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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동학에 관해 지난 9년 여에 걸쳐 발표했던 논문 11편을 책으로 엮었다. 동학의 도와 덕, 동학의 생명사상, 도덕의 정치철학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도덕, 생명, 권력의 문제를 불가분리적 관계로 보는 동학의 성격을 담아 부제를 '도덕, 생명' 권력'으로 달았다. 종교이자 본성, 철학이며 인격수련이자 19세기 말 일제 침략에 항거한 정치·사회적 운동이었던 동학의 종합적이고 통합적인 성격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필자가 지난 9년여에 걸쳐서 쓴 논문들 가운데 선별하여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대부분 학술지에 발표했던 것이며 동학의 통합적 성격을 보여주기 위하여 도덕·생명·권력의 3부분으로 나누어 균형감각을 유지하려고 하였다.

제1부는 동학이 제시하는 새로운 도와 덕이 무엇인지를 철학적으로 규명한 논문들이다. 천도와 천덕으로 제시되는 동학의 형이상학, 인간학, 자연관을 다룬 글을 선별하였다. 동학혁명에 대한 풍부한 연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빈곤한 동학의 철학을 해석학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부분의 논문들은 평이한 문체로 동학의 핵심개념에 대한 철학적 재이해를 시도하고 있다.
필자가 주장하는 ‘네오휴머니즘’의 철학적 근거를 제1부에서 분석적으로 개진하고 있다. 서구 모더니티의 인간은 신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성을 획득하고 이성에 기초하여 자연을 활용·정복하는 쾌거를 이루었으나 자신의 생명이 일대 위기에 처하게 되는 역설을 마주하게 되었다. 동학은 모더니티가 상실한 신과 자연을 인간 안에 회복시키고 있음을 신관, 인간관, 자연관을 통하여 분석하여 천지인을 통일한 신인간주의를 전통적 유학과 서구의 모더니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제1부를 통하여 우리는 동학이 어떻게 모더니티가 잃어버렸던 신과 자연이라는 두 벗을 되찾아 조화의 인간상을 새로운 문명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었는지를 현학적이지 않은 진솔한 논리전개를 볼 수 있다. 요란하지 않으면서도 차분하게 설득하는 필자의 논리전개를 따라가다 보면 사람이 왜 하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동학이 주장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또 왜 사람이 자연과 소통하는 조화의 덕행을 실천해야 하고 동학이 그 고난의 실천행을 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이처럼 필자는 도덕의 형이상학적 근거를 복잡하고 난해한 철학 용어를 빌리지 않고도 쉽게 풀어준다. 제1부의 철학적 연구는 제2부의 생명사상과 제3부의 정치철학의 기초가 된다.

제2부는 생명사상이다. 필자는 생명을 생명중심과 생명활동으로 나누어 동학의 생명관을 압축적으로 제시하고 이어서 이러한 생명관을 원효와 율곡의 사상과 비교분석하여 동학의 생명관이 불교와 유교라는 동양적 사유에 맞닿아 있으면서 종합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종합한다는 것은 분명한 자기준거점을 가지고 모순되고 충돌하는 다양한 입장들을 소통·통합·회통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하다. 흥미로운 것은 동학사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자연사물까지도 하느님으로 공경하라는 경물(敬物)사상에 대한 논의이다. 필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가 보면 우주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이라는 가이아Gaia론이 연상된다. 생명이 어떻게 하나로 연계되었는지를 필자는 동학의 ‘불연기연(不然其然)’이라는 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설득하고 있다. 생태정치학의 한국적 원형을 동학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필자가 역설하고 싶어 하는 주제는 모든 생명은 보이지 않는 생명 중심에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하여 연결되어 있다는 주장인 듯하다. 결국 보이지 않는 선이 잘리게 되면 개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그러므로 동학의 생명사상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중심에 보이지 않는 선을 재연결하여 완전한 의사소통을 할 때 생명의 자기실현이 완성된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서 이상적인 정치란 모든 국민들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 하나의 구심력에 의하여 통합될 때라는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생명사상은 단순히 인간들 사이의 관계인 정치에 한정되지 않고 자연사물까지도 우주의 거대한 보이지 않는 연결망에 포함시킨다.

제3부는 동학이 보는 권력의 정당성, 자율성과 공공성, 평등사상, 전쟁과 혁명의 정치철학을 다룬 4편의 글을 모았다. 동학의 정치철학에는 도덕이 기본 바탕에 깔려 있다.
권력의 정당성을 개인들의 정치적 권리에서 찾은 것은 근대 정치학의 두드러진 특성이며 공헌이다. 그러므로 근대 사회에서 오직 시민권만이 권력 원천이었다. 그러나 동학에서 권력의 원천은 도덕이며, 도덕의 원천은 천주이며, 천주는 창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천주를 모신 사람에게 있는 것으로 보았다. 수운은 1860년 경신년 하느님 체험에서 자기의 마음이 곧 천주의 마음과 동일하다고 하여 권력의 정당성을 자신이 받았음을 주장하였다.
이와 같은 혁명의 정치철학이 있었기에 민은 자율적인 정치적 주체로 등장할 수 있게 되었으며 군주와 관료 그리고 사림의 전유물이었던 공공성의 정치에 민이 참여하기 시작하는 정치사상이 가능하게 되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의 시원을 찾을 수 있었다. 한국 민주주의는 시민권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천명을 받은 동학에 있으며, 동학은 천주가 민에게 모셔져 있다고 말하며, 천주를 모셨다는 점에서 모든 민이 평등하다는 평등사상이 나오게 된다. 종교·철학으로 출발했던 동학이 이처럼 혁명과 전쟁으로 나아가게 된 데에는 동학은 도덕과 권력의 불가불리적 관계에 있다는 정치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덕과 권력의 상호관계는 동학의 철학, 조직, 운동전략, 운동과정에 걸쳐서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필자는 다차원에 걸쳐서 분석하고 있다. 19세기말 동학은 천도를 정치권력으로 세우는 데는 실패하였지만 모더니티 정치질서를 극복하는 새로운 문명 형성에는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다 읽은 독자는 이 책이 기존의 동학연구와 달리 몇 가지 특징을 가진다는 사실을 알 게 될 것이다.
첫째, 동학은 동양의 전통이 무너져 내리고 서구의 모더니티가 무력을 앞세우고 동진하던 때에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었으나 19세기보다는 오히려 현대에 주는 시사점이 더욱 크다는 점을 이 책을 통하여 알게 된다. 이 책은 모더니티의 합리주의가 희생시켰던 신과 자연을 인간의 마음 안에 고스란히 조화시킨 동학이야말로 모더니티의 자기모순이 극대화될수록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둘째, 필자는 모더니티 정치철학의 담론을 참조하면서도 그에 빠지지 않고 최대한 동학의 특성을 드러내기 위하여 노력하는 모습을 전편을 통하여 읽을 수 있다. 그러므로 서양철학이나 민주주의를 자기준거점으로 받아들인 독자들은 이 책이 동학을 옹호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필자는 동학을 자기준거점으로 하여 동학과 세상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빈약한 자기성찰성의 전통을 가진 나라에서 강한 자기정체성을 주장하는 것은 흔히 유아론이나 국수주의로 평가받기 십상이지만 필자는 가능한 한 동학의 입장을 포기하지 않고 논의를 전개해 나간다. 선입견을 앞세우지 않고 조금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독자라면 평이한 문체로 비교적 부드럽게 전개되는 필자의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이끌려 철학과 권력의 변증법적 관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이야기에 흥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대부분의 동양사상을 다룬 책들은 현실과 호흡하지 않는 구태의연하고 고리타분한 어려운 한자에 얽매이거나,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는 현재성과 단절되어 복고적 과거의 노예가 되는 느낌을 떨치기 어려우나 이 책은 비록 한자 개념을 사용하더라도 살아 움직이는 느낌을 받게 해주고, 현학적이지 않고 평이하여 누구나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진다.

머리말

제1부 동학의 도와 덕
제1장 천주관: 영성과 창조성
제2장 시정지를 통해 본 신인간
제3장 해월의 사물 이해
제4장 동학: 유학과 서학에 대한 한 대안

제2부 동학의 생명사상
제5장 생명중심과 생명활동
제6장 원효, 율곡. 동학의 생명관
제7장 해월의 삼경사상

제3부 도덕의 정치철학
제8장 유가와 동학이 보는 통치의 정당성
제9장 동학사상에서의 자율성과 공공성
제10장 도덕적 평등사상
제11장 영성과 혁명의 변증법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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