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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기 좋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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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김애란
  • 출판사 : 열림원
  • 발행 : 2019년 07월 05일
  • 쪽수 : 304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9117040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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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두근두근 내 인생』, 『비행운』, 『바깥은 여름』 저자 김애란의 첫 산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

사람의 이름, 풍경의 이름, 사건의 이름……
작가 김애란의 한 시절과 고민, 마음이 담긴 이야기들


소설을 통해 내면의 모순을 비추어보며 사람에 대한 성찰을 완성해온 작가 김애란이 소설가, 학생, 딸, 아내, 시민,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고백한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들』이 열림원에서 출간되었다. 김애란은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과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을 통해 명랑한 상상력이 넘치는 생동감 있는 작품으로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왔다. ‘1부 나를 부른 이름’은 작가의 성장과 가족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부터 대학 시절, 문학청년 시절, 성장기 환경에 대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2부 너와 부른 이름들’은 작가가 주변 인물들과 타인에 관해 쓴 글이다. 동료 문인들을 비롯하여 작가 자신의 주변에 대한 깊이 있는 눈길을 담아낸다.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은 문학 관련 글과 개인적인 경험담을 모았다. 작가가 지나쳐온 여행과 인생의 순간들에 대한 비망록이 돋보인다.

작가 자신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그 자신의 이야기에는 때로 서러운 음색으로, 때로 구성진 입담으로 다가온다. 자신을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한 이야기인 동시에,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김애란은 특유의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2002년 등단한 이후 만 17년여라는 시간 동안 김애란이 기록해온 김애란의 다채로운 진면목이 속속들이 담겨 있다. 김애란은 말한다. 어디 먼 데 가지 말고 우리 삶에서부터 살펴보자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은 어디 엉뚱한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버리고 만 김애란 작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우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고서야 김애란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모두 기억되어야 할 이름으로 문학을 쓰고 삶을 살아간다고,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저는 여전히 어떤 이름들을 잘 모르고
삶을 자주 오해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 호명하려다
끝내 잘못 부른 이름도 적지 않고요.

이 책에는 그런 저의 한 시절과 무능 그리고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게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다 드물게 만난 눈부신 순간도요.

그 이름과 시간을 오래 기억하고 싶어 여기 적습니다.
('작가의 말' 중에서)

출판사 서평

김애란이라는 여름
우리가 체험해야 할 새로운 계절의 온도


여름을 닮은 작가, 김애란의 첫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뜨거운 여름의 문턱에서 출간되었다. 김애란은 2002년 등단 이후 지금까지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 속에서 각양각색으로 바뀌어 가는 가족의 변화와 그 속에 깃든 ‘나’의 목소리를 발굴해왔다. 가족에의 사랑이나 청춘의 성장 및 애환과 같은 보편적인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것은 물론 소수자 문제라든가 존재의 고독처럼 무게감 있는 주제도 서슴없이 꺼내놓았다. 그의 소설에서는 인간에 대한 따뜻하고 웅숭깊은 눈길이 구성진 입말의 문장들로 배어나고 통찰력 있는 직시가 무거운 이야기들로 풀어져 나오기도 한다. 현실에 대한 살펴보는 날카로운 시선과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상상하는 자아의 마음을 따뜻하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통해, 김애란은 한국 문학의 가장 열렬한 온도가 되었다.

「달려라, 아비」에서 독자들에게 명랑한 상상력을 보여줬던 주인공, 물결치는 파란 바다를 연상케 하는 「비행운」의 푸른 겉표지는 모두 때로 싱그럽고 때로 뜨거운 생동감으로 넘쳐난다. [바깥은 여름」에서는 아예 제목부터 여름을 드러내놓고 걸어두었다. 「잊기 좋은 이름」에 실린 작가 김애란의 글들 역시 뜨겁고 싱그러운 기운으로 넘쳐난다. 이번 산문집에서 작가는 사람들이 쉽게 볼 수 있었던 소설가로서의 얼굴 너머 소녀로서의 얼굴, 학생으로서의 얼굴, 딸로서의 얼굴, 아내로서의 얼굴, 시민으로서의 얼굴, 인간으로서의 얼굴 등 다양한 면모들을 기록했다. 김애란의 소설 세계를 관통해온 독자들은 잘 알 것이다. 그녀가 그동안 펼쳐온 이야기들마다 사람들을 감싸 안는 따스함과 그 속에 감추어진 뚜렷한 문제의식과 당찬 목소리를. 그 뜨거움으로 한국문학은 지금, 여기서 한창 달아오를 수 있었다. 이제, 김애란이 그동안 꺼내본 적 없는 이야기들을 이곳에 풀어놓는다. 우리가 한 차례도 겪어본 적 없는 계절이, 그 온도가 여기에 스며들고 있다.

사람에 대한, 사람에 의한, 사람의 이야기……
김애란을 이루는 무수한 사람들의 사연들


김애란은 소설을 통해 내면의 모순을 비추어보며 슬퍼하는 깊이 있는 시선을 바탕으로 사람에 대한 성찰을 완성해내곤 한다.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필연과 우연 사이, 그 서글픈 심정들을 들여다보는 눈길을 가지고 이야기의 옷감을 한 땀 한 땀 기워 입는 솜씨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랬던 김애란이, 이번에는 자신의 삶을 고백한다. 나지막한 목소리도 있는가 하면, 서러운 음색도 들리고, 구성진 입담도 있다. 유년 시절 또는 대학 시절의 추억담을 풀어놓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겪은 부모님과의 이야기나 가족들과의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꺼내놓기도 한다. 이제 만 17년 경력의 소설가답게 시와 소설을 비롯한 문학에 대한 사유를 천착하거나 우리말에서 눈여겨볼 만한 어휘에 대한 단상을 적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주변의 시인이나 소설가 들을 깊이 들여다본 글들도 있다.
나를 둘러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자, 나라는 사람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한 이야기인 동시에, 잊은 사람들의 이야기, 그 속에서 김애란은 특유의 섬세하고 따스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그러니까 이 책은, 김애란이라는 사람에 관한 책이면서 김애란의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수많은 이름 중 유독 잊을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이름
‘나’를 이야기하려 먼 나라, 먼 타인, 먼 기억들을 에둘러 간다


김애란이 꺼내는 사람들은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있다. 아니, 김애란에 의해 개성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김애란은 자신의 은총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 원래 타고난 개성이 있다고, 그 사연을 끄집어내는 역할을 해줄 뿐이라고 나직이 말한다. 오죽하면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까지도 특별히 바라볼 줄 아는 법을 보여줄까 싶을 정도다.

고대 황진구 씨는 그해 무사히 졸업했을까? 그리고 두 사람은 그 뒤로도 계속 만났을까? 헤어졌을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조금 감상적인 충동이 일었다. 그리고 그 충동은 이내 이들의 안부를 확인하고 싶다는 철없는 만용으로 변했다. 수강신청서 하단에 두 사람의 집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좀 고민했다. 자칫 무례하고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무례하고 이상한 짓이 맞았다. 그런데 그땐 혼자 드라마틱한 상상에 취해서인지 치기 탓인지 그들 중 누군가에게 ‘내가 우연히 10년 전 당신들 수강신청서를 발견했는데 원한다면 우편으로 돌려드리겠다’라는 얘기를 전하고 싶었다. 과거로 돌아간다면 말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아무튼 나는 먼저 황진구에게 전화를 걸어보기로 했다. 신호음이 가자 가슴이 뛰었다.
('여름의 풍속' 중에서/ pp.69~70)

그러나 역시 김애란의 통찰력은 가장 가까운 이들(가족)에서 빛난다. 가슴을 뜨겁게 하는 이름인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와 나누는 수십 수백 마디의 대화들이 등장한다. 그 순간순간은 자그맣고 사소하지만, 김애란의 깨달음은 친숙한 사람들을 거치고 난 것이라서 더더욱 달고 농밀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의 깨달음을 나누는 가족들과의 소통을 김애란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광화문 교보빌딩에서 시상식을 마친 날, 어머니는 살짝 취기 어린 얼굴로 기분 좋게 말씀하셨다.
– 애란아, 내가 서울 가서 뭘 느낀 줄 아냐?
나는 어머니가 대처에서 무엇을 느끼셨는지 참으로 궁금하였다.
– 우리 친목회에선 배운 사람일수록 목소리를 크게 하고 발언을 많이 하는데 거기선 모두가 목소리 삼분지 일만 내고서도 대단한 말들을 하더라. 확실히 지식인들이라 다른 모양이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데 맞는 말인가 보다. 그래서 앞으로
나도 목소리를 작게 내야겠다고 결심했다.
('현수막 휘날리며' 중에서/ pp.82~83)

김애란은 자신이 태어난 근원에서부터 가족사적인 내력까지 훑어보는 진득한 눈길을 우리에게 돌린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로맨스는 물론이고, 형제자매 간의 우애와 혼자 독립하며 끈끈한 가족의 정을 깨우치던 시간까지, 빠짐없이 그녀의 기록에 고스란히 담긴다.

오래전 한 처녀가 한 총각과 헤어진 뒤 혼자 들어간 길을, 그날 다섯 식구가 함께 걸어 나왔다. 언제나 비슷한 문제로 싸우고 비슷한 문제로 연민하며 비슷한 문제로 헤어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부부와 많이 울고 많이 먹고 자란 세 아이가. 비도 오지 않고 천둥도 치지 않는 맑은 가을밤을 그렇게 걸어 나왔다. 달이 어지간히 기울어진 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추석이었으니 가장 커다란 달이 뜬 밤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흰 꽃처럼 흐드러졌을 달빛들. 길, 그리고 이야기의 번식. 들어가는 길과 나오는 길이 같다는 이상함.
('안아볼 무렵' 중에서/ pp.120~121)

이 기록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자신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의 아픔과 슬픔을 함께 누릴 때의 가치를 이야기하곤 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루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진심 어린 공감과 잔잔한 위로가 깔려 있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떠올리는 그녀의 기억에는 참혹한 현실에 대한 용기 있는 저항이 담겨 있다. 강원도 인제의 만해문학관에 머물며 동료 문인들과 어우러져 지내다가 합창단의 노래를 현장에서 전해 듣던 일화를 읊어주는가 하면, 대학에서 가르칠 때 어느 학생으로부터 받았던 연필 한 자루를 통해 타인과의 ‘이해’를 좀 더 곱씹어본다. 결국, 나를 떠나와 멀리 가더라도, 끝내는 나의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톺아보아야 깨달을 수 있는 세상살이의 간단한 이치가 있는 것이다.

연필 쥔 손에 힘을 주면 책에 흐릿한 홈이 파인다. 그 홈에는 내가 어느 문장에 줄 그은 순간 느낀 시간과 감정이 고인다. 그래서 가끔 그 홈이 물고랑 밭고랑 할 때 ‘고랑’처럼 느껴진다. 나와 나 자신을, 현재와 과거를, 우리와 타자를 잇는 먹 고랑처럼.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 이야기도 언젠가 두보의 시구처럼 누군가의 삶과 만나게 될까? 그럴 수 있다면 좋겠다. 그 스침이 혹 꽃잎 한 장의 무게밖에 갖지 못한다 해도. 이야기의 이어달리기, 이야기의 배턴터치가 계속되길 빈다. 대부분 연필이 길고 둥근 이유도 실은 그 때문이지 않을까 상상하면서.
('점, 선, 면, 겹' 중에서/ p.254)

그러니까 김애란은, 어디 먼 데 가지 말고 우리 삶에서부터 살펴보자고,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은 어디 엉뚱한 데 있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당연하다는 듯이 잊어버리고 만 김애란 작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고, 우리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고서야 김애란은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힘주어 말한다. 모두 기억되어야 할 이름으로 문학을 쓰고 삶을 살아간다고, 잊기 좋은 이름은 없다고.

▶ 주요 내용

이 책은 김애란의 진짜 이름을 찾아내는 스무 고개와도 같다. 유년 시절에 대한 이야기, 성장 환경에 대한 이야기, 문학을 공부하던 이야기, 친구에 대한 이야기, 문학과 창작에 대한 이야기, 동료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 책에 대한 이야기, 언어에 대한 이야기 등등. 무수한 주제로 늘어뜨린 삶에 대한 김애란의 만담이 ‘나를 부른 이름’, ‘너와 부른 이름’, ‘우릴 부른 이름들’이라는 세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다.

1부 ‘나를 부른 이름’은 김애란 작가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대학 시절, 문학청년 시절, 성장과 환경에 대한 사연들로 가득하다. 가령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지금 여기」에서는 성장기를 여름에 비유하여 90년대 성장기에 듣던 가요들에 대한 추억을 다룬다. 가령 ‘듀스’의 <여름 안에서>를 통해 상급생 오빠와 수줍고 소극적인 교제를 시작했다가 보름 만에 끝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잔한 사연이랄지, 중학교에 진학한 뒤 교내 유일 남녀합반에 들어가 듀스를 좋아하는 남자애와 가요 테이프를 빌려주며 쌓인 애정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노래와 춤으로 이어진 감정의 동력을 회고하며, 김애란 작가는 성장기로서의 여름을 이야기한다.

2부 ‘너와 부른 이름’에는 동료 문인들을 비롯하여 김애란 작가 자신의 주변에 대한 깊이 있는 눈길을 담아낸다. 「연호관념사전」에서는 난해한 시로 유명한 조연호 시인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넣은 사연을 이야기한다. 암호 또는 신호와 같은 키워드로 나누어진 글 속에서 ‘시’라는 전위의 예술을 사는 동료 문인에 대한 동경이 느껴진다. 「여름의 속셈」에서는 가까운 선배 소설가인 김연수 작가에 대한 공감 있는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녀에게 휘파람」에서는 절친한 동료 소설가 편혜영 작가에 대한 애정 어린 사연을, 「말(言) 주변에서, 말주변 찾기」에서는 하늘 같은 선배 문인인 고(故) 박완서 작가에 대한 존경 담긴 회상을, 「그녀의 푸른 손」에서는 친숙한 선배 문인 윤성희 작가에 대한 따스한 감사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3부 ‘우릴 부른 이름들’에서는 김애란 작가가 지나쳐온 여행과 인생의 순간들에 대한 비망록이 돋보인다. 「알록달록한 점점」과 「리듬의 방향」 같은 글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수도 에든버러라든지 폴란드의 바르샤바와 그단스크 같은 해외 곳곳을 돌아다닌 여정 속에서 만난 이색적인 풍경 속의 익숙한 통찰에 대해 터놓는다. 그런가 하면 폴란드에 들러 대문호 귄터 그라스가 지은 「양철북」을 따라가는 가운데 먼 곳에서의 삶 또한 우리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깨달음을 들려준다. 자신으로부터 멀리 떠나갔다가 가장 깊은 곳에 돌아오는 여정, 글쓰기의 자리에 어김없이 서 있노라고 속삭이는 것이다.

목차

1부 나를 부른 이름
나를 키운 팔 할은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지금 여기
야간비행
한여름 밤의 라디오
당신과 조우
속삭임
여름의 풍속
기우뚱–하다
현수막 휘날리며
부사副詞와 인사
나의 기원, 그의 연애
말의 약점
카드놀이
초겨울
안아볼 무렵
몸과 바람

2부 너와 부른 이름
생일 축하
여름의 속셈
그녀에게 휘파람
연호관념사전
말言 주변에서, 말주변 찾기
그녀의 푸른 손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 헤르타 뮐러, 『숨그네』
두근두근 산해경山海經

3부 우릴 부른 이름들
알록달록한 점점點點
리듬의 방향
–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과 폴란드 북부도시 그단스크
문장 영향권
점, 선, 면, 겹
기우는 봄, 우리가 본 것
아는 얘기, 모르는 노래
빛과 빚
잊기 좋은 이름
-단편 「물속 골리앗」 작가노트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고3 여름방학 때 나는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몰래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그건 내가 부모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정적 거짓말이었다. 나를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이 할,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내 몸과 마음을 길러준 팔 할, 갈수록 뼈가 닳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가는 그 팔 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나를 키운 팔 할은' 중에서/ pp.14~15)

나는 뮤직비디오 속 인물들처럼 근사한 비애도, 처참한 아픔도 한번 빠짐없이 느껴 보고 싶었다. 그런데 마침 내게 ‘사귀자’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름도 모르고 얼굴도 처음 보는 어느 상급생 오빠였다. 나는 운동장 멀리서 그 오빠의 얼굴을 한 번 확인한 뒤 소식을 전하러 온 ‘방자’에게 무턱대고 ‘알았다’고 했다. 그러곤 무척 내성적인 데다 수줍음이 많았으리라 짐작되는 그 오빠와 소극적인 교제를 시작했다…… 보름 만에 끝냈다. ‘그만하자’ 얘기한 건 내 쪽이었는데(뭘 시작했다고), 그즈음 교내 체육대회에서 그 오빠가 줄다리기를 하는 동안 거친 숨을 몰아쉬는 또래들 틈에서 너무 매가리 없이 휘청대고 끌려가는 걸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꿈꿔온 순간이 지금 여기' 중에서/ pp.17~18)

비록 고향을 떠나긴 했지만 나는 내 몫의 그 작은 어둠과 고요가 마음에 들었다. 나는 내 몸에 꼭 맞는 육면六面의 어둠 속에서, 내 가슴팍을 향해 하늘에서 닻처럼 내려온 형광등 줄의 흔들거림을 바라보며 가만히 누워 있는 걸 좋아했다. 딸각이는 스위치 소리 한 번에 세계는 일순 조용해졌고, 나는 반듯이 누워 두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럴 때면 언제나 지나간 빛을 한껏 빨아 통통해진 야광별이 천장에서 총총 빛났다. ‘중국의 붉은 별’도 루카치의 별도 아닌, 납작 엎드려 가까스로 빛나던 형광 스티커들.
(……중략……)
모처럼 찾아온 고요 속에서 아늑한 어둠을 방해하는 발광물질을 보며 나는 심란해했다.
(……중략……)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나는 거기 별이 있단 사실을 묵묵히 받아들여야 했다. 약하고 조금은 천박하지만 그것들이 항상 빛 가까이에 있으려 한다는 사실과 함께. 그곳을 떠난 지 몇 해가 지났고 그 방은 이미 헐려 사라졌지만 이따금 나는 내 성정의 경박하고 아름다운 어떤 부분, 내가 껴안는 상스러움의 많은 부분은 그 별들의 영향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야간비행' 중에서/ pp.28~30)

30여 년 전, 그러니까 1970년대 말 충청남도 서산시 대산읍 독곶면 독곶리에 한 송방에서,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송방 한쪽에 딸린 온돌에서, 어머니와 아버지는 소개팅을 했다.
“뭐?”
‘온돌’과 ‘소개팅’이라는 단어를 나란히 접한 내가 말꼬리를 올렸다. 주선자 둘, 당사자 둘, 청춘남녀 네 명이 좁은 온돌방에 옹기종기 앉아 어색하게 인사 나눴을 상상을 하니 내가 다 쑥스러워진 까닭이었다. 그건 뭐랄까. 마치 각 나라 작가들이 일본 전통난로인 ‘코타츠’ 주위에 모여앉아 담요를 덮고 귤을 까먹으며 진지하게 문학을 논하는 풍경과 비슷할 것 같았다.
('카드놀이' 중에서/ p.102)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거라 생각한 적이 있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을 테니까. 살아 있는 사람이 사는 동안 읽는 글이니 그렇고, 글에 담긴 시간을 함께 ‘살아낸’ 거니 그럴 거다.
('여름의 속셈' 중에서/ p.141)

오래전 나는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로 신애를 택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녀를 어떤 인물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신애는 ‘쪼그려 앉은’ 여자다. …… (중략)…… 그러니 누군가 신애를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그녀가 지금, 거기, 쪼그려 앉아 있기 때문이라고.
요 며칠 방에 혼자 있을 때면, 신애의 웅크린 뒷모습이 계속 아른댔다.
사실 난 신애가 좀 두려웠다.
하지만 이제 그녀 곁에 다가가 나란히 쪼그려 앉아 보려한다.
그러곤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그녀의 옆얼굴을 보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볼 생각이다.
당신, 대체, 거기서
무얼 그리 열심히 보는 거냐고.

세상에 ‘잊지 좋은’ 이름은 없다.
('잊기 좋은 이름' 중에서/ pp.299~30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80~
출생지 인천
출간도서 45종
판매수 92,021권

1980년 인천에서 태어나 충남 서산에서 자랐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극작과를 졸업했다. 2002년 단편 「노크하지 않는 집」으로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고 같은 작품을 2003년 『창작과비평』 봄호에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달려라, 아비』 『침이 고인다』 『비행운』 『바깥은 여름』, 장편소설 『두근두근 내 인생』, 산문집 『잊기 좋은 이름』이 있다.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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