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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여섯 번째의 시집이다. 시간이 내어준 선물인 셈이다. 내 삶 속 문학은 어떤 빛깔일까를 생각할 때가 만?. 그 가운데 시 쓰기라는 명제 앞에선 언제나 망연하기만 했었다. 그러나 이 길의 끝에는 높고 낮은 경사를 넝머와 하나의 구릉을 이룬 작은 산이 보였다.

'월간문학'과 '시문학' 신인상 수상과 함께 등단한 시인 지연희의 6번째 시집이다. 테프네트의 손, 햇살 가득하다, 꽃잎풀기, 거울닦기, 떼제미사로 총 5개의 부로 구성했다. 이 시집의 주제는 '모든 문제들과 어떻게 하나로 마주설 수 있을까' 이다. 가령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하거나 강물에 뛰어드는 가장의 슬픔을 얼마나 헤아릴 수 있을까 였으며, 지하철을 배회하는 노숙자의 굶주림을 얼마나 짚을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남자는 오레오라고 쓴 과자케이스를 들고 있었다’의 시에서 그리고 싶었던 인물의 심중 역시 깊게 읽지 못하고 가정假定의 문밖에만 서성였다는 생각에서벗어날 수는 없지만 세상 속 모든 고단한 사람들의 삶에 따뜻한 햇살이 비춰지기를 비는 마음을 담아 보았다.

1. 테프네트의 손
궁평리 갯벌
그곳에 가고 싶다
남자는 오레오라고 쓴 과자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망고
분실
아버지
옹벽
운학산의 소나무
이식
겨울, 조용한 풍경
좌선
지붕위의 고양이
참새와 나뭇꾼
테프네트의 손

2.햇살 가득하다
5000년의 포옹
그가 잠들어 있었다
꿈의 바다
나뭇잎 붉게 물들어
대숲의 햇살
사바나의 물줄기 루 떼
어떤 외출
지팡이 하나
햇살 가득하다
햇살이 노오랗다
지금 Now
곡선 曲線
하루종일 비 내리는 날
꽃

3.꽃잎풀기
가을
길
꽃을 피우고 싶다
꽃잎풀기
눈뜸
모를 리 있을까
바람
바람의 짓
시냇물로 흐르고 싶다
알 수 없는 일
여기와 솟아나고 있다
외딴집 목련
참 꽃잎처럼 아름답게
초승달과 샛별

4.거울닦기
폭죽
활화산
가로등의 투신
하루
비로소
거울 닦기
그대, 바람의 꽃이여
내가 걷는 길
다른 것 하나
모성
물레
산이 누워서
서울, 그 낯설음 속에서
억새의 노래

5.떼제미사
12월 끝에서
십일월
내 어미의 이름은 한반도
마른샘
모기장
물비늘로 꿈틀거리는 발걸음
아가 雅歌
거룩한 빛이
나무에게 물었더니
떼제미사
발톱 밑 피 흐름 기도로 세워
자혜로운 성모님 미소 앞에
족보 族譜
여의도를 흘러서

그는 과자를 물고 있다
부풀어 오른 빵처럼 둥글게 부은 얼굴
부실공사로 무너진 성수대교 같은
잇몸으로 과자를 씹는다, 눈을 감은 채
두꺼비 등 같이 부픈 때 묻은 손
무릎 밑으로 흘러내리는 검은 가방의
짐을 웅켜쥔다, 입술을 꾹 다물고
열시 방향으로 고개를 치켜들더니 눈 감고, 가끔
몇 겹의 옷 두툼한 소매 끝 사이로 밀려난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며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남자
오레오라고 쓴 과자케이스를 한 손에 쥐고
두 입술을 모아 오물거린다, 감은 눈으로
환히 떠오른 보름달이 눈 속에서 빛나고 있었을까
한입 베어 문 그믐달 모양의 오레오가
맥없이 손가락에서 떨러진다
깜짝, 눈을 뜨고 바닥의 그믐달 하나를 다시 베어무는 남자
......

'남자는 오레오라고 쓴 과자 케이스를 들고 있었다' 시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