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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연출가 권영준의 창작 연극 시나리오집. 통상 1시간 30분을 넘기지 못하는 한국 연극에 반기를 들고, 무려 4시간 여를 넘어 메키스토펠레스라는 캐릭터를 통해 삶과 죽음의 세계, 그리고 중간계를 불안과 의식 그리고 잠재의 식의 혼합된 세계로 그려낸다.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뛰어난 직관 그리고 열정과 순수, 광기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담겨 있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가 낳은 거작 <파우스트>
신(神)에게 도전장을 던졌던 겁없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기억하는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담보로 파우스트에게 인생의 향락을 맛볼 수 있게 한다는 계약을 하다가 결국 자신이 파멸하여 악마가 있어야 할 곳, 저 깊은 저승의 집으로 돌아가야만 했던 메피스토펠레스.
그가 다시 돌아왔다. 독일이 아닌 한국으로. 이번에는 어떤 이에게 무슨 조건을 걸며 자신만의 계약을 성립시킬 것인가. 파우스트와의 파기된 계약을 <에께 오모>에서는 이룰 수 있을까.

___총공연시간 4시간 여의 전작 장편 창작 정통 희곡 ‘에께 오모’
--- 악의 상징 메피스토펠레스가 한국 땅에서 부활했다. 그는 승리할 것인가?

도서출판 <모시는 사람들>에서 새해 첫 작품으로 『에께 오모』를 출간했다. 『에께 오모』는 현재 연극 연출가로 활동하고 권영준 씨가 지난 5년 동안의 구상과 집필, 퇴고, 워크숍 무대를 통한 수정 보완을 거쳐 전작 장편 희곡으로 펴낸 작품이다. 창작 정통연극으로 국내 희곡 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총 공연 시간 4시간을 훌쩍 넘어서는 대형 희곡 ‘에께 오모’는 단순히 그 작품의 규모뿐만으로 승부를 거는 것은 아니다. 4시간이라는 시간 내내 연극적 구성과 긴장감 그리고 극적 환상을 치밀하게 계산하여 배치하여 매 장면마다 인간 사회의 절규, 속삭임, 격정, 사랑, 분노, 냉소, 연민, 고토 등의 요소를 적나라하게 극화해 보이고 있다는 점이 더욱 돋보인다. 이 희곡은 곧 무대 위에 선보일 예정이다. 메피스토펠레스의 술책에 휘말린 남자와 여자, 스스로 번민의 씨앗을 안고 어쩔 줄 모르는 이 나약한 ‘인간’은 어떻게 그들의 운명을 극복하고 인간의 자주성에서 비롯되는 거룩함을 되찾아 가는가…

줄거리
Goethe의 전작 『파우스트 Faust』의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가 부활하여, 고뇌에 찬 한 쌍의 연인 앞에 나타난다. 사별한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가진 여자와 신체적 결함 때문에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젖어 살아온 남자인 이들은 결혼하기를 원하지만, 남자는 자신을 위해 헌신한 어머니에게 여자가 아이 딸린 과부라는 것을 말씀드릴 수 없으고 자신을 사랑하는 여자도 놓칠 수 없어 괴로워 하고, 여자도 또한 번민한다.

이때 메피스토펠레스는, 두 사람에게 인생의 행복을 약속해 주는 대신 남자의 사후(死後) 영혼을 자신이 갖는 계약을 맺자고 제안하지만 여자는 이를 거부한다. 깊은 밤, 고민하는 남자를 다시 찾은 메피스토펠레스는, 지금의 번민의 원인이 되는 아이의 영혼을 남자의 영혼 대신에 가져가고 아울러 다리도 고쳐 주겠다고 설득하여 남자의 무언의 동의를 얻어낸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다시 여자를 찾아가 역시 아이를 담보로 자신과 계약을 맺을 것을 권유한다. 여자는 자신의 아이를 버릴 수 없다며 그 제안을 거부한다. 그러자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정령(精靈)들을 불러내 그들로 하여금 강제로 여자와 성적관계(性的關係)를 맺게 하여 여자의 관능을 일깨우고 그 순간 계약을 체결한다.

--계약의 조건은 남자만이 여자의 과거와 모든 계약의 모든 과정을 기억하고, 정령들과 여자가 관계를 가졌을 때 그 최고 환희의 순간에 나온 ‘이제 그만’이라는 말이 다시금 여자의 입에서 나오면 아이의 영혼은 완전하게 메피스토펠레스의 것이 되는 것이다.

여자는 과거를 망각한채 새신부처럼 신혼의 행복을 만끽하며 남자의 아이를 갖게 되지만, 남자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여자의 관능적인 면과 그녀가 메피스토펠레스에게 넘긴 아이에 대한 생각으로 그녀의 모성과 여성을 의심하며 불안해한다. 점점 더 괴로움에 힘들어 하는 남자를 보며 의아해 하는 여자에게 메피스토펠레스는 여자의 과거와 자신과 맺은 계약의 전말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여자는 그 충격으로 남자의 아이를 유산하고 실성한다.

시간은 흐르고, 메피스토펠레스는 남자의 자책감을 극도로 자극하여 남자로부터 영혼을 주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나아가, 실성한 채 거리에서 사산된 아이들을 모아 박제로 만드는 여자를 만나 절규하는 남자 앞에 다시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이런 운명의 굴레를 덧씌운 절대자(神)에 대항하는 길은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이라며, 남자의 영혼을 자기 편으로 만드려고 혈안이 된다.

남자는 메피스토펠레스의 말을 받아들여 여자와 아이를 위한 헌신의 제의(祭儀)를 벌이고, 여자가 남자의 주검을 앞에 놓고 ‘이제 그만’을 되뇌이자, 메피스토펠레스는 남자의 영혼이 자기 편이 되었으므로, 자신이 절대자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도취한다.

그러나 여자는 자신이 던진 ‘이제 그만’이라는 말은 최상의, 환희의 순간에 나온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한 순간에 영혼의 탄식이었으며, 남자의 죽음 또한 신과 메피스토펠레스에 대한 투항이 아니라 오직 인간을 위한 헌신이므로 누구도 아이의 영혼을 가져갈 수 없고 남자의 영혼 또한 메피스토펠레스의 곁에 서지 않을 것을 천명한다.

분개하는 메피스토펠레스의 앞에, 남자가 주관한 희생의 제의에 참여하여 인간정신의 위대한 힘을 체험한 정령들이 나타나, 느낌과 생각의 두려움에 불과한 절대자와 메피스토펠레스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었음을 천명하고, 자연(自然)의 힘으로 메피스토펠레스를 제압하여 여자의 아이를 여자에게 넘겨 주고 남자의 영혼과 함께 선악을 넘어선 제3의 공간을 향하여 떠난다.

작가의 변 : 5년동안 심혈을 기울이며 구상한 ‘에께오모’
아침저녁으로, 하루에도 대여섯 번씩 지하철에서 또는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자신들의 神을 믿으라며 무엇엔가 홀린 듯한 얼굴로 초점 없는 눈동자로 소리치는 작자들. 종말이 온다고 부모, 형제, 남편, 자식 다 팽개치고 산속에서 밤낮으로 기도하는 미친놈들. 자신들만이 선택한 민족이라며 자신들과 다른 종교라는 이유로 무차별 살상을 자행하는 이스라엘 놈들. 그것도 맞서 폭탄을 끌어안고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 또 그런 자식을 자랑스럽다면 운구행진하면 소리치는 어머니들... 그들에게 그들의 신은 무엇이고 종교는 또 무엇인가? 또 나에게 신이란 어떤 존재인가?

10여년 전쯤, 나는 신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던 대학동창에게 ‘만약 네가 너의 신과 너의 부모 중 하나를 택해야하는 극단적인, 정말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온다면 너는 무엇을 택할 것이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 때 그 친구는 거리낌 없이 ‘나는 신을 택한다.’고 했다. 이유인 즉 신은 곧 구원이요, 뿌리요, 생명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그랬다…. 나로서는, 이런 골빈 놈들이 있기에 인류 역사의 가장 잔혹한, 오늘날까지도 계속되는 전쟁과 불신, 반목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떠한 사상, 과학(기술), 종교, 이데올로기도 인간 위에 군림할 수 없으며 군림해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들의 가당찮은 구원대신 인간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를 강조하고자 한다. 인간만이, 오로지 인간만이 모든 것의 창조자이며, 인간정신은 모든 존재의 궁극적 본질이여 의미임을 밝히고자 한다.

이를 위해 나의 영혼으로, 나의 이성과 감성으로 그들이 섬기는 신이라는 존재가 볼품 없는, 자연이라는 유일한, 단 하나의 자성(自性)에 속하는 음과 양, 자연의 숨결과 그 리듬에 불과한 조화(cosmos)와 혼돈(chaos)의 관념에 불과한 것에 인간 스스로가 생명을 부여한 것임을 힘주어 말하고, 그 관념 덩어리의 억압과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쟁취하고 스스로의 주인이 되는 과정을 제시하여 올바른 역학관계를 정립하고자 한다.

『파우스트』 v.s 『에께 오모』
괴테의 『파우스트』와 『에께오모』에는, 악(惡)의 대명사 메피스토펠레스가 공통으로 등장한다. 에께 오모의 메피스토펠레스는 이름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 바로 파우스트의 주인공이던 그 메피스토펠레스다. 권영준은 괴테가 모든 인간이 선악(善惡)의 양면성을 지니고 마음의 갈등을 하는 존재로 보는 것을 그대로 이 작품 속에서 재구성해 낸 것이다. 그러나 그 시작은 ‘같았으되’ 그 나중은 ‘현저하게 달랐으니’ 괴테는 『파우스트』에서 인간의 영혼 구제를 신의 역할로 돌려버린 반면에 권영준은 철저한 무신론자답게 철저한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을 바탕으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노력을 가상히 여긴 신이 결국은 인간을 구원한다는 도식을 거부하고, 오직 인간 스스로가 구원의 주체이자 삶의 능동적인 주체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 권영준 씨는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느낌과 생각만으로 두려운 절대적 존재에 의지하여 기도하고 그들에게 구원의 손길을 갈구하는 나약한 수동적 존재일 때가 아니다. 인간 의지의 힘으로 자연의 본성인 자성(自性)을 획득하여 인간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그래서 스스로 구원의 주체이자 능동적인 존재가 되어 운명을 지배하려고 노력할 때이다.”라고 주장한다.

희곡 ‘에께 오모’를 읽는 즐거움--상상하라!
당신 앞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 계약을 하자고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인생 최대의 숙제로 여기는 것들을 일거에 해결해 준다고 제안한다면….

일반적으로 희곡은 ‘읽는 문학’이 아니라 ‘보는 문학’이며 ‘듣는 문학’이다. 심지어 희곡은 무대위에 올려지기 전까지 아직 완성된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도 그다지 별스런 말도 아니다. 오히려 매우 그럴 듯하다.

물론 이 ‘에께 오모’ 역시 희곡집 발간과 더불어 공연 준비에 본격적으로 돌입하여 올해 상반기 중에 막을 올릴 예정이다. 이미 작품 집필 단계에서 연습 겸 워크숍이 이루어졌기에 무대화 자체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희곡 = 무대화를 위한 전단계’라는 등식이 적어도 이 ‘에께 오모’에서만은 그대로 맞어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연극무대에서 『파우스트』를 배경으로 탄생시킨 메피스토펠레스는 많았다. 그러나 이번 작품은 외국 작품이 아닌, 우리의 정서에 맞춘 그래서 좀더 현실적인 우리 작품 안에 메피스토펠레스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메피스토펠레스이며서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다. 더욱이 괴테와 권영준이 베이스로 깔고 있는 사상이 근본적으로 다른 만큼 그 차이가 작품 속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비교해 보는 즐거움이 이 희곡을 읽는 묘비를 배기사킨다. 그 과정에서 이 작품은 당신에게 질문을 던져 줄 것이다. 그 질문과 해답을 찾는 몫은 당신이다. 에께 오모를 읽을 때 무대나 조명 그리고 음향은 무대화 이후에나 고려할 요소들이 아니라, 이미 희곡 그 자체와 하나로 어우러져 있다는 것, 희곡을 읽으면서 그 요소들을 상상해 본다는 것이 이 ‘에께 오모’를 ‘읽는 맛’을 가져다 준다.

연극무대에서 『에께오모」를 화려하게 빛내 줄 장치는 여러 개가 있다. 무대에서 그려질 [에께오모]는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3차원 공간의 조형성, 그 울림과 변용, 이미지, 움직임 창조을 창조하게 된다. 상징적인 조형물을 설치하여 빛의 영역과 어둠의 영역의 병치를 통한 3차원의 입체감과 조형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특히 메피스토와 여자의 계약 성립에 있어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가질 여성의 관능미를 드러내는 붉은 꽃송이, 꽃잎 또는 여자의 자궁모양으로 된 침실은 눈여겨 볼만 하다. 악마의 매력을 한껏 발산하며 인간을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 역으로 연극계의 카리스마, 장두이 씨가 맡았다. 장두이 씨만의 메피스토가 또다른 한국적 이미지로 어떻게 재탄생 되는지. 이 평가 역시 관객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