을 더듬었다. 언어라는 태고의 소재 속에 많은 낱말들이 이리저리 뒤엉키고 들러붙어 있어서 낱말 하나하나를 어렵게 떼어내야 했다. 낱말들은 모두 본래의 의미, 생명력을 기생충처럼 빨아먹는 관계들로 가득 차 있었다. 이제 낱말들을 서로 분리시켜서 하나하나 깨끗하게 청소하고 소독해야 했다.
    인간은 선함이 아니라 죄를 통해서 구원받는다고, 아슈케나시는 천천히 생각을 파고들었다. 수첩을 꺼내어, 속기하듯 빠르게 대충대충 쓰는 평소의 필치가 아니라 학생들처럼 둥글둥글한 필치로 정성껏 이 말을 기록했다.
    (/ p.197)

    “너는 무엇을 수호하느냐?”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물었다.
    “질서……? ‘질서’가 오로지 하나의 측면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느냐……? 질서, 관계, 그것은 하나의 기슭, 아마 낮의 측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낮의 측면에서 생겨나 낮의 일부를 이루는 다른 측면, 밤은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밤의 측면 없이 생명은 존재하지 못하며, 낮이 만들어내고 짜 맞추는 모든 것은 이 밤의 측면 안에서 해체된다…….”
    (/ p.209)

    “그렇습니다, 제가 오로지 이런 이유에서 모든 것을 했다고 인정합니다. 저는 최선의 것을 원했으며, 더없이 명확하게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글을 당신의 뜻에 맞게 삶의 언어로 옮겨보고 싶었지요……. 애석하게도 그것은 가능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말들이 부족합니다. 말들은 조야하고 미비하며, 원래의 것에 가까이 접근하지 못합니다……. 깨어 있을 때나 꿈을 꿀 때나 항상 그들은 제 뒤를 바짝 쫓아왔습니다……. 마치 귓가를 맴도는 멜로디 같았지요, 전혀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것에 저항했으며, 그것을 밀쳐버리고 책을 꺼내들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심지어는 스포츠도 해보았고 급진 사회주의 정당에도 가입했습니다……. 참 우스꽝스러운 짓이었지만, 그때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게다가 저는 그것이 죄라고 믿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두려웠습니다……. 그 점이 무엇보다도 이상했습니다.”
    아슈케나시는 흡족하게 조롱 섞인 미소를 지었다.
    “저는 이 일의 육체적인 면을 오랫동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육체적인 면은 결국 극복해야 하는 부수적인 현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선善, 헌신, 사랑이 근본적으로 중요하다고 믿었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 pp.254~255)

    “제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제가 아까 호텔에서 그랬듯이, 인간은 이따금 순간적으로 분위기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살면서 근본적인 원칙을 추구합니다……. 그런데 원칙 대신 살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것, 대부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만을 얻습니다. 더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이 더 좋은 품질을 얻습니다……. 그래서 실망하고 좌절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당신께서는 그것을 나쁘게 생각하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소한 일들, 자질구레한 일과 공식적인 일, 사람을 붙잡고서 놓아주지 않는 회의……. 제가 결코 평온을 누리지 못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언제나 겨우 잠깐 지속되었을 뿐입니다……. 한번은 자욱이 깔린 안개를 헤치고 집에 간 적이 있습니다. 길모퉁이에서 가스등이 타오르고 있었는데, 안개 속에서 불꽃을 크게 날리며 가물거렸습니다. 그때 저는 부족한 것 없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겨우 30분 계속되었을 뿐입니다…….
    (/ pp.255~256)

    “…… 제가 손을 잡았을 때, 그 여인은 애석하게도 뿌리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을 붙잡았습니다. 다만 저는 한낱 여자 때문에 파멸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지요……. 그러나 그 여인은 너무 어설프게 행동했습니다……. 저는 당신하고 다른 약속이 있다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아슈케나시는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제발 말씀해주십시오.”
    잠시 후, 상냥하게 격려하듯 조용히 물었다.
    “왜 저를 속이셨습니까?”
    (/ p.260)

    저자소개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00.04.11~1989.02.21
    출생지 캇사
    출간도서 9종
    판매수 4,517권

    산도르 마라이는 1900년 독일과 헝가리 문화의 접합지이며, 1차 세계대전 후 체코에 귀속된 캇사에서 태어났다. 마라이의 아버지 집안은 작센에서 이주한 독일 계통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헝가리어와 더불어 독일어를 말하고 배웠다. 그리고 슬로바키아어도 약간 말할 수 있었으며, 당시 중부와 동부 유럽의 시민 계층에서 대부분 그랬듯이 프랑스어를 배웠다.
    그가 대학 생활을 시작한 부다페스트는 당시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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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전주에서 태어나서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동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하였으며, 독일 카를스루에 대학교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역서로는 《깊이에의 강요》, 《복수한 다음에 인생을 즐기자》, 《법》, 《기발한 자살 여행》, 《저지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로베르트 무질의 소설에 있어서 비유의 기능>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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