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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시조문학상 수상 작품집

『김영재 : 잡기』, 『정용국 :폐광』. 이호우시조문학상과 가람시조문학상의 본상과 신인상을 나란히 수상한 공동 기억을 가진 두 시인의 시를 한 대 묶었다. 김영재 시인은 오랫동안 다양하고 복합적인 문양을 선사했다. 그는 일관되게 '서정'의 원리를 지켜가면서 우리 시조의 시단에서 다채로운 실험적 언어들을 선보여 왔다. 이번 가람시조문학상을 받은 작품 역시, 다른 이들의 시선이 채 닿지 않은 소재를 응하면서 그 안에 담긴 내력에 대한 재발견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전 방위적인 소재의 선택과 각 편마다 넘치는 열정, 그리고 비판적 세상읽기로 주목받았던 정용국. 그는 세련화된 다양화라는 과제를 충족시켜가며 우리 시조 시단의 중요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대시조는 다양한 근대적 변형을 치르면서 오늘날까지 양식적 동일성이 이어왔다. 두 시인은 다양한 서정의 미학과 실험적이면서도 고전의 격조를 지키는 활발한 활동을 소화해내고 있다.

김영재 시인과 정용국 시인이 한 권의 시조집을 함께 냈다. '2인 시집'은 전례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흔하지도 않은 일로, 두 시인이 공동의 책을 내게 된 사연이 이색적이라 눈길을 끈다. 내용인즉슨 두 시인이 시조 시단의 큰 상을 잇달아 두 번이나 동시에 받게 된 것인데, 2006년 이호우시조문학상의 본상과 신인상을 나란히 수상한 데 이어 2009년 가람시조문학상에서도 본상과 신인상을 더불어 받으며 범상치 않은 인연을 확인하게 되었다.
이번 시집에서는 두 시인의 수상작(김영재－「雜器」 「아름다운 땀 냄새」, 정용국－「폐광」 「어금니」)을 포함, 이들이 직접 가려 뽑은 주옥같은 작품 30여 편씩을 각각 실었다.

1974년에 등단해 어느새 30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시조 시단에 몸담아 온 김영재 시인은 그동안 섬세한 관찰력과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다양한 소재를 색다르게 표현해왔다. 그런 만큼 그의 시편들은 시조 향유자들에게 주목의 대상이 된 한편, 시조를 직접 공부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어왔다. 이번 가람시조문학상 수상 작품 「雜器」에서도 다른 이들의 시선이 채 가닿지 않은 소재, 즉 '막사발'을 응시하면서 새로운 기억을 창출해내고 있다.

"… // 청자도 백자도 아닌 이도다완 막사발 // 일본국 국보로 앉아 고려 숨결 증언하는 // 백성의 밥그릇이었다가 // 막걸리 사발이었다가 // … // 본색이 천것 아니라 백성의 밥이었거늘"(「雜器」 부분)

"이도다완 막사발"은 지금은 비록 "일본국 국보"이나 오래도록 우리 "백성의 밥그릇"이자 "막걸리 사발"이었던 내력을 밝혀, 비록 '잡기'에 귀속될 수밖에 없는 막사발일지라도 "본색이 천것 아니라 백성의 밥"이었음을 증언하며 우리 민족의 공동 기억을 되살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정용국 시인은 10년이 채 못 되는 길지 않은 시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조 양식의 가장 빈곤한 영역이라 할 수 있는 '현실성 회복'에 무게를 둔 시편들을 발표해 주목받은 바 있다. 이제는 점차 범위를 확장하여 세련된 표현 기법과 다양한 소재 개발로 우리 시조 시단의 중요한 목소리로 대두되고 있다. 그에게 가람시조문학상 신인상을 안겨준 작품은 산업화 시대의 가장 활발했던 한 육체가 빠져나가고 이제는 폐허로 남게 된 '폐광'을 삶의 한 형식으로 은유하고 있는 작품이다.

"혼이 빠져나간 자리 // 녹슨 금강경 몇 줄 // 공양도 마다한 채 / 긴 안거에 들어 있다 // … // 사초는 변명도 없이 / 긴 한숨만 내쉰다"(「폐광」 부분)

원래 '사초'란 사관이 기록하여둔 초고로서 나중에 실록의 원고가 되는 일종의 저본인데, 그 '사초'가 기록을 멈추고 "긴 한숨만 내쉬"니, 우리는 여기서 '폐광'을 바라보는 시인의 비애의 깊이를 읽을 수 있다.

시조는 그 역사 깊음으로 인해 낡고 고루한 것이라는 인식이, 형식의 정형성으로 인해 어렵고 까다로운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 대중에게 퍼져 있다. 시조는 그동안 다양한 근대적 변형을 거치면서 오늘의 '현대 시조'를 탄생시켰지만, '현대'와 '시조'의 만남이 대중에게는 다소 어색하게 느껴질 여지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시조'가 지켜가야 할 우리의 고유하고도 소중한 문학 양식이라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유시와 변별되는 장르로서 시조는 한국 문학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에 손색이 없다. 다만 대중의 관심을 획득하고 있지 못함이 안타까운 일인데, 그러나 다양하고 실험적이면서 또한 고전적 격조를 향해 가는 김영재 시편들과 활달하고 폭이 넓은 내러티브를 내장하면서도 사회성 짙은 서정을 구축해가는 정용국 시편이 그 대안적 지표를 가질 수 있다고 보여진다.

김영재 편_
잡기
빙폭
탁족 설법
아름다운 땀 냄새
으악으악
산골
비틀대며 소백산을 내려와서
손으로 보는 식물원
편지 받고
눈 내리는 집
독거노인
용문사 은행나무
청도 생각
변산 일박
닭백숙에 술 한잔
참 맑은 어둠
무술 영화처럼
겨울 태백행
추석 전야, 어머니
밤 항구에서
단풍
갈대
절벽
소금 창고
지워지는 슬픔
산역
오지에서 온 손님
화엄동백
겨울 별사
어머니

정용국 편_
폐광
먹
두꺼비집에게
실상사 뒷간에는
추사의 바다
외마디 비명도 없이
엄마 그늘 아래
추억의 올드 팝송
슬픈 이마
어머니 매운 손끝이
중환
파도는 밤새 내 멱살을 잡고
명함
마현에서 온 편지
자필 이력서 한 통
어금니
엉겅퀴
별똥별
사랑의 곳간
도깨비바늘
황사
묘공 행장
폭설
섬
왜 발걸음 더 무거운지
서애의 헛기침
오징어
낡은 애증은 시름 속에서 울고
늙은 동백이 나에게
자화상

雜器


김영재

사발이 되려거든 막사발쯤 되어라

청자도 백자도 아닌 이도다완(井戶茶碗) 막사발

일본국 국보로 앉아 고려 숨결 증언하는

백성의 밥그릇이었다가

막걸리 사발이었다가

삐뚤삐뚤 생김새

거칠고도 투박하다

용처가 저잣거리라 雜器라고 했던가

무사함이 貴人이요, 단지 조작하지 마라*

臨濟錄을 바친 그윽한 속뜻 있어

본색이 천것 아니라 백성의 밥이었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