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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5,000년의 문명사 (하) : 고대 이집트에서 제1차 세계대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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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반만년 역사를 종횡으로 누비는 다채로운 지중해 문명의 흥망성쇠사!

선명한 삽화로 책의 묘미를 더해주는 이 책은 존 줄리어스 노리치라는 위대한 역사가의 재능, 안목, 학식이 녹아든 최고의 역작으로, 그가 이 시대의 가장 권위 있고 인기 있는 작가의 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이 집약된 완결판이다. 위트 넘치는 문장, 철저한 자료조사, 깊이 있는 역사적 안목이 뒷받침된 탁월한 해석은 드라마틱한 사건, 다종다양한 인물군, 강렬한 내용에 신선함을 불어넣는다. 노리치는 고대 이집트와 페니키아 문명에서 현재의 지중해 국가들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반만년의 역사를 종횡으로 누비며 문화, 교역, 정치적 동맹과 대립, 종교운동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추적해간다. [로마제국 최후의 100년] [페르시아 전쟁]을 우리말로 옮긴 바 있는 역사 전문 번역가 이순호가 번역을 맡았으며, 흑백과 컬러 화보 80컷 외에도 왕가 가계도와 당시 지도를 상, 하권에 모두 실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도록 꾸몄다.

대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최고의 지중해 관련 역사서

[베네치아의 역사] [비잔티움] 3부작(국내에는 [비잔티움 연대기]로 출간) 등 걸출한 작품을 쓴 명망 있는 저술가인 존 줄리어스 노리치의 야심작! 노리치는 이 책에서 40년 내공이 느껴지는 탁월한 필력과 시종일관 잃지 않는 유머감각을 바탕으로 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생동감 있는 필치로 이집트 문명의 찬란함, 유럽과 아시아 일대에 물품과 더불어 지식도 전해준 위대한 해상교역국 페니키아가 거둔 놀라운 성과, 그리스인들이 행한 지대한 공헌, 강대한 로마의 부상을 논하고, 서로마 제국 멸망 후 양대 지배세력으로 떠오른 비잔티움과 이슬람이 제4차 십자군의 거창한 모험으로 정점을 맞이한 데 이어 유럽이 힘차게 재도약하는 과정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나아가 얽히고설킨 실타래 같은 중세 유럽의 왕가들과 황제-교황 간의 대립으로부터 르네상스기 이탈리아에서 벌어진 전쟁들, 이사벨 여왕 치세하의 에스파냐에 이르기까지 고대의 투쟁과 오늘날 지중해 삶의 특징이 된 현대적 감각을 절묘하게 혼합하여 눈부신 지중해의 복잡다단한 역사를 우리 앞에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오천년의 장엄한 대서사시이자 흥미 만점의 서양판 삼국지

책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제1차 세계대전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들을 무미건조하게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깊이 있는 역사적 안목으로 취사선택한 갖가지 드라마 같은 사건, 다채로운 인간, 명쾌한 논리가 어우러져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인 죽은 사실들에 생기를 불어넣고 발군의 필치와 위트 있는 서술이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흥미진진한 역사서로 가히 서양판 삼국지라 할 만하다. 반만년 묵은 무채색의 바다를 다양한 인간 군상들이 살아 움직이고 피가 튀고 논쟁이 벌어지는 유채색의 바다로 만든 것이다. 이집트인, 페니키아인, 그리스인, 로마인, 비잔티움인, 아랍인, 교황, 프랑스인, 베네치아인, 에스파냐인, 해적들이 고대·중세·근대·현대의 지중해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유혈 낭자한 전쟁을 벌이고, 숨 막히는 외교전을 펼치고, 섬뜩한 음모를 꾸미고, 수지맞는 장사를 하는 한편 찬란한 예술을 꽃피운다. 그리하여 때로 지중해는 피로 물들고, 해적의 천국이 되고, 영욕이 교차하는 파란만장한 바다가 된다. 그 과정에서 정치적 주연과 조연은 수시로 바뀌고 나라들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지중해를 중심으로 오천년의 장엄한 대서사시가 펼쳐지는 것이다.

문명의 요람 지중해에 담긴 역사적 가치 환기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기... 전 지중해는 유럽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 무게중심이 대서양으로 이동하여 지중해의 위상도 이제는 예전과 같지 않지만 동서양 격돌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트로이 전쟁과 페르시아 전쟁이 일어나고, 기독교가 보편적 세계 제국의 품 안에서 세계적 종교로 성장하여 로마 제국 멸망의 잔해 속에서 새로운 유럽이 태동할 수 있는 창조적 힘으로 작용하고, 르네상스가 꽃핀 장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지중해의 역사적 가치는 충분하다 할 것이다. 이제 그 문명의 요람 속으로 풍덩 빠져 역사의 씨줄과 날줄이 어떻게 직조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는지를 알아보는 지적인 역사기행에 나서보자.

목차

17. 레판토 해전과 에스파냐의 음모
18. 크레타 섬과 펠로폰네소스 반도
19. 에스파냐 왕위계승 전쟁
20. 지브롤터 공방전
21. 청년 나폴레옹
22. 나폴리 간주곡
23. 나폴레옹 이후의 이집트
24. 유럽의 재편
25. 그리스 독립전쟁
26. 무함마드 알리와 북아프리카
27. 콰란토토
28. 리소르지멘토
29. 이사벨 여왕과 카를로스파
30. 이집트와 수에즈 운하
31. 발칸 전쟁
32. 제1차 세계대전
33. 파리평화회의

옮긴이의 말

왕가 가계도 | 지도 | 참고문헌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레판토 해전은 오늘날 악티움 해전?레판토 해전장에서 불과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전개되었다?과 트라팔가르 해전 사이에 일어난, 세계 전쟁사에 길이 남는 가장 위대한 전투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영국과 미국에서 이어지고 있는 레판토 해전의 지속적인 명성은 주로 G. K. 체스터턴[1874~1936. 영국의 문인이자 평론가, 저널리스트]의 유려한?멋지게 각색된 면도 있는?시에 힘입은 바 크다. 반면 지중해 유역 가톨릭 국가들에서는 레판토 해전이 마치 론세스바예스[상권 144쪽 참조]처럼 역사의 경계를 넘어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레판토 해전은 과연 그런 명성을 얻을 가치가 있을까? 1571년 이후 해전의 양상이 완전히 달라졌으므로 기술적·전술적으로는 그렇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는 그렇지 못하다. 승전국들의 기대와 달리 레판토 해전의 승리는 동서 세력의 시계추 현상을 멈추게 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기독교계의 세력을 결집시켜 투르크족을 그들의 본거지인 아시아 중심부로 밀어내는 갑작스런 운명의 반전을 이루지는 못했다는 말이다.
(/p. 16)

7년 전쟁을 종결짓는 조약은 1763년 2월 20일 파리에서 체결되었다. 조약의 내용 중 지중해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단 하나, 메노르카 섬을 영국에 반환하는 것뿐이었다. 반면 아메리카 대륙의 양상은 크게 달라졌다. 영국은 캐나다, 노바스코샤, 케이프 브래튼 섬, 카리브 해의 여러 섬과 세네갈을 프랑스로부터 획득했다. 프랑스는 서인도제도의 마르티니크 섬과 과들루프 섬을 차지하고 뉴펀들랜드 연안에 대한 어업권을 차지했다. 인도에 있던 프랑스 정착촌들도 요새화하지 않는 조건으로 보유가 허용되었다. 에스파냐의 경우, 영국에 플로리다를 내주고 아바나를 회복했다. 마닐라와 필리핀도 되찾았다. 하지만 에스파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뭐니 뭐니 해도 프랑스 영토였던 루이지애나를 새로 획득한 것이었다. 추측건대 그것은 아마 플로리다 상실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카를로스 3세는 에스파냐 왕으로서 자신이 처음으로 중대한 실책을 저질렀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는 수아죌의 말을 듣지 말았어야 했다. 선임 왕들처럼 중립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옳았다는 말이다. 7년 전쟁에서는 방관적 입장을 취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였다.
(/pp. 115~117)

몇몇 일기장과 항해일지에는 도둑질하다 봉변당한 사례가 섬뜩하도록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두 병사가 죽었는데 그중 한 명은 변소에서 변을 당했다. 포탄이 날아와 용변 보던 그의 머리만 날려버리고 몸통은 마저 볼일을 보도록 남겨두었다.” 에스파냐군의 포격은 비단 육지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러 척의 포함砲艦을 지브롤터의 바위 앞바다에 띄워놓고 움직이는 물체에는 무조건 발포를 했다. 그것들은 특히 밤에 위험했다. 캐서린 업튼 영국군 기수의 아내는 이런 내용을 일기에 적어놓았다. “나보다 조금 아래쪽 천막에 있던 여성은 스타킹을 신다가 몸이 두 동강 나는 참변을 당했다. 이 악마 같은 대포는 수비대의 어느 곳이든 자유자재로 공격할 수 있다.” 그녀의 5월 23일 일기는 이렇게 계속된다.

새벽 1시경 그 원수 같은 포함들이 우리 쪽으로 또 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온몸을 담요로 칭칭 감고 바위 쪽으로 내달렸다……. 빼어난 용모에 성격까지 좋은 투럴 부인은 포 탄에 맞아 몸이 산사조각 나다시피 했다! 그나마 시신으로 겨우 수습한 것이 팔 한쪽뿐이었다. 곁에 있던 그녀의 남동생과 사무원도 같은 운명을 당했다.
(/p. 125)

베네치아 공화국은 726년 초대 도제가 취임하여 1797년 마지막 도제가 사임할 때까지 1,071년 동안 존속했다. 그것은 비잔티움 제국의 존속기간보다 50년 짧은 기나긴 기간이었다. 그 대부분의 기간 동안 베네치아는 정치적·입헌적·상업적·예술적·건축학적으로 세계의 불가사의가 되어 지중해의 안주인 대접을 톡톡히 받았다. 그런 나라 국민들답게 천년의 사직이 무너져 내리려 할 때 투르크족에 맞서 식민지를 방어하며 곧잘 보여주던 용기와 인내라든가 50여 년 뒤 그들 자손이 오스트리아군에 대항하며 보여주던 투혼을 조금이라도 보여주었다면 멸망이 그처럼 치욕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1453년 콘스탄티노플 성벽에서 보여준 비잔티움 시민들의 영웅적 저항까지는 아니더라도 옛 베네치아의 기상을 조금이라도 펼쳐 보였다면 세레니시마는 명예로운 역사의 한 장을 차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베네치아가 맞은 최후의 비극은 멸망이 아닌 멸망한 방식에 있었다.
(/pp. 164~165)

그 밖에 넬슨은 또 이번에는 거의 변명의 여지없이 공화파로 전향한 전 나폴리 해군준장 프란체스코 카라치올로를 다룬 방식 때문에도 비난받았다. 카라치올로는 (중략) 변호에 필요한 증인출석도 고해를 들어줄 신부의 참관도 허락받지 못했다. 교수형보다는 차라리 총살을 시켜달라는 요구도 단번에 거절당했다. 그가 아무리 대역죄인이었다 해도 그보다는 나은 대우를 받을 자격이 있었다. 넬슨은 왜 그런 일을 묵인했을까? 한마디로 엠마에게 얼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바다에서는 천하무적이었을지 몰라도 육지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고 애인의 품 안에 있을 때는 마치 어린애 같았다.
(/pp. 186~187)

메테르니히가 ‘이탈리아’를 ‘지리적 표현’이라고 한 말은 진실이었다. 역사상 이탈리아 반도에는 단 한 번도 단일국가가 들어서 본 적이 없었다. 로마 제국주의 시대에도 이탈리아는 단지 로마의 일부?그것도 언제나 아주 조그만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다 중세 초(아니 어쩌면 그보다 조금 이른 시기)부터 이탈리아라는 국가적 개념은 아득한 이상으로나마 존재하게 되었다. 단테와 페트라르카, 나중에는 마키아벨리도 이탈리아를 꿈꾸었다. 지리적·언어적으로 볼 때 그것은 이치에 닿는 말이었다. 그러나 중세의 이탈리아 반도는 도시들 간의 불화와 경쟁, 구엘프파와 기벨린파 간의 정파투쟁, 황제와 교황 간의 세력다툼으로 심하게 분열되어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통일은 비로소 실현 가능한 무엇으로 비쳐지기 시작했다. // 그때 콰란토토[1848년]가 도래했던 것이고 그로써 모든 것이 바뀌었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꿈이 돌연 실현 가능한 목적이 된 것이었다.
(/p. 307)

저자소개

존 줄리어스 노리치(John Julius Norwich)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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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도서 6종
판매수 1,820권

비잔티움사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 이자 호쾌하고 유려한 문장으로 정평이 난 역사가이다. 1929년에 태어나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와 옥스퍼드 대학교 등에서 공부했고, 1952년에 영국 외무성에 들어가 베오그라드와 베이루트의 대사관에서 근무했다. 제네바 군축회담에 영국 대표단으로 참가했을 정도로 유능한 외교관이었지만, 1964년에 외교관으로서의 탄탄대로를 박차고 나와 문화 연구와 역사 저술 활동에 뛰어들었다. 그 뒤 왕립 빅토리아회, 왕립 예술협회, 왕립 문학회, 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세계를 돌며 예술, 역사, 건축, 음악을 주제로 강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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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영어교육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서양사를 공부 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살라미스 해전: 세계의 역사를 바꾼 전쟁』, 『살라딘』, 『타타르로 가는 길』, 『미국에 대하여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 『인류의 미래사』, 『불로만 밝혀지는 세상: 중세 유럽의 풍 경』, 『위대한 바다: 지중해 2만년의 문명사』, 『발칸의 역사』, 『완전한 승리, 바다의 지배자: 최초의 해상 제국과 민주주의의 탄생』, 『로마제국과 유럽의 탄생: 세계의 중심이 이동한 천 년의 시간』, 『비잔티움: 어느 중세 제국의 경이로운 이야기』,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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