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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옥혜 시집『허공에서 싹 뜨다』. 1984년 '한국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한 시인이 펴낸 여덟 번째 시집이다. 시인이 자신과 세계를 바라보며 울던 시기에 쓴 작품들을 엮었다.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뿌리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허공에서 싹 트다>

여름 가을 겨울
처마 끝에 매달려 대롱거리던
마늘이
허공에서 싹 트다

파릇파릇 마늘 싹이
허공에서
초록 눈을 반짝이며
세상을 구경한다

쪼글쪼글한 마늘이
말라비틀어지는 마늘이
제 몸의 수분을 한 방울이라도 더 짜서
새싹을 조금이라도 더 밀어 올리려고
몸부림친다

마늘 싹이
허공을 깬다

□ 고 은 (시인) <시집에 서문으로 수록>

어디 한 군데 긴장 없이도 절로 긴장을 낳아주는 모성인가.
살아온 것 혹은 살아가는 것들을 그냥 허비하지 않고 그 자국들 하나하나에 애틋애틋 의미 짓는 일이 여기에 있다.
그 간의 삶이 이토록 마음의 설화로 담겨 절기의 매듭조차도 오롯이 시에 늘어붙어 단풍든다.
이런 일은 스무 살 서른 살의 섬광 따위는 재운삶의 바람자락들이 그 앞뒤로 널리 퍼져가 세상의 진정으로 열리는 세계이다.
저 혼자의 안을 넘어 이승의 여러 곳 아픔들에게까지 가 있는 그 가슴의 처음 같은 힘은 또 무엇인가. 옥혜 시는, 그래, 첫눈 내리는 날인가.


□ 백추자 (시인) <블로그에 수록>

차옥혜 선생의 시집을 읽으면서

곱게 깎은 가을 곶감이
황금 빛 가을 햇살을
넉넉하게 온 몸으로
곱게 누리는
청아한 가을 날을
떠올려 본다

맑은 밤
등불 아래
펼치어 지는
인간에의 연민
세계에의 고뇌
삶에의 경건한 사랑과 외경

나의 헤르만 헷세가
부활하여 돌아와
한국어로 쓰는 시를 보기도 한다

그것은 진실과 성실이다
우리의 삶에 수식어는 화장일 뿐
그것은 본질을 감출 뿐이다

나, 오늘 진실로
한 시인에게 주어진
영롱한 理性을 찬탄하노니

그것은 이땅의 모든 시인들에게도
바치고 싶은 나의 헌사이다.


□ 김응교 (시인, 평론가) <블로그에 수록>

차옥혜 선생님의 시집『허공에서 싹트다』를 곰삭여 읽었습니다.

선생님 시는 인간이 잊지 말아야 할 뿌리, 그 모성(母性)의 근원을 눈뜨게 합니다. 자연을 주체로 삼아 인간이 큰 누리에 속한 하나의 작은 누리임을 깨닫게 하는 「아마존이 나를 낚다」를 읽으며 저또한 아마존에 빨려 들어갑니다. 보잘 것 없는 존재에 인생을 걸었던 예수의 삶을 따르고는 싶지만, 현실의 풍요를 택할 수 밖에 없는 한계에 대한 고백( 「크리스마스」)은 비단 선생님만의 고백이 아니기에,반성하며 읽었습니다. 지구의 온갖 부조리와 폭력을 내 몸으로 인식하는 '몸의 시학' (「눈물샘이 막혔다」) 역시 모성적 태도의 발현입니다.

선생님 시를 읽을 때마다, 선생님을 뵐 때마다 그 조용한 호수 깊은 곳에, 소리 없이 움직이는 혁명을 봅니다. 그것은 겉으로 볼 때 쉬고 있는 맷돌(「맷돌은 일을 하고 싶다」)에 불과할지 모르나, 이미 선생님의 작품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노을이나 파도처럼, 우리 영혼을 맑게 합니다.
이 신자본주의 시대에「다시 태어나도 시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고백입니다. 겉으로 보면 시인이란 존재는 천형과도 같은 징벌입니다. 하지만 '시인'이란 존재가 10억으로도 100억으로도 만들 수 없는 노을과 파도와 싹 같은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잔잔하게 이런 마음을 펼쳐 보이셨겠죠.
일본의 큰 시인 다니카와 ？？타로 시인은 산문집에, "새는 매일 노래한다. 매일 노래하지 않는 새는 새가 아니다. 매일 쓰지 않는 시인은 하늘의 책무를 방기한 죄인이다"라고 썼습니다. 선생님은 시인의 책무를 방기하지 않는 아침새이십니다.
실은『허공에서 싹 뜨다』라는 시집을 읽으며, 독특한 경험을 했습니다. 이 시집을 섬나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읽었 거든요. 비행기를 탈 때마다 왜 이리 외로운지 모르겠습니다. 통조림 안에 한 마리 꽁치처럼 실려 갑니다.
허공에 하늘에 우주에 떠서 이 시집을 읽었습니다. 내 존재란 뿌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무주공천인데, 이 시집을 읽으면서 내 곁에 차옥혜 시인이 계시고, 숱한 벗들이 있고, 갑자기 따뜻해졌습니다. 그게 바로 싹이겠지요.
이 시집을 읽는 외로운 사람들이 그렇게 싹을 틔워나갈 겁니다.

- 서문 : 옥혜 시는 첫눈 내리는 날인가 _ 고은
- 시인의 말 : 첫눈 같은 시는 내 삶의 형식이며 영혼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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