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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오토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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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조두진
  • 출판사 : 예담
  • 발행 : 2009년 06월 22일
  • 쪽수 : 268
  • ISBN : 9788959133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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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슬픔과 고통을 감내하며 가족을 위해 살아온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이야기!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안타까운 사랑과 가슴 뭉클한 가족애로 진한 감동을 안겨줘 왔던 작가 조두진의 장편소설이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에 걸친 한 집안의 가족사를 통해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어떤 것도 마다하지 않았던 이 시대 남편들과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담백한 필치로 풀어냈다.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인생을 송두리째 바쳤던 아버지들의 삶을 통해 진정한 가족애란 무엇인지 뒤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줄 것이다.

    출판사 서평

    아버지를 위한, 아버지들의 노래
    '처자식을 먹이고 입힐 수 있다면, 나는 어떤 일도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 엄시헌이 한적한 국도에서 교통사고 뺑소니를 당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엄종세는 다 먹은 밥상을 치우는 기분으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러 경북 김천으로 향한다. 엄종세의 가족은 남강이 보이는 경상남도의 산골마을에서 살다가 뇌성마비에 정신지체, 자폐, 간질을 앓는 큰아들 엄종석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로 이사 왔다. 사내가 제일 참기 어려운 고통은 처자식들이 굶는 걸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엄시헌은 가족을 먹여 살리고 병든 아들을 치료하기 위해 철공소, 난전 좌판, 신발공장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공사판으로 흘러들어간다. 그러다 엄시헌은 집에 들르는 날이 점점 줄어들었고 언제부터인가 거의 집에 들르지 않게 된다.
    엄종세는 어릴 때 어머니의 말을 받들어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으나, 어른이 된 후로는 일 년에 한두 번 아버지를 만났을 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버지의 교통사고를 조사하는 박 형사는 아버지가 최근 두 달간 핸드폰으로 엄종세에게 일곱 번이나 전화를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일하던 공사장 함바집에 들른 엄종세는 가게 안의 금고를 보다가 아버지가 가끔 전화를 걸어 뜬금없이 '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일구삼공오삼팔, 맞지?' 하던 것이 떠올라 그 숫자를 눌러 금고를 연다. 그 안에는 엄종세가 보낸 편지들과 아버지의 일기, 거액이 들어 있는 예금통장과 약 4억 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증서 등이 있었다. 마침 엄종세가 금고를 여는 것을 뒤에서 본 박 형사는 법정상속인이기도 한 그를 의심한다. 엄종세는 직장에서 해고된 후 6개월째 퇴직금을 월급처럼 까먹으며 실직 사실을 집에 숨겨온 터라 박 형사는 처음부터 그를 주요 용의자로 보고 아버지가 사망하던 날 알리바이를 대라는 둥, 아버지와 그다지 친밀하지 않은 그가 어떻게 금고 비밀번호를 알았는지 추궁하듯 물어본다.
    한편 엄종세는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시절 제방공사장에서 아버지를 만나 지금까지 가까이 지내온 장기풍에게서 그간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듣게 되는데…….

    아버지 엄시헌은 돈을 벌기 위해 가족과 떨어져 살았고, 아들 엄종세는 곁에 없는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원망하며 성장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고 아버지가 사고로 죽은 후 아들은 아버지의 삶을 추적해나간다.
    '아버지 된 자의 손은 궂은일과 마른일을 가리지 않는다.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아비의 손과 궂은일을 하는 손은 별개가 아니다. 너도 이제 아버지가 됐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네 손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아버지 된 자, 남편 된 자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일은 칭찬이나 상 받을 일이 아니다.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아들 엄종세가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아버지 엄시헌이가 보낸 축하 편지다. 편지는 소설 속 '아버지 엄시헌의 삶' 을 축약한 것이자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여기서 아버지의 궂은일은 정직한 노동을 포함해, 비굴한 일, 비도덕적인 일까지 포함한다. 아버지 엄시헌은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근면한 땀을 흘릴 뿐만 아니라 비굴한 표정을 짓기도 하고, 비도덕적인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러니까 소설 속 아버지는 언제나 '자상하게 웃음 짓는 아버지' 가 아니라 '악당' 인 셈이다. 어느 시대이건 아버지는 가족의 중심에서 수많은 역할을 부여받고 그걸 숙명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그들에게는 가족의 인생이 곧 자신의 인생이기에 자존심을 기꺼이 버리고 정의도 쉽사리 포기한다. 그러나 일과 가족, 둘을 모두 만족스럽게 해내기란 녹록지 않기에 많은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일을 택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순간부터 가족과는 멀어지게 된다. 그 둘은 결국 하나의 테두리 안에 있음에도 하나를 위해 나머지 하나를 택하는 순간 그 둘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엄종세의 아버지 역시 젊은 시절 가족을 위해 일에 몰두하지만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가족들에게서 소외되고, 다른 가족이 아버지의 존재가치를 깨닫게 될 즈음에는 이미 가족들에게서 너무 멀어진 후다. 그래서 엄종세는, 적당히 벌더라도 가족과 함께 사는 게 더 소중하다며 그러지 못한 아버지의 삶을 부정하려 한다. 그러나 장기풍이 들려준 이야기와 아버지가 남긴 일기를 통해 엄종세는 아버지가 삶에 최선을 다했음을 알게 된다. 아버지가 병든 아들을 치료하고 똑똑한 자식을 공부시키기 위해 남들의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공사장에서 벽돌을 지고 함바집에서 술을 팔았고, 그래서 가족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나 늘 가족 곁에 있는 아버지

    아들 엄종세는 자신의 어린 자식과 함께 찍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다가 거기 자신의 모습이 드물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 역시 아버지와 함께 사진 찍어본 적이 없는 이유를 깨닫는다.
    '국민학교 시절 소풍날 찍은 사진에도, 운동회 때 찍은 사진에도, 서울대공원에서 찍은 사진에도 아버지는 없었다. 엄종세는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거나 잊고 살았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사진을 찍을 만한 곳에 오지 않았다. 서울대공원에도 올 수 없었고, 국민학교 시절 소풍에도, 운동회에도 올 수 없었다. 그 시간에 아버지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지거나 함바집에서 요리를 하고 술을 팔았을 것이다.' 소설은 부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 가족들에게 무심해 보이는 아버지가 사실은 늘 가족 곁에 있었으며, 가족을 바라보며 살아왔다고 말한다. 다만 자식인 '우리'가 곁에 있는 아버지를 몰랐을 뿐이라는 얘기다.
    드라마나 소설에서 아버지가 방탕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의 용서를 구하는 것으로 표현되는 예가 종종 있다. 많은 경우, 가족의 화해는 '아버지의 용서 빌기와 자식의 양해' 구도를 가진다. 그러나 [아버지의 오토바이] 에서 아버지 엄시헌은 자식의 이해나 용서, 사회의 관용을 구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 자신의 길을 걸었으며, 그 삶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변명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궁극적으로 아버지와 자식은 화해한다. 아버지의 삶이 비록 남루하고 비도덕적이라 할지라도 그 삶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곧 한 아이가 어른이 되고, 한 남자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인 셈이다.
    작가는 '저자 후기' 에서 이렇게 말한다. '엄시헌처럼 내 아버지 역시 도시로 이사 온 후 자식인 나의 운동회에 오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내 아들의 운동회에 갔습니다. 그리고 내 아들이 두 주먹 불끈 쥐고 바람에 흰 이마를 드러내며 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기뻤습니다. 내가 내 아들의 운동회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사는 세상을 만들어낸 내 아버지의 수고 덕분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는 1960년대와 1970년대, 1980년대를 지나온 한 집안의 가족사인 동시에 산업화 시대의 한국사이기도 하다.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매일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는 사람들

    소설 속 아버지들은 모두 피를 말리는 경쟁을 한다. 주인공 엄시헌을 비롯해, 아들 엄종세, 엄종세의 직장동료이자 후배인 김경한, 또 그들의 적이자 선배 세대인 곽 상무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다. 이들은 모두 때로는 비겁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때로는 연합전선을 형성해 상대와 싸운다.
    주인공 엄시헌은 벽돌 쌓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젊은 기술자의 담배 심부름을 하고, 술을 사며 매달린다. 돈을 벌기 위해 다른 사람을 노름판으로 끌여들여 재산을 탕진하게 한다. 술장사를 편하게 하기 경찰들에게 극진한 대접도 마다하지 않는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경찰들의 경조사까지 일일이 챙긴다.
    아들 엄종세 역시 세상에서 살아남고, 잘나가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배 세대인 곽 상무를 공격한다. 나이든 세대가 만든 연공질서가 부당하다며 사내벤처를 만들어 자기만의 공을 세워나가려고 한다.
    곽 상무로 대표되는 선배 세대 역시 물러서지 않는다. 그들은 치고 올라오는 후배 세대를 견제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갖가지 연합전선과 방해전선을 형성한다. 그리고 끝내 후배 세대를 짓밟는다.
    같은 회사에서, 회사의 이익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지만 그들 각자는 결국 경쟁 상대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겉으로는 악수와 사람 좋은 웃음을 나누지만 서로 견제하고 공격한다.
    작가는 이 두 가지 얼굴이 모두 아버지이자 남편들이 짊어져야 하는 숙명이라고 말한다. 결코 유쾌하지도 정의롭지도 않은 모습이지만 이런 모습을 긍정하고, 그 길을 걸어야 하는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아버지가 돼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엄종세와 김경한은 사내벤처라는 한 배를 탄 사이였지만 사내벤처가 실패하자 김경한은 선배인 엄종세를 버리고 혼자 살길을 찾아 곽 상무에게 투항한다. 그는 곽 상무의 훈계에 머리를 조아리고, 자신의 복직을 빌미로 엄종세가 어떤 복직 시도도 하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받아오라는 요구에 동의한다. 이런 장면은 야비한 남자의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아버지이기에, 남편이기에 그 모든 모멸을 감수한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아버지들은 결코 정의로운 사람들은 아니다. 작가는 세상은 정직과 성실만으로는 살 수 없으며, 그런 세상으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매일 힘겨운 싸움을 해나가는 사람이 바로 '아버지' 요 '남편' 이라고 말한다.

    국가보다는 가족이, 정의보다는 한 끼 식사가 더 중요한 사람 아버지

    작가 조두진의 작품들에서는 정의나 대의명분보다는 한 끼 식사를, 국가보다는 가족의 생계를 중요시하는 아버지를 종종 볼 수 있다. [도모유키] 에서 '어린 자식을 두고 먼저 죽는 남정네가 세상에서 가장 몹쓸 남정네다. 젊은 마누라와 어린 자식을 두고 죽는 남정네는 도둑놈보다 더 나쁘지' 하는 어머니에게 아들은 '나는 마누라와 어린 자식을 두고 먼저 죽지 않겠습니다. 어머니, 저는 아버지처럼 나쁜 사내가 되지 않겠습니다. 저는 절대로 도둑놈보다 못한 사내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고 약속하고, [유이화] 에서 안철영은 히로시를 두고 '너는 거칠고 더러운 손으로 처자를 지키고 먹이기 위해 땅바닥에 엎드려 있다. 어제까지도 너는 처자를 먹여 살리기 위해 산에 올라 뽕나무 잎을 따고, 옻나무를 꺾었겠지. 옻이 올라 가려움에 밤잠을 설친 날도 있었을 것이다. 낮에 고된 일을 하고, 저녁에는 거칠고 상처 난 손으로 네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었을 것이다. 네 검고 갈라진 손에서 나는 많은 것을 본다' 고 말하며, [아버지의 오토바이] 에서 장기풍은 '정의? 도대체 네놈이 말하는 정의가 뭐야? 네 아버지의 정의는 처자식을 먹이고 입히는 거였다. 그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았다. 처자식이 딸린 아비한테 세상이 말하는 정의 따위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처자식도 건사하지 못하는 놈이 무슨 놈의 세상 걱정을 해!' 한다. 이처럼 작가는 남편 된 자, 아버지 된 자의 역할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데, [아버지의 오토바이] 는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해 주인공 엄종세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으로도 볼 수 있다.
    [아버지의 오토바이] 는 아버지가 언제나 같은 자리에 든든한 모습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가족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제가 해야 할 일을 알고 그것을 말없이 해나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짜 정의로운 사내임을 보여주며, 몇 푼 안 되는 돈을 벌기 위해 종일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도 웃음 띤 얼굴로 굽실거리는 아버지들, 세상 고민을 하기보다는 처자식 먹히고 입힐 고민을 먼저 하는 아버지들의 삶에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산업화 시대를 지나오면서 이 시대 아버지들이 가족을 위해 떠맡은 역할 속에는 많은 것들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자식의 머리를 쓰다듬는 손으로 '궂은일'을 했을 수도 있고, 가족의 울타리인 그 가슴으로 권력 앞에서 굴욕의 웃음을 짓기도 했을 것이다. 악행을 저지른 후 그 일이 가족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숨기고자 노심초사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것은 모두 가족을 위한 일이었으므로 아버지들은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도, 용서를 구할 필요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 아버지 엄시헌은 그런 인물이다.
    소설 속 아들 엄종세는 그런 아버지를 부끄러워한다. 아버지의 부도덕한 삶에 대해 비판하면서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엄종세는 막상 자신이 아버지가 되는 순간, 아버지라는 말 속에 들어 있는 엄청난 것들을 알아차리게 된다. '너도 이제 아버지가 됐으니 네 손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가리지 마라. 그리고 네 손이 하는 수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마라. 네 처자식이 네 평생의 상장임을 잊지 마라.' 아버지가 아들에게 보낸 축하 편지는 이 소설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아들은 끝내 아버지의 삶을 긍정하고, 내면의 아버지와 화해를 시도한다. 정직한 노동뿐 아니라 야비한 웃음, 비굴한 행위도 아버지 역할의 일부라는 사실을 수용한다. 그 순간 아들은 진정한 어른, 진정한 아버지의 세계로 진입하고 세대간의 소통과 승계가 이루어진다. 아버지들의 세계는 그렇게 전승되어 왔다고, 소설 [아버지의 오토바이]는 말한다. 아버지에 의한, 아버지를 위한, 아버지의 노래는 영원하리라고.
    - 김형경 (소설가)

    목차

    프롤로그

    아들 엄종세
    장기풍을 만나다
    아버지의 가게
    용의자 엄종세
    김경한의 선택
    내 인생의 승부
    아버지 엄시헌
    형을 만나다

    에필로그
    저자후기

    본문중에서

    일꾼들은 해가 떨어지기 무섭게 함바집으로 달려갔지만 엄시헌은 곧장 숙소로 갔다.
    일꾼들이 낮 동안 번 돈의 대부분을 밤에 썼지만 엄시헌은 쓰지 않았다. 일꾼들은 종일 담배를 물고 살았지만 엄시헌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엄시헌은 새참으로 막걸리가 나올 때면 연거푸 세 잔씩 마셨지만 제 돈으로 술을 마시지는 않았다. [……]
    엄시헌은 십오 일마다 받은 돈을 고스란히 집으로 부쳤다. 아침과 저녁 값을 빼면 그는 한푼도 쓰지 않았다. 그는 봄옷과 여름옷, 가을옷과 겨울옷을 구별 없이 입었다. 그는 늦은 봄까지 겨울옷을 입었고, 가을이 붉게 익어서 떨어질 때까지 푸른 여름옷을 걸치고 있었다. 간죠날 점심시간에 엄시헌은 읍내 우체국으로 달려갔다. 우체국 수납대에 팔꿈치를 괴고 서서 집으로 돈을 부칠 때 그의 얼굴은 아이처럼 해맑았다. 돈을 부치고 받아든 전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돌아서는 엄시헌의 얼굴은 다른 사람 같았다. 엄시헌은 좀처럼 웃지 않았지만 간죠날 저녁에는 달랐다. 누가 시답잖은 농담을 해도 그는 연방 미소짓곤 했다.
    (/ pp.29~30)

    '두한이가 그저께 학교에 공구를 가져왔습니다. 펜치도 있고, 망치, 쇠로 만든 자, 드라이버와 몽키 스패너도 있었습니다. 은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새 공구들인데 아이들이 몰려와서 구경했습니다. 두한이는 저더러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가지라고 했지만 저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제가 무슨 거지도 아닌데 남의 물건을 공짜로 얻겠습니까. 저는 몽키 스패너를 갖고 싶습니다만 그래도 말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두한이는 아이들한테 공구를 하나씩 팔았는데, 몽키 스패너는 맨 마지막까지 팔지 않고 갖고 있었습니다. 저한테 주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어제 결국 그 몽키를 오백 원에 상철이한테 팔았습니다. 작고 귀여운 몽키입니다. 은색으로 반짝이는 정말 좋은 몽키 스패너인데, 아쉽게도 이제는 상철이 물건이 돼버렸습니다. 상철이는 그 몽키 스패너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었는지 학교에 가지고 오지도 않습니다. 한번 만져보면 참 좋겠습니다.'
    며칠 후 엄종세가 학교에서 돌아왔을 때 그의 책상 위에 아버지가 보낸 편지와 몽키 스패너가 놓여 있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아주 앙증맞은 몽키 스패너였다. 엄종세는 그 몽키 스패너를 꽤 오랫동안 가방에 넣어 다니곤 했다. 장화를 새로 장만한 아이가 비 오는 날을 기다리듯, 풀거나 조여야 할 나사가 없나 공연히 두리번거렸다. 걸핏하면 책걸상의 나사를 풀고 조이기도 했다. 세월이 지나고 생각해보면 그다지 재미있을 일이 아니었는데, 그 시절 그는 은색 몽키 스패너를 들고 사춘기 한때를 즐겁게 보냈다.
    몽키 스패너를 보내주신 아버지에게 답 편지를 썼는지 안 썼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버지의 금고에서 나온 편지 뭉치 중에 몽키에 관한 답 편지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답 편지를 쓰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내가 그 몽키 스패너를 쥐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어째서 이제야 그걸 알았는지 모르겠다. 그때 아버지에게 몽키 스패너가 정말 마음에 든다고 편지를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걸 쥐고 있으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다고 편지에 썼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조금도 과장이 아니었다. 그 시절 은빛 몽키 스패너를 손에 쥐면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 pp.199~201)

    종세가 달리는 것을 보고 싶다. 나를 닮았으니 달리기를 잘할 것이다. 종세가 달리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아이가 바람을 가르며 골인 지점으로 달려 들어올 때, 번쩍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이가 상으로 받은 공책을 자랑할 때 그 머리를 쓰다듬고 칭찬의 말을 덧붙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만약 도시 학교에도 학부형 달리기 대회란 게 있어서, 종석과 종세가 보는 앞에서 내가 달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래서 종세가 제 친구들에게 아버지인 나를 자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그런 날이 꼭 올 것이다. [……]
    아버지는 끝내 오지 않았다. 일 등으로 골인했을 때, 선생님이 일 등이라고 손등에 도장을 찍어주었을 때도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이 참가상으로 공책 한 권을 받았을 때, 그는 다섯 권이나 받았다. 그러나 자랑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어머니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 날들이 못마땅하고 서러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메모를 읽으면서 달리기 솜씨를 뽐내지 못한 자신보다, 일 등으로 들어오는 자식을,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잘 달리는 제 자식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없었던 아버지의 젊은 날들이 더 서러웠다.
    (/ pp.219~220)

    병든 자식보다 먼저 죽지는 않겠다고, 죽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맹세했던 아버지는 그 절망을 어떻게 견뎠을까. 식어가는 몸뚱이를 끌며 배수로 밖으로 기어 나오는 동안 아버지가 마주 섰을 절망을 생각하니 서럽고 고통스러웠다. 회사를 떠난 후 할 일 없이 공원과 서점과 미술관을 전전하던 그 많고 많은 날에 어째서 아버지를 찾아갈 생각을 못 했을까. 박 형사는 사고가 나던 날 진눈깨비가 내렸다고 했다. 아버지는 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아버지가 홀로 감당했던 그 추위와 나눌 수 없었던 절망을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억울했다. 그 순간 세상에 누가 있어 내 아버지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었을까. 자동차를 갓길에 세우고 엄종세는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오랜 세월 잊고 지냈던 어린 시절을, 젊었던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렸다.
    (/ pp.260~261)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7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2005년 장편소설 [도모유키]로 제10회 한겨레문학상을, 2001년 단편소설 [게임]으로 근로자문학제 대통령상을 받았다.
    장편소설 [능소화][유이화][아버지의 오토바이][몽혼][북성로의 밤]과 소설집[마라토너의 흡연][진실한 고백]을 펴냈으며, 이 중 [몽혼]과 [마라토너의 흡연]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날카로운 시선과 예리한 관찰력, 담담하면서도 힘있는 필력, 분명한 주제 의식과 흔치 않은 소재의 선택으로 그만의 탄탄하고 개성있는 작품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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