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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박종국의 시집. '색깔을 만드는 게 직업인'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자신의 전기적 생애의 일단과 타자와의 관계, 연애에 대한 감정과 자연 사물에 대한 단상, 그리고 부박한 오늘의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속을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언어의 빛깔을 읽어내는 시


박종국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하염없이 붉은 말』이 출간되었다. 그는 이번 시집에서 시각적 이미지인 색에 시인으로서의 모든 역량을 투자한다. 색깔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그에게는 시도 오묘한 색들의 결합체이다. 그리하여 사랑도, 철학도, 생활도 모두 색을 통해 펼쳐 보이는, 한국문학에 유래가 없는 시집을 만들고 있다.

시집에 실린 모든 시가 ‘색’이라는 하나의 재제로부터 출발했다는 점에서 『하염없이 붉은 말』은 하나의 ‘색에 관한 연구서’라고도 할 수 있다. 그는 각 부마다 「색깔」「色經」「본색」「색깔론」의 시를 전면에 배치해 ‘색’으로 풀어갈 수 있는 다양한 국면들을 소개한 다음 또 하나하나의 국면에 여러 갈래의 방법들을 동원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어느 한 편도 다른 시와 내용이 중복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의 섬세한 언어의식을 읽을 수가 있다.

시인은 세상 만물이 ‘빛’ 속에 내재된 ‘색’을 만나야 비로소 존재성을 획득하게 된다고 말한다. 또한 삶의 의미가 자신만의 온전한 ‘색’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리하여 시인은 ‘잎자루 하나에 목매단 나뭇잎’(「갈색 표정」)처럼 자신만의 색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시를 쓰고 있는 것이다.

여러 가지의 색이 있지만 결국 시인이 만들고자 하는 색은 ‘검정색’이다. ‘검정색’은 흔히 알고 있듯 모든 색을 다 품고 있는 색이다. 그런데 그의 소망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가장 검은 색을 고밀도로 농축하면 스스로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듯이’(「검정색 만들기」) 시인은 모든 것을 받아들인 후 내면에서 그것들을 응축시켜 하나의 보석을 만들어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은 시인의 시정신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담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시 한 편을 얻기 위해 그의 시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과정을 따라가면서 마음에 자신만의 보석을 키우는 것도 즐거운 일이리라.

[차례]

I

색깔 ──── 15
짙어갈수록 ──── 16
울고 있었다 ──── 18
갈색 표정 ──── 20
하염없이 붉은 말 ──── 21
가난한 보물 ──── 22
초록의 기미 ──── 24
봄입니다 ──── 25
황금색, 그는 ──── 26
연분홍 달빛 ──── 27
가을, 석양 ──── 28
찬란한 황금빛 어디로 가는가 ──── 29
그림자 ──── 30
色 卽 是 空 ──── 31
녹색은 없다 ──── 32


II

色經 ──── 35
뒤뜰에 핀 흰 매화 ──── 36
순수한 의식의 꽃 ──── 38
아가리 ──── 39
색깔은 말이다 ──── 40
썩혀도 썩혀도 썩지 않는 ──── 41
연마할수록 밝아지는 ──── 43
뒤틀림의 절정 ──── 44
가슴에 꽂아보는 리트머스 시험지 ──── 45
어두워진다는 것은 ──── 46
한꺼번에 말하는 비밀 ──── 47
갇힌 말의 말 ──── 48
物色 ──── 50
돌아오지 않고도 갈 곳이 있을까 ──── 51
파랑, 새 ──── 52


III

본색 ──── 57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는 ──── 58
꺾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 59
그것이 무엇일까 ──── 60
그곳에 있었다 ──── 62
어떻게 견디어낼까 ──── 63
앞마당에 굴러다녔다 ──── 64
가시 같은 날이 있었습니다 ──── 66
흰눈 펑펑 쏟아지는 날 ──── 68
꽃밭 ──── 69
소통의 신에게 올리는 기도 ──── 71
보랏빛 눈망울 ──── 73
색깔은 그림자입니다 ──── 75
유채색 ──── 76
무채색 ──── 77


IV

색채론 ──── 81
산 미루나무 ──── 82
마음이 색깔과 같지 않다면, ──── 83
짧은 침묵 ──── 84
오 센티미터 ──── 87
내 속에 잠든 회색, ──── 89
등나무 그늘에 앉아 ──── 90
엷은 자색 꽃 ──── 92
은보라 ──── 94
그때, ──── 95
황색 경보 ──── 97
헤아릴수록 부끄러워지는 ──── 98
유리컵 ──── 100
날아가는 색깔 ──── 102
빗질하는 혓바닥 ──── 103
검정색 만들기 ──── 105


■ 해 설
색깔의 연금술 | 유성호 ──── 106

[自序]

어둠과 밝음의 대립
늘, 내 안은 전쟁터다
막고 찌를 때마다 번쩍이는
눈빛
그것이,
나의 색깔이고 존재다
바람에 시달리는 파란만장이다
빛을 향한 불멸의 물결,
가슴 안으로 모아 호흡하는 소망이다
끝까지 싱싱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나만의 색깔이고 에너지다
너와 함께 살려고 비지땀 흘리는
소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