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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코메티 : 영혼을 빚어낸 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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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실존의 딜레마를 예술로 승화시킨 ‘조각의 새로운 정신’을 만나다

20세기 조형미술의 제1인자로 불리는 스위스 출신의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Alberto Giacometti, 1901~1966)의 전기가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 제12권으로 출간되었다. 존재와 무(nothingness)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번뇌했던 그는 인간의 진실과 영혼의 기본적인 실체에 다가가기 위해 지칠 줄 모르는 창조에 대한 열정으로 자신을 한 없이 불태웠다. 그 결과 존재의 무게감을 모두 덜어낸 길고 가녀린 조상(彫像)을 만들어냄으로써 현대 조각사에서 가장 선구적이며 독창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에 대한 탐색(The Search for the Absolute)”의 예술적 경지를 보여주었던 자코메티의 생애를 담은 이 전기는 의미 없이 모호하고 난해한 혹은 생명력 없이 일회적 아이디어로 생산되는 현대 미술의 흐름 속에서 예술가로서의 진실성과 흔들리지 않는 창조 정신을 되새겨보는 뜻 깊은 계기가 될 것이다.

프랑스 작가 장 주네는 그를 가리켜 “자코메티는 같은 시대 사람들을 위해서도, 미래 세대를 위해서도 작품을 만들지 않는다. 최소한 죽은 자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상(像)들을 만들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이에 제임스 로드가 쓴 이 위대한 예술가에 대한 전기는 살아 있는 자들이 큰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자코메티의 삶과 예술 세계에 밀도 있게 접근하고 있다.
직접 자코메티의 모델이 되면서 그와의 작업 과정을 기술한 『작업실의 자코메티』를 내기도 했던 이 책의 저자는 실존의 딜레마를 초월한 그의 초현실적이고도 실존주의적인 작품 세계에 대한 면밀한 분석뿐만 아니라 자코메티 개인의 역사까지 섬세하게 묘사해 나간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피카소, 베케트, 스트라빈스키, 사르트르, 화려한 미술 딜러 등 20세기를 풍미했던 사상가와 예술가들과의 관계를 비롯해서, 성 불구자로서 그가 여신으로 여겼던 매춘부들, 아내 아네트와의 갈등, 마지막 모델이자 애인이었던 카롤린과의 관계, 그리고 자기 부정과 궁핍함을 즐기며 정신의 자유를 추구했던 위대한 천재의 역사가 이 책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2.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생애와 작품 세계

스위스 고산지대인 스탐파에서 자란 자코메티의 예술적 정신을 형성하는 데는 후기 인상파 화가였던 아버지의 후원과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스위스적 감성, 그리고 평생의 동료였던 남동생 디에고가 밑거름이 되었다. 1919년 제네바의 미술 공예 학교에서 조각과 드로잉 수업을 받던 중 1920년 당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 이벤트였던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스위스 사절단인 아버지와 함께 이탈리아로 가서 틴토레토와 조토, 아프리카와 이집트의 고대미술로부터 커다란 예술적 자극을 받게 되었다.

19살이 되던 해 다시 이탈리아로의 여행을 결심했던 자코메티는 여행 동반자였던 네덜란드인 반 뫼르스 노인의 갑작스런 죽음을 바로 곁에서 목격하면서 가장 민감한 청년기에 삶과 죽음 사이의 공포, 즉 존재에서 비존재로 옮겨지는 순간 존재의 연약하고 불확실하며 덧없음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제1, 2차 세계대전이 안겨준 인간이 종속된 심원한 갈등과 불안 역시 그의 예술적 정신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으며, 이러한 경험들은 후일 허무의 공간과 연계된 인체 조각상을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1922년 파리에 정착한 자코메티는 부르델에게 지도를 받으며 조각과 데생에 몰두하였으나, 보이는 그대로의 사실성에 근거한 모사가 대상의 전체와 본질을 대변하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기억과 상상에 의존한 입체파적인 작업을 시도하게 되었다. 사물이 그에게 주는 내적인 비전을 상징적인 오브제에 의해서 표현하는 작업은 점점 더 인간적 현실의 심연으로 파고들어 갔다. 이로써 인간의 극한적인 모습, 즉 그가 경험했던 죽음으로의 접근, 공허 속의 인간, 에로스적인 이미지 등이 재현된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자들에 의해 높이 평가되어 1930년부터 1935년에 걸쳐 대표적인 초현실주의 작가로 널리 인정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미술 사조나 이념에 소속되거나, 당대의 사상 체계를 표현하고 설명하려고 했던 인물이 아니었다. 오직 그가 천착했던 것은 예술에 대한 진실, 즉 눈에 보이는 그대로의 존재의 실체와 현실에 대한 인상을 포착해 내기 위한 끊임없는 예술적 탐구와 시도였다. 눈에서 곧 사라지고 마는 실재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깎고 깎다가 성냥개비만 하다못해 때로는 먼지가 되어버리는 것은 그의 조각뿐만이 아니라 그 자신이기도 했다. 불가능한 것에 대한 도전, 완성에 다가가기 위한 끊임없는 실패와 노력은 결국 새로운 조형언어의 창조로 이어졌다.

<가리키는 남자>와 같이 부피도 무게감도 없는 길고 가느다란 형상은 위태로운 현실에 처한 인간의 실체를 그 어떤 예술보다도 적확하고 신비롭게 보여주는 자코메티만의 스타일이 되었다. 이와 같은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는 당시 전후의 불안과 혼란과 맞물려, 교분이 있었던 사르트르의 평가, 베케트와의 우정 속에서 만든 <고도를 기다리며>의 나무 무대장치 등을 통해 작가 자신이 원했던 원하지 않았던 실존의 고독과 불안을 표현한 “실존주의적 실체를 담은 예술(An Art of Existential Reality)”로서 현대 조형미술사상 가장 뛰어나고 전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부와 명예를 얻고도 소박한 은둔자의 삶을 살았던 그는, 평생의 작업 공간이었던 곧 허물어질듯 한 이폴리트 맹드롱 가 46번지의 지하 작업실에서 만성 피로와 위암 등에 시달리면서도 작품에만 몰두했다.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와 깊게 파인 주름, 담배로 인한 창백하고 거친 피부는 그의 열정에 대한 흔적이기도 했지만 육체적 한계에 대한 징조이기도 했다. 결국 자코메티는 1966년 1월 11일 심장병으로 영혼을 빚던 손길의 유희를 멈추었다.

목차

찬사
머리말

1. 어린 시절, 1901~1922
1.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탄생
2. 행복한 유년기
3. 소년의 몽상
4. 첫 작품을 만들다
5. 쉬어스의 기숙학교
6. 조숙한 열정
7. 제네바 미술학교
8. 이탈리아 여행
9. 불행한 사랑
10. 비앙카의 반신상
11. 낯선 이와의 여행
12. 진로를 정하다

2. 파리 생활과 초현실주의, 1922~1935
13. 파리 생활을 시작하다
14. 미친 천재
15. 위기와 성숙
16. 플로라
17. 숟가락 여인
18. 성공적인 첫걸음
19. 남과 여
20. 초현실주의 친구들
21. 초현실주의의 새장
22. 노아유 정원의 인물
23. 첫 개인전
24. 아버지의 죽음
25. 초현실주의와의 결별

3. 도전과 시련, 1935~1945
26. 이사벨
27. 작아지는 형상
28. 찬장 위의 사과
29. 혼란의 시작
30. 피라미드 광장의 사고
31. 성냥개비만한 조각
32. 전쟁의 소용돌이
33. 점령된 파리
34. 제네바 생활
35. 전차
36. 아네트와의 만남
37. 종전

4. 자코메티 스타일의 확립, 1945~1956
38. 이사벨과의 사랑
39. 변화의 시작
40. 길고 날씬한 형상
41. 뜻하지 않은 동거
42. 뉴욕에서 성공을 거두다
43. 아네트의 초상
44. 결혼과 대작들
45. 명성을 쌓다
46. 피카소와의 갈등
47. 불화의 시작
48. 고도를 기다리며
49. 고독한 천재
50. 베네치아의 여인들

5. 영광의 날들, 1956~1966
51. 일본인 친구
52. 맨해튼 광장
53. 사라진 색채
54. 카롤린
55. 위험한 여신
56. 음향과 분노
57.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영광
58. 죽음의 문턱에서
59. 어머니의 죽음
60. 갈등의 심화
61. 지지 않는 열정
62. 영원한 파리
63. 마지막 날들

본문중에서

미친 천재 그리고 자유인
그는 머리카락을 좋아하지 않았고, 가끔은 “머리카락은 사기야!”라고 말했다. 본질적인 것, 즉 머리나 얼굴의 표정이나 시선에 주목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느 날인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아네트에게 삭발을 강요하기도 했다. 너무나 터무니없는 제안이라고 생각한 모델은, 소녀 같은 즐거움과 여성적인 곤혹스러움이 섞인 목소리로 “오, 알베르토!” 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바로 이런 반응이 알베르토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반드시 삭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p.446)

돈이 많아진 지금도 그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마지못해서, 오페라 하우스 근처의 카퓌신 대로에 있는 올드 잉글랜드라는 가게로 택시를 타고 간다. 30분쯤 후에 그는 한 세트의 새 옷을 입고 나온다. 즉 재킷, 바지, 레인코트, 넥타이, 스카프를 완전히 새 것으로 입고 나오는데, 이 모든 것이 그곳에 버리고 온 것과 완전히 똑같다. 그러나 몇 주가 지나면 대단한 눈썰미를 가진 사람들만 다르다는 것을 알아챌 만큼 원래의 것과 똑같아진다......알베르토의 자기 부정은 긍정에 대한 탐색이었고, 궁핍하게 지내기를 좋아한 것은 인생의 가장 큰 사치, 즉 정신적 자유를 누리기 위한 결심이었다.(/ pp.442~444)

자코메티 스타일
미적 위기를 겪고 있던 젊은 시절, 외재적이고 물질적인 실재는 그의 의식을 철저히 찢어놓고 깊이 파고들었다. “내 앞에 걷고 있던 두세 명의 소녀의 모습.” 그들의 모습이나 실존에 관해 이론적으로 관념적인 면은 전혀 없었다. 알베르토는 단지 시각적으로만 접촉했지만, 그들은 실체가 있었고 심지어 만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감각적 경험은 그에게 외부에 무한하고 측정 불가능한 세계, 자신과 시각적 실재와의 관계 외부에 어떤 세계, 즉 예술이나 예술가와 무관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다. 자연히 그런 인정을 한 원인이 된 장면이 끔찍한 폭력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고, 그런 경험은 사물의 의미와 관계를 변형시키는 무서운 환각처럼 보였을 것이다.(/ pp.59~60)

청동으로 만든 작품의 면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 적어도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 그것이 조각가를 닮은 것처럼 보인다. 간혹 그의 작품이 그를 닮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그 역시 부스스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울퉁불퉁하고 주름진 얼굴처럼 자기 작품의 인물을 점점 더 닮아갔다. 결국 <가리키는 남자>는 그 자신의 실존 문제를 가리키는 것이고, 더 나아가 그를 만들어낸 조물주를 가리키고 있다. 꼭 그래야 한다는 듯이.(/ pp.348)

<고도를 기다리며>의 무대 장치는 삭막했으며 단 한 그루의 나무밖에 없었다. 알베르토에게 이 나무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한 베케트는 부랑자들의 이상한 행위에 친구를 끌어들이고자 했다. 사실 알베르토는 베케트처럼, 그들과 비슷하게 오전 3시 무렵 황량한 거리를 배회하면서 우연히 고도를 만나지나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작가는 이미 두 달 전에 조각가에게 부탁의 편지를 써서, “아마도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을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가 말한 ‘모두’는 자기 자신과 제작자, 연기자뿐 아니라 캐릭터들까지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들에게 자코메티의 나무는 삶과 죽음을 상징했다. 인간이 목을 맬 수 있는 큰 가지는 재탄생을 상징하는 잎사귀들을 갖고 있었다. (/ pp.519~520)

위험한 여신
젊은 시절 알베르토는 로마에서 매춘부들과의 성 관계가 가장 만족스럽다는 것을 알게 된 이래 그런 생각을 결코 바꾸지 않았다. 그에게는 끝까지 환상과의 진정한 관계가 거부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것으로 남았다. 그래서 그는, “거리를 걷다가 멀리서 옷을 입고 있는 매춘부를 볼 때는 매춘부로 보이지만, 그녀가 방안에서 내 앞에 전라로 서 있을 때에는 여신으로 보인다”고 말하기도 했다.(/ pp.279)

알베르토와 카롤린 사이의 성적 관계는 처음부터 형식적이었다. 그녀는 언제나 기꺼이 원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알베르토는 성행위에 대한 독특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지만, 카롤린에게 너무나 순수해서 범할 수 없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성처녀이고 여신이기에 찬미만 할 뿐, 더럽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는 상황이 달랐다. 그들은 종종 쥘 샤플랭 가에 있는 빌라 카멜리아라는 눈에 잘 띄지 않는 호텔에 갔는데, 알베르토는 그곳에서 원하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pp.515)

지지 않는 열정
작품을 실으러 역으로 트럭을 보내겠다는 설치 담당자에게 알베르토는 “그럴 필요 없어요. 내가 가지고 갑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나온 약간 큰 성냥갑 안에서 겨우 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석고 형상을 꺼냈다. 브루노를 포함한 건축가들은 매우 놀라면서 불쾌함을 표현하기조차 했다. 큰 정원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받침대 위에 그렇게 작은 형상을 놓으면 거의 보이지도 않기 때문에 시각적으로 타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브루노는 형을 설득하려다가 오히려 작품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형을 믿지 못한다며 호된 꾸지람을 들었다.(/ pp.251)

“벌레 먹어 구멍이 숭숭 뚫리고 회색 가루가 잔뜩 묻은 나무로 만들어진 작업실은, 석고 조각과 약간의 철사와 잡동사니, 미술재료상에서 사왔지만 이미 오래 전에 색이 바래고 만 회색의 캔버스로 가득 차 있었다. 이 모든 것에는 먼지가 잔뜩 쌓여 있었다. 곧 쓰레기로 처분될 것 같아서 모든 것이 불안하고 붕괴되기 직전인데다 부패되어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그렇다, 이 모든 것이 마치 어떤 절대적인 존재의 소유물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작업실에서 나와 거리에 있을 때에는 주변에는 사실적인 것이 전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말해야만 하리라. 그 작업실에서는 어떤 한 사람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으며, 스스로를 소모하면서 자신의 손으로 여신들을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 pp.428)

저자소개

제임스 로드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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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로드는 2차 대전 시기에 미군 정보요원으로 복무하기 위해서 스물한 살의 나이로 프랑스에 첫 발을 디딘 후 파리에 거주하면서 자코메티를 비롯한 유럽의 유명 예술가들과 교류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85년에 쓴 이 책은 미국도서비평가상(National Book Critics Circle Award)에 노미네이트되었고, 다른 저서로 『작업실의 자코메티』(1965), 『피카소와 도라』(1993), 『여섯 명의 특별한 여인들』(1994), 『눈에 띄는 남자들』(1996), 『찬사 받을 재능』(1998) 등이 있다. 프랑스 문화에 기여한 공로로 ‘뢰종 도뇌르(명예훈장)’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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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대학원 미학과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서울대, 서울교대, 이화여대 등에서 미학과 예술철학을 강의했다. 역서로는 <비합리와 비합리적 인간 -실존주의 미학 입문>(공역), <서양무용사상사>가 있으며, 상상력과 실존주의 미학에 관한 논문들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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