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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행 - 이희호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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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같은 길을 걷는 삶, 동행

    김대중 전 대통령의 곁을 정신적 안식처로 오랫동안 지켜온 이희호 여사. 이 책은 이희호 여사가 자신의 삶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한 조각을 조금이나마 남기고자 쓴 자서전으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여성으로서 그리고 레이디 퍼스트로서의 삶을 만날 수 있다. 격정적 역사의 굴곡 속에서 민주주의와 여성의 평등을 갈망하며 남편 곁을 신념을 갖고 묵묵히 지켜온 과정을 담담히 담았다. 정치의 길을 걷는 남편의 곁은 같이 가는 길을 동행이라 표현하는 그녀. 그 동행길에 묻어난 역사와 그녀의 삶에 우리도 같이 동행해보는 것은 어떨까?

    출판사 서평

    퍼스트레이디 최초의 신산했던 삶과 순정한 꿈의 기록!
    김대중 대통령의 정신적인 동지이며 삶의 동반자 이희호,
    파란곡절로 아로새겨진 삶 속에서 희망을 길어내다


    젊은 시절부터 재기발랄한 여성 리더였던 이희호 여사의 인생행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소용돌이치는 역사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쟁한 1971년 대선부터 그는 최고 통치권자의 최대 정적이 되었으며, 이후 망명·납치·구금·연금 등이 이어졌고, 24시간 감시와 도청이 계속됐다. 또한 박 대통령 사후 군사 정권이 들어선 뒤에도 남편의 투옥은 이어졌고, 급기야 그는 ‘김대중 내란 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런 모진 시련에서 극적으로 살아났지만 가택 연금은 계속되었고, 오랜 기간 해외에서 망명 생활을 해야 했다. 이처럼 이희호 여사는 정치적인 고난을 많이 겪기로 유명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의 동반자이며 정신적인 동지로서 일생을 보냈다. 또한 이 여사는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인텔리 여성으로서 가족법 개정, 축첩 정치인 반대, 혼인신고 하기 등의 여성 인권 찾기에도 많은 노력과 수고를 바쳤다.
    따라서 그의 일생을 살펴보는 것은 긴 세월 동안 영어의 몸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을 대신하여 정계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한국 현대의 흥미로운 정치사를 꿰뚫어볼 수 있는 한 궤가 될 것이며, 여성운동이 한국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살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낮과 밤이 뒤섞인 한국 현대사의 가장 내밀한 기록
    _ 파란곡절로 아로새겨진 우리 현대사의 뒤안길에 대해 이야기하다


    한국 현대사는 오랜 기간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시간을 걸어왔다. 36년간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을 거치며 혼란한 시간 속에서 집권층은 부정부패를 일삼고 민중을 억압했다. 그리고 군사 정권의 독재로 점철된 유신 통치와 제5공화국 시절의 폭풍 같은 정치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난 속으로 떨어졌으며, 거짓을 말하거나 침묵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민주주의라는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용기와 신념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는 희망의 증거로서 늘 그 중심에 서 있었다.

    4월 27일 아침, 우리는 동교동 제1투표소에서 투표를 했다. 그러나 우리 표를 포함해 2,000여 매가 무표로 처리되었다. 선거관리위원장의 법정 도장이 아닌 다른 도장을 찍은 투표용지였다는 것이다. (…) 개표 감시단을 모집해 부정투표와 개표를 감시했지만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대통령 선거인 데다 개표 참관인마저 회유하고 방해하는 공작 앞에서는 도무지 역부족이었다. 소규모 농촌 투표소에서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일까지 있었다고 한다. 개표 방송조차도 국영방송 하나로 제한하고 문화공보부가 개표 결과를 최종 집계해 발표했다.
    ― <‘개표’에서 진 1971년 대통령 선거>(109~10쪽)에서

    “민주 회복을 위해 많은 사람, 특히 젊은이들이 이곳을 거쳐 가는데 나도 동참할 수 있게 되어 대단히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태연하고 결연하게 말했다. 유신 초기의 공포에 떨던 내가 아니었다. 나는 식사를 거부하고 금식했다. 그들은 같은 것을 묻고 또 물었다. 마치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는 것 같았다. 밤늦도록 심문받고 책상에 기대 잠시 눈을 붙이려 해도 전등 불빛이 광포하게 쏟아져 무척 힘들었다.
    ― <“민주주의가 죽어서 곡을 합니다”>(156쪽)에서

    이 책 [이희호 자서전 ‘동행’]을 통해 우리는 그 희망의 증거를 발겨할 수 있으며, ‘1967년 7대 목포 총선’ ‘1971년 대통령 선거’ ‘김대중 납치 사건’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 등 굴곡 많은,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한국 현대사의 속살을 들여다볼 수 있다. 또한 이 여사가 풀어놓는 그 내밀한 기록을 통해 잃어버린 지난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우리의 미래를 가늠해보는 길이 될 것이다.


    사형수에서 대통령이 된 사람의 동반자로 살아온 46년의 기억
    _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끈끈한 신뢰의 동아줄


    혼란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훌륭한 내조자로서 일생을 보낸 이희호 여사의 삶은 한 편의 영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청년 김대중에게 정치가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여성 리더 이희호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 남녀 간의 뜨거운 사랑보다는 서로가 공유한 꿈에 대한 신뢰가 두 사람을 동여맨 끈이 되었다.

    조국의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내 한 몸 바치겠다는 큰 꿈과 열정이 그가 가진 전 재산이었다. 그는 늘 책을 읽고 메모하는 습관을 지니고 있었다. 어느 때부터 그랬는지 확실하지 않으나 나는 이 비범한 남자의 꿈이 꿈으로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책벌레, 김대중>(65~6쪽)에서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경쟁한 1971년 대선부터 그는 최고 통치권자의 최대 정적이 되어 핍박받았고, 박 대통령 사후 군사 정권이 들어선 뒤에는 급기야 ‘김대중 내란 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이렇게 정권의 탄압으로 죽음을 넘나드는 고난을 겪으면서, 두 사람은 부부라는 사적인 관계를 넘어 독재와 싸우는 조국의 지도자와 동지로 변해갔다. 특히 이 여사는 수감 중인 남편에게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편지를 썼는데, 편지에는 가정사 외에 철학적·신학적 논쟁거리, 투쟁에 대한 격려 등이 담겨 있었다.
    이후 이희호 여사는 1987년, 1992년 대선에서 그가 연거푸 패배하고 1997년 대선 4수를 결심했을 때도 다시 신발 끈을 잡아맸다. 이를 두고 한 지인은 “김대중 정권 지분의 40퍼센트는 이 여사의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997년 12월, 김대중은 드디어 1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번에도 하느님은 나를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내가 할 일은 여기까지인 것 같소. 이제 정계를 떠나려고 하오. 내가 말하는 것을 받아써주오.”
    그의 비장한 결정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윽고 그가 구술하고 나는 받아적었다. 정서를 하는데 눈물이 주르륵 종이 위에 떨어졌다. 한번 시작된 눈물은 좀처럼 멈출 줄 몰랐다. 고개를 숙이고 우는 내 모습이 처연했던지 남편이 손을 잡았다.
    “여보, 우리 1980년 사형선고 받았을 때를 생각하면 이 정도는 웃을 일 아니오.”
    그는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 <1992년 대선, 정계 은퇴>(301~2쪽)에서

    그의 복귀설이 점점 고조되고 있었다. 나는 반대했다. 그의 아쉬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나도 아쉬웠지만 국민과의 약속은 지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반대할 줄 알았어요. 나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허나 지금 북한 핵 문제로 민족의 앞날이 중요한 때인데 정부는 물론 야당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어요. 변명은 하지 않겠소.”
    ― <정계 복귀를 반대하다>(309~10쪽)에서

    이처럼 이희호 여사는 46년간 가장 가까이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지지하고 독려하고 때로는 비판도 하고 그의 큰 버팀목도 되어주면서, 그의 가장 진실한 모습을 대변해오고 있다.

    강행군을 마치고 5시쯤 숙소로 돌아오니 대통령은 아직 정상회담 중이라고 했다. 2시간째 계속되고 있었다. 잠시 휴식차 온 그는 많이 지쳐 보였다. 6시 전에 다시 회담장으로 갈 때는 지팡이를 짚어야 했다. 무거운 걸음을 떼는 그의 뒷모습이 무척 고독하고 힘겨워 보였다. (…) 막중한 책임을 진 사람은 결정적 순간에 무섭게 외롭다. 그날의 그가 결혼 생활 중 만난 가장 고독한 모습이었다.
    ― <6·15, 남북의 감격적인 만남>(340쪽)에서

    남녀평등의 순정한 꿈을 향한 걸음 자취
    _ 대한민국에서 여성운동은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


    젊은 시절부터 재기발랄한 여성 리더였던 이희호 여사는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며 인텔리 여성으로서 가족법 개정, 축첩 정치인 반대, 혼인신고 하기 등의 여성 인권 찾기에도 많은 노력과 수고를 바쳤다. 이런 이 여사가 퍼스트레이디로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자 행정부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가 출범했고, 장관들 임명장 수여식 때는 부부가 동반해서 임명장을 받는 새로운 관행이 저절로 생겨났다.
    또한 이 여사는 영부인으로서 독자적인 해외 순방 영역을 개척하기도 했다. 이 여사의 해외 방문은 총 5차례로, 2001년도를 제외하고 매회 1회 이상 단독 해외 순방에 나섰다. 이 여사는 특히 역대 영부인으로서는 처음으로 2002년 5월 대통령을 대신해 유엔 아동특별총회에 참석, 의장국으로 임시회의를 주재하고 영어로 기조연설을 하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따라서 이희호 여사의 일생을 들여다보는 것은 여성 운동이 한국에서 어떻게 발전되어 왔는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줄 것이다.

    남녀공학에서 여학생들은 신입생 환영회에서조차 수줍어 고개를 잘 들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남학생들은 술을 마시고 마음껏 호연지기를 뽐냈다. 이 불공평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우선 후배 여학생들에게 고개를 똑바로 들고 당당하게 앞을 볼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 남녀공학 체험은 여성들이 스스로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우쳐주었다.
    ― <서울대 사범대와 ‘면학동지회’>(34쪽)에서

    나는 미국에서 사회학을 공부한 전공을 살려 1964년 1년 동안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 노동여성 실태 조사를 벌여 9개 산업별 노조 여성 대표들과 좌담회를 열었다. 또한 근로 여성 실태 조사를 1968년까지 꾸준히 지속적으로 실시했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진 결과를 토대로 보고서를 출간했다. 분야별로 직업여성클럽을 조직하여 단결된 하나의 목소리로 결집하는 노력을 병행했다. 1968년, 1969년, 1970년 세 차례에 걸친 세미나에서 실상과 대책을 발표해 사회에 호소하고 정부 정책에 반영하도록 했다.
    ― <‘엄마’와 ‘사모님’으로>(75쪽)에서

    역사의 현장에서 이희호 여사가 만난 사람들
    _ 계훈제, 김활란, 육영수, 전두환, 김정일, 힐러리


    이희호 여사는 1922년 서울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 정치와 유신 체제, 군사 정권 등 격동의 시기를 살아온 것은 물론, 청와대의 안주인으로서 5년여의 시간을 보낸 까닭에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다양한 사람들을 수없이 만나왔다. 계훈제 선생, 김활란 박사,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김정일 위원장,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가까이에서 그들을 만나고 지켜본 사람으로서 이희호 여사가 들려주는 기억의 한편에는 그동안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도 들어 있어 흥미롭게 다가온다.

    면학동지회 멤버 중 한 사람이 계훈제 씨를 소개했다. 그는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 학생위원장이자 서북청년단으로 우익 학생운동의 기수였다. (…) 나는 그가 추구하는 꿈에 끌렸다. 갓 해방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청춘으로서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동지적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가 폐결핵에 걸렸다. (…) 나는 미국 유학과 연민의 정 사이에서 무척 고민했다. 마침 부산에서 다시 만나 기독 학생운동 일을 함께했던 강원용 목사는 나에게 훌훌 털고 유학을 가라고 종용했다. 나 역시 공부를 계속해야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나는 많은 괴로움과 망설임 끝에 그의 곁을 떠났다. 그러나 미안함과 병든 이를 돌보지 않은 죄책감은 오랫동안 떠나지 않았다.
    ― <전쟁과 유학의 길>(41~2쪽)에서

    1940년에 선교사들을 추방하고 학교 요직을 차지하고 들어온 일본인들은 김활란 교장을 핍박했다. (…) 그가 정작 친일파였다면 일본어에 서툴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국어는 목적을 갖고 선택하는 언어다. 1918년에 이화학당 대학부를 졸업할 때 그는 유창한 영어 연설로 유명했다. 똑똑한 여성의 대명사였던 그가 자발적 친일파였다면 그 도구인 일본어도 무척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단죄하기에는 우리 역사상 가장 힘들었던 암흑시대에 일어난 일들이다. 그 개인의 불행이 당대 우리의 불행이었다.
    ― <교수의 길 버리고 YWCA로>(57~60쪽)에서

    서울대학병원으로 이송된 육영수 여사는 저녁에 운명했다. 따뜻하고 반듯한 성품을 지녔으며, 남편의 독재를 많이 염려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속 야당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분이다. 나는 생전에 세 번 육 여사와 만났다. 결혼 전 1961년 9월에 여성단체협의회 주최 전국여성대회를 마치고 김활란, 황신덕, 이숙종 등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하여 육 여사 바로 뒤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국회의원 부인들 초청 오찬에 참석해 악수를 했으며, 1971년 대선 선거운동 때는 전주에서 뒷모습을 보았다. 뒷모습 역시 우아하고 품격이 있어 보였다. ― <의인, 정일형과 이태영>(151쪽)에서

    조금 기다리니 전 대통령이 들어오기에 사전 교육을 받은 대로 일어났다가 탁자를 마주하고 앉았다. 뭐랄까, 스스럼이 없었다. 이 얘기 저 얘기 끝이 없었다. (…) 나는 전 대통령의 유명한 숫기와 입담을 나중에야 알았다. 사형을 시키려 했던 ‘수괴’의 안사람을 상대로 동네 복덕방 아저씨가 아주머니 대하듯 일상적으로 대했다. 때로는 바지 자락을 올리고 다리를 긁적거리면서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독특한 분이었다. (…) 세월이 흘러 ‘국민의 정부’ 시절에 전직 대통령들을 자주 초청해 국정에 대해 설명하고 의견을 들었다. 대통령 테이블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리고 배우자 테이블에서는 이순자 여사가 화제를 유쾌하게 이끌었다.
    ― <전두환 대통령과 독대하다>(231~2쪽)에서

    백화원 영빈관에 도착하니 먼저 도착해 있던 김 위원장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내게 먼저 들어가도록 예우했다. 이전까지의 풍문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다. 영빈관에서잠시 환담을 나눌 때부터 나는 김 위원장을 눈여겨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는 대통령은 물론 장관과 수석 등 수행원들에게까지 두루두루 배려와 예의를 차리면서 좌중을 휘어잡고 주도했다. 거침없고 자연스러워 보였다. 무엇보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로움이 돋보였다. (…) 그는 회담을 앞두고 특사로 두 차례 평양을 방문한 임동원 국정원 원장에게 특별 주문을 했다.
    “김 위원장을 만나거든 인물 연구를 해 오세요.”
    임 원장의 보고는 놀라웠다. 국제 정세에 밝고 영특하다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주입된 ‘망나니’와는 판이한 인물평이었다.
    ― <6·15, 남북의 감격적인 만남>(335~6쪽)에서

    힐러리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나는 그가 퍼스트레이디로 끝날 사람이 아니라고 보았다. 능력 있는 여성의 야망은 격려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는 매우 유능하고 매력적인 여성이다. (…) 전문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영부인이 된 힐러리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서 힘이 느껴졌다. 그는 클린턴에 결코 뒤지지 않는 실력과 젊음을 겸비한 여성이다.
    ― <‘노벨 평화상’을 받다>(350쪽), <엘리너에서 로라까지>(370쪽)에서

    87년간의 기억, 그리고 4년여의 정리
    _ 고난의 生, 그 어둠의 심연에서 길어낸 찬란한 희망의 조각들


    이희호 여사가 한없이 신산했던, 그러나 한편으로 희망이 함께한 순간들의 기억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4년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80세를 훌쩍 넘은 고령으로서 쉽지 않은 결정이고, 작업이었다. 이 여사 본인의 개인적인 기록이기에 앞서 한국 현대 정치사와 민주화 운동사를 정리하는 작업이었기에 그렇다. 그리하여 이 여사는 4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모든 공력을 쏟아부어 마침내 그 기록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여기 쓴 글은 길고도 먼 길을 걸어오면서 몇몇 굽이마다 나에게 강렬하게 남아 있는 생활의 기억들이다. 나 개인의 기록이지만 파란곡절로 아로새겨진 우리 현대사의 뒤안길이기도 하다. 별로 윤택하지 않은 붓을 든 까닭은 후세에게 그날의 역사를 편린이나마 남겨놓고자 함이다. ― <글을 시작하며>(6쪽)에서

    그리고 여기에는 오랜 시간 정치가 빼앗아가 버린 가족들에 대한 살뜰한 이야기, 즉 세 아들들에 대한 따스한 어루만짐과 개인으로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모습이 생생히 새겨져 있기도 하다. 하나의 개인사를 통해 진정한 인간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사실 대식가는 아니다. 편식하지 않고 뭐든지 잘 먹는 소탈한 식성을 가지고 있다. 대식가로 오해를 받는 건 아마도 군것질을 좋아하는 탓일 것이다. 그는 인절미를 비롯한 떡과 사탕 종류를 즐겨 먹는다. 여름에는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딱딱한 아이스바를 자주 먹는다. (…) 청와대에서도 직원들이 밖에 나갔다 오면서 사 오는 붕어빵을 아주 좋아했다.
    ― <동교동으로 돌아와서>(386~7쪽)에서

    또한 이 책의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수 지은 것으로,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걸어온 이 여사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표현이다. 묵묵히 고난의 시기를 함께 헤쳐 나온 이 여사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나는 지점이다.

    참 길고도 매서운 세월을 함께 걸어왔다 싶다. 미국 망명 시절에는 자동차 옆자리에 아내가 없어도 모른 채 떠나버리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즈음 많이 달라졌다. 남편은 길 떠나는 아내가 혹여 자동차 사고를 당할까 기사에게 조심을 당부한다. 그것도 부족한지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를 걸어서 안부를 확인한다.
    ― <동교동으로 돌아와서>(388쪽)에서

    목차

    글을 시작하며_ 나의 삶, 나의 기도

    1장. 격동의 땅, 부푼 향학열(1922-1962)
    따습고 행복했던 유년 | 이화고녀 시절 | 위기의 이화여전, 그리고 해방 |
    서울대 사범대와 ‘면학동지회’ | 전쟁과 유학의 길 | 매력적인 여성, 엘리너 루스벨트 |
    교수의 길 버리고YWCA로

    2장. 만남과 결혼, 그리고 파란곡절(1962-1972)
    책벌레, 김대중 |‘ 엄마’와‘사모님’으로 | 한일 국교 정상화 | 사랑하는 아버지! |
    7대 목포 총선은 전쟁이었다 | 40대 대통령 후보 김대중 | ‘개표’에서 진 1971년 대통령 선거 |
    두 번째 사선, 교통사고 | 동교동 문패, 金大中-李姬鎬

    3장. 유신, 칠흑 어둠에 갇혀(1972-1980)
    제2의 쿠데타 | ‘납치’에서 생환하다 | 의인, 정일형과 이태영 |
    암호명 ‘한복’, 3·1 민주구국선언문 | “민주주의가 죽어서 곡을 합니다” | 진주교도소 |
    부마항쟁 | 박 대통령, 비명에 지다

    4장. 짧은 봄, 긴 겨울(1980-1985)
    빼앗긴 ‘서울의 봄’ | 새빨간 거짓말, ‘김대중 내란 음모’ |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
    “대중이를 살려줘” | 전두환 대통령과 독대하다 | 환난 중의 입시생 |
    감옥에서 만난《제3의 물결》 | 사형수에서 망명객으로 | 해피 엔딩 ‘로미오와 줄리엣’

    5장. ‘6월 민주항쟁’이 준 선물(1985-1998)
    김대중은‘가택 연금 중’ | ‘1980년대 아이들’과 권인숙 | ‘고문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
    투사가 된 어머니들 | ‘6월 민주항쟁’의 승리를 놓쳐버리다 | 16년 만의 의사당 |
    가정의 민주화, 가족법 개정 | 3당 합당, 야당의 길 | 1992년 대선, 정계 은퇴 |
    무너진 베를린 장벽 앞에서 | 정계 복귀를 반대하다 | 꿈은 이루어진다

    6장. 푸른 기와집에서의 5년(1998-2008)
    빈 곳간에서 출발하다 | 가난한 제2부속실 | ‘국민의 정부’, 여성 약진 |
    옷에 얽힌 이야기 | 6·15, 남북의 감격적인 만남 | ‘노벨 평화상’을 받다 |
    ‘사랑의 친구들’과 ‘여성 재단’ | 티타늄 다리, 애덤 킹과의 사연 |
    소년원을 보듬다 | 엘리너에서 로라까지 | ‘주여, 저희가 교만했습니까?’ | 동교동으로 돌아와서

    연보

    본문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1922.09.21~
    출생지 서울
    출간도서 3종
    판매수 2,278권

    1922년 서울에서 6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이화여고와 이화여전 문과,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미국 램버스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미국 스카릿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노스이스턴대학과 워시본대학, 코럴릿지배티스트대학, 일본 아오야마가쿠인대학 등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한여자청년단, 여성문제연구회, YWCA연합회, 한국여성단체협의회를 비롯해 많은 단체에서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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