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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들의 시각에서 그들이 살았던 세계의 면면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파악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재현한 책. 저자 다이앤 머레이는 1790~1810년 남중국해에서 활동하였던 해적들을 체계적이고 세밀하게 묘사했다. 또한 광둥연해에서 수상 생활을 하던 빈곤한 하층민들의 생활과 경제적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왜 그들이 해적이 되었는가에 대해 설명했다.

남중국해의 해적, ‘그들’은 누구인가

1810년 4월 17일, 광저우에서는 총독 바이링(百齡)이 한 여성을 만나고 있었다. 그녀가 두 달 전에 있었던, 그러나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 조건 때문에 결렬된 해적들과의 협상을 성사시키러 왔다며 총독과의 면담을 요청했던 것이다. 맨몸으로 ‘적진’에 뛰어든 이 용감한 여인이 바로 19세기를 전후로 해서 남중국해를 실질적으로 지배한 해적들의 막후 실력자 정이싸오(鄭一嫂)였다. 뛰어난 수완을 발휘한 그녀 덕에 며칠 뒤 마카오에서 다시 열린 해적과 청조(淸朝) 간의 협상은 수월하게 타결될 수 있었다.
그리하여 4월 20일, 2만 명에 달하는 해적들과 수백 척의 배, 대포를 포함한 수천 점의 각종 무기류가 관에 귀속되었고, 해적들은 비굴하다고까지 할 투항문을 지어 바쳤다. 외형상으로는 청조의 완벽한 승리로 보인다. 그러나 내실은 그렇지가 않았다.
해적의 지도자들은 후한 포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관리로 임명되기까지 했으며(최고 지도자 장바오[張保]는 국빈 자격으로 마카오를 방문했다), 부하들을 정착시키는 데 필요한 거액의 돈을 받았다. 또 군대에 들어가고자 하는 해적들은 병적에 편입되었고, 과거 자신들의 동료였던, 아직 투항하지 않은 해적들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에 참여했다. 민간인들을 약탈하고 관에 대항했던 해적들은 처벌이 아니라 보상을 받았다.
이런 대가를 치르더라도 바다의 평온을 되찾았으니 청조 역시 승리한 게임이었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몇 십 년 후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아편전쟁)을 염두에 둔다면 결코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해적들과의 협상은 엄청난 재앙을 불러올 저주의 씨앗과도 같은 것이었다.

사실 중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광활한 대지이지 바다는 아니다. 중국 역사에서도 바다가 중심 무대에 등장한 적은 거의 없다. 중원에서 벌어지는 한족끼리의 쟁투, 북방 이민족들과의 교류 및 전쟁 등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중국의 바다’에 대해서 우리는 다소 생소한 편이다. 그러나 중국은 광활한 대지만큼이나 엄청나게 긴 해안선을 가진 나라이기도 하다. 통치자들의 관심 밖에 있었을 뿐 그곳에도 고단한 삶을 살아 내고 있는 중국인들이 있었다. '그들의 바다: 남부 중국의 해적, 1790～1810'은 바로 그들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의 통치자들이 버려두다시피 한 남중국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1800년 무렵의 해적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물론 그곳에는 훨씬 오래전부터 해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의 해적은 중앙 정부가 도저히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을 정도로 막강하고 잘 정비된 조직을 갖추고 있었다. 평범한 어부에 불과했던 자들이 해적이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떻게 그렇게 강력한 조직을 만들었는지, 게다가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을 때 해적들이 집단적으로 투항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가 이 책의 주된 관심사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국과 서양의 각종 자료를 토대로 당시 해적들의 삶을 생생하게 재구성해 내고 있다. '대청역조실록(大淸歷朝實錄)'과 같은 중앙의 사서(史書)는 물론이거니와 총독이나 순무 등의 고위 지방관리가 황제에게 올린 주접(奏摺), 그리고 체포된 해적들의 공술(供述), 성/부/현에서 만들어진 지방지(예를 들어 '남해현지(南海縣志)'와 같은 것들), '정해분기'와 같은 비공식적 역사서가 동원되며, 또한 동인도회사 감독관들의 일기와 회의록, 해적들에게 포로가 되었다 풀려난 서양 선원들이 남긴 각종 기록도 꼼꼼히 검토된다.

-그들의 바다: 남부 중국의 해적, 1790～1810?에는, 광둥 성과 푸젠 성의 접경에서 시작하여 하이난 섬과 레이저우 반도를 휘돌아 베트남 동쪽의 통킹 만으로 이어지는 드넓은 남중국해에서 펼쳐지는 해적들의 음모와 배신 그리고 장쾌한 해상 전투가, 청조 관리들의 지리멸렬함과 대비되며 빼곡히 담겨 있다.

♧ 본문 소개

저자 다이앤 머레이는 먼저 광둥 연해에서 수상 생활을 하던 빈곤한 하층민들의 생활과 지역의 경제적 상황을 분석함으로써 왜 그들이 해적이 되었는가를 설명한다. 18세기 말 광둥 인구가 급격히 늘어 토지에서 밀려나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생계가 막막해진 이들 빈민과 어부들은 사람 몇을 모아서 이따금씩 지나가던 배를 약탈하곤 하였다. 처음에 몇몇 무리들이 벌이던 약탈 행위는 베트남에서 일어난 떠이 썬 반란과 결합되면서 그 규모가 확대되었다.
그러나 떠이 썬의 반란이 실패하게 되면서 해적들은 광둥 연해로 되돌아왔고, 1805년 그들은 베트남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력한 해적 연맹을 결성하게 되었다. 연맹은 2,000척의 선박, 6개의 지부, 그리고 7만여 명의 무리를 거느린 집단으로 발전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정이(鄭一), 정이싸오, 장바오와 같은 뛰어난 지도자들의 역할이 컸다. 해적들은 확대된 조직을 바탕으로 여러 섬에 거점을 마련하였고, 광둥 연해의 바닷길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무역을 장악하였다. 또한 광둥의 내륙으로 들어와서 주장(珠江) 주위의 마을을 약탈하고 부녀자들을 납치하여 몸값을 받아내기까지 했다.
청조는 광둥의 상황이 심각해지자 여러 명의 총독들을 연이어 파견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남중국해의 실질적 지배자인 해적들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해적들은 우수한 무력을 갖추고 신속하게 이동하면서 관군에게 계속해서 처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다.
이에 비해 관군의 조직 체계는 엉망이었고, 배는 상당수가 낡거나 파손된 것들이었다. 또 병사들은 해적들을 두려워했고, 심지어 그들에게 매수된 자들까지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자치 방어 체계를 세우는가 하면, 체면을 구겨 가면서까지 영국이나 포르투갈, 미국 측에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모두가 허사였다. 바다는 ‘그들’의 것이었고, 어느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렇게 강력한 조직을 무너뜨린 것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분란이었다. 연맹은 본래 6개의 하부 조직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세력이 가장 컸던 두 조직 사이에 분쟁이 발생해 연맹 전체에 균열이 생기고 말았다. 또한 무력으로 해적들을 소탕하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달은 청조에서도 때마침 신분을 보장할 테니 투항하라는 제안을 해 오고 있었다.
결국 해적들은 밀고 당기는 협상 끝에 집단적으로 투항하게 된다. 물론 돈과 상당한 지위를 보장받는다는 조건으로. 이로써 청조는 가까스로 바다의 문제를 해결하게 된다. 그러나 사실 이는 해결이라기보다는 회피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바다는 다시 버려지고, 얼마 후 그 버려진 바다를 통해 밀려드는 서양의 가공할 물리력 앞에서 청나라는 다시 한 번 속수무책이 되니 말이다.

‘그들’의 목소리 ― 해적들이 작성한 문서

1) 협약문
(1805년 해적들이 연맹을 조직하면서 제정한 협약의 처음 부분임. 구체적인 8개 조항은 생략)

본 협약에 서명한 7인 ― 정원셴, 마이유진, 우즈칭, 리샹칭, 정류탕, 궈쉐셴, 량바오 ― 은 차후에라도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서로 협의를 거쳐 그 내용을 공문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우리는 규율이 엄격하지 않으면 무리들을 복종시키기 어렵고, 폐해가 사라지지 않으면 상업적인 거래가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우리는 세력을 합치는 데 동의했고 지켜야 할 규율의 항목들을 제정하였다. 각 항목들이 엄격하게 명문화되고 명확하게 작성되어 공정하게 집행된다면, 구성원들로 하여금 그것을 준수하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각 지파(支派)의 선박들이나 그 구성원들의 능력이 서로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강제적으로 통제되지 않는다면, 각 구성원들은 규범을 소홀히 여길 것이다. 우리는 토론을 거쳐서 엄격한 규범을 만들었고, 각 조항들은 우리 자신들을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우리들은 공통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현재의 세력이 큰가 작은가는 중요하지 않고, 내부의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에 자신이 속한 지파의 세력이 강하다는 이유로 위세를 부리거나 약한 쪽에 대해 무시하는 경우가 발생한다면, 그에 대해 전체의 명의로 조사하여 처리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규범들에 대해 7부의 협약서를 작성하여 각 지파의 지휘 선박에 게시할 것이다. 협약은 모두 8개 조항으로 구성된다.

2) 선언문
(1809년 해적들이 마카오와 광저우 거리에 붙인 문서의 일부)

바다의 떠돌이인 우리는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우리가 해적이 된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 아니다. 돈밖에 모르는 포악한 관리들이 상황을 이렇게 만들었다. ……
무관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죽음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돈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다. …… 만약 우리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 우리들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전투를 벌이기 위해 기꺼이 바다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보트를 수리하거나 돛의 방향을 바로잡는다는 이런저런 이유를 찾기에 급급하고, 우리가 나타난 것을 알면서도 그런 일들로 핑계를 삼는다. ……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 지휘관은 우리가 후퇴한 것을 알게 되면 상관들에게 ‘적들이 두려워서 달아나 버렸다’고 보고할 게 분명하다는 것이다. ……
이런 식으로 그들은 해적들을 소탕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자신들의 상관과 총독을 속이고 있다. 그들은 그들이 해적들을 소탕하러 바다로 나갔다고 여기는 주민들까지 속이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모든 것이 거짓이고 속임수이다. 우리는 백청천(白淸天, 해적들이 총독에게 붙여 준 별칭)께서 그러한 무관들을 모두 파면시키고 우리들이 처음으로 하는 호소와 제안을 고려해 줄 것을 희망한다. 그러면 우리는 더 이상 해적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들의 배를 이끌고 먼 곳으로 떠날 것이며, 백청천께서 다스리는 바다를 넘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고, 위에서 간곡한 심정으로 언명하였다.

3) 투항문
(1810년 해적들이 투항하면서 작성한 문서의 일부)

…… 지금 개미처럼 하찮은 저희들은 태평성세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본래 착한 백성이었는데, 여러 가지 이유 때문에 해적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친구를 사귀는 데 신중하지 못하였고, 어떤 이들은 가진 것이 없어서, 또는 어떤 자들은 무역을 하다가 포로가 되거나 죄를 짓고 숨을 곳을 찾다가 해적이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숫자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나중에 천 명, 만 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또한 지난 몇 년 동안 흉년이 계속되면서 살길이 막막해진 사람들이 차츰 먹고 살기 위해 도적질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만약 저희들이 관군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생명을 보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듯 저희가 천조의 법을 어기고 상인들을 약탈한 것은 그러지 않고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
총독께서는 여러 차례 유시(諭示)를 내려 투항할 것을 권유하셨으니, 이는 미천한 자들이 죄를 짓게 된 이유를 안타깝게 여겨서 준엄하게 꾸짖으면서도 포용하려 하신 일이었습니다. …… 그래서 저희 무리들을 불러 모으고, 모든 이들의 서명을 받아서 투항문서를 보냅니다. 부디 벌레 같은 저희들의 남은 삶을 불쌍히 여기시어 고통으로부터 구해 주시고 죄를 용서하심으로써 새로운 생활을 하도록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는 무기를 팔아서 소를 사고 모두 함께 땅을 경작할 것임을 맹세합니다. 저희는 향을 피워 총독의 은덕을 칭송할 것입니다. 만약 다른 마음을 품고 있다면 즉시 처형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한국어판에 부쳐
들어가며

1장 수상세계
지리, 경제적 요인
배 위의 사람들

2장 베트남의 소규모 해적들
장핑 : 중국과 베트남 해적의 소굴
수상세계의 정치적 지형
소규모 해적들의 활동 상황
소규모 해적활동의 성장 요인

3장 베트남 반란의 영향들
떠이 썬 반군에 참가한 중국인 해적들
청조의 진압시도
떠이 썬의 후원과 해적활동의 성장

4장 해적활동의 직업화
조직의 구조와 지휘관
연맹의 확대와 안정화
장바오
바다 위의 일상생활

5장 연맹활동의 전개
해적들의 전술
해적들의 수입
해적의 동조 세력
해적연맹의 선박과 무기

6장 청조의 반응
나옌청 휘하의 군대
나옌청 지역 방어 계획
나옌청의 해적 소탕 작전
정책의 전환(어쩔 수 없는 선택)

7장 곤경에 빠진 청조의 정책
해적들의 주장 침입
단련과 지역 방어
청조와 외국인들의 연합

8장 해적연맹의 종결
장바오와 다른 방 우두머리들의 투항
해적들의 투항 이유

글을 마치며

부록
본서에서 다룬 해적들의 배경 I 1809년 해적선언문 I 해적선 소개
1810년 해적투항문서 I 화폐, 도량형 환산법

주
참고문헌
옮기고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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