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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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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판사 서평

    고추의 모든 것을 담은, '정말 맛있는 이야기'

    파란 하늘 아래 가을 햇살이 펼쳐지면, 앞마당이며 길가며 옥상까지 평평한 곳은 어디든 빨간 고추 차지다. '약이 오른' 고추는 이제 김장철의 주연급 조연으로 나설 참이다. 발효음식인 김치에서 고추의 주요한 역할은 채소나 젓갈류의 산패를 막아 알맞은 아미노산 맛을 유지하는 것. 고추가 들어온 지 겨우 400년 안팎이지만, 이미지로나 실제로나, 고추 없이 김치 없고 김치 없이 한국의 음식문화 없게 된 지 오래다.

    해마다 변동이 있지만, 한국에서 고추는 마른고추를 기준으로 약 7만5,000헥타르의 면적에서 20만여 톤이 생산되어, 전체 채소 재배면적의 22퍼센트 정도에 전체 생산액의 27퍼센트 안팎(약 1조4,500억원)을 차지하는 중요한 채소다. 전체 농축산물 가운데 벼와 돼지, 한·육우 다음의 위치다. 한 해의 1인당 소비량은 약 4킬로그램.

    고추에 열광하는 것은 한국인뿐만이 아니다. 고추는 콜럼버스가 후추를 찾아나선 서인도에서 '발견'한 이래 겨우 50년 만에 세계를 한 바퀴 돌아, 이제 지구상의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매혹시키는 '제5의 맛'이 되어 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입을 얼얼하게 만들다 못해 얼을 쏙 빼놓는 그 '지독(至毒)한 열매'에 빠져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 비밀을 푸는 열쇠 하나는 엔도르핀 이론이다. 고추가 매운 것은 캅사이신 성분 때문이다. 매운맛을 접한 혀와 입의 신경전달물질은 입안이 불탄다는 신호를 뇌로 전달하고, 후추나 생강, 고추냉이(와사비)에는 꿈쩍도 하지 않던 뇌는 반사적으로 몸의 배관시설을 최대한 가동해 캅사이신을 없애버리려 한다. 심장이 뛰고, 침과 콧물이 나오고, 위장활동이 활발해질 뿐 아니라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몸이 이렇게 되면 뇌는 상처를 입었다고 판단해 자연 진통제인 엔도르핀을 분비하고, 엔도르핀은 일종의 환각상태를 만들어낸다. 엔도르핀은 쾌감을 낳고, 사람은 더욱 매운맛에 빠져들게 된다. 고추의 마력을 설명하는 또 다른 열쇠들로는 '강요된 모험 이론', '입안 자극 이론', '입안 파도타기 이론'과 저자의 가설 '군침 분비 이론' 등이 있다.



    유명한 지휘자 주빈 메타는 고추광으로 유명해서, 가는 곳마다 성냥갑에(공식적인 자리에는 금으로 된 상자에) 고추를 가지고 다니며 음식에 넣어 먹는다. 그레고리 펙과 프랭크 시내트라의 부인, 영국 여왕과 스페인 국왕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멕시코와 인도에서는 고양이와 개, 닭, 소까지도 매운 고추를 게걸스레 먹는다. 하지만,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나머지 75퍼센트의 사람들은 왜 고추에 빠져들지 않을까. <월스트리트 저널> 기자였던 지은이 아말 나지도 스물이 되도록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매운맛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인도의 벵골에서 자란 나지는 감기에 걸리면 발버둥을 치면서 강제로 고추를 먹어야만 했지만, 여섯 살 때 아예 연을 끊고 말았다. 고추가 지천으로 널려 있던 연못가에서 코브라를 만나 질겁하고 나서였다. 고모에게 들은 "코브라는 고추 밑에 숨기를 잘해. 그래서 고추가 그렇게 독하게 매운 거야."라는 한마디가 결정타였다. 세월이 흘러, 아일랜드 유학 1년. 단조로운 그곳 음식에 질린 그에게 고추와 그 독한 매운맛이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지는 '고추, 그 맵디매운 황홀'의 세계를 찾아나섰다.

    콜럼버스가 고추를 들여간 스페인에서 '원조 고추'를 찾아 볼리비아로, 세계에서 제일 매운 아바네로를 찾아 멕시코 유카탄 지방으로, 사전에까지 오른 고추소스 '타바스코'의 상표권을 둘러싼 법정공방을 좇아 미국의 뉴멕시코까지. 나지는 페퍼 로드(pepper road)를 따라가는 동안 고추를 재배하는 농민, 식물학자, 요리사, 약학자, 의사, 고추 사업가, 고추 예찬론자들을 만나면서 1,600종에 이르는 고추와 매운맛의 과학적 분석뿐만 아니라 고추에 얽힌 역사와 문화를 종횡으로 엮어낸다.

    잉카 족은 마른고추를 쌓아놓고 불을 질러 스페인 침략자들의 눈을 일시적으로 멀게 했고, 마야 족은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고추연기 속에 집어넣는가 하면 행실이 나쁜 여자의 성기에 풋고추를 문지르기도 했다. 동시에 고추와 그 매운맛은 인디언과 인도를 비롯한 각지에서 '성욕'이나 '성적 감흥'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예를 들면, 고추의 유별나게 매운 한 품종은 아예 이름 자체가 '음경 고추'(penis pepper, Peter pepper)다. 그리고 페루 정부는 1970년 성추행사건이 잇달아 일어난 교도소의 음식에 성욕을 자극하는 고추소스를 사용하지 말도록 명령했고, 인도의 브라만 계급의 젊은이들은 '자기 정화'를 위해 매운 고추를 먹지 못하도록 되어 있었다.



    한편 고추는 예로부터 감기 및 호흡기 질환을 치료하는 데 쓰였으며, 캅사이신 성분은 진통제와 항암제로서의 효능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 브라질에서는 피멘톨로고라는 마을 치료사들이 고추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고 있다. 지은이 나지는 고추를 좇는 '페퍼 로드'에서 만난 생기 넘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을 통해 고추를 입체적으로 그려내는 가운데, 저널리스트답게 고추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충돌과 인간의 탐욕 또한 놓치지 않는다. 미국 뉴멕시코 주 해치의 고추산업은 사람들이 원하는 고추를 가려서 먹게 해주는 '맞춤고추'를 만들어주고, 식물학자와 육종학자들이 새로운 맞춤고추를 만들어낼 때마다 마을에서는 축제가 벌어진다. 하지만 유전자를 변형해 만든 커다란 고추에는 농장주와 농민 사이에 생산량과 생산성을 둘러싼 엇갈린 이해관계가 담겨 있다. 숲이 사라지는 남미 볼리비아에서 야생 고추를 찾아 고추의 원조를 밝히고 '고추 족보'를 만들어 고추 진화의 수수께끼를 풀려는 '고추사냥꾼'들의 열정의 그늘에는 자국에서 채취된 원시 식물로 개발된 개량종으로부터 소외된 개발도상국의 시름이 있다. 세계의 매운 소스 시장을 장악한 타바스코 소스를 놓고 벌어지는 100년 가까운 법정공방에는 고추를 둘러싼 인간의 탐욕이 진하게 엉겨붙어 있다.

    본문중에서

    골리앗 고추에 담긴 무서운 논리-리틀은 나를 차에 태워 자신의 고추밭으로 안내했다. 밭은 20킬로미터쯤 되는 곳에 약 5만~50만 제곱미터에 이르는 다양한 크기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리틀은 일부러 그렇게 흩어놓았다고 했다. 우박이나 폭풍우가 갑작스레 불어 닥칠 때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방편이었는데, 밭이 한 곳에 집중된다면 폭풍우가 닥쳤을 때 고추를 한꺼번에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밭은 분산시켜 놓으면 서로 다른 품종이 섞이는 것을 막아, 품종 고유의 특성을 유지하는 장점도 있다. 고추는 가루받이가 쉽게 일어나는 식물이다. 그러다보니 뜻하지 않게 옆 밭에 심은 고추 유전자가 침입해 본래의 모양과 맛과 매운 정도를 바꿔버린다.
    (/ p.89)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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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에서 번역을 전공했다. 그동안 《THE PATH(더 패스)》, 《마인드웨어》, 《성격이란 무엇인가》, 《욕망하는 지도》, 《하버드 교양 강의》, 《기후대전》, 《정의란 무엇인가》, 《신의 언어》, 《창조자들》, 《커피 견문록》 등 다수의 책을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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