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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밥상 : 공지영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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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다시 지리산으로 걸음을 옮긴 공지영 작가의 신작 에세이.

누구나 그렇듯, 외로움에 목이 메어왔던 밥상이 있었고, 불구덩이처럼 힘겨웠던 밥상이 있었을 것이다. 공지영 작가의 신작 에세이 『시인의 밥상』은 《지리산 행복학교》이후 지리산으로의 발걸음을 끊었던 저자가 다시 매달 그곳으로 가 박남준 시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 위에서 나누던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지리산까지 가서 시인의 밥상을 받기로 한 작가의 결정은 잘한 것이었을까? 작가를 맞았던 건 어떤 밥상이었을까?

이 책에는 시인이 차려내는 소박하고도 따뜻한 엄마의 보드라운 손길 같은 스물네 가지 음식과 그 음식을 맛보며 써낸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글이 담겨있다. 음식도 그걸 만든 사람의 성정을 닮듯, 우리는 시인의 음식과 작가의 글에서 무언가 다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건 노골적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섬세한 이들에게만 선물처럼 주어지는 구수하고 뭉근한 사람 냄새다.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다.

출판사 서평

쓸쓸한 당신에게 드리는
소박한 밥상 하나, 오래된 생각 하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
공지영 신작 에세이, 《시인의 밥상》


“오늘 나는 찻물을 우리고 밥을 말아서 들기름에 볶은 김치랑 단출히 아침을 먹는다. 땅에 뿌리박은 모든 것들은 땅에서 길어 올린 것들을 도로 내놓고 땅으로 돌아간다.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모든 것을 버린 사람이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아무것도 욕심내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쓰는 1년 동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들과 함께했다. 오늘 새벽 미사를 다녀오는데 바람이 홀연 차고, 나뭇가지들에 달린 잎새들이 올가을 들어 처음 와드득와드득 떨었다. 깊은 가을 내 나이…… 나쁘지 않다. 혹시 오늘도 혼자 밥을 먹는, 모든 쓸쓸하고 서러운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_작가의 말에서

공지영 작가의 에세이 《시인의 밥상》이 출간되었다. 《지리산 행복학교》 이후 지리산으로의 발걸음을 끊었던 작가는 다시 매달 그곳으로 가 박남준 시인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고 그 밥상 위에 이런저런 삶의 이야기를 더하여 내놓는다. 누구나 그렇듯이 외로움에 목이 메어왔던 밥상이 있었고, 불구덩이처럼 힘겨웠던 밥상이 있었을 것이다. 지리산까지 가서 시인의 밥상을 받기로 한 작가의 결정은 잘한 것이었을까? 작가를 맞았던 건 어떤 밥상이었을까? 아마도 그 밥상은 사람을 살리는 소박한 밥상이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한 끼 밥을 위해 지리산에서 거제로, 전주와 거문도로, 서울과 평창으로 그 힘든 길을 다녔을 것이고, 가을과 겨울, 봄과 여름의 사계를 그 긴 시간을 지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인이 차려내는 소박하고도 따뜻한 엄마의 보드라운 손길 같은 스물네 가지 음식과 그 음식을 맛보며 써낸 작가의 담백하면서도 슴슴한 글은 이 책을 읽는 우리를 한껏 충만하게 해준다. 아니, 참으로 충분하게 한다. 음식도 그걸 만든 사람의 성정을 닮듯이 우리는 시인의 음식과 작가의 글에서 무언가 다른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건 노골적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섬세한 이들에게만 선물처럼 주어지는 구수하고 뭉근한 사람 냄새다. 소박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 풍기는 냄새다. ‘내비도’ 교주 최도사, 착하고 배려심 깊은 J, 아그네스 발차 같은 가수 진진, 사람의 영혼까지 찍는 사진작가 숯팁…… 언제나 고마움보다 더 큰 그리움을 주는 그들은 모든 쓸쓸하고 서러운 시간들을 서로 챙기며 채운다. 우리는 《시인의 밥상》을 읽으며 우리 인생에서 진정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깊게 나이 든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될 것이다. 나이 듦의 아름다움을 목격하고, 나이와 닮아갈 것이다. 밥상에 마주 앉은 사람과 함께.

우리에겐 소박한 밥상이 필요하다

첫 순을 따버려야 잘 자라는 호박처럼 우리에겐 고통, 역경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고 누누이 써왔다고 작가는 말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우리를 성숙하게는 하겠지만, 행복하게도 사랑하게도 할 수 있을까? 고통과 역경을 지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소박한 밥상이 아닐는지. 배가 끊긴 거문도에서 먹었던 바다가 와락 밀려드는 거 같았던 해초비빔밥과 지리산에서 먹었던 식물성 그 자체였던 호박찜과 호박국, 깻잎을 넣은 밥과 늙은오이무침, 지리산 해발 750미터에 있는 심원마을에서 맛보았던 산나물 밥상과 능이석이밥, 그리고 밥상에 앉아 먹는 차게 만 소면은 작가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시인이 들려주는, 한 사람은 돈을 받으라고 하고 한 사람은 돈을 안 받겠다며 전주 시내에서 추격전을 벌이던 ‘장뻘’ 식당 주인아주머니와의 이야기와 2012년 선거에서 진 다음 날 경남의 한 고등학교로 강연을 가야만 했던 그리고 결국 어린 학생들 앞에서 두 번이나 엉엉 울었다는 시인의 이야기는 작가의 무엇을 건드렸을까? 그건 참선과 기도와 성토를 지나 찾아오는 행복과 같은 성질의 소박한 행복이었을 것이다. 사랑하지 못해서 오는 후회가 아니라 더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행복한 서글픔이었을 것이다. 평생 더는 없을, 누구보다 배부르게 보냈을 작가의 이 1년을 따라 걷다 지쳐 무심코 밥상 앞에 앉았을 때 우리는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좋은 것이 있으면 나눈다는 것, 이 거대한 도시에서 누군가를 눈물 나게 하는 건 결국 소박함이라는 것,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채움에는 기쁨이 없다는 것,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고 하고 남의 것을 남의 것이라고 할 줄 아는 용기가 세상엔 별로 없다는 것, 그리고 누군가와 함께 밥 먹는 게 참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무엇보다, 인생에서 가장 첫 번째에 꼽아야 하는 게 사람이라는 것도.

버려도 되고, 비워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된다

“차비가 없어도 못 오고, 시간이 없어도 못 오지. 미워하는 사람이 있어서 못 오고, 버리지 못할 게 있어서 못 오지. 우린 그걸 다 넘어서서 여기 온 사람들이야.” _본문 중에서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_본문 중에서

따뜻하게 잘 지어진 밥과 푸짐히 차린 음식들 밑에는 우리의 영혼이 진짜 보아야 하는 것들이 놓여 있다. 그건 바로 시인과 최도사의 삶, 즉 지리산에서의 삶이다. 딱 관값 200만 원만 남기고 다른 모든 걸 기부하는 시인과 계절별로 두어 벌의 옷만 소유한 채 식은 밥에 장아찌 하나로 며칠을 견디는 최도사를 보며 “서울에서의 내 삶은 배가 고프기도 전에 무언가를 먹는 삶이었다”고 “이 나이에 이르러 이제 나는 안다. 삶은 실은 많은 허접한 것으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내 남은 생에 소망이 있다면 그중 무엇이 허접하지 않은지 식별할 눈을 얻는 것인데, 여기 새벽강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그중 몇 개를 건져 올리는 기분이었다. 그것들은 살아 푸르른 숭어 같았다” 하고 말하는 작가의 고백 앞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지금껏 배가 고파서 먹은 게 아니라, 배가 고파지는 걸 두려워해서 먹고 있었다는 걸. 돈이 있고, 시간이 있더라도, 누군가를 미워하고, 가진 걸 버리지 못하면, 지리산이 차린 밥상 앞에는 도저히 앉을 수 없다는 걸.

“지난여름이 용광로처럼 뜨겁지 않았다면 오늘 부는 이 가을바람이 그리 고맙지 않았으리라. 우리들의 청춘이 불구덩이처럼 힘겹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밥상은 한갓 놀이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_본문 중에서

힘든 시절, 고통으로 엉겨 붙어 뭉클거리는 시간을 보내며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두려워하는 것도, 불안해하는 것도 아니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건 자신의 미래나 떨어진 쌀이나 낡고 불편한 것들이 아니다. 고작해야 내일의 날씨다. 우리가 청춘이란 이름으로 해야 하는 건 코앞에서 아른거리는 봄을 느끼며 밥상을 붙잡고 앉아 흔들리더라도 나아가는 것이다. 채우지 못한 그 작은 밥상을 붙잡고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쓰는 것이다. 원한다면 더 많이 버려도 되고, 비워도 되고, 먹지 않아도 된다. 다르게 욕망하면 될 일이다. ‘시인’처럼이 아닌, ‘시인의 밥상’처럼.

목차

1부 엄마의 따뜻한 손길 같은 것
식물성 밥상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원리ㆍ품위 있는 호박찜과 호박국
일곱 달 차이 두 사내의 동행ㆍ아삭아삭 콩나물국밥
악양편지 1ㆍ별을 따서
후회는 더 사랑하지 못하는 데서 온다ㆍ누구와도 다른 가지선
아픈 날 엄마의 따뜻한 손길 같은 것ㆍ복통마저 잠재운 갈치조림
악양편지 2ㆍ무가 들어가는 ( )
너무나도 궁금한 은자씨ㆍ전주 ‘새벽강’의 굴전
허접한 것들 가득한 세상에서 건져 올린 푸르른 숭어ㆍ전주 ‘새벽강’의 소합탕
악양편지 3ㆍ꽃을 보고 힘을 내서

2부 지상의 슬픈 언어를 잊는 시간
지상의 슬픈 언어를 잊고 두 귀가 순해질 시간ㆍ거제도 J의 볼락 김장김치 보쌈
흰 눈은 오시고 임은 아니 오시고 고양이는 잠들러 간 밤에ㆍ두 그릇 뚝딱 굴밥
악양편지 4ㆍ만지면 시든다네
진정한 욕망과 충족은 어디서 오는가ㆍ소박한 신비로움 애호박고지나물밥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사랑이 필요할까ㆍ담백하고 짭조름한 유곽
악양편지 5ㆍ반갑고 궁금하다
달의 뒷면은 몰라도 내 뒷면은 아는 친구들ㆍ심원마을 백 여사의 산나물 밥상
신이 어찌 어여삐 여기시지 않으랴ㆍ심원마을 백 여사의 능이석이밥
악양편지 6ㆍ홍매화 핀 날 녹두전

3부 벚꽃 흐드러진 계절에 삼킨 봄
벚꽃과 꽃게, 아카시아와 민어, 보름달과 간장게장, 지금과 여기ㆍJ와 버들치 시인의 도다리쑥국
벚꽃 흐드러진 계곡에서 봄을 삼키다ㆍ곱디고운 진달래화전
악양편지 7ㆍ찬란하다
버들치 시인 입에서 나온 버들치는 헤엄쳐갈 수 있을까ㆍ‘완전한 봄맛’ 냉이무침
‘도사’마저 감동시킨 엄마표 밥상ㆍ‘엄마의 밥상’ 보리굴비
악양편지 8ㆍ한창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ㆍ환성을 부르는 채소 겉절이
소유가 전부가 아닌 곳, 욕망이 다 다른 곳ㆍ절로 입이 벌어지는 토마토 장아찌
악양편지 9ㆍ녹차 만들기

4부 시린 가슴 데우는 별 같은 ‘사람 밥상’
흔들리며 가는 배, 울면서도 가는 삶ㆍ마음을 위로하는 거문도 항각구국
웃음의 진실 맛의 진심ㆍ바다가 와락 해초비빔밥
악양편지 10ㆍ나한테 도대체 왜 그러느냐
단식, 지극한 혼자의 시간ㆍ김장김치 고명 올린 냉소면
그건 사랑이었지ㆍ가죽나무 판이 만든 오방색 다식
악양편지 11ㆍ너 때문
우리는 언어를 얼마나 배반하는가ㆍ식물성 식감 무안 낙지
외로움을 잊게 한 별 같은 ‘사람 밥상’ㆍ버들치표 미역냉국과 생감자셰이크
악양편지 12ㆍ솔솔거리며 찾아오는 것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음식도 그걸 만드는 사람의 성정을 닮아가는지 내 요리가 좀 진하고 단순하며 명쾌하다면(장점만 늘어놓자면 말이다), 시인의 요리는 부드럽고 미묘하고 순하다. 나이가 들면서 이제야 된장국에 김치 하나로 밥 먹는 즐거움을 알게 된 나는 시인의 된장국을 정말 좋아한다. 아마도 이것은 온유를 달라고 기도하는 나의 바람과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거의 된장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슴슴한(이 형용사 말고 다른 것은 생각을 못 해내겠다) 국물은 늘 하듯 멸치와 다시마 육수에 된장을 엷게 푼 것이고, 아욱은 서울의 슈퍼마켓에서 사던 것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어린 것이니, 같은 아욱국을 끓여도 시인의 것은 아주 다른 향기가 난다. 뭐랄까, 배 아픈 날 아침 엄마가 만져주는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길 같은 것? _51~52쪽

프라이팬 깊은 곳에서 섬진강 물결이 뒤집히듯 누런 누룽지들이 위로 올라왔다. 적당히 섞은 후 우리는 각자 자신의 공기에 그것을 떠서 남은 양념장에 취향껏 비벼 먹었다. 한입 넣은 순간 우리 모두의 입에서 “와우!”라고 할 수밖에 없는 탄성이 나왔다. 들기름을 머금은 누룽지는 바다의 굴 내음을 머금고 있었고 굴은 들기름으로 달구어진 구수한 누룽지를 머금고 있었다. _114쪽

“나는 다르게 욕망할 뿐이다.” 그렇다. 그들은 시간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흘려보내기를, 저 산과 강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욕망한다. 그들은 누구보다 여행을 많이 떠나고 누구보다 계절을 깊이 즐긴다. 봄이면 야생 달래와 냉이 그리고 산나물을 먹고 여름이면 천렵한 물고기로 매운탕을 끓인다. 가을이면 송이버섯 열 개로 친구들과 풍성한 파티를 벌인다. 나는 지리산에 갈 때마다 삶이 단순할수록 얼마나 풍요로운가를 절감한다. 그리고 똑같은 양으로 내가 얼마나 아직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인가도 말이다. _124쪽

“시인님, 오늘 강연 잘 들었습니다. 우리 이제 2년 있으면 선거권 나와요. 오늘 시인님을 보고 많이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결코 지역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투표 잘할 테니 이제 울지 마세요.” 학생의 말은 진지했다고 한다. 듣고 있던 학생들도 고요했다. 그러자 그의 말을 다 듣던 버들치 시인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다시 울기 시작했다. 경상도 학생들이 너무 고맙고 예뻐서였다. 그렇게 두 번의 울음으로 그 강연은 끝났다고 했다. 이 슬픈 말을 들으며 우리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세상에 그 학생들은 버들치를, 그가 두 번이나 엉엉 운 강연을 잊을 수 있을까? 아마 평생 못 잊을 것이다. 그건 아마도 진심의 힘이었을 것이다. 어떤 시보다 명징한 언어인 진심 말이다. _130쪽

그날 밤, 달이 떴다. 달 옆에 목성도 떴다. 우리는 백 여사가 숯불에 구워주는 닭구이를 먹으며 덜덜 떨며 달맞이를 했다. 달의 뒷면을 본 사람은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안다. 이곳에서 이 좋은 친구들은 내 뒷면을 안다는 것을. 보지는 못했겠지만 어여삐 여겨준다는 것을. 이것이 우정이라고 나는 그날 달을 보며 문득 생각했고, 찬 대기 속에서 그들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쉰이 넘으며 모든 것이 부질없음을 날마다 더 절감하는 나는 생각했다. 충분하다, 참으로 충분하다고. _155쪽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나 밤늦게 사랑하는 친구가 문득 나를 방문할 때 작은 바구니를 들고 정원으로 나간다. 그리고 한 접시 분량의 어린 머위나 민들레, 부추나 깻잎을 뜯어 간단히 세 가지 양념으로 요리를 한다. 그러면 나의 밥상도 풍성해지고 가끔은 친구와의 술자리가 가볍고 기뻐진다. 다른 생명을 죽이지 않고 그것이 무엇이든 뿌리째 뽑지 않고 덜어내 먹을 수 있다는 기쁨과 고마움, 그것은 분명 채식의 즐거움이다. _231쪽

나는 귀를 의심했다. ‘아름다운 관계’라는 제목부터 좀 의아했는데 여기서 몸을 뒤트는 것은 소나무가 아니라 바위인 것이다. 더운 내 등으로 찬 소름이 지나갔다. 태고부터 거기 있어온 바위가 잘못 내려앉은 그 어린 소나무를 위해…… 인 것이다. 어린 소나무가 불굴의 의지로 바위를 뚫은 것이 아니라 늙은 것이 어린 것을 위해 필사의 힘을 다해 생명을 키워내는 이야기로 시인은 이 관계를 읽었던 것이다. 아직도 무언가를 극복하고 뚫고 그런 것에 감탄하고 있던 나에 비해 그는 이미 내어주고 죽어주고 갈라짐을 견디는 바위에 주목했던 것이다. _294쪽

지난여름이 용광로처럼 뜨겁지 않았다면 오늘 부는 이 가을바람이 그리 고맙지 않았으리라. 우리들의 청춘이 불구덩이처럼 힘겹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밥상은 한갓 놀이에 지나지 않았으리라. 시인은 밥상을 다 채우지 못하고 그 작은 밥상에서 시를 썼었다. 고픈 배를 찻잔으로 대신하면서 말이다. 결핍을 경험하지 못한 채움에는 기쁨이 없겠지. 마지막은 ‘작가의 밥상’이 될 것이다. 내가 그들을 내 시골집으로 초대했으니까. _309쪽

저자소개

공지영(孔枝泳)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630131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3년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나왔다. 1988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단편 <동트는 새벽>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더 이상 아름다운 방황은 없다', '그리고, 그들의 아름다운 시작',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고등어', '착한 여자', '봉순이 언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사랑 후에 오는 것들', '즐거운 나의 집'이 있고, 소설집 '인간에 대한 예의',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별들의 들판', 산문집 '상처 없는 영혼',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등이 있다. 21세기문학상과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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