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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이의 종이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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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나는 지금, 솜이가 종이 피아노를 톡톡 두드리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페이지(앵두가 가득 들어있는 우산을 낑낑 드는 솜이의 모습이 그려진)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본다. 일년에 한번쯤 비 대신 앵두가 떨어진다면 얼마나 신이 날까? 일년에 한번쯤은 날아다닐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솜이의 종이 피아노> 속에는 이런 맑고 상큼한 이야기와 그림들이 가득 들어 있어 우리의 영혼 주머니를 콕콕 찌르며 상상의 몸통을 살찌운다.

황언니 옆에서 자작거리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이 책이 제본되기 전, 살짝 먼저 훔쳐 본 적도 있고, 또 PAPER로 실려온 갓 구워낸 책을 다른 독자들보다 먼저 시식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이 책의 맛은 달콤하고 따뜻하고 상큼하며, 짭쪼름한 눈물 방울의 맛, 가슴 언저리를 저릿하게 만드는 감동의 맛이다. 그래서 씁쓸하고 척박한, 세상의 맛을 알기 이전의 세월로 나를 전송시켜 준다. 흔히 내 취향을 간파하고 있는 사람들은 나와 <솜이의 종이 피아노> 같은 책이 킬러와 오르골처럼 절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특별하게 제조된아름다운이야기들과 그림에 난, 단번에 매료되었다. 생각해 보라, 탐미주의자인 내가 이 책에 사로잡히지 않기란, 냄새 좋은 꽃미남을 코앞에 두고 키스 못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은 괴물처럼 성장해 버린 나에게도 어린 시절이 존재했고, 유년의 시절, 즉 인식의 성장 단계에서 마주쳤던 모든 정물들에게서 뿜어져 나온 이미지와 향기, 색깔, 느낌 등은 아직까지도 내 뇌세포를 점거하여 나를 유지시키는 원초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솜이의 종이 피아노>에는 이런 이미지, 향기, 색깔, 느낌들이 농축되어 있어 나이 들어 시시각각 굳어지는 뇌를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다보면, 맨발로 흙길을 걷고 싶어지고, 조그만 잎사귀를 품고 있는 화분을 사고 싶어지고, 풍선을 불고 싶어지고, 친한 친구한테 엽서라도 쓰고 싶어진다. 그리고 쪽빛 하늘을 보며 말간 눈물을 흘리고 싶어지기도 한다.

혹여 이 책이 유아용인지 어린이용인지 성인용인지 분간을 못하는 분, 또 그림책인지 시인지 소설인지 헷갈리는 분들이 계시다면, 그 고답적인 분류를 포기하기 바란다. <어린왕자>가 외로운 사막에서장미 한송이와 여우를 통해 사랑과 인간 관계를 은유하며 사람들에게 감동으로 기억됐다면, <솜이의 종이 피아노> 또한 종이 피아노를 치며 꿈을 키우는 솜이를 통해 아이든 어른이든 읽는 이 모두에게 눈이 부실 정도로 기분 좋은 처방전이 돼 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책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황경신의 단편 소설들은 짤막하지만, 꿈의 역할과 보이지 않는 것들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무형의 선물들이 얼마나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는지 작은 멜로디로 대변해 준다. 최현정의 콱 깨물고 싶은 그림들에 대한 칭찬은 두 말하면 잔소리, 그냥 접어 둘란다. 그나저나 나도 시월의 요스터파파쿠르쿠르 공원에 가고 싶다. 당신과 함께….

정유희 기자 (월간 PAPER)

목차

1. 무거워
2. 쓸쓸해
3. 심심해
4. 따뜻해
5. 재밌어
6. 좋아해
7. 궁금해

본문중에서

그것은 신문과 함께 배달된 여러 종류의 광고전단들 틈에 끼여 있었다. 그날따라 광고전단은 신문보다 더 두꺼워 보였고, 나는 그것들을 통째로 휴지통에 집어넣으려던 참이었다. 그때 조그마한 광고전단 하나가 뭉치 속에서 툭, 하고 떨어졌다. 다른 광고 전단에 비해 조금 두껍고, 조금 작은 사이즈였다. 나는 무심히 그 종이를 집어 올렸다. 종이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단단히 정제된 슬픔을 가져오시면, 기쁨과 바꿔 드립니다> 처음에, 나는 그것이 단지 약간 기묘한 카피라고 생각했다. ||^꽤 독특하군.||^하는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무슨 상품을 위한 카피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종이에는 상품에 대한 설명이 전혀 나와있지 않았다. 단지 약간 낯선 기차 하나가 그려져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정교한 그림이어서, 나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분명히 섬세한 펜으로 그린 것인데, 어찌나 생동감이 넘쳐 보이던지, 금방이라도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시원스럽게 달려갈 것만 같았다. 기차 그림 아래쪽에는, 거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작은 글씨가 박혀 있었다. <당신을 방문할 증기기관차. 실제 사이즈임> 그래서 나는 수화기를 들고, 전단에 나와있는 전화번호를 눌렀다.

신호는 정확하게 두 번 울렸고, 곧 이어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증기기관차 프로젝트입니다." 나는 잠깐 망설였다. 수화기 저쪽에 있는 남자가 다시 말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저..광고를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네에, 기쁨이 필요하십니까?" "아..그건.." 나는 잠깐 생각했다. 기쁨이 딱히 필요없는 것은 아니었다. "네, 그래요." "그럼 슬픔을 갖고 계십니까? 광고지에도 나와 있지만, 저희는 슬픔을 가져오시는 분에 한해서 기쁨과 교환해드립니다." 나는 다시 생각했다. 생각하면, 나에게도 한두 개의 슬픔쯤은 있겠지. 하지만 이게 도대체 무슨 대화란 말인가. 나는 잠시 침묵했던것 같다. 수화기 저편에서 조심스럽게 대답을 재촉했다. "슬픔을 갖고 계십니까?" "네, 갖고 있어요." 될 대로 되라. "정제된 슬픔입니까?" 거기까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없을께 뻔하니까. 나는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 할 수 밖에 없었다. "네, 그래요." "단단히 정제된 슬픔입니까?" 남자가 다시 확인했다. "네, 아마.." "그럼 사흘 수 이 시간에 슬픔을 실어 나를 증기기관차를 댁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보내주신 슬픔을 검토한 후 단단히 정제된 슬픔이라고 판단되면, 증기기관차에 저희가 준비한 기쁨을 실어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반드시 단단히 정제된 슬픔이어야 합니다." 찰칵, 전화는 끊어졌다.

(쓸쓸해 /p.38-39)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5.09.14~
출생지 부산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35,493권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그림 같은 세상], [모두에게 해피엔딩], [초콜릿 우체국], [세븐틴], [그림 같은 신화], [생각이 나서], [위로의 레시피], [눈을 감으면], [밤 열한 시], [반짝반짝 변주곡], [한입 코끼리],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국경의 도서관],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등의 책을 펴냈다.

저자의 다른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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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75
출생지 경기도 하남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공주대학교, 일본 교토 세이카 대학과 동대학원에서 만화를 공부하신 최현정 작가님은 팬시 캐릭터 디자이너를 거쳐 프리랜서 작가로 잡지·교과서·단행본 등에 만화와 일러스트를 그렸습니다. 만화로 그리스도의 복음과 사랑을 전하는 일, 유학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한일 양국의 이해와 공존을 위한 가교 역할에도 관심을 갖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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