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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김혜순의 아홉 번째 시집『당신의 첫』. 시인은 80년대 이후 한국 시에서 미학적 동력의 역할을 해오며, 한국 여성시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꼽혀왔다. 특히 이번 시집에 실린 <모래 여자>는 한 여자의 미라를 통해 여성의 삶을 되짚은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제6회 미당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미당문학상 최초의 여성 수상자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모래 여자>에서 깨끗한 상태로 모래 속에서 들어 올려진 여자는, 오히려 여자를 보호하기 위한 외부의 폭력으로 인해 신체가 훼손된다. 표제작 <첫>에서 '나'는 "당신의 첫"을 질투한다. '첫'은 실체를 알 수 없고, 불잡을 수 없고, 소유할 수 없다. '첫'은 언제나 그 자리로부터 도주하고, 그래서 영원히 만날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첫'은 '끝'과 같다.

이 시집에서는 무한히 확장되어가는 자아, 혹은 자아의 몸 이미지가 세계로 퍼져나간다. 그런가 하면 그 반대로 세계는 한 사람, 하나의 몸으로 수렴되기도 한다. 이것은 시인의 상상이 애초에 나와 타자, 나와 사물, 나와 세계의 구분 없이 출발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김혜순의 시에서 죽음과 탄생은 맞물리며, 처음과 끝은 흔적도 없이 서로의 역할을 바꾼다.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모래 여자>

모래 속에서 여자를 들어 올렸다
여자는 머리털 하나 상한 데가 없이 깨끗했다

여자는 그가 떠난 후 자지도 먹지도 않았다고 전해졌다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지만
숨을 쉬지도 않았지만
죽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와서 여자를 데려갔다
옷을 벗기고 소금물에 담그고 가랑이를 벌리고
머리털을 자르고 가슴을 열었다고 했다

그가 전장에서 죽고
나라마저 멀리멀리 떠나버렸다고 했건만
여자는 목숨을 삼킨 채
세상에다 제 숨을 풀어놓진 않았다
몸속으로 칼날이 들락거려도 감은 눈 뜨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자를 다시 꿰매 유리관 속에 뉘었다
기다리는 그는 오지 않고 사방에서 손가락들이 몰려왔다

모래 속에 숨은 여자를 끌어 올려
종이 위에 부려놓은 두 손을 날마다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낙타를 타고 이곳을 떠나 멀리 도망가고 싶었다

꿈마다 여자가 따라와서
감은 눈 번쩍 떴다
여자의 눈꺼풀 속이 사막의 밤하늘보다 깊고 넓었다

목차

시인의 말

지평선
모래 여자
불가살
서울,코라
붉은 가위 여자
별을 굽다
양파
풍경의 눈빛

봉숭아
lady phantom
수미산 아래
메아리나라
비단길
미쳐서 썩지 않아
전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
딸기
성탄절 아침의 트럼펫
칼과 칼

웅웅
혼령혼례
감기
마음
트레인스포팅
꽃잎이 피고 질 때면
당신 눈동자 속의 물
산들 감옥이 산들 부네
은밀한 익사체
인어는 왜 다 여자일까
엄마는 왜 짤까?
Delicatessen
회오리를 삼키다
하늘강아지
나이 든 여자
쌍비읍 징그러워
따귀새
당신의 눈물
노래주스
눈물농사
붉은 노을
lady cine
히말라야 가라사대
연금술
고양이
누란

에미애비
장마
모두 밥
가슴을 에는 손길처럼
바다 젤리
비명생명
신데렐라
환한 방들

핑크박스
돌이'하다'
뱃속의 어항은 정말 처치 곤란이야
세상의 모든 이야기
목구멍이 촛대가 되었네요
화장실

해설|나,그녀,당신,그리고 첫.이광호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5

김혜순은 1979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또 다른 별에서』 『아버지가 세운 허수아비』 『어느 별의 지옥 』 『우리들의 陰畵』 『나의 우파니샤드,서울』 『불쌍한 사랑 기계』 달력 공장 공장장님 보세요』 『한 잔의 붉은 거울』 『당신의 첫 』 『슬픔치약 거울크림』 『피어라 돼지』 『죽음의 자서전』, 시론집으로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산문집으로 『않아는 이렇게 말했다』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현대시작품상, 소월시문학상, 미당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동화책으로 『불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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