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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 이제 살인을 하려 합니다. 자비를 베풀어 주소서!

〈성 수의 결사단〉으로 잘 알려진 스페인 작가 훌리아 나바로의 장편소설 『살인의 창세기』제2권 완결편. 성서의 비밀을 밝혀줄 점토판 '진흙 성서'를 둘러싼 음모가 제2차 세계대전과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흥미롭게 펼쳐진다.

바티칸 대성당 고해소의 한 젊은 신부가, 예정된 살인에 대한 어느 노인의 고백 성사를 듣게 된다. 같은 시각, 로마 고고학회에서는 미모의 이라크 혼혈 고고학자인 클라라 탄넨베르크가 역사에 한 획을 긋게 될 발표를 하고 있다. 그것은 4천 년 전 아브라함이 구술한 창세기가 기록된 점토판 '진흙 성서'에 관한 것이다.

클라라는 세상의 탄생과 아브라함의 실존을 증명해 줄 이 유물을 찾아, 곧 미국의 미사일이 떨어질 이라크 사막으로 향한다. 그리고 발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50여 년간 함께 묻혀 있던 끔찍한 증오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유명 기자 출신 작가의 냉철한 시선이 소설 속에 녹아들다!
현재 정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 중인 소설가, 훌리아 나바로는 2003년 당시 이라크전에 대한 칼럼을 기고하고, 전쟁 이후의 문제 해결 과정에 참여하기 위해 NGO단체인 ‘평화를 위한 단결(Uniting for peace)’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리고 기사를 통해 못 다한 이야기를 이 소설로 통해 전달하고 있다.
훌리아 나바로는 북리포터(Bookreporter.com)와의 2007년 1월 5일자 인터뷰에서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전쟁, 그리고 전쟁으로 인해 파생된 사업에 대해 반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것입니다. 최근 이라크 전쟁으로 인해 물질적으로 이득을 얻은 사람들이 많이 있고, 이들 중에는 전쟁이 가져온 폐해와 고통에 상관없이 새롭게 부자가 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며 두 번째 소설 『살인의 창세기』에 대한 소개를 시작했다.
이 소설은 2차 세계대전과 이라크전을 배경으로 하여 전쟁이 그것과 무관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고, 그들의 남겨진 가족에게는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는 사실을 전한다. 또한 전쟁을 틈타 문화재 약탈·판매 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세계의 권력자들의 그릇된 욕망에 대해서도 짚고 있다. 훌리아 나바로는 전쟁이 만들어낸 이 두 가지 비극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고 있다. 마우타우젠 유태인 수용소의 참상과 이라크의 국보 탈취를 위한 그들의 치밀한 계획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가 고발하고 있는 ‘전쟁’에 다시금 몸서리치게 된다.

* 현재 정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훌리아 나바로의 이력은 다음과 같다. 과디아나(Guadiana), 인터뷰(Interviu)와 파노라마(Panorama) 등의 잡지사와 신문사에서 경력을 쌓은 뒤에 카데나 세르 라디오 방송국(Radio cadena Ser), 스페인 국영 방송국(TVE)과 텔레신코(TELECINCO) 방송국에서 제작을 담당했다. 현재, 티엠포(Tiempo)와 유로파 프레스(OTR/Europa press) 통신에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4천 년의 시간을 건너 아브라함의 창세기가 세상으로 나오다!
『살인의 창세기』에서 독자의 호기심을 증폭시키며, 사건을 발전시키는 중심 소재는 점토판에 기록된 성서이다. 작품 속에서 ‘진흙 성서’라 불리는 이 점토판은, 아브라함의 먼 사촌인 어린 수습 서기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전해들은 창세기를 기록한 것이다. 세상의 탄생과 아브라함의 실존을 증명해 줄 이 성서 유물은 지난 4천 년간 땅 속에 숨겨져 있다가 이라크 전쟁 발발 직전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소설 속 진흙 성서 발굴 과정은 19세기 중반의 ‘에누마 엘리쉬’ 발굴(1848~1876년, 영국의 고고학자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과 ‘길가메시 서사시’ 발굴(1853년, 호르무즈드 라삼) 작업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나 어린 수습 서기와 아브라함의 창세기에 대한 문답 과정은 우르의 왕이요, 영웅인 길가메시가 성자 우트나피시팀으로부터 대홍수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과 닮았다.
이렇게 훌리아 나바로는 고고학의 세계를 소설 속으로 들여왔다. 이에 사물과 사건의 본질을 날카롭게 포착해내는 그녀만의 문체로, 기원전 아브라함이 머물던 마을이 오늘날 미국 부시 정권의 미사일이 떨어졌던 바로 그 이라크 마을임을 그려내고 있다. 상상의 세계와 현실의 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4천 년의 역사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색다른 역사 스펙트럼을 선사해 줄 것이다.

다양한 배경의 인물 설정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이끌어내다!
여타 소설들과 달리,『살인의 창세기』는 단 한명의 주인공이 사건을 이끌어나가는 대신, 다양한 인물들을 이용하여 균형적이고도 입체적인 시선으로 사건을 서술하고 있다. 이 소설에서는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이라크 등을 무대로, 양립될 수 없는 이해관계와 비밀스런 과거를 가진 인물들이 서로 충돌하며 사건이 진행된다. ‘진흙 성서’에 대해 광적인 집착을 보이는 독일 SS장교 출신의 거부(巨富), 알프레드 탄넨베르크를 중심으로, 그에게 복수하려는 유태인 생존자들과 그에게서 ‘진흙 성서’를 빼앗으려는 과거 동료들의 이해가 대립한다. 그러면서 이들을 연결해 주는 과거의 미스터리는 사건의 긴박감을 점점 고조시키다 마침내 결말에 이르러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러한 구성 방식을 통해 소설 속 사건은 더욱 긴밀해지고, 입체적으로 보인다. 또한 독자들은 저자가 취하고 있는 균형 잡힌 시선을 통해 등장인물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내릴 수 있게 된다. 즉, 소설 속 인물들은 50여 년 전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복수와 ‘진흙 성서’를 둘러싼 거대 음모 속에서 서로 충돌하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완전히 선, 악으로 구분될 수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한계에 맞닥뜨려 괴로워하고, 증오를 품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용서와 화해를 갈구하는 미완성이지만 완성을 지향하는 인간의 모습을 발견해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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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메스 교수 말이, 아브라함의 존재 자체도 사실 확인된 바 없다고 하던데요.”
“진흙판을 찾아내면, 그땐 아브라함이 전설 속 인물이 아니라는 게 명확해질 거예요. 난 아브라함이 실존했던 인물로,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다고 믿고 있어요. 아마 뭔가가 계기가 되어 유일신을 믿게 되었을 것이고, 그 때문에 어딜 가든 유일신 하느님에 대한 믿음의 씨앗을 뿌리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따라서 아브라함의 구술에 따라 샤마스가 적어 내려간 그 창세기 진흙판을 꼭 찾아내야 해요.” (p. 126)


“말하자면 대규모 절도 행각이라고 할 수 있지. 알프레드 탄넨베르그는 이 나라의 값진 보물이란 보물은 다 챙겨갈 생각이라 이거야. 이번에는 바그다드뿐 아니라 이라크 전역의 박물관으로 사람들이 쏟아져 들어갈 거야. 값어치를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값지고 소중한 보물들 목록을 만든게 누군지 알아? 바로 나야. 내가 인류의 문화유산이랄 수 있는 그 소중한 유물들의 목록을 작성해줬다 이거야. 인류의 문화유산이었던 그것들이 이제는 욕심 많은 억만장자의 개인 박물관에 영원히 소장되는 운명에 처해지겠지.” (p.171)


“우리는 우리의 어머니들과 동생들을 살해한 그 사악한 인간을 반드시 죽여 없애기로 맹세합니다!”
아이들은 모두들 카를로의 말을 복창한 뒤 서로 평생을 이어 갈 맹세가 아로 새겨진 눈빛을 교환했다. 자그마한 서로의 손을 포개고, 서로의 손을 부여잡으며 맹세가 얼마나 신성한 것인지를 되새기고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언젠가 SS장교를 죽이게 될 그 순간을 꿈꾸며 아이들은 남은 시간동안 어떻게, 무엇으로 죽일 것인지를 상의했다. 그날 밤, 막사로 돌아온 어른들은 추위와 배고픔에 시달리면서도 마치 심한 상처로 열에 들뜬 사람 모양으로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광채가 어린아이들의 두 눈에서 빛나고 있음을 발견했다. (p.369)


“클라라 할아버지 말씀이 맞았어요. 아브라함이 창세기를 구술했다고 하셨는데, 봐요! 여기 있어요! 정말 그 진흙판이 있다고요.”
앙테 플라스킥은 지안 마리아 앞으로 다가와 진흙판 하나를 받아 들었다. 이따위 진흙 조각 하나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를 죽이고 죽고 했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는 이제 이 진흙판들을 탈취해 나가야 한다. 혹시 누군가가 그를 훼방한다면 그 역시 그런 자들을 죽여 없애야 하는 것이다.
“모두 몇 개나 됩니까?”
앙테가 물었다.
“8개예요. 8개나 찾았어요. 이런 크나큰 기쁨을 주시다니, 오 주여! 감사합니다!” (p.423)


카를로 시프리아니는 순간적으로 등에 삶의 무게가 한꺼번에 얹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 무게에 허리를 휘청거리며 의자에 쓰러지듯 주저앉고 말았다.
“너도 내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잖니? 너나 네 형과 누나에게 가감 없이 다 얘기 했으니까 말이야. 그런 네가 어떻게 나를 심판하겠다는 거냐? 더구나 난 너와 하느님의 용서를 구하러 가기까지 했어.”
“알프레드 탄넨베르크는 죽었습니다. 살해당했지요. 아버지께서도 아실 거라 생각합니다.”
“안다, 알아. 하지만 너도 용서를…….”
“지금 제게 용서를 구하시는 겁니까? 그런 범죄행위에 대한 용서를 구하고자 고해소를 찾아오셨던 거라고 하셨습니까?” (pp.497~498)


어떤 방법으로 죽일 것인가는 새삼 생각해 볼 필요조차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어린 시절, 바르셀로나 할머니 댁에 살고 있을 때, 할머니로부터 이사벨 데 아스투리아 여제의 암살 사건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웬 남자가 여제에게 다가오더니 여제의 가슴에 송곳을 찔러 넣었다는 것이었다. 여제는 잠시 후 숨지고 말았는데, 옷에 피 한방 젖지 않았다고 했다.
메르세데스는 클라라의 살해를 꿈꾸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녀의 심장에 송곳을 박아 넣는 그 순간의 영상이 선명히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는 걸 느꼈다. 마땅한 송곳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철물점이란 철물점은 다 뒤져보고 심지어 자기 회사 건축현장에서 인부들이 쓰다 버린 공구들까지도 뒤적여 보았다. 그러다가 마침 적당할 것으로 보이는 물건을 찾아낸 건 건축 폐기물 현장에서였다. 그날부터 그녀는 그 물건을 깨끗이 씻고 마치 예술품 다루듯이 날마다 갈고 닦았었다. (p.515)


“그동안 지은 죄를 뉘우치고 사실대로 고백하십시오.”
“신부님, 제 잘못으로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공로를 보시고 제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제 아들 또한 제 죄를 용서하게 해주소서!”
“진심으로 뉘우치십니까?”
“네, 신부님.”
“주님께서 당신의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당신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저 또한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p.5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