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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서울신문」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백겸 다섯 번째 시집. 광활한 우주까지 상상력의 진폭을 확장하며 그를 통해 깨달은 사유의 정수를 담았다. 신화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재창조된 세계가 찬란하고 생생하게 다가온다.

부로 엮은 이번 시집 중 1부에서는 시인의 내밀한 일상을 소탈하게 그리고 있다. 주로 꿈, 허상, 환청 등의 장치를 사용하여 화자가 던져진 현상을 인위적으로 전복, 왜곡함으로써 특유의 입담을 발휘했다. 2부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신화, 전설, 우주적 현상들을 다루고 있다. “죽음을 지연하기 위”한 “세라자드”(「아라비안 나이트」) “마음의 검은 하늘을 꽃불처럼 수놓은 횃불”(「빅뱅」)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오늘의 시 한 편!
<총살형>

죄수들이 광장에 끌려나왔다
손이 묶이고 눈에는 가리개가 씌워진다

길가에 핀 개망초
하늘을 날아가는 매
산정에 걸린 해가 죄수의 눈에 마지막으로 인화되어
시간이 얼음으로 굳어버리려는 순간이다

총알이 발사된다
총알이 가는 시간을 미분하면 무한대로 늘어선다
총알은 우주의 끝까지 늘어선 순간을 날아간다
순간이 영원의 목덜미를 호랑이의 이빨처럼 물어뜯는다

총알이 죄수의 심장을 관통한다
일생의 시간이 줄줄 흘러나온다
그 시간을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아이처럼 허공이 맛을 본다

이 에피소드를 취재하기 위해 바람과 황혼과 어둠이 몰려들었다

나무이파리들은 경쟁적으로 일제히 몸을 뒤집었다
뇌사가 일어났다
죽음이 모든 소요를 일시에 진압했다

[천년의시작 신간 보도자료]

김백겸 시집 『비밀정원』


198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김백겸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비밀정원』은 광활한 우주까지 상상력의 진폭을 확장하며 그를 통해 깨달은 사유의 정수를 담았다. 신화와 현실 세계를 넘나들며 재창조된 세계는 찬란하고 생생하다. 시인의 손으로 빚은 세계임을 인식하면서도 독자들은 “비밀정원”으로 뛰어들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별, 달에 대한 신앙을 잃어버린 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우주는 과학자쯤 되어야 관심을 기울이는 학문의 영역으로 옮아간 지 오래다. 이런 시대에 만난 김백겸 시집의 첫인상은 좀 낯설다. 아직 주술과 신화가 세계의 한 축을 지탱하고 있었을 무렵의 이야기들을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별, 달, 하늘에서부터 성서, 그리스 신화까지 그가 차용한 소재들은 그간 시대상과 밀착한 일상의 면면을 동력으로 삼았던 시들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주목할 점은 그가 이런 소재들을 현대적 이야기와 적절하게 조합해서 현실과 신화적 세계를 모두 아우르는 제3세계상을 그려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또한 그 세계는 다양한 풍경과 풍부한 이야깃거리를 담아서 독자는 시집을 펼쳐드는 순간 기묘한 세계로의 여행을 시작하게 된다.
3부로 엮은 이번 시집 중 1부에서는 시인의 내밀한 일상을 소탈하게 그리고 있다. 주로 꿈, 허상, 환청 등의 장치를 사용하여 화자가 던져진 현상을 인위적으로 전복, 왜곡함으로써 특유의 입담을 발휘했다. ‘컴퓨터’ ‘오븐’ ‘디지털카메라’ 등 극히 실재적인 시적 재료도 활용되는데 이 때 각각의 의미를 벗겨내고 “전생의 전생이 기록한 모든 정보가” 저장된 “하드디스크”(「컴퓨터」) “눈의 렌즈” “심장의 감광도” “뇌의 메모리”(「디지털 카메라」) 등의 변형된 의미를 덧입힌다.
2부와 3부에서는 본격적으로 신화, 전설, 우주적 현상들을 다루기 시작한다. “죽음을 지연하기 위”한 “세라자드”(「아라비안 나이트」) “마음의 검은 하늘을 꽃불처럼 수놓은 횃불”(「빅뱅」)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눈여겨 볼 것은 시인이 끌어들인 환상적 소재들이 현실세계와 맞물려 어떤 하모니를 만들어내고 있는가이다.
비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서 그가 이끄는 대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어느새 “정원의 입구”다. 시인은 “비밀정원”의 정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우리의 가슴 속에는 각자의 비밀정원이 들어설 것이다.

[자서]

어떤 먹이를 위해 거미는 거미줄을 계속 짤까요
어떤 숲을 위해 땅은 토양의 순환을 계속 할까요
어떤 나라를 위해 하늘은 도시계획을 새로 고칠까요
어떤 세계를 위해 시간은 그 흘러가는 물길을 계속 낼까요

거미줄이 걸리는 나뭇가지를 알려주세요
그 가지를 지렛대로 세상의 모든 떨림을 들어 보이지요
어둠과 빛이 섞인 황혼의 무게도 달아 보이지요
거미줄에는 아담과 이브의 첫 키스도 이슬처럼 걸리고
거미줄에는 별들의 탄생과 죽음도 리듬처럼 걸리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