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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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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차갑게 얼어붙은 세상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잉크의 늪

    송찬호는 자신의 삶 주변에서부터 동화를 재발견하려 한다. 이미 유형화된 상업적 동화나 문명의 입구에서 안내자 역할을 맡은 그러한 동화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동화를 말이다. 그의 ‘겨울 동화’는 차갑게 현실의 구조들을 장악한 권력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길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리고 자연의 무서운 기세를 불러오고 있다.

    출판사 서평

    문학평론가 김춘수는 2000년의 초입에 발간된 [붉은 눈, 동백]의 해설에서 “존재 구현의 유일한 수단이라는 점에서 매혹될 수밖에 없지만 언제나 ‘부패’하는 언어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이 그의 언어적 자의식을 자극하고 있고 그 결과 그는 ‘인공예술’을 지향하는 ‘장인 정신’으로 자신을 무장하게” 되었다고 송찬호 시인에 대해 평한 바 있다. “현실과 인간의 실존적 조건에 대한 한계 의식”과 “실존과 언어의 괴리에 대한 도전”을 시적 화두로 삼아 “자신의 시적 인식을 실험”해온 시인 송찬호는 “언어적 자의식과 시의 본질에 관한 집요한 사유”로 “그의 시적 내력 안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등단 2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그의 시를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낯익지만 그래서 더욱 새로운 그만의 시 세계를 선사한다. 전작 [붉은 눈, 동백] 이후 9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다시금 독자들에게 찾아온 송찬호의 네번째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이 반가울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시집으로 인해, 송찬호는 등단 후 20여 년 동안 네 권의 시집을 펴낸 시인이 되었다. 두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가 5년, 그 후 세번째 시집이 나오기까지가 또 6년,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마침내 또 하나의 시집을 펴냈으니, 작품의 의미가 비단 시간에 의해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 한 권 한 권에 들인 애정과 정성은 남달랐으리라. 그래서일까? 송찬호 시인의 새 시집을 기다린 눈썰미 있는 독자라면, 이 시집이 시인의 전작들과 비교해 약간 두꺼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총 4부로 나뉘어 실린 52편의 시. 그러나 작품에 대한 기대는 그 물리적인 풍요로움보다 더 클 것이다. 그리고 송찬호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전통적인 감각과 언어로 가을의 서정을 노래한 작품”인 [가을]은 2008 미당문학상을 수상하며 평단의 호평은 물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요즘 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소리와 운율의 미학이 특별한 수준에서 성취되어 있”어 “매력적”이라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반응이었다. 이 작품은 또한 “복고적 감각”과 더불어 “현실이 상실한 미학을 복원해 보여주는 언어 미학은 뜻밖의 전위성을 담고 있”으며, 이것은 시인의 “옛날식 언어유희 추구”와도 닿아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이 작품 외에도 허수경 시인은 이번 시집에 실린 [기록]을 두고 “시인은 코끼리 역사의 사관이 되어 역사의 뒤안에서 부스러지고 망가지고 그리고 빛나는 존재들의 비의(秘意)를 기록한다. 얼마나 아플까, 비의의 사관이 되어 역사 속을 헤메는 시인은”이란 짧은 글로 이 시에 대한 느낌을 전하기도 했다.

    송찬호의 전작들은 세상의 한켠에 조용히 도사리고 있는 아름다움의 힘과 그 실체를 낯선 이미지들로 그려내었다. 이번 시집의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신범순은 바로 그 이전 작품에서 신화적 자연주의에 주목한다. 그리고 삶에서 잘 포착되지 않는 상징적인 존재에 다가서기 위해 “부드러운 통합적 대화론”을 개척해온 송찬호 시인의 사유가 이번 시집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에 이르러 시인 “자신의 일상 속에서 자신의 시점과 어법으로” 드러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신범순은 또한 “동화적이고 신비스러운 마법적 상상력을 풀어내면서” “나비와 고양이, 반달곰과 눈의 여왕, 가란과 고래, 코끼리, 칸나, 채송화, 살구꽃 같은 것들”에 대해 우리의 마음속에 대고 조곤조곤 말하는 시인의 작품이 어린 시절에 보았던 동화를 떠올리게 한다고 지적하고, 그러나 그의 시가 비단 그러한 순진한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설파한다. 오히려 시인의 동화적 상상력과 언어는 “이 차갑게 얼어붙고 오염되어 쓰레기터처럼 변하는 세상에서, 부글거리며 끓어오르는 잉크의 늪에서 솟구”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만년필]에서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는 부분을 인용하여 “그 푸른 악어를 깨워내는 것이 그의 이번 시집에 실린 시들이”라고 역설한다.

    이성에 의해 갇힌 세계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남은 신화적 물줄기를 깨우는 일을 자신의 삶 주변에서 동화를 재발견 하는 것으로 수행하는 송찬호 시인의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시인의 끓어오르는 잉크의 늪에 살고 있는 푸른 악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악어는 “늪의 생명력을 강력하게 도전적으로 표출”하며 “자연의 무서운 기세를 불러”온다. 작은 것이 부르는 거대한 힘이 그의 시 한 편 한 편에 오롯이 담겨 있다.

    꽃을 소재로 한 시가 여러 편이지만 “고운 봄날/이 거친 시집을/꽃 피는 시집으로 잘못 알고/찾아오는 나비에게 오래 머물다 가진 마시라고” 전하는 시인의 말은, 바로 이러한 점을 염두해둔 작은 경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시는, 여전히, 아름답다.

    ▶시인이 쓰는 산문(뒤표지 글)

    근래 내가 쓰다 만 시 중에 [쑥부쟁이]라는 것이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뒤에 이웃 동네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가을이면 길 양쪽으로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나는 이 쑥부쟁이 시를 써보기로 했다. 쑥부쟁이에 대해 떠오른 착상으로, 먼저 ‘쑥부쟁이 비빔밥’과 ‘쑥부쟁이 파스’가 있었다. 쑥부쟁이에서 맑은 가을 이슬과 햇살과 바람을 넣어 만든 고소한 비빔밥 냄새가 나는 것 같았고, 고단한 일상에 소염 진통 효과가 있는 파스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쑥부쟁이]라는 제목 아래 두 편의 시를 완성했다. 그러나 그 두 편 모두 마음에 드는 시가 아니었다. 쑥부쟁이에 적당히 삶을 위무하고 세상을 다독이는 말을 얹어 시는 무난하게 나왔지만 거기에는 새로움이 없었다. 그리고 이미 그런 유(類)의 시를 여러 번 쓴 적이 있어, 반복되는 시의 습관이 싫기도 했다. 하여, 이렇게 시 쓰기의 갈등 관계에서 태어난 시. 나는 그것을, 폐기되거나 다시 씌어져야 할 운명으로서, 그 시가 완성본이라 하더라도 ‘쓰다 만 시’로 분류할 수밖에 없다. 돌아보면, 내가 쓰다 만 시가 어디 [쑥부쟁이]뿐인가. 나는 [쑥부쟁이]를 다시 고쳐 쓸지도 모르겠다. ‘쑥부쟁이 촌장’이나 ‘쑥부쟁이 모자’로 아예 다르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시집을 냈다는 핑계로 한동안 긴장이 풀어질 게 분명한데, 앞으로 내 시는 유행이나 새로움에도 주눅 들지 않고 구름처럼 가벼워지기만을 바랄 뿐이다.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제2부
    제3부
    제4부

    해설 고양이의 철학 동화-신범순

    본문중에서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입안의 비린내를 헹궈내고
    달이 솟아오르는 창가
    그의 옆에 앉는다

    이미 궁기는 감춰두었건만
    손을 핥고
    연신 등을 부벼대는
    이 마음의 비린내를 어쩐다?

    나는 처마 끝 달의 찬장을 열고
    맑게 씻은
    접시 하나 꺼낸다

    오늘 저녁엔 내어줄 게
    아무것도 없구나
    여기이 희고 둥근 것이나 핥아보렴
    (/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전문)

    이것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만년필 끝 이렇게 작고 짧은 삽날을 나는 여지껏 본 적이 없다. 한때, 이것으로 허공에 광두정을 박고 술 취한 넥타이나 구름을 걸어두었다 이것으로 경매에 나오는 죽은 말 대가리 눈 화장을 해주는 미용사 일도 하였다. 또 한때, 이것으로 근엄한 장군의 수염을 그리거나 부유한 앵무새의 혓바닥 노릇을 한 적도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이것으로 공원묘지의 일을 얻어 비명을 읽어주거나 가끔씩 때늦은 후회의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하여 볕 좋은 어느 가을날 오후 나는 눈썹 까만 해바라기 씨를 까먹으면서, 해바라기 그 황금 원반에 새겨진 파카니 크리스탈이니 하는 빛나는 만년필 시대의 이름들을 추억해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된 만년필을 만지작거리며 지난날 습작의 삶을 돌이켜본다─만년필은 백지의 벽에 머리를 짓찧는다 만년필은 캄캄한 백지 속으로 들어가 오랜 불면의 밤을 밝힌다─이런 수사는 모두 고통스런 지난 일들이다! 하지만 나는 책상 서랍을 여닫을 때마다 혼자 뒹굴어 다니는 이 잊혀진 필기구를 보면서 가끔은 이런 상념에 젖기도 하는 것이다 거품 부글거리는 이 잉크의 늪에 한 마리 푸른 악어가 산다.
    (/ '만년필' 중에서)

    딱! 콩꼬투리에서 튀겨 나간 콩알이 가슴을 스치자, 깜짝 놀란 장끼가 건너편 숲으로 날아가 껑, 껑, 우는 서러운 가을이었다. 딱! 콩꼬투리에서 튀겨 나간 콩알이 엉덩이를 때리자, 초경이 비친 계집애처럼 놀란 노루가 찔끔 피 한 방울 흘리며 맞은편 골짜기로 정신없이 달아나는 가을이었다. 멧돼지 무리는 어제 그제 달밤에 뒹굴던 삼밭이 생각나, 외딴 콩밭쯤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지나치는 산비알 가을이었다. 내년이면 이 콩밭도 묵정밭이 된다고 하였다 허리 구부정한 콩밭 주인은 이제 산등성이 동그란 백도라지 무덤이 더 좋다 하였다 그리고 올 소출이 황두 두 말가웃은 된다고 빙그레 웃었다. 그나저나 아직 볕이 좋아 여직 도리깨를 맞지 않은 꼬투리들이 따닥따닥 제 깍지를 열어 콩알 몇 낱을 있는 힘껏 멀리 쏘아 보내는 가을이었다. 콩새야, 니 여태 거기서 머 하고 있노 어여 콩알 주워가지 않구, 다래 넝쿨 위에 앉아 있던 콩새는 자신을 들킨 것이 부끄러워 꼭 콩새만 한 가슴만 두근거리는 가을이었다.
    (/ '가을'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90000
    출생지 충북 보은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림 그리기의 꿈은 일찍이 버리고, 숨을 쉬듯 시를 쓰다가 1987년 [우리 시대의 문학] 6호에 작품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습니다. 2000년 김수영문학상과 동서문학상, 2008년 미당문학상, 2009년 대산문학상, 2010년 이상시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그동안 출간한 시집으로 [10년 동안의 빈 의자] [붉은 눈, 동백][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 [고양이가 돌아오는 저녁] [분홍 나막신]과 동시집 [저녁별]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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