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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기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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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도망치기]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별’이라는 대전제 앞에서 사랑의 균열과 소멸, 존재의 욕망과 허무로 갈등하는 과정을 아주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한 남자가 사랑하던 여자와 헤어지려는, 혹은 헤어져가는 미완의 과정의 심리적 어려움을 그리고 있는 전작 [사랑하기](2006년 현대문학 출간)의 연장선상에 있는, 또 하나의 이별을 그린 작품이다.
상하이와 베이징, 파리와 엘바 섬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도망치기]는 ‘나’의 시선에 의해 보여지는 배경과 ‘나’와 ‘그녀’가 헤매고 다니는 낯선 거리의 분위기를 통해 ‘이별’이라는 감정의 기복을 감성적인 터치로 부각시키고 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주인공의 감정과 위태로운 이별의 분위기를 영상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 뚜생 특유의 단문과 교차하는 만연체 문장으로 그 분위기를 더욱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들은, 어느 비평가가 서구적이라기보다 동양적인 분위기, 특히 왕가위의 분위기를 느꼈다고 말할 정도로 감각적이고 몽환적이다.
미니멀리즘 미학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준[도망치기]는 서사가 없던 미니멀한 전작들과 비교하면 이야기로서의 줄거리가 있다는 점에서 뚜생의 감성적 변화를 확인시켜준 작품이다. 이러한 뚜생의 변화는 그가 기존에 고수했던 ‘무감동’에서 ‘감각’으로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평가의 요인이기도 하며, 단연 현대소설의 변모를 보여준 것임에 틀림이 없다.

- 줄거리

‘마리’와 헤어지기 전 여름, ‘나’는 상하이로 여행을 떠난다. 공항에 마중 나온 마리의 홍보담당 ‘장 지앙지’는 내게 선물로 중고 휴대폰을 건넨다. 나는 장 지앙지가 데려간 전시장에서 ‘리기’를 만난다. 여행의 혼돈과 공포 그리고 일탈의 욕망에 사로잡힌 ‘나’는 ‘리기’에게 충동적인 욕망을 느낀다. 그녀는 내게 베이징 여행을 제안한다. 영문을 알 수 없게도 우리가 만나기로 한 장소에 장 지앙지도 함께 나와 있다. 리기와 나는 베이징행 야간열차의 침대칸에서 몰래 빠져나와 키스를 나눈다. 리기와 내가 가까워지려는 그때, 나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한다. 마리가 자신의 아버지의 부음을 전하기 위해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서 건 전화다. 마리는 슬픔으로 정신없이 파리 거리를 헤맨다.
베이징에 도착한 장 지앙지와 나는 시내 관광을 하고 볼링을 하러간다. 볼링장에 돌연, 종이가방을 든 리기가 나타난다. 갑자기 한 통의 전화를 받은 장 지앙지는 리기와 나를 오토바이에 태우고 도망치기 시작한다. 이유도 모른 채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탈주에 동참한다. 장 지앙지는 의문의 종이가방을 어느 바에 감추고 서둘러 나를 거리에 내려준 뒤 리기와 함께 사라진다.
호텔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마리 아버지의 장례식이 치러지는 이탈리아 엘바 섬으로 출발한다. 장례식 운구행렬을 따라가던 마리는 섬에 막 도착해 갑판 위에 서 있는 나를 보았을 것이고, 마침내 나는 장례식이 거행되는 성당 먼발치에서 마리를 바라본다. 마리 역시 나를 발견하고 슬픔과 고통이 뒤섞인 감정을 죽이며 냉정과 위엄이 서린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마리는 성당에서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고 사라져버린 나를 찾아 헤매고, 결국 마리와 나는 재회한다. 우리는 아버지가 죽은 곳일지도 모르는 해변에 함께 가는데 마리는 홀로 바다 저 멀리로 헤엄쳐 사라진다…….

본문중에서

물의 지붕에 켜 있는 녹색 조명이 밤하늘을 밝혔고 그 빛은 다시 황푸강 수면 위로 창백한 에메랄드빛으로 반사되어 가늘게 떨렸다. 수면에 고정된 것 같은 장엄한 물결 위의 어둠 속에 음식쓰레기, 진흙덩어리, 수초가 쌓인 강 건너편의 하늘에는 오리엔탈펄 타워의 상징인 둥그런 지붕, 그리고 조금 더 먼 쪽으로 겸손하게 한 걸음 물러선 데에는 은근하면서도 웅장한 진마오타워가 어우러져 푸동의 고층건물의 스카이라인이 미래파가 그린 가느다란 손금처럼 펼쳐졌다. 난간에 팔꿈치를 기대고 생각에 잠긴 채 어둠 속에서 출렁거리는 검은 수면을 내려다보았다가 그녀 모습이 어둠 속의 검은 수면과 겹쳐지자 문득 사랑에 관련된 것이 떠올라 몽롱한 우울감에 빠진 채 마리에 대해 생각했다. 이제 일찌감치 마리와는 끝장난 것일까? 그 여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본문중에서/ p.18)

그들이 내 앞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들 중 하나가 요리에 젓가락을 가져가려고 식탁을 돌릴 때마다 그 사람은 공간에 어떤 새로운 형상을 구성하지만 그 형상은 현실의 어떤 변화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하고 유일한 현실의 상이한 단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나도 판에 끼기 위해서 손을 내밀어 우리에게 제시될 새로운 현실의 배치가 어떤 것일지 궁금해 하며―아직도 나는 어떤 놀라운 경험을 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우리 사이에 있는 식탁의 가장자리를 잡고 천천히 돌렸다.
(본문중에서/ p.73)

자신이 겪는 고통의 책임자가 바로 나,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녀를 괴롭히는 나,―그저 단순히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 고통을 주었고, 나의 부재는 더 큰 고통을 주었고―그녀가 아버지의 부고를 접한 파리에서나, 이곳에 도착해서 장례식에 관한 모든 실질적 문제를 해결해야 했던 엘베 섬에서나 그녀가 나를 필요로 했을 때에는 없었던 나,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성당에 나타났다가 이야기도 하지 않고,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고, 키스를 하거나 포옹도 없이 고통에 빠진 그녀에게 위로도 하지 않고, 나에게만 익숙해졌던 냉기와 온기의 급격한 변화 속에 그녀를 설레게 해놓고는 나의 존재를 그녀로부터 박탈해버린 나.
(본문중에서/ p.151)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만의 고통 속에 홀로 있었고 나 역시 나만의 고통 속에서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은 여행하는 동안에는 계속 커져만 갔고 장례식은 우리를 가깝게 하여 고통을 통해 하나로 이어주리라 믿었는데, 우리는 지금 헤어지고 있는 중이며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으며, 우리의 고통은 서로의 고통을 중화시키기는커녕 날카롭게 할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본문중에서/ pp.165~166)

그녀가 마침내 내 곁에 오자 한쪽 팔을 내 어깨에 올리고 눈물을 쏟았고 키스를 하면서 동시에 나를 때렸으며, 내 품에 안겨 어둠 속에서 욕설을 퍼붓고 흐느끼며 눈물을 쏟자 눈물은 금세 주변에서 찰랑거리는 파도거품의 짠물 속에 섞여 바다 속에 용해되어버렸고,
(……) 저항하지 않는 그녀에게 나는 키스를 하며, 그녀 눈물을 입술로 받아들이자 혀에서 짠물 맛이 느껴졌고 눈에 바닷물이 들어오고 마리는 나의 품안에서, 나의 입맞춤으로 펑펑 울었다. 마리는 바다에서 울고 있었다.
(본문중에서/ pp.180~181)

저자소개

장 필리프 투생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57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났다.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알제리에서 2년 간 교사 생활을 했다. 한때 영화를 제작하고자 하는 꿈이 있었으나, 경제적인 이유로 종이와 펜만으로도 가능한 문학 세계에 뛰어들었다. 처녀작[욕조]는 발간 직후 이십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어 명성을 떨칠 만큼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으며, 로브 그리예 이후의 후기 누보로망의 기수로 지목받았다. 프랑스에서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언어권에서 충실한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작은 소재를 상징적, 감각적으로 다룸으로써, 인간의 본질 자체에 대한 끊임없는 탐색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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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56~
출생지 강원도 화천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브장송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숭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꿀벌의 언어] [소설, 때때로 맑음 1]이 있으며, 역서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정체성], 다이 시지에의 [달도 뜨지 않은 밤에], 앙투안 콩파뇽의 [모더니티의 다섯 개 역설], 프레데릭 파작의 [거대한 고독]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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