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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화 100년의 전체적인 발전 과정을 살펴보는 책. 20세기 중국의 정치, 경제,문화, 역사 및 영화 역사를 분석 정리하여, 1886년부터 1996년까지 중국의 영화사를 간단명료하게 정리하였다. 이 책은 총체사적 차원에서 역사와 영화에 대한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준다. 베이징필름아카데미의 중국 영화사 교재로 쓰이고 있다.

현재 중국의 영화와 TV·비디오산업은 계획경제와 시장경제로 이원화된 관리 메커니즘에 의해 작동되고 있다. 중국의 전영국(電影局)이 관장하는 영화산업의 경우 베이징을 비롯한 전국의 40여 개 스튜디오는 여전히 국가의 쿼터 할당량에 따라 작품을 제작하고, 당국의 엄격한 검열을 거쳐 배급·상영된다. 국영 중국 영화공사의 독점체제 아래서 전형적인 계획경제방식에 따라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라디오 텔레비젼국(廣播電視局)이 관장하는 TV나 비디오는 쿼터도 없으며 검열도 훨씬 자유로운 시장경제방식을 따르고 있다. 요컨대 영화는 '혁명 선전 매체'의 전통을 지니고 있는 반면 TVㆍ비디오는 '자본주의 학습 창구'의 역사를 체현하고 있다.

중국 내부의 이러한 맥락으로부터 우리는 중국 영화 안팎의 변화가 바로 중국의 변화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중시해도 좋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중국 영화는 한국의 관객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했다. 재미가 없어서도 그랬고, 해외 출품작으로 제작된 독립영화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최신 중국 영화를 볼 기회가 적었던 이유는 이와 관련된다. 사정이 이와 같으니 당연 중국의 기념비가 될만한 작품마저도 한글 자막 처리된 자료는 매우 적다. 중국 영화의 부흥을 알렸던 「황토지(黃土地)」(1984)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러한 전후 사정 때문에 우리는 매번 국내의 영화제에 출품되는 중국 영화를 간절히 기다린다. 제2회 광주국제영상축제(www.giff.or.kr)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올해는 중국 영화에 대한 좋은 안내서를 읽고 영상축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부제 '중국 영화 백년의 역사'가 붙은 『차이나 시네마(원제 中國電影史)』(루홍스 외 저, 김정욱 옮김, 서울, 동인, 2002.8.)가 그것이다. 근자에 출간된 몇몇 유사 서적과 선명히 대비되는 역작은 본문 전체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저자의 협조를 얻어 한국의 독자를 위하여 따로 집필된 '중국 영화 연대기', '100명의 중국 감독과 배우', '연대별 중국 영화 목록'등 유용한 자료가 부록 되어 있다.

저자는 중국 영화의 역사를 저술하며 영화 한 편을 촬영하고 있다. 중국 영화사상 최초의 작품 「정군산(定軍山 DINGJUN MOUNTAIN)」(1905)의 탄생 기간을 서술하며 '페이드 인(Fade-in)'이라 하고, 개혁개방(1978) 이후 중국 영화의 부흥을 '언피니쉬드 롱 테이크(Unfinished Long Take)'라 한 수사학은 영화를 포함한 중국의 역사를 한 편의 대작 영화로 관통해 바라보는 작가의 역사의식 내지 심미안이 투영된 결과다. 이 점은 작가주의를 앞세워 세대론으로 귀착하는 서양의 중국 영화 연구자들의 시각과 뚜렷이 구별된다.

이른바 중국 영화의 세대론은 영국의 영화 평론가 토니레인즈(Tony Rayns)가 1979년 중국을 방문해 중국 영화의 사적 발전을 살펴본 후 제출한 결론이었다. 사실 그가 구분한 것은 제4세대까지인데, 소위 '5세대'·'6세대' 운운하는 중국 내외의 중국 영화발전사 시기구분은 그의 구분법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자체의 미덕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6세대'를 가르는 데 이미 무리를 노정하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중국 영화제작 환경 안팎을 두루 살펴 편년사적 서술 방식을 택한 본서와 같은 저작이 국내에 한 권쯤 꼭 소개될 필요가 있었던 터이다.

저자는 이 책이 영화를 다루는 역사적 기술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고 있다. 특히 저자의 방법론은 아날학파(Annales School)의 정신을 중국의 문화사 서술에 투영하여, 정치보다는 사회, 개인보다는 집단, 연대보다는 구조를 영화사 인식의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다. 영화가 탄생하고 성숙하는 예술적 위상에 대하여 '영화기술 체계', '경제 실체', '사회 기구', '예술 형식'을 조감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잘 마모시키지 못하는' '장기지속(la longue duree)'적인 중국의 인문 지리에 대한 균형감각을 가지고 총체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이 점은 1937-1949년간의 중국 영화 발전에 대해 서술하는 부분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페러렐 몽타주'로 개괄한 항일전쟁시기(1937-1945)의 영화와 '로케이션 프로세싱'으로 압축 기술한 국공내전시기(1945-1949)에 대해 저자는 시대 의식의 심층을 담은 다양한 영화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주목하는 「동아시아의 빛(東亞之光)」은(제110-112쪽) 근작 「귀신이 온다(鬼子來了)」(1999)의 '반어'에 버금가는 선성(先聲)에 값하는 작품으로 동아시아의 진정한 만남을 추상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다대한 가치를 지닌다. 저작이 담고 있는 이러한 예술적 심연에 대한 현재적 재조명은 다른 어떤 영화사가 가지지 못했던 미덕으로 손꼽아도 좋을 것이다.

중국 영화는 중국의 전통 예술인들 주변에서 연예(演藝)의 전통을 계승하며 싹트고 성숙했다. 「정군산」이 바로 그 인증이거니와, 저자가 블랭크 씬(Blank Scene 텅빈영화)으로 개괄한 이른바 '문화대혁명'시기(1966-1976)에 출현한 '모범극영화'에도 '노래(唱)', '대사(念)', '동작(做)', '무술(打)'과 같은 경극의 전통예술 형식이 발휘되고 있었다.(제194-195쪽) 오늘날에도 중국 서북지역의 민간 음악과 전통 회화가 영화에 출몰하여 그 자신이 영화 서사를 이끄는 점은 중국 영화예술 발전의 비밀과 중국예술의 정화의 깊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비록 한 권의 '영화사'에 지나지 않지만, 방대한 중국 현대문화사를 읽고 난 느낌을 받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번역서가 대단히 친절하다는 점도 숨길 수 없는 장점이다. 영화 매니아와 중국학 전공자 및 중국 영화 입문자를 모두 염두에 두고 중국어 영어로 영화언어를 병렬하며 번역을 진행한 곳곳에서 역자의 섬세한 배려가 확인된다. 필요한 부분마다 달려 있는 각주 및 각장 뒷부분의 참고도서 목록 그리고 '생각해 봅시다' 코너는 현대 중국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갖춘 저자의 정성이 유감 없이 발휘된 대목이다. 본문에 삽입된 스틸 사진을 포함 32장의 진기한 사진 자료 또한 한국의 독자를 위해 새로 엄선한 것들이다. 여타 중국 영화 관련 책자에 실리지 않은 희귀한 자료를 찾아 다녔을 공력이 눈에 선하다. 중국 영화사이자 한국독자를 위한 '중국 영화 사전'이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다. 홍콩, 대만의 영화사와 관련한 부분을 증보한 개정증보판이 마찬가지로 역자의 친절한 손을 거쳐 나오기를 기대한다.

저자 서문...7
한국어판 서문...9
역자 서문...11

1장 페이드 인...17
2장 포커스 인...61
3장 페러렐 몽타주...99
4장 로케이션 프로세싱...127
5장 템퍼럴-스페셜 컨버션...161
6장 블랭크 씬...191
7장 언피니쉬드 롱 테이크...203

중국 영화 연대기...275
100명의 중국 감독과 배우...303
연대별 중국 영화 목록...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