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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티의 이면(異面)을 연구한 책. 이면(二面)과 이면(異面)의 고찰을 통해 이면(裏面)의 감각적, 이성적 논리를 드러내고자 했다. 제1부에서는 이상과 김수영의 문학을 '미적 근대성'이라는 개념을 통해 살펴보았다. 제2부에서는 김기림과 최재서의 모더니즘의 논리가 식민지라는 구체적인 조건 하에서 어떻게 작동했으며, 결국 그 논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모더니즘의 코스모폴리탄적인 비전을 벗어나게 되었는가를 해명하였다. [양장본]

20세기 초, 박래품의 하나로 수입된 모더니즘은 한국문학사에서 두 번의 굴절을 경험해야 했다. 왕도(王都)로서의 성스러움이 무너진 1930년대의 세속도시 ‘경성’에서의 근대체험이 첫 번째 굴절이라면, 1950년대 전후의 암울한 정치상황과 폐허로 변한 삶의 터전에서 출발하는 ‘서울’에서의 근대체험은 두 번째 굴절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시인 이상(李箱)은 경성이라는 도시적 삶의 감각을 ‘권태’로 표현했고, 그것은 불과 30년 후에 김수영에게서 ‘피로’의 감각으로 바뀌고 말았다. 권태와 피로, 이것은 한국문학사에서 모더니즘의 위상을 가리키는 바로미터이다.
(고봉준, 『모더니티의 이면』, 소명출판, 2007 중에서)

이 책은 전반적으로 모더니즘의 다양한 얼굴들을 현현(顯現)한다. 학문과 비평의 분야에서 일반적으로 모더니즘은 미적 자율성의 동의어로 사용됨으로써 문학 및 예술의 사회․정치적 의미와는 무관한 것처럼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통념은 모더니즘의 역사성, 즉 시대적 배치에 따라 매번 다른 감각과 논리로 드러나는 모더니즘의 얼굴을 고착화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이 책에서 저자는 모더니즘과 근대가 충돌하는 지점에 주목한다. 그 하나로 먼저 저자는 이상과 김수영의 문학을 비교한다. 저자에 따르면 모더니즘 문학의 모더니티는 두 가지 방향을 갖는데, 그 하나는 제도로서의 모더니티이며, 다른 하나는 태도로서의 모더니티이다. 전자는 이상의 문학을, 후자는 김수영의 문학을 관통한다. 제도로서의 모더니티란 일차적으로 (대)도시 체험에 근거한다. 미적 근대성은 보편적인 차원에서 도시, 특히 근대 이후의 대도시를 경험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리고 이때 ‘도시’는 국가의 부분이 아니라 국가보다 앞서 존재한다. 저자는 영화나 사진 같은 새로운 매체의 등장이 체험의 지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신작로, 전차, 버스, 택시 등의 교통수단과 백화점, 다방 같은 새로운 문물이 도시 자체를 스펙터클의 대상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주장한다. 이상 문학의 모더니티는 이 새로운 미적 체험에 대한 반응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러나 문학의 미적 근대성이 사회․정치적인 근대성의 미적 반영물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미적 근대성 개념에서 근대성으로 환원되지 않는 잉여를 발견하고, 그것이 근대 자체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점으로 작용하는 경우를 김수영의 문학을 통해서 입증한다. 이런 점에서 그는 미적 근대성을 예술사조로서의 모더니즘이나 낭만주의의 미적 자율성이라는 관념과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수영의 문학은 속도의 모더니티가 갖는 폭력성을 ‘피로’라는 기호로 표현했다. 그리고 마찬가지 이유에서 김수영은 일상에 편재하는 권력을 ‘적’으로 인식하고, 그 권력을 넘어서는 지점을 ‘자유’라고 명명했다. 김수영이 추구한 모더니티의 내포는 윤리적 염결성을 바탕으로 근대 자본주의적 일상의 낙후성과 속물성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모더니티를 삶에 대한 윤리적 태도와 연결시키는 인식틀이 제도로서의 모더니티와 무관한 것은 아니지만, 김수영의 문학은 근대적 ‘속도’와 ‘규율’에 대한 비판을 통해서 드러나듯이 일상을 지배하는 근대적 가치들에 대한 비판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모더니즘 일반과 구분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한편 이 책의 2부에 실린 글들은 ‘이면들’이라는 제목처럼 각기 다른 시대적․사상적 배경 하에서 드러난 모더니즘의 다양한 얼굴들을 추적하고 있다. 저자는 ｢모더니즘의 초극과 동양 인식｣에서 김기림의 모더니즘이 중일전쟁 이후 굴절되는 논리적 과정과 그 과정에서 드러난 ‘동양’이라는 기호에 주목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식민지 시기 한국문학은 크게 세 가지 사상사적 흐름으로 전개되었다. 전통에 근거한 보수적 민족주의, 카프의 국제주의, 모더니스트들의 세계주의가 그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모더니즘을 주도했던 김기림은 중일전쟁 이후 돌연 모더니즘의 한계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했는데, 저자는 세계주의자임을 자청했던 김기림이 어떤 이유에선가 ‘동양’의 보편성을 말하면서부터 논리적 자가당착에 직면하게 되었고, 그것은 마침내 일제 말기에 그로 하여금 일체의 비평 활동을 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최재서의 주지주의 역시 넓은 의미에서 모더니즘에 속한다. 그러나 최재서의 주지주의는 김기림의 모더니즘과는 달리 지성주의의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다. 저자 고봉준은 ｢지성주의의 파탄과 국민문학론｣에서 주지주의자였던 최재서가 중일전쟁에서 태평양전쟁에 이르는 시기에 커다란 사상적 전회를 시도했다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최재서의 지성주의는 ‘현대’라는 혼돈의 시기를 새로운 전통을 입안하여 돌파하려는 사상적인 노력의 일환이다. 그러나 식민지라는 현실적인 조건은 그로 하여금 조선적인 것에서 전통을 발견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고, 이에 최재서는 일본적인 것, 동양적인 것에서 새로운 전통의 가능성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식민지 지식인이 제국의 전통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먼저 사상적인 전회가 필요했고, 때문에 최재서의 ‘국민문학’과 친일은 일제의 강압인 동시에 논리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문제는 피식민자인 조선의 지식인이 일본과 동양을 전통으로 수용하기 위해서는 그 스스로가 일본인이 되어야 했다는 것, 그러나 일본인이 된다는 것은 창씨개명을 하거나 일본인의 흉내를 내는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 있었다. 결국 일제 말기에 최재서는 자신이 지켜왔던 지성주의의 면모를 모두 버리고 피, 죽음 등의 감정적이고 즉자적인 가치들을 통해서만 조선인은 일본인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는데, 저자는 이러한 최재서의 논리적 파탄과정이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에서 모더니스트들이 직면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고 본다.
저자는 모더니즘을 미적자율성이라는 협소한 틀에서 끄집어내어 구체적인 역사적 현실 속에서 이해할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이때에야 비로소 모더니즘의 한계와 의미, 그리고 그것의 정체성이 올바로 규명될 수 있다고 말한다.

책머리에

제1부
모더니티의 이면
이상과 김수영

제1장 모더니티와 미적 근대성
1. '도시체험'으로서의 미적 근대성
1) 근대적 삶의 조건으로서의 '체험'
2) 미적 대상으로서의 '도시'와 산책자의 시선
2. 근대성 비판으로서의 모더니티
1) 사회·정치적 입장과 역사철학
2) '태도'로서의 시간성

제2장 도시체험과 이상 문학의 미적 근대성
1. 근대성의 '무대'로서의 도시와 '거리'의 모더니즘
1) '백화점'과 파노라마 시선
2) '산책자'와 이동하는 시선
3) 거리체험-다방과 군중의 발견
2. 조감도의 시선과 비대칭의 기하학
1) 옥상정원-평면과 기하학의 시선
2) (비)대칭과 아이러니

제3장 근대성 비판과 김수영 문학의 미적 근대성
1. 속물성의 세계 인식과 근대적 기호로서의 '피로'
1) '설움'과 '긍지'의 미학
2) '속도'의 모더니티와 '피로'의 시학
2. 권력의 편재성과 자유의 절대성
1) '규율권력' 비판과 비자유로서의 '적'
2) 근대의 획일주의와 절대적 자유로서의 혁명
3. 자유와 사랑의 긍정성
1) 자유의 형이상학과 타자성
2) 사랑의 변용 능력과 긍정의 윤리학

제4장 결론


제2부
이면들

제1장 김수영 문학의 근대성과 전통/
시간 의식을 중심으로
1. 머리말
2. 근대성, 미적 근대성, 전통
3. 실존론적 물음으로서의 '위치'와 '설움'
4. '현재', 미적 근대성의 시간성
1) '지성'과 '양심'으로서의 근대성
2) 변용으로서의 역사·전통과 근대성
5. 근대성과 근대의 극복

제2장 모더니즘의 초극과 동양 인식
김기림의 30년대 중반 이후 비평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2. 모더니즘의 결산과 근대의 초극
3. '동양주의'와 옥시덴탈리즘
4. 나오며

제3장 지성주의의 파탄과 국민문학론
중일 전쟁 이후의 최재서 비평을 중심으로
1. 들어가며
2. 주지주의와 지성주의
3. 신체제와 국민문학론
4. 지방주의에서 받들어 모시는 문학으로
5. 나오며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