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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가는 대로>의 작가 수산나 타마로의 신작 소설집. 폭력적이고 무분별한 신경질적 남자들에게 희생되는 세 여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점점 더 파괴적인 본능에 자신을 내맡기며 정체성을 고민하지 않는 현대인들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얼마나 절실하고 중요한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거리의 여자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여덟살의 나이에 고아가 된 로사의 이야기 '대답해주세요'와 알프스 산간마을에서 평온하게 살다가 도시의 부유한 남자와 결혼한 여자의 이야기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를 통해 정신의 안정을 찾은 아내를 의심하다 결국 살해하는 극도로 예민한 성격의 남자를 그린 '불타는 숲' 등 3편의 단편 수록.

4년간의 길고 힘겨운 시간
이탈리아 최고 인기 여류작가 수산나 타마로(Susanna Tamaro). 그녀는 평론가들 사이에서 현재 활동하는 작가들 중 그 누구보다도 희망적인 가능성을 지닌 작가로 인정받고 있으며, 도덕적 진실성과 특별한 감수성과 지성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글쓰기로 표현해낼 수 있는 작가로 통한다.

할머니와 손녀 사이의 따뜻한 정을 그린 격조 높은 서간문 형식의 소설 《마음 가는 대로》가 전 세계에 5백만 부 이상 팔려나간 데 이어 그 후 발표한 《아니마 문디》는 출간 일주일 만에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타마로의 작가로서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혀주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탈리아 유력 신문들도 '타마로 신드롬'이라는 특집 기사를 내보내면서 타마로와 그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기 시작했다.
우리에게도 수산나 타마로는 그리 낯선 이름이 아니다. 《마음 가는 대로》가 출간되어 20만 부라는 놀라운 판매고를 올린 때가 지난 1995년이다. 이는 당시 무라카미 하루키나 움베르트 에코를 비롯해 국내에 소개된 외국 작가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에 진입했던 것으로 기록된다.

그러나 《마음 가는 대로》 뒤에 발표한 장편소설 《아니마 문디》에 대한 평가는 이탈리아 사회에서 정반대로 갈렸다. 한쪽에서는 "수산나 타마로는 모든 종류의 감성에 철학적 옷을 입혀 내놓는다. 이탈리아 문학계는 평범한 어리석음이 있다"고 그녀를 옹호했지만 다른 쪽에서는 인종적인 편견이 심하다는 이유로 그녀를 심하게 매도했다. 이 일로 타마로는 작가로서의 모든 활동을 접고 다시는 글을 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과 함께 4년여 동안 침묵하게 된다.
이번에 출간된 《대답해주세요》(자음과모음, 이현경 옮김)는 수산나 타마로가 작가로서의 자신의 자질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긴 성찰의 시간을 보낸 뒤 발표한 작품이다.

4년여 동안의 길고 힘겨운 작업 끝에 탄생된 통상 다섯 번째 소설 《대답해주세요》는 점점 더 파괴적인 본능에 자신을 맡기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현대인에게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노력이 얼마나 절실한 것인가를 보여준다.

무분별한 폭력에 희생당하는 일상 예리하게 해부
《대답해주세요》에서는 어느 곳에서든 찾아볼 수 있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부르주아 집안, 예의와 겉치레로 포장한 위선적인 교양, 남녀간의 극심한 불평등, 구세대의 가정과 별다를 것이 없는 숨 막힐 듯한 신혼의 가정 등을 예리하게 해부하여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는 지나치게 명령적인 이데올로기 때문에 낡고 경직된 소설을 쓰는 젊은 작가들에게 등을 돌린 많은 이탈리아 독자들이 반동적이기까지 하다고 비난받는 타마로의 작품에 열광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대답해주세요》를 이루고 있는 <대답해주세요>,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불타는 숲>의 세 작품을 통해 타마로는 평범한 일상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겉으로 평온해 보이는 우리의 일상에는 항상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려버릴 수 있는 폭력들이 도사리고 있다. 물리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 그런 폭력은 우리가 예기치 못한 순간 우리를 공격해 일상을, 아니 인생 전체를 송두리째 부숴버리게 된다. 그런 무분별한 폭력의 희생자가 된 사람들의 남은 생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지옥과 같은 고통과 어둠 속에서 삶을 마감하게 될까. 아니면 어떤 계기가 있어 다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책 《대답해주세요》는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 해준다.

비극으로 점철된 세 주인공이 실수와 어둠으로 가득 찬 세상에 던지는 희망의 메시지
<대답해주세요>는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 길거리의 여자인 엄마로부터 사랑을 받으며 성장하는 로사라는 여덟 살짜리 여자 아이에게 닥친 폭력을 그리고 있다. 그 폭력은 다름 아닌 엄마의 죽음. 엄마한테서 '뽀뽀폭풍'을 받으며 잠들던 꼬마 로사는 엄마가 죽자 작은할머니 댁에 맡겨지지만 로사의 사소한 실수에도 할머니 내외는 "다리밖에 벌릴 줄 모르는 어미의 그 딸"이라고 로사를 냉대한다. 이에 냉담한 꼬마 로사는 "팔도 벌릴 줄 알았다구요"라고 엄마를 옹호하는 말을 하고 집을 뛰쳐나온다. 그 후 가정부로 머물게 된 집에서 집주인 남자한테 처음으로 아빠의 사랑을 느꼈으나 로사를 강간해 임신시킨 남자는 로사를 도벽이 있는 아이로 몰아세워 결국 집에서 쫓아낸다.

이어 두 번째 소설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역시 권위적이고 가부장적인 남편의 폭력에 대해 그리고 있다. 결혼 첫날부터 "결혼이 뭐라고 생각해? 그건 내가 널 소유한다는 뜻이야."라고 말하는 남편은 둘째아이 미켈레가 다른 남자의 아이일 거라고 의심해 한 번도 아버지로서의 정을 주지 않는다. 어느 날 미켈레는 아버지의 손찌검을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가고 이에 아버지는 뒤따라 나가 차로 치어 아이를 죽게 만든다. 이 작품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제목은 지옥이라도 있어야 남편이 벌을 받을 텐데 지옥마저 없으면 어쩌지 하는 아내의 절망적인 어조로 읽힌다.

<불타는 숲> 역시 소유욕이 병적으로 강한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아내의 이야기다. 갓 태어난 아이가 죽을 고비를 무사히 넘기자 아내는 종교를 통해 차츰 안정을 찾아가지만 남편은 오히려 그런 아내를 의심하고 마침내 들고 있던 아령을 휘둘러 아내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이렇듯 세 이야기의 주인공들의 삶은 비극적인 사건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비록 인간적인 절망과 고통에 빠져 있기는 하지만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이 형벌의 시간이 지니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고통과 절망과 고독은 밝은 삶을 준비하는 한 과정에 불과할 수도 있다.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아들 미켈레를 잃은 엄마는 그 아들이 남기고 간 편지를 통해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하며, <불타는 숲>에서 주인공은 죽은 아내와 친분이 있던 사제를 통해 지나간 삶보다는 앞으로 남아 있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수산나 타마로는 이번 작품에서 사소한 일상을 통해 운명을 이야기하고자 하며 우리의 중심을 찾을 수 있게 해주는 마음과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애쓴다. 소설의 대목대목에서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동일시하게 되는데, 작가는 실수와 어둠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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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소개

우리는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우리들 각자는 불안정함의 표본이다. 조금만 공격적인 바이러스를 만나도, 목에 조그마한 충격만 가해져도 우리는 딴세상으로 미끌어져 들어갈 수 있다. 우리는 불안정함의 화신이고 악에 유혹당하는 존재이다. 돌아가면서 차례로 악을 행할 수도 있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첫날부터 받는 유혹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랑 때문에, 게으름 때문에, 부주의해서 그 유혹을 받아들인다. 살기 위해 너를 죽인다. 갖기 위해 너를 죽인다. 너에게서 자유로워지기 위해 너를 죽인다. 권력을 사랑하기 때문에 너를 죽인다. 넌 아무 가치 없는 인간이기 때문에 너를 죽인다. 복수를 하고 싶기 때문에 너를 죽인다. 죽이는 게 기쁨을 주기 때문에 너를 죽인다. 나를 짜증나게 하기 때문에 너를 죽인다. 나 역시 살해당할 수 있다는 생각이 나서 너를 죽인다.
-<대답해주세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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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소설에 감동될 수 있는 기쁨을 안겨주는 매혹적이고도 순수한 인물, 해방된 젤소미나, 빨간머리 앤……." 몇 년 전 영화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작가 수산나 타마로를 이렇게 소개했다.

그녀는 1957년 이탈리아의 북부 도시 트리에스테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열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할머니의 손에 길러졌다. 타마로는 세상과 벽을 쳐놓고 모든 것을 내면에 간직한 채 거의 말을 하지 않는 아이로 자랐는데 이런 경험들은 《외로운 목소리를 위하여》속의 <어린 시절>에 담겨 있다.

그녀를 길렀던 할머니는 개성이 강하고 환상적인 성향이 있었던 분으로 타마로가 작가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격려해준 유일한 분이었다고 한다. 그녀의 소설 《마음 가는 대로》는 삶의 종말을 앞에 둔 80대 노인과 손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엄마와의 운명과 고통의 연결고리가 잘 나타나 있는데 그런 성장의 배경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 그녀는 "어머니와 딸의 관계는 항상 복잡하여 미묘한 몰이해가 그 관계를 가로막아버립니다. ……주인공의 딸은 극단적이고 고통스러운 인물이지요. 분명 우리 여자들은 그 딸의 시대를 통해 의식과 훨씬 더 강한 정체성을 획득할 수 있습니다"라고 설명했는데, 현재의 사건들과 과거의 사건을 연결시키며 자기방어라는 횡포한 본능의 억압을 받는 의식의 협곡에 찢겨버린 기억을 담담하게 살려내는 작가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실례라 하겠다.

십대 후반에 로마로 건너가 영화 실험 센터에서 시나리오를 공부했고 졸업 후에는 이탈리아 국영방송국에서 동물 다큐멘터리 작가로 일하면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9년 첫 번째 소설 《구름 속의 머리》가 출간되었으나 비평가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 독자들에게는 외면당한다. 그 뒤 현대의 기계문명이 황폐화시킨 자연과 동물이 세계, 동심을 찾는 환상적인 이야기인 《뚱뚱보 미켈레》와 《마법의 공원》을 출간했다.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글을 씁니다. 컴퓨터를 한 번도 쳐다보지 않고 몇 달이고 몇 년이고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지나면 제 머리가 다시 채워지고 이상한 꿈을 꿉니다. 그러면 다시 시작해야 할 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지금 타마로는 로마에서 한 시간 거리인 오르비에토의 시골 마을에서 고양와 개를 데리고 살고 있다. 가지고 있던 책을 모두 오르비에토 도서관에 기증했기 때문에 텅 비어 있는 집에서 신문도 텔레비전도 보지 않으며.

타마로는 영혼의 흐름, 존재의 의미를 완벽한 인물의 성격 기술과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는 화술로 보여주는 작가다. 그녀의 작품에는 우리 영혼 속에 비밀스럽게 간직되어 있는 치료받지 못한 고통의 흔적들이 있다.

그녀의 작품으로는 《소설 구름 속의 머리》 《러브》 《마음 가는 대로》 《아니마 문디》와 어린이를 위한 동화 《뚱뚱보 미켈레》 《마법의 공원》이 있다. 《마음 가는 대로》는 1995년 크리스티나 코멘치에 의해 영화화되었다.

옮긴이 이현경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했으며, 지금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이태리어과 강사로 재직 중이다.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수여하는 제1회 번역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 《마음 가는 대로》 《러브》 《아니마 문디》 《뚱뚱보 미켈레》(수산나 타마로), 《사랑의 학교》(에드몬도 데 아미치스), 《반쪼가리 자작》 《나무 위의 남작》 《존재하지 않는 기사》(이탈로 칼비노), 《남을 칭찬하는 사람, 헐뜯는 사람》(프란체스코 알베로니), 《카드무스와 하르모니아의 결혼》(로베르토 칼라소), 《싯다르타》(파트리치아 캔디), 《알렉산드로스》(마시모 만프레디), 《바우돌리노》(움베르토 에코) 등이 있다.

대답해주세요 ... 7

지옥은 존재하지 않는다 ... 129

불타는 숲 ... 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