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적립 안내

부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를 넘어서>. 일본의 공예연구가인 저자가 야나기의 공예이론에 대해 전면적으로 비판하는 책. 저자는 책에서 야나기의 주장은 인간성이 무시된 이론이며, 현실에 기여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야나기 민예론에는 인간이 없다
야나기는 공예 기운데 정통이 되는 것은 '쓰임'을 목표로 하는 민중적 공예. 즉 '민예'이며, 민예의 미는 평상·건강·무심(無心)·무사(無事)의 아름다움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아름다움은 가난하고 배우지 못해 아름다움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름 없는 공인들이 작위나 미의식을 갖지 않고. 천재 개인작가의 견본작품을 따라 무심으로 반복해서 만드는 동안에 '타력(他力)'에 의해 구원되어 자품에 깃들여지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야나기 민예론속의 기물이나 인간에 대한 인식은 냉혹하기 그지없다. 만들어진 물건인 공예품은 '괴로운 인생을 달래주려고 찾아오는 자(者)'로서 의인화되며, 만드는 자인 공인은 기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주변 환경의 일부로서 존재한다. 야나기는 못 배우고 미의식을 가질 리 없는 공인이 아름다운 기물을 창조해낸다는 점이 어떻게 해도 이해되지 않았던 듯하다. 공인에게서 그와 같은 아름다움 생길 리 없다고 생각한 야나기는 거기에 뭔가 특별한 신비적인 힘이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민중이 부지런히 창조해온 전통과 기술과 거기에 포함되는 창의와 미의식을 부당하게도 민중에게서 빼앗고 그 자리에 '타력'을 집어넣었다. 그리하여 민예론 속에 남은 것은 무의식·무섬·무작위의 바보 같이 방심한 상태의 공인과 민중의 모습이었다. 아름다움을 모르는 민중은 그저 만들어내기만 할뿐이며 그것을 알아보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야나기와 미의식을 함께 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기물들이 모여 사는 사회가 있다면 이 완결된 이론 체계는 완전성까지도 갖출 것이다. 그러나 저자 이데카와 나오키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기물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점에서 기물을 이론의 중심에 두는 야나기 민예론의 기초가 잘못되었음을 비판한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운 대상을 동경하고 그것을 얻고자하며, 또한 스스로 그러한 대상을 만들어 사용해왔다. '아름다운 대상을 지니고 싶다, 만들고 싶다, 사용하고 싶다, 곁에 두고 싶다는 소망을 담당해온 것이 주로 공예분야이다. 현대사회에서 공예가 인간성을 부흥시키는 장이라는 역할을 맡아야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야나기의 미의식을 양식의 특징으로 하는 '민예 양식'을 제창
한편 야나기는 공예의 미를 간파하는 절대적인 입장이 지식이나 선입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물건'에 대한 직관'에 있다고 보았다. 공예품을 볼 때 그 작자나 전래에 관한 이끌림 없이 직시하는 것은 적절한 방법이며. 지식이나 선입관이 관점을 흐리게 하는 예는 많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직관을 중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야나기는 나아가 그 직관이 주관이 아니라 개인으로부터 벗어난 가장 확실한 객관이라고 강조한다. 따라서 야나기 자신의 직관도 다른사람과의 경계가 없는 객관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그것은. 야나기 무네요시의 직관일 뿐이다. 교양과 아름다움에서 떨어져 본적이 없는 오랜 생활과 그의 자질에 의해 길러진 야나기 독자의 것이다.

나아가 야나기는 자신의 미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거대한 이론체계를 구축했으나. 그 이론은 맹목적인 추종자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부재하며'실천이 불가능한 것이며 작금의 생산시스템·유통과정 그리고 '민중'의 생활에 대해서도 점점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 이에 저자는 독자적이며 보편성을 얻을 수 있었던 야나기의 기호라는 토대에 주목한다. 야나기의 미의식이 주목한 수집품들의 특징들을 살펴보면 소박하며 간명한 것, 과도한 장식이나 정밀한 기교가 없는 것, 재질감과 지방성이 강조된 것. 그리고 재료나 공정이 전통적이며 수작업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이론과 운동의 원점이기는 했으나 본래 그 이론과 운동에 어울리지 않았던. 야나기의 기호를 양식의 특징으로 하는 '민예 양식'을 제창한다.

민예는 '무심향' '무작위' '대량제작' '염가' 등 만들어지는 성립 과정만을 강조하면 관광지의 기념품이나 토산품으로 전락하며,‘올바름’'선함' '정직'은 윤리적인 가치에 얽매인다면 변화하는 시대에 발맞춰 적응할 수 없다. 그러한 야나기 민예론의 틀에서 벗어날 때 민예는 하나의 양식으로 발전해 나갈 것이다.

민예는 서양의 아르누보 같은 뿌리
애써 부정하고 있지만 야나기는 고딕 예술로부터 윌리엄 블레이크.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로 내려와 아르 누보에 이르는 계보를 민예론에 그대로 차용했다. 그리고 아르 누보 형성에 기폭제가 되었다고도 하는 일본의 미술공예는 그대로 야나기 민예론의 토양이었다. 아르 누보와 민예의 관계는, 이를테면 러스킨과 모리스를 부모로 하는 형제관계였던 것이다. 하지만 전자는 부모가 지녔던 자유로운 창조성을 계승한 데 비해, 후자는 '기계와 자본체제에 물들지 않은 과거에 대한 동경'을 이어받았다. 조선미에 대한 야나기의 끝없는 동경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각기 특성을 전혀 달리했는데, 가장 큰 차이점은 중심인물인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공예를 유기적인 체계로 보는 전체에 대한 비전이 없었던 점과 그의 주변 동지들 사이에서도 그런 비전이 없이 개별적인 애호나 분야별로 단품제작에 그쳤던 점이다. 그리하여 야나기의 민예론은 공예운동으로서 전개되지 못하고 양식으로서 정립되지도 못했다. 야나기나 그의 동지들은 한 양식의 기초가 될 수 있는 미의식. 다시 말해 소박함·간결함·재질감·자연스러움·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작위 등을 확실히 포착하면서 그러한 요소를 옛날 작품 속에서 추출해 이를 범분야적으로 재구축하는 작업을 행하지 않았다. 이것이 민예론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체하게 된 가장 큰 요인이다.

야나기 조선공예론을 실증적으로 비판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론은 우리 나라 예술의 미적 특질과 독자성을 처음으로 언급한 것으로서 한국 근대 미학미술사학의 형성과 전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야나기가 남긴 조선공예관이 현대에 끼친 영향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는 비애의 예술이라는 견해이며, 둘째는 조선공예의 진수로서 '곡선과 흰색’에 관한 주장이며, 셋째는 조선공예가 지니고 있는 몇 가지 성질이 민족이 '적극적인 의도’를 갖고 부여한 데서 나왔다고 해석하는 견해이다. 가장 많이 논해지는 도자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은 실증적인 비판을 전개한다.

조선 민족이 다양한 자기 중에서 특히 순백자를 적극적으로 선택해 많이 생산했다는 야나기의 견해에 대해, 저자는 조선시대에 코발트가 거의 생산되지 않았던 물리적 요인과 간결을 지향하는 제기로서 백자가 주로 사용되었던 사회적 요인 때문에 백자가 많이 생산됐다고 논증하고 있다. 또한 흰색에 대한 민족의 감성이 예리하여 미묘하게 다른 빛깔의 다양한 백자를 만들어냈다는 견해에 대해서는 500년에 걸쳐 각지에서 무수히 만들어졌기 때문에 색조가 다른 것은 당연하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밖에도 '추초문'을 조선 공예의 대표적 문양으로 보는 것은 그것이 '애수의 조선'을 말하기에 가장 어울리는 호칭이었기 때문일 뿐 실제로는 현란하게 피어 자태를 뽐내는 모란문이 훨씬 더 많으며. 야나기가 감춰진 문양이라고 말하는 상감기법은 오히려 문양을 확실히 나타내려는 의도를 갖고 있으며 실제 문양도 그러하다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러한 비판은 야나기처럼 직관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의 역사를 세로 좌표로 하고 동시대 다른 나라의 공예나 다른 공예분야를 가로 좌표로 하여 실증적으로 분석하는 객관적 방법에 따른 것이다.

한 민족의 공예 전반에서 양적으로나 범분야적으로 몇 가지 특징을 뽑아낼 수 있겠으나, 그것은 그 시대와 민족의 공예에 대한 기호를 반영하는 것이지 민족감정을 말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일본의 대표적인 공예품이 철기(浚器)이며 상복과 예복도 검은색이라는 데에서 일본인의 민족적 심정이 검은색에 깃들여 있으며 그로써 민중의 절망을 나타낸다고 할 수 없듯이. 이제 그러한 막연한 감상적 전통관이나 민족주의적 시각 또는 그에 바탕을 둔 제작행위 등에서 벗어나 현실 속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공예관의 수립이 절실하다고 하겠다.

일본에서의 반향
이 책은 출간된 후 논리적이고 명쾌한 문체와 함께 무엇보다도 구체척으로 제시하는 민예론의 사례와 공예물 자체를 통해서 보는 실증적 해석으로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아사히신문과 NHK의 <학예전망>등에 찬의에 가득 찬 서평이 계속 소개되었으며, 일본에서 가장 많은 독자층을 갖고 있는 역시소설가 시바 료타로(司馬避太郞)는 구라시키(會數)민예관을 방문했을 때 그곳 관장의 야나기에 대한 맹목 적인 도취에 놀랐던 체험담과 함께 이 책으로 그 동안의 몽매함을 떨쳐냈다는 내용의 서신을 저자에게 보내기도 했다. 공예연구가인 요시다 미쓰쿠니(吉田光判)씨도 전면적인 동감을 표하며 '앞으로 민예는 이 책을 언급하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평했다.

무엇보다 가장 의미 있는 반응은 이 책의 진정한 독자인 '만드는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목칠공예가, 도예가. 염직공예가들로부터 '지금까지 만드는 자인 자신과 민예론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으로 고민했는데, 이제 즐겁게 자신을 연마해 제작에 임할 수 있겠다”는 의견이었다. 이 책의 큰 목적이 이루어진 셈이다.

인간 부흥의 공예를 위하여
민예론의 가장 큰 결점은 그 이론 체계 속에 진정한 인간이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인간의 형태를 가장한 물건이 있을 뿐이다. 피가 흐르는 인간성을 가진 인간이 아니며, 공인도, 사용자도, 민중도 감정과 욕망을 갖고 하루하루 생활하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냐 공예는 인간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인간성을 인정하지 않는 곳에서 공예론은 성립되지 않는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을 '순수한 눈으로’고찰한 결과 그것이 인간성이 무시된 이론이며 현실 사회에 기여할 수 없는 이론이라고 판단하여 전면적으로 부정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순으로 가득 찬 이론이 소리내며 붕괴한 자리에 미래에 지속될 하나의 양식으로서 '민예 양식'을 제창한다. 이제 야나기 무네요시가 찾아낸 아름다움은 현대에 적응한 형태로 자유로이 추구될 것이다. 더불어 공예는 인간성에 입각해 이를 유지하고 신장하는 새로운 역할, 즉 '인간 부흥'의 장이라는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