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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테이블 [양장]

원제 : THE REMON 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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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레몬 테이블

    이 책은 60대 70, 80대의 노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열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줄리언 반스의 글에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 마지막 사랑으로 가슴앓이 하는 노인, 늙고 지친 몸으로 피폐해진 노인 등 개성 있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삶의 마지막, 죽음이라는 목적지로 향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죽음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고 있지만 어둡거나 무겁지만은 않다.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인생의 색다른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를 선사한다.

    출판사 서평

    [플로베르의 앵무새], [내 말 좀 들어봐] 등 많은 작품에서 번뜩이는 재치와 깊이 있는 지식, 통찰력 있는 시각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영국 작가 줄리언 반스의 소설집 [레몬 테이블]이 출간되었다. [레몬 테이블]에는 반스가 [노쇠]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11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단편집이지만 주제의식에 있어서는 그 어떤 책보다 통일감을 갖춘 책이다.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은 작가 반스의 탁월한 기량을 보여 주는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각각의 단편은 서로 다른 인물들의 삶을 다양한 시점과 형식으로 다룸으로써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한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노년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들

    [레몬 테이블]이란 표제는 이 작품집에 실린 단편의 제목이 아니다. 그럼 레몬 테이블이란 뭘까. 이 책의 마지막 소설 [침묵]에서야 그 의미가 등장한다. 바로 레몬이 중국인들 사이에서 죽음을 상징한다는 것. 그리고 [레몬 테이블]은 모두가 꺼리는 음울한 주제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셰니그 호텔 같은 곳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죽음의 문제를 논했다. 〈Man lebt nur einmal(인간은 겨우 한 번 산다)〉는 이상한 운명 말이다. 나는 셈프 호텔의 레몬 테이블에 합류한다. 이 테이블은 죽음에 대한 논의가 허용되는, 사실은 의무적인 곳이다. 이것이 마음이 가장 통하는 주제이다. A는 찬성하지 않는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는 레몬이 죽음의 상징이다. 바로 안나 마리아 렌그렌의 시 [그의 손에 레몬을 쥐고 묻히다]가 그 뜻이다. A는 음울한 주제라는 이유를 들어 논의를 말리려고 애썼다. 그러나 시체가 아닌 이상에야, 누가 그런 음울한 논의를 허락받겠는가? ([침묵] 중에서)
    그리고 여기 놓인 레몬 테이블 앞에 둘러앉아 우리는 모두 [겨우 한 번 사는] 인생과 언젠가 한 번 맞이하게 될 죽음에 대해 성찰해 볼 기회를 잡았다. 11편의 단편들은 때로는 진지하고,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슬프지만, 언제나 따뜻한 유머와 날카로운 위트를 품고 있다. 자칫 우울해지기 쉬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특유의 해학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반스의 솜씨는 그의 재능이 장편뿐 아니라 단편에서도 그대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11편의 작품은 저마다 다른 시대, 다른 장소, 다른 화자, 다른 방식을 가지고 있어 읽는 즐거움을 한층 더한다.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는 20세기 초 스웨덴이 배경이고, [재연]은 19세기 러시아, [나무껍질]은 19세기 프랑스, [침묵]은 20세기 초의 핀란드(스웨덴)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러시아의 작가 투르게네프의 마지막 사랑 이야기인 [재연]과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쓰이지 않은 마지막 작품 이야기인 [침묵]은 유명 예술가를 주인공으로 내세움으로써 보다 진지하게 삶과 사랑, 예술의 의미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다.
    각 이야기의 기법과 화자 또한 매우 다채로운데, [레몬 테이블]의 문을 여는 작품인 [이발의 어제와 오늘]은 노쇠와 죽음이라는 주제를 다룬 소설집의 첫 작품답게, 주인공 그레고리의 이야기를 유년, 청년, 노년의 세 장으로 나누어 나이 듦에 따라 변화하는 심리와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또한 [알고 있는 일들]에서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사용함으로써, 대립하면서도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비밀을 끝까지 발설하지 않는 두 여인의, 필요에 의한 협조 관계를 효과적으로 그려 내고 있다. [실용 프랑스어]는 한 노파의 편지를 빌린 형식이다. 독특한 것은 편지를 받는 수신인이 다름 아닌 이 책의 작가인 반스라는 점이다. 작품에 직접 반스의 목소리가 드러나지는 않지만 우리는 노파가 쓰는 편지를 통해 반스가 어떤 말을 했는지 상상해 볼 수 있고, 이로써 소설의 안과 밖을 드나드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소설을 읽는 동안 잊게 마련인 작가의 존재감과 맞부딪히게 된다. [과일 보호망]의 주인공은 아버지와 두 여인이다. 독설가인 어머니와 평생 살아온 아버지가 80대의 나이에 60대의 이웃 여성과 함께 살겠노라고 선언하면서 아들이 이 세 사람을 번갈아 만나 듣게 되는 이야기로, 실제 문제의 당사자가 아닌 그 중년의 아들을 화자로 내세움으로써 우리가 노년에 대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 혹은 편견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린 시절 품었던 노년에 대한 궁금증, 평생 간직해 온 사랑·황혼의 사랑·마지막 사랑 등 단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인생에서 사라지지 않는 사랑, 사랑하는 이를 잃는 상실감, 노년의 권태, 죽음에 대한 불안감,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쥐고 가는 탐욕, 삶에 대한 애착과 단념의 이중적 감정, 인생을 돌아보며 느끼는 회한, 노후의 성생활, 이루지 못한 열망에 대한 좌절감 등 이 책에 실린 소설들은 노년과 죽음에 관한거의 모든 주제를 다루고 있다.

    -서 평

    잃어버린 젊음과 잃어버린 약속, 잃어버린 사랑에 대한 아름다운 비가(悲歌). 이 소설들은 작가로서 반스의 깊이가 점점 더 깊어지고 있음을 증명한다. - 뉴욕 타임스

    반스는 다양한 관심사와 그것을 다룰 수 있는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다. [……] 레몬 테이블을 읽은 독자는 반스의 탁월한 기량을 의심할 수 없을 것이다. - 가디언

    반스는 언제나 유쾌한 위트로써 영국의 희극적 사실주의 작품을 써내는 일류 작가이다. 그는 빛나는 지성과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전체 작품을 한 행 한 행, 한 페이지 한 페이지씩 그려 나간다. [……] 레몬 테이블은 기품과 위엄을 갖춘 방식으로 독자들로 하여금 문학이 삶의 가장 참된 조력자란 믿음을 지키도록 해준다. -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반스의 장편들은 픽션과 극적 독백, 서간, 비평, 에세이 사이의 경계를 허물며, 이 단편집에 실린 작품들은 정확이 그러한 장편들의 축소판이다. [……] 그의 글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강해지고 현명해지고 있다. - 옵서버

    섬세하고 박식하며 현명하다. 반스는 지금 가장 깊이 있으며 능란한 지점에 서 있다. - 에스콰이어

    - 줄거리

    이발의 어제와 오늘
    주인공 그레고리의 유년 시절, 청년 시절, 그리고 중년 시절을 각각 이발소, 이용원, 헤어 살롱에서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면서 조명하는 이야기. 어린 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던 이발소는 나이가 들면서 점차 편안해지고, 느긋한 한때를 즐기는 공간이 된다.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
    제재소 소장 안데르스 보덴은 새로 이사 온 바르브로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각각 배우자가 있는 이들은 자신들의 감정을 마음 속 깊은 곳에 묻어 놓는다. 세월이 흘러 중병을 앓게 된 보덴은 수십 년 전 바르브로에게 제대로 하지 못한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를 함으로써, 평생 간직해 온 사랑을 고백하려 하는데…….

    알고 있는 일들
    두 주인공 메릴과 재니스는 대학 동창으로, 매달 정해진 날 아침 식사를 함께한다. 이들은 먼저 세상을 떠난 남편들의 환영으로 인생을 지탱하며, 서로 자신의 남편 자랑을 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이 둘은 사실 상대방의 남편이 지니고 있는 은밀한 비밀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성격적, 문화적 차이에서 발생하는 미묘한 긴장감에도 불구하고 서로에게 그 남편의 비밀을 말하지 않는다.

    건강 관리법
    퇴역 장교 재코 잭슨 대령은 1년에 한 번 〈연례 만찬〉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에 올라간다. 이것은 안정되어 있지만 따분한 아내와의 결혼 생활에서 벗어나 1년에 한 번 창녀 뱁스를 만나는 날이기도 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내가 잔뜩 적어 준 할 일 목록을 들고 런던에 간 잭슨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샴페인 반병을 들고 뱁스의 집을 찾아가는데…….

    재연
    19세기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와 한 젊은 여배우와의 사랑 이야기. 두 사람이 실제로 만난 건 극장과 기차, 딱 두 번뿐이며 투르게네프는 사랑하는 여자를 다른 남자에게 보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편지에서 알 수 있는 단편적인 사실들을 재구성해 노년에 찾아온 [마지막 사랑]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자원 봉사 감시원
    주인공은 음악회에 즐겨 가는 음악 애호가이다. 그러나 음악회에는 기침을 해대거나 수다를 떨거나, 프로그램을 버스럭거려 음악 감상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방안을 생각하던 주인공은 누구라도 안내원으로 오해할 만한 복장을 차려입고 이런 무례한 사람들에게 다가가 주의를 준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이런 예민함은 그의 동반자 앤드루가 그와 같이 음악회에 오지 않을 무렵부터 시작되었는데…….

    나무껍질
    델라쿠르는 시 목욕탕 건립에 출자한다. 이 출자는 중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남은 출자자의 배당이 늘고, 종국에 가서는 최후로 살아남은 출자자에게 모든 배당금이 돌아가는 방식의 톤틴식 출자다. 누구보다 오래 살기 위해 그는 규칙적인 생활과 엄격히 제한된 식단을 유지하며 산다. 또한 적당한 성생활이 건강에 도움이 될 거란 판단하에 1주일에 1회 목욕탕 여종업원과 섹스를 한다. 그런 어느 날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친구가 불같이 화를 내는데…….

    실용 프랑스어
    여든한 살의 노파 실비아 윈스탠리는 작가 줄리언 반스에게 편지를 쓴다. 노인의 집에서 가장 젊고 가장 유능한 원생으로 여반장이며, 자동차가 있으며 운전도 하는 실비아는 적십자사가 제공하는 소설이 아닌, 공공 도서관의 소설들을 A부터 작가 이름 순으로 읽는다. 문학에서부터 소소한 일상까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사는 나이의 심리가 잔잔하게 묘사되어 있다.

    식욕
    비브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남편에게 요리책을 읽어 준다. [나쁜 날]이면 상소리와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그에게 예전의 기억을 조금이라도 끄집어 낼 수 있을까 해서다. 일단 기억이 떠오르면 남편은 정상적인 기억보다 더 생생하게 그것을 묘사한다. 치과 의사와 간호사로 만났을 때 남편은 유부남이었지만, 주변에서 보내는 의혹의 시선과 달리 이들은 병원에서 공적인 관계를 유지했었고, 힘든 시간을 보내는 지금 비브야말로 그의 곁에 가장 필요한 사람으로 남아 있다.

    과일 보호망
    중년의 아들은 어느 날 놀라운 소식을 접한다. 80대의 아버지가 50년간 살아온 독설가 어머니와 별거를 선언하고 60대의 여자와 함께 살겠다고 집을 나간 것. 아버지를 설득하러 간 아들은 노령이 반드시 노쇠의 시절이 아닌, 새로운 사랑에 눈을 뜨는 격정의 나이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워한다.

    침묵
    이름은 나오지 않지만,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이야기이다. 나라로부터 연금을 받고 있지만 마지막 교향곡을 쓴 지 30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곡을 쓰지 못하는 작곡가는 음악과 예술, 삶의 의미에 대해 숙고한다. 그는 알코올에 의존하며 죽음에 대해 논의할 수 있는 [레몬 테이블]에 참여한다.

    목차

    이발의 어제와 오늘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
    알고 있는 일들
    건강 관리법
    재연
    자원 봉사 감시원
    나무껍질
    실용 프랑스어
    식욕
    과일 보호망
    침묵

    옮긴이의 말

    본문중에서

    그리고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은, 지난 23년 가운데 어느 때라도 자신이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달려갔을 그 남자, 자신의 사회적 명성과 위치를 잃고라도 찾았을 그 남자, 그와 함께라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줄행랑 쳤을 그 남자는, 자신의 사랑을 받을 만한 사람이 아니고, 과거에도 결코 아니었을 것이라는 것, 바로 이것이었다. 그녀가 존경한, 좋은 아버지이자 부양자였던 남편 악셀이 훨씬 더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안데르스 보덴에게 느꼈던 감정이 사랑의 척도라면,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랑을 받을 만한 남자는 사랑하지 않고, 그럴 자격이 없는 남자를 사랑하는 양분된 인생, 이것이 그녀 인생의 처량함이었다. 그녀가 자기 인생의 대들보로 생각했던 것, 자신의 그림자나 물속에 비친 영상처럼 믿을 수 있던 끊임없는 가능성의 반려자가 정말로 하나의 그림자, 하나의 영상에 불과했다니. 실체 없는 허상이었다니.
    ('마츠 이스라엘손의 이야기' 중에서/ p. 69)

    그는 그 매춘부를 상대로 허풍 떨었던 자신의 꼬락서니를 경멸했다. 당신은 찾아온 목적을 아직 원하세요? 오 예스, 그는 찾아온 목적을 아직 원했으나, 아마도 그녀가 알 수 있는 그런 것이 전혀 아니었을 것이다. 그와 뱁스는 그것을, 몇 년이더라, 5~6년 동안 안 하지 않았는가? 작년에는, 아니면 최근 2년은 샴페인조차 거의 마시지 못했다. 그가 항상 놀려대던 예의 엄마 같은 잠옷을 그녀가 입고, 함께 침대로 기어 들어가서, 불을 끄고, 지난날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그는 좋았다. 과거에는 실력이 어땠었는지 말이다.
    ('건강 관리법'중에서/ p. 118)

    그는 한두 해 전에 〈나이 마흔이 넘으면 인생의 기본을 요약하는 단 하나의 단어가 있으니, 그것은 《단념》이다〉라고 썼다. 이제 그는 그 결정적 나이에다가 그 반절을 더 먹은 나이가 되었다. 그는 예순 살이었고, 그녀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재연' 중에서/ p. 127)

    '네가 젊었을 때는 연주회에 가면 그저 앉아서 음악만 행복하게 듣지 않았나?'
    '내가 기억하는 한 그랬지, 박사님.'
    '그럼 다른 사람들이 이제 더 예의 없이 구는 건가, 아니면 네가 나이가 들어서 더 예민해진 건가?'
    '사람들이 더 예의 없이 굴어. 그래서 내가 더 예민해진 거야.'
    '그럼 네가 사람들의 행동 변화를 감지한 게 언제지?'
    '네가 나하고 더 이상 같이 연주회에 가지 않기 시작했을 때지.'
    '지금 그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잖아.'
    ('자원 봉사 감시원' 중에서/ p. 166)

    출자자가 하나둘씩 죽어 갔다. 델라쿠르는 그들의 사망 일자를 치부책에 기입하고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서거에 축배를 들었다. 어느 저녁 아멜리 부인은 잠자리에 든 후 남편에게 말했다. '다른 사람보다 오래 살기 위한 삶이라면, 사는 이유가 무엇이죠?'
    ('나무껍질' 중에서/ p. 179)

    죽지 말아야 하는 주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일을 한 번도 못한 주제에 새삼 그럴 이유가 없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고 (그렇다 해도, 어느 때고 한 번은 불가피합니다), 〈거짓말 술집〉에서 아직 B군을 읽고 있기 때문이고, 내가 아니면 원사를 격분시킬 사람이 없기 때문 정도일까요? - 이제 바닥났군요. 선생님은 다른 이유를 제시할 수 있나요? 죽을 이유가 안 죽을 이유보다 항상 더 강하더라고요.
    ('실용 프랑스어' 중에서/ p. 209)

    그 모든 것이 시작되었을 때 나는 생각했다. 그래, 그이가 걸렸을 수도 있는 어떤 병보다는 나아. 어떤 병보다는 못하지만, 어떤 병보다는 낫다고. 그이는 기억력을 잃어 가겠지만, 항상 그 자신으로 거기에, 그 속에,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할 것이다. 제2의 유년기가 될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그의〉 유년기가 될 것이다, 안 그런가? 난 그렇게 생각했다. 설사 상태가 나빠져서 그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나는 언제나 그이를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식욕' 중에서/ pp. 233~234)

    그 외에 난 무엇을 아는가? 나는 생각해 봤다. 우리 부모님이 이제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그리고 이제까지 하지 않았다는 그런 상정을 왜 하는가? 두 분은 이 사건이 발생할 때까지 줄곧 같은 침대를 썼다. 그 나이의 섹스에 대해 내가 무얼 아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다음과 같은 문제가 남는다. 예컨대 어머니가 65세에 섹스를 포기했는데, 15년 뒤 아버지가 어머니가 그만뒀을 당시의 어머니 나이의 어떤 여자와 놀아난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과, 결혼하고 반세기가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아버지와 섹스를 즐기는데, 알고 보니 아버지가 몰래 약간의 외도를 즐기고 있는 경우, 어느 쪽이 어머니에게 더 나쁠까?
    그러고 나서 사실 그게 섹스 문제가 아니라면 어찌되는가, 나는 생각해 봤다. 아버지가 〈아니다, 아들아, 그건 전혀 육체적인 게 아니다. 내가 사랑에 빠진 것뿐이다〉라고 말했다면, 나는 덜 메스꺼웠을 것인가? (p. 261 '과일 보호망' 중에서/ )
    바그너는 우리가 인생을 완전하게 즐긴다면 예술은 필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내 생각에 바그너는 순서를 바꿔 말한 듯하다. 물론 예술가에게 많은 노이로제 증세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는다. 하고많은 사람 가운데서, 예술가인 내가 어떻게 그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분명히 나는 노이로제에 걸려서 불행할 때가 많지만, 그것이 원인이 되어 예술가가 됐다기보다는 예술가이기 때문에 대부분 그런 일이 생겼다. 높고 높은 이상을 겨누다가 번번이 실패하고 마는데, 어떻게 노이로제에 걸리지 않을 수 있는가?
    ('침묵' 중에서/ p. 286)

    저자소개

    줄리언 반스(Julian Barnes)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46.1.19
    출생지 영국 중부 레스터
    출간도서 57종
    판매수 19,859권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영국의 대표 작가. 1946년 1월 19일 영국 중부 레스터에서 태어났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현대 언어를 공부했고, 1969년부터 3년간 『옥스퍼드 영어 사전』 증보판을 편찬했다. 이후 유수의 문학잡지에서 문학 편집자로 일했고, <옵서버> <뉴 스테이트먼츠>지의 TV 평론가로도 활동했다.
    1980년에 출간된 첫 장편소설 『메트로랜드』로 서머싯몸상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해,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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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1년 충남 부여에서 출생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인하대학교 영어영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문과대학장과 한국 현대 영미시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인하대학교 명예 교수로 있다. 지은 책으로[프로스트와 뉴잉글랜드: 실존과 종교], [영국 소설의 흐름], [로버트 프로스트의 자연시: 그 일탈의 미학]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줄리언 반스의 [메트로랜드], [나를 만나기 전 그녀는],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 [고슴도치], [플로베르의 앵무새], [태양을 바라보며], [내 말 좀 들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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