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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아들에게 권하는 책 한 권-
이 책은 할아버지와 용이, 그리고 일월산에서 보내는 겨울 동안 사람과 사람간의 정이 도타워지고 함께하는 동물조차 친구가 되는 마음이 훈훈해지는 감동을 전합니다.

흔한 말로 ‘요즘 아이들’은 모르는 시절의 이야기를 통해 비슷한 감동을 얻는다는 것은 공감대를 갖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순수한 아이들의 정서와 마음 따뜻한 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들의 삶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로서 이미 충분한 공감을 얻습니다.
- 편집자 주

작가의 말 _우리 모두 꿀벌의 친구가 되어

1. 집이 없는 사람들
2. 지우고 싶은 기억
3. 할아버지의 겨울
4. 일월산의 봄
5. 꿀벌의 친구
6. 할아버지의 아들
7. 안녕, 일월

새 옷, 모두가 새 옷이었다.
아이들이 운동회 때마다 입던 흰 줄이 있는 까만 팬티, 줄무늬 내복, 그렇게도 신고 싶던 색동 양말, 그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노란 금단추가 달린 까만 양복이었다. 학교 다니는 아이들 중에서도 부잣집 아이들만 입고 다니던 그 양복을 할아버지가 사 오신 것이다.
발가벗은 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는 아이에게 할아버지는 또 하나의 꾸러미를 끄르고 까만 운동화를 꺼냈다. 아이들이 ‘와신또’라고 부르던 운동화였다.
“이 녀석아, 뭐 하고 있노. 빨리 입어 봐라.”
할아버지가 재촉하는 바람에 아이는 주섬주섬 옷을 입고 양말을 신고, 운동화도 신었다. 생전 처음 입어 보는 팬티는 까칠까칠하기는 했지만 그 산뜻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고무신만 신던 발에 운동화를 신는 기분도 만점이었다.

……

“이 아이는 누구이껴?”
“어이, 내가 복 받았지. 새해 선물 받았어.”
“선물이라니요?”
“고마, 그렇게만 알게. 이 아이 얼굴이나 잘 봐 뒀다가 나중에 오거던 내 보듯 잘해 주게나.”
껄껄껄 웃는 할아버지에게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종이봉지가 안겨졌다.

……

해가 지자 따라나서던 수많은 별들이 그 크기 그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별빛, 눈빛 속에 모습을 드러낸 할아버지 집은 개울과 거의 맞닿아 있었다. 문이 꼭꼭 닫혀져 있는 불 꺼진 초가. 좁은 마당 뒤에 엎드려 있는 조그만 집은 방 두 칸, 마구간 딸린 부엌이 있는 초가였다. 하얗게 눈 덮인 마당에 선 할아버지가 용이를 뒤돌아보았다.
‘할애비 집이 어떻노?’
하는 눈빛이었다. 용이는 할아버지 눈빛을 읽으며 싱긋 웃었다. 마음에 들었다. 마음에 들었다기보다는 할아버지와 함께 있다면 어디라도 좋았다. 춥고 어둡고 발 시린 밤에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너무너무 좋았다. 할아버지도 빙긋 웃었다. 마음이 통하는 웃음, 따뜻한 웃음이었다.
할아버지는 고개를 돌려 집을 향하면서 흠, 흠, 목청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몸 전체에서 우러나오는 큰소리를 질렀다.
“내가 왔다!”
가을에 떠나서 이제야 돌아온 집. 아무도 없는 빈집인 줄 알면서도 할아버지는 마당에 서서 큰소리로 외쳤다. 문고리에 붙어 있는 자물쇠를 열고 그 곁에 달랑거리던 나무 팻말을 떼냈다.
‘애비 아직 살아 있다.’
마음속으로 팻말의 글씨를 읽는 할아버지 마음은 아무도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

용이는 할아버지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마음 한구석에 걱정이 생기기도 했다. 얼어 죽을 뻔한 자기를 구해 주고, 그렇게 잘해 주던 깜상 아저씨가 무서운 술 호랑이로 변하는 것을 보면 막걸리를 벌컥벌컥 마시는 할아버지도 언제 변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용이는 마음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세상이 다 변해도, 정말 온 세상사람 다 변해도 할아버지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