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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 계보를 정리하고 그것의 의의와 가치를 연구한 책. 특히 탈식민 저항의 복합성과 중층성을 규명하고자 했다. 서론과 1부에서는 민족주의와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탈식민 담론의 상을 이론적으로 검토한다. 2부와 3부에서는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 계보를 정리하고 그것의 의의와 가치를 밝히고 있다. [양장본]

이 책은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 계보를 정리하고 그것의 의의와 가치를 밝혀보고자 하는 의도에서 저술되었다.

탈식민이란 서구 근대가 만들어놓은 지배적 이데올로기와 구조와 제도와 습속들을 극복하려는 모든 노력들의 총칭(總稱)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탈식민의 궁극적 지향은 자본주의 근대를 극복하는 데 맞추어져 있다. 다만 제3세계의 역사적 특수성으로 인해 자본주의 근대의 극복은 민족문제의 해결과 무관할 수 없다. 제3세계에서 자본주의 근대는 항상 식민주의와 긴밀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와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이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성을 제대로 해명할 수 없는 것도 그래서이다. 민족주의는 탈식민을 민족해방의 차원으로 협소화시켰으며,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은 탈식민을 탈근대로 추상화시켰다.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이 그 전형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수탈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이 공히 ‘근대 내부로부터의 근대 극복’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는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민족주의의 한계는 너무도 명백하다. 민족국가라는 심급에 갇혀 있는 한 자본주의 근대를 극복하기란 난망하다. 탈식민을 자주적 민족국가의 건설로만 한정하는 한 그것은 근대주의의 한계에 붙박히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자에 유행하고 있는 해체론적 후기식민론(postcolonialism) 또한 적절한 대안은 되지 못한다. 해체론적 후기식민론 혹은 식민지 근대성론에는 제3세계의 역사적 특수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제3세계 근대의 대안적 잠재력을 읽어내기 힘들다. 근대성이 곧 식민주의라면 근대의 해방적 잠재력, 즉 제3세계 근대에 내재해 있는 근대 극복적 역동성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의 무분별한 수용은 참으로 위험하다. 한국의 지식사회에서는 ‘조선의 부처, 조선의 맑스’가 아니라 ‘부처의 조선, 맑스의 조선’이 되어 버린다는 신채호의 질타가 새삼 절실하게 느껴진다.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이 한국 근대문학 연구에 끼친 가장 치명적인 해악은 ‘저항’의 의미를 무화(無化)시킨 점이다.
민족주의가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에 빠져 있다는 비판은 옳다. 하지만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을 극복하자면서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은 사실상 저항이라는 항목 자체를 지워버렸다. 이러한 사태는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이 ‘지배의 관점’에서 세계와 역사를 바라보는 데서 비롯된 결과이다. 어떤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가에 따라 세계의 상은 판이하게 달라지기 마련이다. 역사의 진보와 변혁의 가능성은 저항의 관점에 설 때에만 발견할 수 있는 법이다. 지배의 관점에 서는 한 그것은 불가능하다. 체제의 자기조절(self-regulation)에 의해 어떠한 저항도 식민주의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당연히 탈식민 주체의 형성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은 목욕물 버린답시고 애까지 함께 버리는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 책은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은 단호하게 폐기하되 한국 근대문학의 변혁적인 전통은 새롭게 재구성하는 것이 민족주의와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을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항의 관점을 복원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그람시가 헤게모니 개념을 고안한 까닭이 대항 헤게모니의 창출에 있었음을 떠올리면, 저항의 관점이 왜 중요한가를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단, 이때의 저항은 민족주의에서 말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초월적인 저항이 아니라 보다 복합적이고 중층적인 저항을 뜻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탈식민 저항의 복합성과 중층성을 규명함으로써 새로운 탈식민 주체의 형성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다.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이나 식민지 근대성론에서 잘 드러나듯, 현재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는 탈근대라는 현란한 분식(粉飾)에도 불구하고 진보와 변혁의 가능성에 대한 도저한 비관주의에 긴박되어 있다.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적 잠재력에 대한 근거 없는 회의 역시 같은 맥락을 이루고 있다. 탈식민 저항의 복합성과 중층성에 대한 규명이 더더욱 시급한 것은 그래서이다.
이 책은 전체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과 1부에서는 민족주의와 해체론적 후기식민론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탈식민 담론의 상을 이론적으로 검토한다. 필자는 새로운 탈식민 담론을 유물론적 후기식민론이라고 잠정적으로 명명했는데, 그것은 이 담론이 민족주의나 반제국주의론 같은 전통적 식민주의론과는 구별된다는 의미에서 후기식민론(postcolonialism)이되 해체론과는 달리 맑스･파농･월러스틴･패리･아마드･라자러스 등으로 이어지는 이론적 계보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 후기식민론이 적절하다는 생각에서이다. 그런 점에서 서론과 1부의 작업은 민족주의와 해체론적 후기식민론 혹은 수찰론과 식민지 근대성론을 동시에 넘어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성을 새롭게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틀을 구성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부와 3부는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 계보를 정리하고 그것의 의의와 가치를 밝혀보고자 마련된 장이다. 말하자면 탈식민 문학의 기원과 형성에서부터 진화와 변형의 과정을 추적해 탈식민 저항이 수행되는 다양한 문학적 방식들과 탈식민 주체의 구성에 대한 이들의 구상을 재구(再構)해 보려는 것이다. 다만 3부를 따로 독립시킨 것은 일제 말기가 지배와 저항이 매우 복잡하게 얽힌 문제적 시대이기 때문이다. 일제 말기는 근래 한국 근대문학 연구나 한국근대사 연구에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시대이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이 시기 탈식민 저항의 복합성과 중층성에 관한 규명은 지배와 저항의 이분법을 극복하는 참다운 길이 무엇인지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신채호, 염상섭, 최서해, 이기영, 강경애, 이태준, 임화, 김정한은 탈식민 계보의 중심 작가들이다. 이들은 식민지 근대의 특수성에 바탕한 탈식민의 길을 모색했다. 이들의 이념적 스펙트럼은 민족주의에서 사회주의까지 다양하지만, 서구 근대와는 다른 ‘복수의 근대’를 상상한 작가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여기서 복수의 근대를 ‘상상’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 문학의 탈식민성은 민족주의나 사회주의 같은 일정한 이념에 기반하고 있지만, 그것들로 온전히 환원되지는 않는 잉여(剩餘)들을 풍부하게 함축하고 있다. 이 잉여들은 이들로 하여금 이데올로기 일반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해주었을 뿐 아니라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근대에 대한 ‘급진적(radical)’ 저항을 가능케 해준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잉여들의 원천이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데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바로 미적인 것의 정치적 힘이거니와 책의 제목을 ‘탈식민의 미학’으로 정한 것도 그래서이다.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성을 재조명하는 작업은 민족문학의 세계성 혹은 전지구적 보편성을 밝히는 일과 긴밀히 결부되어 있다.

세계문학은 완성된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도 형성 중에 있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세계문학의 선험적 보편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당연히 한국문학은 한국문학 나름의 방식으로 세계문학의 형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만 세계문학을 보다 바람직한 모습으로 이루어가는 데 적극 기여할 수 있는 한국문학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자산이 무엇일까에 대해서는 깊이 성찰해야 할 터인데, 탈식민의 상상력이야말로 가장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지금 한국문학은 그야말로 진퇴의 기로에 서 있다. 자본주의의 시장 시스템에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문학적 급진성을 창출해낼 것인가. 한국 근대문학의 탈식민적 가능성에 대한 이 책의 탐구가 전지구적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맞선 새로운 문학적 급진성을 벼리는 데 의미 있는 기여를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책머리에

서론 : 탈식민의 역학

제1부 탈식민의 이론

한국 근대문학 연구와 탈식민 : '친일문학'문제를 중심으로
탈민족 담론과 새로운 본질주의
복수의 근대와 민족문학
민족문학론의 역사와 후기식민성
'개인'의 이데올로기를 넘어서 : 1990년대 이후의 한국문학 비평과 연구에 대한 한 반성


제2부 식민지 시대 탈식민 문학의 계보

급진적 근대기획과 예술의 정치화 : 신채호의 탈식민 사상과 문학론
염상섭 혹은 탈식민 문학의 세계성
민족과 계급의 변증법 : 최서해 문학과 민중적 결사로서의 민족
프로문학과 식민주의
강경애 문학의 탈식민성과 프로문학


제3부 일제 말기 한국문학과 저항

일제말기 이태준 문학과 내부 식민주의
천일과 저항의 경계를 어떻게 잡을 것인가 : 이태준을 중심으로
이식.근대.탈식민 : 임화의 이식문학사론에 대하여
1930년대 후반 문학비평과 이식 논의
일제말기 임화의 생산문화론과 근대 극복론
일제 말기 김정한 문학과 탈식민 저항의 세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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