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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말해줘 [양장]

원제 : 靜かな爆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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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세상의 소리에만 귀 기울이던 내가 소리가 없는 세상으로 들어가다

    세상이 토해내는 소리와 사건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하는 순페이는 한적한 공원에서 소리를 듣지 못하는 쿄코를 만나게 된다. 항상 소리의 세상에서 살던 그는 쿄코와 대화할 때는 둘만 세상에 있는 듯 다른 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고 점점 쿄코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소리가 없는 그녀의 세계는 신비롭지만 소리에 익숙한 순페이에게는 두렵기도 한 쿄코의 세상. 그런 그녀의 세상에 조금씩 지쳐갈 때 그녀는 홀연히 사라져버린다. 소리의 세상에서 일방적인 순페이와 소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쿄코를 통해 요시다 슈이치는 진정한 '전달'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출판사 서평

    이제 다시 연애다!
    “인파와 소음의 도시 도쿄에서 만난 소리 없는 그녀는
    내게 치유이자 두려움이었다”

    - 제127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 작가, 베스트셀러 [악인] 작가
    - 현대인의 사랑과 고독을 감각적인 영상언어로 그려낸 요시다 슈이치의 최신 연애소설


    [작품소개]
    인간 심연의 악의를 날카롭게 파헤친 서스펜스 걸작 [악인]으로 “데뷔 10년 만의 놀랄 만한 비약”이라는 문단의 평가를 받으며 2007년 최고의 한해를 보낸 요시다 슈이치. [악인] 이후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다시 ‘젊은 도시인의 일상과 사랑’을 노래한 요시다의 최신 연애소설 [사랑을 말해줘]가 도서출판 은행나무에서 출간되었다.
    시끌벅적한 도시생활에 익숙한 남자와 정적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여자, 정반대인 두 사람을 통해 ‘일방통행적인 커뮤니케이션’에서 오는 연인들의 고독과 안타까움을 이야기한 [사랑을 말해줘]는, 기존의 세련된 도시적 감각을 유지하면서 전작에 비해 보다 따뜻하고 감성적인 작가적 변모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작가 스스로 ‘감히 나의 대표작’이라 선언한 [악인] 이후, 과연 어떤 작품이 뒤를 이을지 일본 문단은 물론 독자 역시 내심 기대와 염려가 엇갈렸다. 한편으로는 한동안 공백기가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기우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악인]의 격정 이후 10개월 만에 출간한 [사랑을 말해줘]로 작가는 기존 작품에서 충분히 감지된 웅숭깊은 저력이 잘못된 판단이 아니었음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끝까지 치달은 열정에서 깨어나 고요와 안정을 되찾고, 정반대 지점으로 돌아설 줄 아는 작가의 과감함과 결단력, 연인을 감싸고 있는 공기마저 그려내는 듯한 영상적인 묘사, 대사와 장면이 주는 상징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이 소설은,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한 사람인 요시다 슈이치의 탁월한 역량이 빛을 발하고 있는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소리’와 ‘정적’, ‘구어’와 ‘문어’,
    정반대의 소재로 극대화한 주제 의식]


    이렇듯 극적인 변화와 숨 고르기로 완성해낸 [사랑을 말해줘]는 ‘소리’와 ‘정적’의 대립을 비롯한 몇 가지 흥미로운 대칭 구조들이 엿보인다.
    가장 두드러지는 대립은 여주인공 교코의 소리 없는 세계와, 방송국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소리의 홍수 속에서 살아온 남주인공 순페이의 세계다. 극단적으로 다른 세계에 살았던 두 사람은 어느 날 우연히 신주쿠 외원에서 만나 사랑을 시작한다. 그것은 너무 다른 상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신비로움에서 시작된 사랑이다. 순페이에게 교코의 소리 없는 세계는 치유인 동시에 두려움으로 다가온다. 교코가 사는 무방비한 세계는 외부에서 관망할 때 온화하기 이를 데 없는 평온함이며 끝내 알 수 없는 수수께끼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의 왜곡을 비추는 거울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순페이는 그녀를 감싸고 있는 독특하고 신비로운 공기를 호흡하면서 차츰 말하지 않아도 되는 것, 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취사선택하게 되고, 그동안 몰랐던 ‘언어의 중량감’을 절감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구어와 문어의 대칭을 들 수 있다. 소리를 통한 대화가 불가능한 두 사람의 의사소통은 대개 ‘필담’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이는 즉흥적으로 떠오른 구어를 문장으로 바꾸고, 그것을 다시 종이에 옮겨 적는 정신적·육체적 여과 장치를 필연적으로 거쳐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내키는 대로 감정을 드러내며 살아온 순페이는 교코와의 커뮤니케이션에 한계를 느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당연시해온 구어적 세계가 응석과 오만으로 가득 찬 것임을 깨닫는다. 순간적으로 쏟아내는 구어에 얼마나 많은 소음이 뒤섞여 있으며, 자신의 감정과 의도를 글로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가를 인식한다. 그리고 ‘짧으면 짧을수록 상대에게 확실하게 가닿는 최소한의 말’ 즉, 구어에서 문어로 이행하는 과정이 인간의 행동까지 변하게 함을 느낀다.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작가적 고뇌와 문제 제기]

    “뭔가를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과연 ‘전하는’ 상대에 대해 얼마나 생각하는가? 가족, 친구, 연인 등 인간관계 속에서 ‘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산케이신문, 2008년 4월 6일자, 요시다 슈이치 인터뷰 중에서.)
    요시다 슈이치는 이런 의문들과 함께 커뮤니케이션은 일방통행이 될 수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 작품의 테마는 ‘전달’에 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이 작품은 ‘작가로서 하나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보내는 의미’를 스스로 음미해보는 작업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비단 작가라는 특수한 입장에 한정되는 반성과 화두는 아닐 것이다. 한 말과 하지 않은 말, 그리고 정작 상대에게 전해진 말, 즉 소통의 불완전성은 개개인에게도 자유로울 수 없는 문제이며 풀어야 할 과제이다. 따라서 소리와 정적 사이에서 고뇌하는 순페이는 현대인의 상징이며, 작가의 창작 활동 자체를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전하고 싶지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순페이의 초조함은 비단 그만이 느끼는 감정이 아닐 것이다. ‘커뮤니케이션’에 서툰, 그래서 많은 사람들 속에 있으면서도 답답하고 외롭기만 한 우리 현대인들의 마음 상태를 작가는 순페이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연애소설을 엮어내면서도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문제를 꾸준히 파고들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소리와 정적의 이원적 대립 구조를 통해 소통의 문제에 초점을 맞춘 작품을 완성해냈다. 언어가 가지는 취약성과 한계를, 역시 언어가 표현수단인 소설로 되돌아보고 파헤쳐낸 작가의 도전정신에 조용한 찬탄을 보낸다.

    [내용소개]
    다큐멘터리 제작가인 주인공 순페이가 교코를 처음 만난 건 폐장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조용한 공원에서였다. 취재를 통해 사람들의 목소리를 모으는 것이 일인 순페이와 평생을 정적 속에 살아온 교코, 이 정반대의 두 사람은 순수한 이끌림만으로 사랑을 시작하고 누구보다 행복한 연인이 된다.
    난생 처음 동거를 제안할 정도로 교코를 깊이 사랑하게 된 순페이. 하지만 필담으로는 하고자 하는 말의 뉘앙스까지 전달할 수 없으며, 최소한의 단어로만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됨에 따라 순페이는 지쳐간다. 또한 소리가 없는 교코의 삶이 안타까우면서도 때로는 무섭기도 하다.
    순페이의 부모님과 만난 후 교코는 전에는 썩 내켜 하지 않았던 하와이 여행을 적극적으로 준비한다. 태어나서 처음 여권을 만들어봤다며 기뻐하는 교코. 하지만 순페이는 탈레반 대불 파괴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갑작스레 파키스탄 출장을 떠나게 된다. 마중 나오는 교코에게 손 한 번 흔들어주지 못한 것이 못내 마음에 남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일 때문에 순페이는 잠시 그녀를 소홀히 한다.
    파키스탄 취재 건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순페이는 귀국하자마자 사흘밤낮을 편집에 매달려야 하는 통에 교코에게 연락을 하지 못한다. 어느 정도 일을 마무리 지은 순페이는 교코에게 문자를 보내지만 어쩐 일인지 답은 오지 않고, 불안한 마음에 그녀를 찾아 나서지만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른다. 그렇게 교코는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마는데…….

    본문중에서

    그 공원은 폐장시간이 4시 반이었다.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나는 관리인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고 바지를 툭툭 털며 일어났다. 그 순간, 너무나도 느긋하게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한 여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기……, 이제 곧 폐장시간인 모양입니다”라고 말하는 내 입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 나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마치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녀를 두 번째 만난 것도 똑같은 공원에서였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가볍게 눈인사를 한 다음 나란히 서서 연못 속의 물고기를 바라보았다. 나는 문득 생각났다는 듯 가방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어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요 앞에 있는 모스버거에 같이 안 갈래요?’라고 적어 보여주었다. 내 이름은 슌페이, 그녀의 이름은 교코. 우리 두 사람의 데이트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나에게는 히로미라는 이름의 여자 친구가 있었다. 최소한의 의사소통만을 원했던 나, 무슨 일이든 하나하나 대화로 풀어가길 원했던 히로미, 우리 둘은 참 맞지 않는 상대였다. 헤어진 뒤로 딱 한번 히로미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다. 아기를 품에 안고 있는 그녀를 보며, 나는 그때 처음으로 자신을 바보 같은 남자라고 생각했다.

    교코를 집에 처음으로 데리고 온 건 겨울이 막 시작되려고 할 무렵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 몇 번이나 같이 식사를 했고 차를 마셨고, 그리고 자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았다. 우리 집 부엌에 서서 요리를 하는 교코의 몸짓은 참으로 조용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아 있는 게 좋았다. 그러다가 문득 테이블 위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편지를 교코가 보게 된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은 엉망이 되어버렸어. 평생을 두고 원망해주지’ 나는 한순간 멈칫했지만 교코에게 “이게 내가 하는 일이야”라고 설명해주었다. 그 편지는 내가 제작한 의료과오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등장했던 의사의 가족으로부터 온 것이었다. 교코는 메모지에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할 수는 없어’라고 적어주었다.
    바로 그때, 호시나 씨에게서 드디어 비디오를 입수했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당시 아프가니스탄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어느 NPO 대표인 호시나 씨는 가끔씩 이렇게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주곤 한다. 나는 교코에게 급박한 상황을 표정으로 전달한 다음 서둘러 집을 빠져나왔다.
    나는 지금 탈레반에 의한 바미얀의 불상 파괴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있다. 불상이 폭파된 후의 영상은 CNN에서 이미 보았지만, 이번에 호시나 씨가 입수했다는 비디오에는 검정색 터번을 감은 병사들이 바쁘게 움직이는 영상이 흐르고 있었다. 게다가 꽤 가까운 곳에서 찍은 것 같았다. 한참을 흥분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또 휴대전화 벨이 울린다. 자택의 경보장치가 작동했다는 것이다. 경보 시스템의 성능이 너무 좋은 건지, 아니면 융통성이 없는 건지, 문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경보음이 울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교코가 걱정이 된 나는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집을 향해 달렸다. 경보음이 울렸다는 것을 알 턱도 없는 교코는 낯선 남자가 찾아와 문을 열어달라며 험악한 표정을 짓자 체인을 걸어 잠근 채 집안에 꼭꼭 숨어 있는 것 같았다. 집 앞에 도착한 나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교코를 어떻게 불러내야 하나? 아무리 불러도 교코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생각 끝에 나는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문틈으로 힘껏 던져 넣었다. 문 앞에 내가 왔다는 걸 교코가 알 수 있도록…….

    교코는 금요일 저녁에 와서 일요일 저녁에 돌아가는 생활을 반복했다. 친구를 만나고 교코가 있는 집에 돌아갈 때면, 나는 왠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느낀다. 소리를 완전히 줄인 채 자막이 흐르는 영화를 보고 있는 교코의 뒷모습은 내게 너무 낯설다. “나 왔어”라고 말하고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 교코에게 다가가지만, 왠지 살금살금 숨어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어 견딜 수가 없다.
    모처럼의 화창한 날씨를 이유로 우리는 돗자리를 사서 공원에 갔다. 잔디밭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샌드위치를 먹는 동안 어느새 우리 주위에도 돗자리를 깔고 앉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화장실에 다녀오면서 교코의 모습을 찾느라 애를 먹을 정도다. 그런데 갑자기 치고받고 싸우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다 일어나 그 두 남자를 크게 둘러싼 채 구경을 하고 있는데, 교코만이 그 광경을 보지 못하고 나에게 손을 흔들며 활짝 웃고 있다. 두 남자는 넘어져서 뒹굴며 교코가 있는 자리로 다가가고 있었다. “위험해!” “아가씨, 빨리 비켜요!”라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린다. 하지만 교코는 피를 흘리는 두 남자를 배경으로 웃고만 있다. 주위는 비명소리로 시끄러운데, 왜 내 눈에는 조용하게 보이는 걸까? 너무나도 무서운 고요함이었다.

    교코를 부모님께 소개하기로 했다. 예상대로 부모님은 교코를 따뜻하게 맞아주었고, 교코도 그런 부모님의 태도에 안심하는 듯했다. 부모님 집에서 식사를 마친 다음, 교코와 둘이서 2층에 있는 학창시절의 내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가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1층에서 아버지의 낮은 고함소리와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하지만 교코는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또 놀러 오라는 어머니의 인사말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다. 교코는 썩 내키지 않아 했지만 부모님과 인사하고 난 후로는 갑자기 적극적으로 나서며 제일 비싼 호텔을 예약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며칠 뒤, 호시나 씨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불상을 폭파한 탈레반 내부의 한 유력자가 숨어 있는 곳을 알아냈다며 조만간 인터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여태까지 많은 인물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역사학자, 유네스코 특사, 각국 저널리스트……. 하지만 그들은 모두 불상 파괴를 저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반대편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그 사람을 절대로 놓쳐선 안 된다.
    취재를 위한 비행기 표를 예약하면서 교코와 함께 가기로 했던 하와이행 티켓을 취소했다. 간단했다. “취소할게요”라는 악의 없는 단 한마디 말로 깨끗이 해결되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 짐을 싸서 공항으로 출발하려는데 교코가 따라나선다. 바쁘니까 배웅할 필요 없다고 말했지만 교코는 한사코 역까지만 같이 가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파키스탄 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다. 준비하느라 며칠 간 밤샘작업을 했다. 피곤하기도 하고 시간도 없어서 역까지 걸어가는 동안 교코와 아무런 대화를 나누지 못했다. 개찰구 밖에 서 있는 교코에게 손도 흔들어주지 못했다.
    파키스탄에서의 인터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탈레반 측에서도 불상을 파괴할 생각이 없었다고 한다. 그들 역시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불상이 폭파되었을까? 피곤했지만 내가 제작한 영상이 멋진 다큐멘터리로 완성될 생각을 하니 하늘에라도 날아오를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다.
    일본으로 돌아온 뒤에도 사흘 간 편집실에 틀어박힌 채 작업에만 몰두했다. 교코에게 연락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럴 시간이 없었을 뿐이다. ‘아무리 바빠도 전화 한통 걸 시간은 있다’는 세상 사람들의 말도 지금의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짓고 집으로 돌아와 교코에게 문자를 보냈다. 하지만 답이 없다. 시장을 볼 때도, 요리를 할 때도, 먹고 있을 때도 교코로부터 답신이 오지 않았다. 그 대신 집 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내가 없는 동안 교코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별 다른 말은 쓰지 않았다면서, 단지 둘이 잘 지내라고, 아들을 잘 부탁한다고 썼을 뿐이라고 말했다. 분명히 그랬을 것이다. 어머니는 절대 무례한 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사람의 본심은 꼭 말로만 전달되는 게 아니다. 말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전달되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은가?

    교코와 연락이 끊긴 지 벌써 일주일이 넘었다. 나는 시간이 날 때마다 교코의 집을 찾아 헤맸다. 교코가 사는 곳의 정확한 위치는 몰랐지만, 그래도 대충 어느 부근인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패를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신문배달 소년에게 물어도 봤지만, 결국 교코의 집은 알아내지 못했다.
    여자 친구가 사라졌는데도 여전히 회사에 나와 일을 하는 나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영화에서라면 회사를 그만두고라도 여자 친구를 찾아 헤매겠지만 나는 그렇게까지 할 수 없었다. 다큐멘터리는 성황리에 방영되었고, 국장까지 나서서 훌륭하다고 칭찬해주었다. 심지어는 9.11까지 연결되는 시리즈물을 만들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기뻤지만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왠지 불안해 보인다. 내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시청자들에게 얼마나 전달되었을까?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교코에게서 편지가 왔다고. 교코는 어머니가 보낸 편지 때문에 떠난 게 아니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을 그대로 믿길 원하는 어머니의 태도에 화가 났다. 하지만 문득 생각났다. 편지봉투에 주소가 적혀 있지 않을까? 어머니를 통해 주소를 알아낸 다음, 바로 교코에게 문자를 보냈다. ‘네가 사는 집을 겨우 알아냈어. 내일 찾아갈게’라고.
    잠시 후, 그렇게도 기다리던 교코의 문자가 도착했다. ‘연락 못해서 미안해. 내일 내가 그쪽으로 갈게’
    기다리겠다는 메시지를 전송하려던 순간, 문자가 하나 더 도착했다.
    ‘하나 물어봐도 돼?’
    ‘물론’
    ‘날 찾아다닐 때 어떤 기분이었어?’
    나는 ‘불안했어’라고 적었다가 지웠다.
    ‘반드시 찾아낼 거라 생각했어’라고 썼다가 지웠다.
    ‘나중에는 내가 무엇을 찾아 헤매는지 알 수 없게 된 기분이었어’라고 적어 보내려 했다. 하지만 전송 버튼을 누르려던 손가락이 딱 멈췄다.
    결국 내 손가락은 ‘보고 싶어’라고 입력시키고 있었다. 그 후론 더 이상 아무 말도 떠오르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요시다 슈이치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8.9.14~
    출생지 일본 나가사키 현
    출간도서 46종
    판매수 34,783권

    1968년 나가사키 현에서 태어나 호세이대학교 경영학부를 졸업했다. 1997년 [최후의 아들]로 제84회 문학계 신인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 2002년 [퍼레이드]가 제15회 야마모토슈고로상을, [파크 라이프]가 제127회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하며 대중성과 작품성을 모두 갖춘 작가로 급부상했다. 2007년 [악인]으로 제34회 오사라기지로상과 제61회 마이니치 출판문화상을, 2010년 [요노스케 이야기]로 제23회 시바타렌자부로상을 받았다. 현대인의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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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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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문학연구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2009년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과 [캐러멜 팝콘]으로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주관하는 보라나비 저작·번역상의 첫 번역상을 수상했다. 옮긴 책으로 [공중그네], [단테 신곡 강의], [약속된 장소에서], [화차], [솔로몬의 위증], [불타버린 지도], [나란 무엇인가],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작은 행복론], [죽을 때까지 책 읽기], [공백을 채워라], [고구레 사진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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