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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월간 「문학세계」신인상을 수상한 김성렬 첫 시집. 시인 스스로 겪어온 시간에 대한 절실한 고백과 반추,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관조와 성찰이 진하게 녹아 있다.

시인은 삶의 심층적 경험에 대한 진한 파토스(pathos)와 함께 삶을 따뜻하게 관조하는 진솔한 목소리를 보여준다. 그 따뜻한 관조를 통해 자신의 과거는 물론 이웃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삶에 대한 따뜻한 관조와 성찰

김성렬 시인의 첫 시집 『종점으로 가는 여자』가 도서출판 《고요아침》에서 출간되었다. 이 시집은 시인 스스로 겪어온 시간에 대한 절실한 고백과 반추, 그리고 삶에 대한 따뜻한 관조와 성찰이 진하게 녹아 있다. 먼저 시인은 “아직도 이곳저곳 꾹꾹 누르면 진물 흐르는 만신창이의 삶”(?시인의 말?)을 돌아보면서, 자신이 살아온 시간과의 아득한 단절과 소외 그리고 그로 인한 근원적 비애를 고백한다. 그 절실한 고백을 통해 남루하고 가난했던 시간들이 선명한 물질성으로 살아나온다. 그와 동시에 시인은 삶의 심층적 경험에 대한 진한 파토스(pathos)와 함께 삶을 따뜻하게 관조하는 진솔한 목소리를 보여준다. 그 따뜻한 관조를 통해 자신의 과거는 물론 이웃 사람들의 삶이 아름답게 그려진다.
그만큼 김성렬의 시적 시선과 상상력은, 자신의 시편들로 하여금 고백적 어법과 관조의 힘을 갖게끔 한다. 구체적인 경험적 직접성을 토대로 하면서 그만의 일관된 고백의 화법(話法)이 삶의 비근한 경험들에 대한 따뜻한 관조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시집 곳곳에 배어 있는 그의 진정성과 시를 향한 열정을 통해, 그의 시세계가 삶에 대한 고백과 관조, 격정과 친화를 동시에 보여주는 결실임을 경험하게 된다.

인간 존재의 비극성과 기원으로의 끊임없는 회귀

김성렬의 여러 시편들은, 결핍과 부재로 상징되는 인간 존재의 비극성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결핍과 부재를 고백하면서 그것을 견뎌가는 생의 형식, 이것이 김성렬 시학이 겨냥하는 가장 뚜렷한 시적 음역(音域)인 것이다. 그 비극성 가운데 가장 확연한 것은 ‘가난’을 시적 육체로 하는 가족사적 편린이라 할 것이다.

아버지가 물려준
누더기 누더기 유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골칫덩어리 유산
갚을 거야 말 거야 멱살 흔드는
아버지 유산 월급도 차압당한
내 아버지의 유산, 빚쟁이들 몰려올 때마다
아내도 아이들도 찔찔 우는
아버지 유산 일 년에 두 달은
가마솥에 찐 고구마로, 감자로 배를 채우게 하던
아버지 유산 아아 나도
지글지글 저 불판 앞에 앉아
뭉텅, 뭉텅, 비곗덩어리를
뒤집고 싶다 술잔을 부딪치며
자자 마셔, 마셔, 마셔
소리치고 싶다 아아 나도
큰소리치는 유산 한번 받아보고 싶다
집집마다 울부짖는 아우성치는
집집마다 헐뜯고 싸우는 집집마다
눈탱이가 시퍼렇게 멍든
빌어먹을 유산, 유산…
― <유산> 전문

시의 화자가 기억 속에서 호명하는 ‘아버지’는 “누더기 유언”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골칫덩어리 유산”만 물려준 무능하고도 부정적인 가장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은 가족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고, 빚쟁이들에게 시달리게 하고, 소시민의 행복조차 보장하지 못한다. 그래서 화자는 “나도/큰소리치는 유산 한번 받아보고 싶다”면서 그 “빌어먹을 유산”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를 미친 듯이 자신의 기억 속에서 유산(流産)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로 상징되는 가족은 상처와 통증의 진원지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존재를 가능케 했던 존재의 태반이기도 하지 않은가. 김성렬 시인은 가난했던 지난날에 대한 강렬한 원심력을 보이다가도, 역으로 자신의 기원(origin)으로 끊임없이 회귀하려는 강한 구심력을 동시에 보이는데, 그 그리움의 일차적 대상이 ‘고향(故鄕)’으로 나타난다. 시인은 삶의 가장 원형적인 상(像)이 녹아 있는 고향을 시적으로 일일이 호명하면서 그 안에서 형성되어온 자신의 시간을 상상적으로 구축해내고 있는 것이다.

구체적 고통과 마주침 그리고 깊은 성찰로 치유하는 과정

김성렬 시편의 화자는, 가난의 옛 기억을 고백하기도 하면서 우리들 생을 둘러싼 비극성을 동시에 성찰하는 양상을 집중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세계의 내적 원리를 결핍과 부재의 비극성으로 인식하는 것이 유독 김성렬 시인에게만 고유한 시적 감각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시인들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기쁨과 평화보다는 우울과 불화 혹은 결핍과 불모성을 예민한 감각으로 노래해왔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테니까 말이다. 어찌 보면 우리 시대의 시인들 거의 대부분이, 삶의 생기나 활력보다는 그것의 상실과 부재를 고백하고 나아가 거기서 덧나게 되는 상처를 실존의 불가피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김성렬 시인의 비극적 시선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뭇 타자(他者)들을 향해 동심원을 그리면서 확장되어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관조를 동반한다.

한 평도 안 되는 그곳에
벙어리 부부가
수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둘만의 밀담은 나누고 있었다 서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가 몰랐던
또 다른 세상이 삶이 그곳에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앞을 지나쳤지만
관심조차 없었다 벙어리 신랑이
사무실이나 식당에서 구두를 찍어다주면
벙어리 아내가 구두를 닦고
있었다 바깥 세상에 맺힌 한이 많아
따지고 싶어도 큰소리로 울고 싶어도
누구 하나 귀담아 들어주는 이 없는 삶이
그곳에 있었다 더러운 남의 발을
씻어주고 있었다 닦아주고 있었다
남들이 찍새라고 부르는 부부가
그곳에 삶의 터전을 가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나보다 더 행복한 삶이
그곳에 있었다
― <그곳에 행복한 삶이 있었다> 전문

이처럼 김성렬 시인이 시 안에 담고 있는 세계의 결핍과 부재는, 그것이 매우 구체적이고 선명한 기억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과, 시인이 그것에 대하여 격정적인 맞섬의 태도를 통해 치유하려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만의 독특함을 지닌다. 또한 시인은 자신의 시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원리에 대한 꿈으로 나아가는 도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그만큼 우리는 김성렬 시인의 시편들을 통해 오랜 시간 그가 축적해온 구체적 고통과 마주치는 동시에, 그것을 깊은 성찰로 치유하는 과정에 동참하게 되는 것이다.

시인의 말

제1부 그곳에 행복한 삶이 있었다
그곳에 행복한 삶이 있었다
깜빡,
봄날에
전깃줄에 사람이
놀이공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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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몽당연필
몽당연필
극장가는 날
겨울,무룡산에 오르다
강도
빗줄기가 통통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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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부 백수네 가족이야기
백수네 가족이야기
직업
최후통첩장
오이
24시 안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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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부 허깨비 동네
허깨비 동네
그곳이 그리웠다
유산
아버지,당신은
그냥 처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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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유성호(문학평론가,한양대 교수)
삶에 대한 절실한 고백과 따뜻한 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