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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들에게 예술가의 삶을 느끼면서 작품 보는 즐거움을 알게 하는 책. 부드러운 흙으로 사람들의 얼굴을 빚었고, 단단한 화강암으로 사랑스러운 동물을 만든 조각가 권진규를 소개한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의 작품들은 우리의 현대 조각사를 빛내고 있다.

장인이기를 자처한 조각가
<두 사람>(본문 36쪽)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부조입니다. 점토를 콩알만하게 만든 뒤 붙여 나가 완성한 작품입니다. 흙으로 작품을 만들 때 콩알만하게 떼어서 붙여 나가는 방법은 시간이 많이 들고 힘도 들지만 탄탄한 조형성을 이룹니다. 어느 누구도 이런 방법으로 점토를 다루지 않았습니다.
권진규는 조각가이기에 앞서 장인이기를 자처하였습니다. 작품 제작의 소소한 과정까지 예술로 승화시킨 정신을 강조하였습니다. 처음부터 단단한 기초가 곧 자신의 표현 방법이라 여겼던 권진규는 기본이 되는 것을 한눈 팔지 않고 열심히 하는 것이 모든 일의 밑거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만물에는 구조가 있는데 우리 나라에서는 그 구조에 대한 근본 탐구가 결여되어 있다. 우리 조각은 신라 때 위대하였고, 고려 때 정지했고, 조선 때에 바로크(장식화)했습니다. 지금은 외국의 모방이며 사실(寫實)은 전혀 망각되어 학생이 불쌍하다…”
이렇게 말한 권진규는 ‘한국의 리얼리즘’을 구현하려 하였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잘 살거나 이름을 날리기를 바라는 일이 많습니다. 하지만 권진규는 오로지 작품에 열중하였고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술에 바친 진정한 예술가입니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술품은 그만큼 오래도록 남아 우리들의 마음을 아름답게 해준다는 뜻이지요. 권진규의 작품은 보면 볼수록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그리하여 부드러운 흙으로 사람의 얼굴을 빚고, 단단한 화강암으로 사랑스런 동물을 만든 권진규 작품은 사람의 마음을 드러낸 독특한 아름다움은 우리 현대 조각사를 빛내고 있습니다.

옛것에서 배운다 / 테라코타
누구나 어린 시절 운동장, 놀이터, 바닷가에서 흙을 가지고 놉니다. 모래성을 쌓기도 하고, 두꺼비집을 짓기도 하고, 어떤 형체가 있는 무언가를 만들면서요. 커다란 빌딩 앞의 조각품이나 미술관 안의 멋진 작품들도 실은 이런 놀이를 좋아하던 어린이가 자라 작가가 되어 만든 예술품이지요. 권진규는 바로 우리들이 가지고 놀던 흙, 늘 우리 주변에 있어 그 가치를 잘 모르고 지나쳐버리던 흙으로 주위 사람들의 얼굴과 자연스러운 동물을 만들어 자신의 예술 세계를 표현한 조소 예술가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인 빗살무늬토기는 흙으로 만든 것입니다. 흙으로 만든 인형 토우는 여러 가지 모습을 한 부장품으로 죽은 이의 영혼을 지켜주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과학 문명이 발달한 현재까지 우리 인류는 흙을 구워 일상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만들고, 영혼의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바로 흙은 생명의 원천이며, 가장 순수한 물질이니까요.
‘구운 점토’라는 뜻의 ‘테라코타’는 동서양을 막론한 오래된 공예 기법입니다. 권진규는 그 공예 기법을 자신의 표현 방법으로 삼았습니다. 하지만 작업실 가마는 도자기를 구울 때처럼 완전히 밀폐하여 며칠이고 불을 때는 조건은 아닙니다. 낮은 온도에서 비교적 빠른 시간에 굽는 것입니다. 그래서 점토로 만든 작품들은 붉은빛이나 황톳빛의 흙 빛깔을 그대로 갖게 됩니다. 소박한 이 빛깔이 순수함을 찾았던 권진규에게 안성맞춤의 색이었습니다. 권진규의 대표 작품인 <지원의 얼굴>(본문 31쪽), <영희>(본문 29쪽), <희정>(본문 28쪽) 등은 모두 테라코타로 만든 작품들입니다.

옛것에서 배운다 / 거칠거칠, 건칠
건칠은 옻나무의 즙을 발라 말린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나무로 쟁반을 만들거나 그릇이나 상자를 만들 때 사용하던 공예 기법입니다. 나무로 형태를 만든 다음 옻칠을 하여 말리면 색이 고와지고, 그릇 표면이 윤이 나고, 물도 스미지 않고, 오래 보존할 수 있습니다. 권진규는 이 오래된 기법을 자신의 작품에 이용하였습니다.
완성된 석고에 삼베를 붕대처럼 둘둘 감은 뒤 옻칠을 듬뿍 발라 말립니다. 그러면 작품 표면에 삼베 올이 튀어나와 거칠어집니다. 끈적끈적한 액체인 옻을 바르면 옻칠 자국과 작가의 손 자국이 그대로 남아 거칠거칠한 질감을 갖게 됩니다. 마치 유화로 그림을 그릴 때 물감을 겹쳐 바르고 긁어내기를 한 것처럼요.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본문 38쪽)는 당시 주문자에게서 퇴짜 받아 권진규가 죽을 때까지 그의 천장 높은 아틀리에에 걸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비평가는 건칠로 만든 이 작품을 고뇌에 가득 찼지만 구원의 의지를 잃지 않은 예수님을 잘 표현한 작품으로 평하고 있습니다.

얼레를 만드는 아이
화가가 되고 싶어
일본의 종 노릇은 싫어
수업료 대신 작품을
모델이 되어줄래?
붉은 빛, 황톳빛이 좋아
따뜻한 돌
작품 같은 마네킹
천장 높은 아틀리에
거칠거칠, 건칠
사랑스런 동물들
순수한 얼굴들
절반의 성공
수천 수만의 흙콩알
예수와 부처가 한집에
수전증이 찾아오다
마지막외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