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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 채플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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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염승숙
  • 출판사 : 문학동네
  • 발행 : 2008년 12월 17일
  • 쪽수 : 310
  • ISBN : 9788954607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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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n이었는데, 너를 만난 후에 나는 비로소 n + 1이 되었어!”

2005년 [현대문학]에 단편 [뱀꼬리왕쥐]를 발표하며 등단한 82년생 작가 염승숙의 첫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거침없는 환상성을 펼쳐 보여 독자와 평단의 주목을 받았던 등단작 [뱀꼬리왕쥐]를 포함, 올해 여름까지 발표한 여덟 편의 독특한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자체가 하나의 환상 세계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가 특유의 일탈적인 문체가 물씬 배어 있는 작품집에는, 등단 이후 꾸준히 그리고 집요하게 비문법성의 형식을 빌린 문학적 실험으로 개인 환상과 공동 환상의 두 세계의 간극을 묘파해온 신인 작가의 패기가 느껴진다.

[뱀꼬리왕쥐] “뱀꼬리왕쥐의 세계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꼬리뼈 전문 물리치료사인 ‘나’는 쉴새없이 볼칵거리며 솟아나는 환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센 빗줄기가 쏟아지는 어느 날 밤 ‘나’는 퇴근하는 길에 뱀꼬리왕쥐를 만난다. 뱀꼬리왕쥐는 ‘나’에게 꼬리뼈를 주면 뱀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수의 세계] “세상에 태어나 0으로 존재했던 사내가 있다.”
몸에 숫자를 새기고 태어난 주인공 ‘공영’은 수(환상)의 세계를 믿지만 그가 사랑한 ‘하나’는 수를 믿지 않고 현실을 믿는다. 공영은 자연수(현실) 바깥의 세계로 들어간다. 그곳은 소수(주변부 현실)들의 세계이거나 허수나 무한수처럼 실재감이 약하거나 없는 세계이다.

[거인이 온다] “뭐라 말씀하신다고 해도 정말이지 이건, 역진화라고밖에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시청공무원인 ‘나’는 사랑니를 뽑으러 치과에 들렀다가 의사로부터 황당한 얘기를 듣는다. ‘나’의 사랑니가 사실은 사랑니가 아니라 1822년에 발견된 바 있는 ‘이구아노돈’이라는 공룡의 뼈라는 것이다. 이후 ‘나’는 그동안 자신을 시달리게 했던 민원, 눈이 자꾸만 사라진다는, 누군가 눈을 먹어치우고 있다는 민원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춤추는 핀업걸] “엄마, 또 달력으로 들어갔구나.”
십대의 ‘나’는 꼭 몸의 절반만큼 조로(早老)를 앓고 있다. ‘나’의 몸속에는 속도가 다른 두 개의 시계가 째깍거리고 있는 셈이다. 주위에는 떠돌이 아버지, 빚쟁이들이 찾아올 때마다 매번 달력 속으로 숨는 엄마, 엄마처럼 달력 속을 드나드는 흐벅진 몸매의 핀업걸들이 있다. 꿈속에서는 눈덧신토끼가 나타나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채플린, 채플린] “조심해야 돼요. 언제 어디서 어깨를 두드릴지 모릅니다.”
밤에는 장례식 문상객으로, 낮에는 가짜 하객 역할을 하며 별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아가는 모철수씨는 잔뜩 긴장해 있다. 정부가 어젯밤 자정을 기해 발표한 ‘여봇씨요 경계령’ 때문이다. 뒤에서 어깨를 한 번 톡 치며 “여봇씨요” 하고 말을 건네고 곧바로 채플린으로 만들어버리는 ‘여봇씨요 사나이’가 자신을 노릴 것만 같다. 예식장을 빠져나가려는 찰나, 누군가 뒤에서 “여봇씨요” 하고 그의 어깨를 톡 친다.

[채플린, 채플린 2] “진짜 채플린은 도대체 누굽니까?” “그는 농담을 하는 사람입니다.”
예식장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된 모철수씨를 마지막으로 채플린 행진곡은 막이 내렸지만, 한 방송국에서 제작한 ‘여봇씨요 사나이’를 다룬 다큐멘터리 방송 이후, 국민들은 여봇씨요 사나이의 정체를 밝히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던 중 개그맨 지망생이자 퀵서비스맨 오종수씨가 지하철 연결통로에서 모철수씨를 만났다는 이야기가 세간에 알려지면서 ‘여봇씨요 사나이’와 수많은 채플린들에 얽힌 비밀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낸다.

[지도에 없는] “나…… 모르겠습니까?”
부동산 중개업 이십구 년 경력의 김씨는 어느 날 손님에게 햇볕이 잘 들고 저렴한 옥탑방을 보여주려다가 불광동 1-173번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런데 동사무소에 가서 확인을 해봐도 불광동 1-173번지는 십 년 전, 이십 년 전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다. 그럴 리 없다며 김씨는 자신의 소개를 통해 최근 오 년간 1-173번지 옥탑방에 살았던 사람들을 찾아 나선다.

[피에로 행진곡] “괜찮다. 정말이지 나는 괜찮았다. 빛나는 다이아몬드의 눈물을 달고 있는 한, 그 누구의 노랫말처럼 나는 항상 웃음 간직한 피에로일 수 있으니.”
오 년 전 유일한 가족이었던 누나와 매형을 교통사고로 잃고 혼자 살고 있는 스물네 살의 ‘나’는 거리의 피에로로 일하고 있다. 누나 부부의 사업 빚을 피하기 위해 최근에는 주민등록말소 신청까지 한 터다. 말소 신청자의 거주 여부를 조사하는 담당 공무원은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엉뚱한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같은 일을 하는 고아원 출신의 동갑내기 존은 우산을 쓰고 풀씨처럼 하늘로 날아오르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개인방언으로 그려낸 환상의 세계

염승숙의 소설은 기본적으로 규범적 언어, 문학적 언어로부터 소외된 존재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의 어설프고 유치한,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들 존재에 즉자적인 언어들이 그려내는 환상 역시 기왕의 소설들처럼 논리적이고 필연적인 방식으로 제시되고 있지는 않다. 패러디나 알레고리 등의 기법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다. 주인공들의 환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환상을 몰고 온다. 그 반복의 과정 속에서 ‘나’는 더이상 환상의 주체일 수 없다. ‘나’는 그 환상들을 통과하는 교차점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이 환상들이 자동적으로 증식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채플린, 채플린]연작과 [피에로 행진곡] 등의 소설에는 염승숙 소설의 인물들이 환상에 탐닉할 수밖에 없는 현실적 근거들이 암시돼 있다. 이 소설에는 공통적인 현상이 있다. 채플린으로 변하거나([채플린, 채플린 연작), 불광동 1-173번지가 갑자기 사라지거나([지도에 없는]), 우산을 들고 하늘로 떠올라 사라지는([피에로 행진곡]) 등의 현상이 그것이다. 또한 이 작품 속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이들이 존재감이 희미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든지 환상 속으로 날아가버릴 수 있는 가벼운 몸의 소유자들이다.

이처럼 염승숙의 소설이 그려내는 세계는 기존의 규범적인 언어로 접근하기 어려웠던 개인 환상들의 세계이다. 투박하고 세련되지 않은 개인 환상들은 그 날것 그대로 한국 소설의 새로운 국면을 암시하고 있다. 우리가 젊은 소설가 염승숙의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어느 인터뷰에선가 염승숙은 자신을 알기 위한 공상이 소설쓰기로 이어졌노라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그의 소설을 통해, 독자인 우리가 그를 알 차례이다.

목차

뱀꼬리왕쥐
수의 세계
거인이 온다
춤추는 핀업걸
채플린, 채플린
채플린, 채플린 2
지도에 없는
피에로 행진곡

해설 - 손정수(문학평론가)
개인방언으로 그려낸 환상의 세계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텅 빈, 나의 몸. 그 무엇이 들어와 나를 채운다 해도, 변할 것이 있으랴. 나는 여전히 나, 척추가 부러지고 파충류의 표피를 얻어도 나는 여전히 나,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에 존재하는 나, 나의 몸.
(뱀꼬리왕쥐중에서 / p.34)

“아, 또 한 명 날아간다.”
존이 탄복하듯 눈을 빛내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언제나 그랬듯 눈꺼풀을 깜빡일 새도 없이, 우산을 쓰고 날아가던 그는 스스로 몸에서 플래시를 터뜨린 것처럼 번쩍, 하고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
“오늘 벌써 세 명째야.”
존이 눈을 떼지 못하고 웅얼거렸다.
(피에로 행진곡 중에서 / pp.274~275)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2~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5,480권

소설가, 평론가.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노웨어맨』 『그리고 남겨진 것들』 장편소설『여기에 없도록 하자』『어떤 나라는 너무 크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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