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조경 디자인 이야기. 이 책은 조경비평 봄에서 낸 결과물로 일 년 여에 걸친 릴레이비평을 담아 정리한 것으로 개발, 건축, 기억, 도시, 디지털, 매체, 문화, 신자유주의, 이용, 자연, 전통, 평등을 바탕으로 한 우리시대 조경 이야기다.

또 하나의 봄을 기다리며
01. 녹색 공원은 평등한가_이유주현
02. 녹지 조성과 개발_장보혜
03. 신자유주의 시대의 조경_최정민
04. 창의적 이용, 이용가 되기_안명준
05. 영화를 통한 도시 읽기_서영애
06. 공간과 기억_이유직
07.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가_박승진
08. 건축의 조경화_배정한
09. 진부한 여전한 답답한, 전통_남기준
10. 설계에서 매체 그리고 서울숲_이상민
11. 디지털의 경관_김영민
12. 문화친화적 조경이 요구된다_조경진

오늘날 도시문명의 표상은 발기된 남성의 성기로 상징화 되는 수직적 건축 구조물들이다. 이 구조물들은 도시의 풍경을 장악한다. 자연(여성)과의 정서적 결합을 외면하고 허공을 향해 욕정을 뿜어낼 태세다. 항상 어디에서나 오브제처럼 빛나는 존재여야 하며, 오만하게 땅을 굽어본다. 과학기술과 첨단의 이름으로, 때로는 자본과 권력을 무기삼아, 작고 보잘 것 없으며 하찮은 것들을 그 발아래 굴복시킨다. 그것은 구조물이기 전에 인간의 욕심이고, 풍경이기 전에 이미 권력이다. …… 그런데 건축 구조물이 가지는 문명적, 남성적 속성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땅과의 소통, 풍경과의 화해를 추구하는 움직임이 감지되는 요즘, 오히려 자연과의 교감을 추구해야 할 조경작업이 전근대적 건축의 폭력성을 따라가는 아이러니를 적지 않게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무엇보다 조경작업을 ‘건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개발주의적 태도에서 비롯된다. 건축이 수직적 형태로서 쉽게 오브제로 인식되게 하는 것처럼, 태생적으로 땅과의 수평적 결합을 이룰 수밖에 없는 조경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무작정 규모를 확장하고 보는, 그래서 건축물에 견줄 만큼 거대하게 보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한다. …… 옥중 김지하의 마음을 움직인 작고 보잘 것 없는 풀 한포기의 진정성은 어디로 간 것인지 안타깝다. 규모의 문제 다음으로, 조경이 이루어지는 땅을 너무 단순하게 바라보는 이른바 태도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땅을, 생명을 지키는 유기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색의 도화지 혹은 저녁식사를 위한 식탁 정도로 이해하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 볼 일이다. 식탁보를 깔 듯 바닥을 디자인 하고, 보기 좋은 그릇으로 장식하듯 갖가지 장치물들로 공간을 꾸며나간다. 기능과 형태가 어떻게 조직되고 진화될 것인가를 예측하기 보다는 드러나는 모양새가 얼마나 오브제처럼 잘 보여지는가에 말초신경을 집중시킨다. 시간과 공간의 그물망이 얽혀있고, 사건과 기억이 스며있는 몸체를 외면하고, 온갖 건자재와 인공물의 집합체로 만들어진 무표정한 공간을 우리는 어떻게 조경이라 부를 수 있을까. …… 봄이 오고 있다. 생명은 땅에서 움터서, 바람을 따라 물길을 따라 흘러갈 것이다. 이제 작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이 위대한 자연을 완성해 간다. 햇빛은 여전히 이글거리면서 생명을 살찌우고, 또 땅을 기름지게 할 것이다. 낮에는 푸른 하늘이지만, 밤에는 별빛이 반짝이는 무한한 우주공간 속에서, 자연의 기운은 서로 소통하고 운행한다. 이 모든 자연의 현상들을, 조경가들은 크리에이티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생명체를 가지고 시간을 거름 삼아 풍경을 빚는 소중한 작업인 것이다. 자연의 본질은 상실된 채, 유용성의 대상으로, 사유화되고 매매의 대상이 되어버린 자연을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는 정말 가치 있는 작업이다. 그러므로 어설픈 자연 흉내내기로 본질을 흐리지 말아야 할 것이며, 조경이란 작업을 통해 얻고자 하는 진정한 가치는 무엇인지 다시 한번 깊이 되새겨 볼일이다. - <조경은 자연과 교감하고 있는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