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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만난 우리 신화 : 당신들이 나의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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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바리데기와 자청비, 오늘이 이야기에서 만나는 내 존재의 근원

신화 공부는 단순한 옛것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뿐 아니라 현재의 내 인생과 관련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면서 나의 지향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점검하는 미래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내 고통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조건들 때문에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경험이자 발전의 단계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견딜힘이 생긴다. 이 책은 우리 신화 속에 담긴 인류 보편의 원형심리와 내 고통의 근원, 치유의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이 곧 신화라는 아름다운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출판사 서평

정신과 전문의 이나미가 읽어주는 우리 신화
"나는 누구인가, 나의 그림자는 왜 울고 있는가"
우리 신화에서 만나는 존재의 원형과 치유의 에너지

우리 신화에서 만나는 내 존재의 근원

신화는 꿈처럼 우리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서양 철학자들에게 영향 받은 지식인들은 그리스 신화의 '시시포스'나 '프로메테우스'에게서 인간 존재의 끊임없이 반복되는 고통을 읽었지만, 과거 한국의 평민들은 '바리데기' '당금애기' '영감' '반쪽이' 같은 이들에게서 이런 존재의 비극을 읽었다.
정신과 전문의이자 융 분석심리학자인 저자는 10대부터 90대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며 상담을 하고 있으며, 특히 한국인의 고유한 심리에 관심을 두고 신화와 민담, 문학 작품 등을 연구해 왔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세속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세계, 즉 우리 신화로 눈을 확장했을 때 만날 수 있는 한국인의 집단무의식과 내 존재의 원형에 대해서 들려준다. 우리 신화 속에 숨겨진 심리적 비의를 하나씩 짚어가는 동안, 한국의 신들도 인간처럼 외롭고 고통스런 상황을 이겨내고 스스로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나와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고통스런 상황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언젠가는 사라지지만 꿈처럼 흘러가는 우리 모두의 삶이 영원히 계속되는 아름다운 신화라는 것도, 나와 당신 곧 우리 모두가 지금 이 순간 가장 아름다운 신화를 쓰는 존재라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다.

왜 정신분석학은 신화를 주목하는가?
심리학이나 정신의학은 마음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다. 마음을 연구하는 방법은 무척 다양한데 그 중에서도 융의 분석심리학은 집단무의식에 주목한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이 속한 사회와 문화로부터 크고 작은 영향을 받는다. 개인은 모두 각각의 삶을 다르게 살고 있지만, 인간이라면 누구나 부모 자식 관계, 형제간의 질투, 남녀의 사랑, 집단에서의 권력 투쟁 등의 문제와 평생 씨름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 사람의 심리를 분석할 때는 그가 속한 사회의 과거와 현재, 집단무의식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원형적 상황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장르가 신화이다. 신화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과정 중에 사적인 이야기들은 걸러지고, 모두에게 울림을 주는 내용만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신화를 살펴보면 과거 공동체의 집단심리를 파악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개인의 심리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하다.
신화를 보면 인간이 보이고 거기에 속한 내가 보이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시야를 확장할 수도 있다. 내 고통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조건들 때문에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경험이자 발전의 단계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견딜힘이 생긴다. 나와 주변의 상황과 견주어보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눈을 키울 수 있으며, 고통스러운 상황에서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융 분석심리학이 신화를 주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리데기와 자청비, 오늘이 이야기에서 치유의 답을 얻다
인간의 상처에 대한 고등 종교의 설명은 지나치게 권위적이다. 예컨대 그리스도교에서는 원죄로, 불교에서는 업으로, 유교에서는 도를 모르는 소인배의 행실로 모든 상처를 일반화 한다면 상처받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억울한 마음을 하소연할 길이 없다. 하지만 상처는 그대로 남아 있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앙금들을 그냥 참고 억압하려 한다. 그러나 무작정 억압을 하는 것이 그리 쉽겠는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도덕과 윤리로 상처나 본능을 제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종교적 제의이다. 종교적 제의를 통해 우리는 억울한 감정과 분노, 고통에 이별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 원망 등 사람들이 살다 보면 겪는 질곡들을 승화시킨다. 한데 조선 시대 이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던 유교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이나 꿈과는 거리가 먼 지나치게 형이상학적인 세계만 강조한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과거 한국의 평민들은 '바리데기' '당금애기' '영감' '반쪽이' 같은 무속에 기반을 둔 신화와 민담들을 읽고 들으며, 이들에게서 삶의 근원적 고통을 느끼고, 같이 울고 웃으며 어려움을 극복할 힘을 얻었다.
내 안에는 거인과 작은 미물이 같이 존재하니 내가 거인의 입장에 서 있다면 작은 미물에게 물어보고, 미물의 처지에 떨어졌다면 내 안의 거인을 일깨워야 하며(김쌍돌이본 창세가 이야기), "답이 보이지 않는다"라며 답답해하기 전에 먼저 "질문이 무엇이냐"고 물어보고 답을 풀어야 하며(개똥이 이야기), 내 안의 여성성을 존중하는 동시에 남성성도 잃지 않아야 영웅이 될 수 있으며(세경본풀이), 내 몸에는 선과 악이 한 몸뚱이처럼 붙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끝없는 편 가르기 및 복수와 응징이라는 악의 사슬을 끊을 수 있고(천지왕본풀이), 영웅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유약한 아이로서 자궁으로의 퇴행, 혹은 자기만의 세계 속에 유폐된 어둡고 암울한 시기가 존재한다는(유화부인 이야기) 인류 보편적인 공통된 원형심리를 신화는 알려주고 있다. 즉 나만 힘들고 외로운 것은 아니니 떨쳐 일어나라고 신화는 말해주고 있다.
또한 인간과 우주에 대한 깊은 통찰도 들려준다. 인간은 벌레에서 시작된 미물이자 흙에서 왔다 흙으로 가는 존재이며(개똥이 이야기), 우주가 꿈처럼 혼돈 상태에서 논리의 힘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거대한 신비인 것처럼 우리의 삶 역시 이성과 합리를 뛰어 넘는 혼돈과 우연, 불평등, 불공정의 원칙에 의해 펼쳐지는 아주 이상한 드라마일 수 있으며(영감본풀이), 실재하는 것은 오로지 오늘 현재뿐이니 오늘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고(원천강본풀이) 말하고 있다. 근대의 과학적 패러다임이나 서구 중심 사고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놀라운 혜안이다.
무속적 사고방식을 하등한 것으로 생각해 오고, 자신과 가족이 잘 되라고만 비는 가족주의, 혹은 이기주의만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다. 그러나 오래된 우리 신화에서 우리는 존재의 근원과 끊을 수 없는 고통을 적시하고, 그 속에서 삶의 신비와 치유의 에너지를 발견할 수 있다. 어쩌면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우리 신화의 부정적인 점만 강조해서 자신의 문화, 정체성에 대한 냉소주의와 패배주의에 빠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우리 신화에 담긴 혜안과 심리적 비의를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볼 때이다.

우리 모두는 지금 가장 아름다운 신화를 쓰고 있는 존재
신화 공부는 단순한 옛것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뿐 아니라 현재의 내 인생과 관련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면서 나의 지향성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점검하는 미래의 나침반이 될 수도 있다. 인류의 공통 이야기를 다시 읽다 보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적인 질곡이 내게도 닥쳤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내 고통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어쩔 수 없는 근본적인 조건들 때문에 보편적으로 겪게 되는 경험이자 발전의 단계라고 생각하면,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견딜힘이 생긴다. 또 주변 사람들, 내 부모나 선조들은 그 고난을 어떻게 견디었나를 되돌아보면서 영감을 얻고, "나만 힘든 게 아니라 내 조상들도 어려움을 겪었고, 또 내 자손들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어두운 혼란의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
진보와 발전, 합리와 논리, 물질적 결과물 같은 서구적 틀에 갇혀 세속을 넘어서는 초월적 세계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이 책은, 우리 신화 속에 담긴 인류 보편의 원형심리와 내 고통의 근원, 치유의 답을 제시하고 있으며, 우리의 삶이 곧 신화라는 아름다운 진실을 알려주고 있다.

목차

프롤로그 - 신화는 집단이 꾸는 꿈, 심리원형의 저장고

1장 나를 돌아보다
1. 원천강본풀이 이야기 - 오늘의 삶에 충실하라
2. 부채귀신 잡은 이야기 - 유연한 물처럼 타협하라
3. 당금애기 이야기 - 내 안에 영성이 있다
4. 바리데기 이야기 - 버림받아야 어른
5. 세경본풀이 이야기 -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
6. 혹부리영감 이야기 - 열등감을 에너지로 전환하라
7.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 - 고난 없는 삶이 있을까
8. 영감본풀이 이야기 - 나의 악한 모습과 마주하라
9. 마고할미 이야기 - 창조의 에너지는 내 안에

2장 그림자를 받아들이다
1. 김쌍돌이본 창세가 이야기 - 진실의 꽃을 보라
2. 천지왕본풀이 이야기 - 욕망이 인생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3. 유화부인 이야기 - 내적으로 성찰하고 변신하라
4. 성주풀이 이야기 - 나를 죽이고 만나는 세상
5. 장자풀이 이야기 - 내 안의 그림자
6. 장자풀이의 이본들 - 지옥이 없는 천국은 없다
7. 소서노와 비류, 온조 이야기 - 그 사람이 내 스승

3장 소통하고 치유하다
1. 차사본풀이 이야기 -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빚을 지고 있는 존재
2. 박혁거세 이야기 - 동물적 본능이 인간의 삶과 만나면
3. 단군신화 - 새로 태어나는 동굴의 시간
4. 우렁각시 이야기 - 가장 하찮은 존재가 가진 영웅성
5. 선덕여왕과 지귀 이야기 - 열정을 다스리라
6. 장자못 이야기 - 앞으로 나아가려면 금기를 깨라
7. 석탈해 이야기 - 나만의 신화를 써 나가라

참고문헌

본문중에서

우리의 미래는 오늘의 연결이다. 미래는 머릿속 관념이며 과거는 기억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실재하는 것은 오로지 오늘 현재이다. 원천강 문 앞에서 오늘이가 운 것은 실재하는 존재에 대한 일깨움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방에 갇혀서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오늘이는 문 밖으로 나서라고 외치고 있다. 지금 여기에 충실하라고 외친다.
(/ p.20)

영웅이 되기 전에는 세상이 캄캄해지는 시기가 있다. 영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살다 보면 손쓸 수 없이 캄캄해지는 시기, 한 점 희망도 보이지 않는 시기가 있다. 그 시기에 좌절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깨치고 나오는 사람이 있다. 요즘 사람들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그것과 비슷한 의미라고 해석해도 좋다. "답이 보이지 않는다, 답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필자는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답이 없다"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다시 돌아가서 "질문이 무엇이냐?"라고 물어보라고 말이다. 자신에게 필요한 질문을 하지도 않고 답이 없다고 하면 그 질문이 풀리겠는가. 제대로 된 질문을 해야 답을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인다. 그런데 그런 과정은 겪을 생각 없이 결과물이 없다고 말하며 터널 끝을 스스로 막아 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 p.25)

'마술사 원형'은 전 세계적으로 여러 신화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 신화에서도 해모수와 화백이 싸울 때에 잉어와 독수리로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꾼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내 스타일은 이거야" "나는 이런 원칙주의자야" 이렇게 자신을 고착화하고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고 고집만을 강요한다면 변신의 과정을 거치지도 못하고, 지혜로운 영웅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 신화는 알려준다. 이런 사람은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없다. 원칙을 지키는 것도 좋고 자신의 스타일을 확고히 주장하는 것도 좋지만, 때로는 유연하게 자기 모습을 바꿀 줄도 알아야 한다. 융통성이나 타협이 없으면 자기 발전을 하기 어렵다.
(/ p.26)

거무라는 말은 고대어로 가마, 신(거머)이다. 단군신화에서 웅녀는 곰 토템인데 단군신화 말고 우리나라 전설이나 신화에는 곰이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그래서 웅녀가 곰이 아니라 거머 또는 신녀인데 이 글자를 이두로 표현하다 보니 '곰'이 되었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일본에도 가미(가미가제)라는 말은 신을 가리킨다. 즉 거무선생에게 간다는 의미는 문도령과 자청비가 스스로 신이 되기 위해 신에게 가서 글공부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p.60)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오누이가 잡은 동아줄은 초월적 존재, 신성성과 연결된다.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으려면 신성성의 줄을 놓지 않아야 한다. 만일 누군가를 괴롭히고, 왕따를 시키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 때 아주 가늘지만, 하늘과 연결된 신성한 동아줄이 마음속에 있다면, 그렇게까지 잔인한 범죄를 저지르거나 비도덕적인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줄이 없기 때문에 타락의 길로 떨어지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신성한 공간을 마련해놓아야 올바로 살 수 있다.
(/ p.90)

어쩌면 이 우주는 꿈처럼 혼돈 상태에서 논리의 힘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원리 아닌 원리로 움직이는 거대한 신비가 아닐까. 그리고 우리의 삶 역시 이성과 합리를 뛰어 넘는 혼돈과 우연, 불평등, 불공정의 원칙에 의해 펼쳐지는 아주 이상한 드라마일 수 있다. [영감본풀이]는 바로 이런 삶이 갖고 있는 괴상함, 이해 불가능함을 적시하게 해주는 힘이 있다.
(/ p.99)

사회에 여신의 존재가 필요한 이유는 모성성 때문이다. 여성성이 있으면, 남자들은 일단 폭력성이 줄어든다. 우리 안에 여신을 회복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내 안의 여성성이 병들어 있을 때에는 누구든 폭력적으로 변하게 된다. 가부장제적인 나라, 전체주의적인 나라에서는 여신 또는 여성성이 자취를 감추고 전체주의적인 폭력만 남아 있다. 가부장제적인 나라일수록 '여성성의 회복'이 숙제라는 뜻이다.
(/ p.109)

존엄한 존재인 인간이 벌레에서 태어났다는 설정은 샤머니즘의 깊은 통찰력으로 읽힌다. 우주와 지구에 대해서 겸손 하라고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의 벌레가 떨어져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인간도 벌레에서 시작된 미물에 불과하며, 흙에서 왔다 흙으로 가는 존재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 p.122)

많은 사람들이 "나는 선한데 상대방은 악하다"라고 생각한다. 아주 낮은 수준의 선악 구별 방식이고, 실제와는 다른 이해일 때가 대부분이다. 약간 높은 수준이라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이렇게 악해졌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에게 어느 정도 악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선한 인간이라는 탈을 쓰고 있는 자신의 무의식에는 매우 악하고 어두운 부분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선과 악이 한 몸뚱이처럼 붙어 공존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끝없는 편 가르기 및 복수와 응징이라는 악의 사슬을 끊을 수 있다.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그림자' 인식하기이다.
(/ p.136)

풍요와 결핍의 순환은 지하세계로의 납치 및 풀려남과 겹쳐지며 하강 및 상승의 이미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성장하기도 하지만, 무수한 추락을 경험하면서 성숙해진다. 예컨대 어린 시절 공상세계에서는 누구나 왕자와 공주가 될 수 있다. 아직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혹독한 곳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교에 다니고 직장에 들어가면서, 또는 결혼을 통해, 어린 시절의 순진한 기대와 달리 많은 좌절과 실패를 경험한 뒤로 자기 연민에 빠지고 자신에 대해 실망한 나머지 끝없이 추락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는 떨어지는 꿈을 꾸면 키가 큰다고 어른들이 말하곤 했는데, 심리적인 상황에 대한 예리한 통찰인 것 같아 흥미롭다.
(/ p.157)

문신과 조왕과 강림의 몫으로 떡을 나누어주었다는 상징은 의미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버려진 사람, 하찮은 존재, 비천한 사람에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지녀야 하는지 이 이야기는 들려주고 있다. 비천한 존재에 대해 존경심, 포용, 사랑을 가진다면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시 삶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하고 있는 것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우리를 구해주는 것은 기대하지 않았던 비천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 p.223)

시베리아 샤먼들은 선망 상태에서 자기 몸이 잘라지는 체험을 한다. 그 형해의 시간을 겪어야 진짜 샤먼이 되는 것이다. 일종의 강신 체험이다. 샤먼이 아니더라도 그런 체험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그래야만 바닥을 치고 올라오면서 새롭게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 "네가 내 마음을 다 찢어놓았다"라고 흔히 이야기한다. 인간이 61세를 맞으면 환갑이라고 다들 축복하는데, 오히려 형해의 시기에 들어선 것이 아닐까 생각한 때도 있다. 다만 그 형해가 파괴적인 형해가 아니라 진짜 자기를 만나기 위한 창조적인 형해라면 좋겠다.
(/ p.242)

우리는 다양한 과정을 겪은 뒤에 훨씬 통합된 인간이 될 수 있다. [박혁거세] 신화는 인생에서 신성과 동물적 본능, 인간의 삶이 어떻게 서로 만나고 헤어지며 통합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좋은 교과서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주도하는 진정한 승자는 결국 시간이 아닌가 싶다. 기이한 탄생과 기이한 죽음은 유한한 시간에 갇혀 있는 인간의 근원적인 조건을 생각하게 한다.
(/ p.250)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8종
판매수 6,037권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의학사와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미국 유니언 신학 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뉴욕 융 연구소에서 분석심리학 디플롬을 취득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의대생들과 레지던트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동안 한국인의 집단 심리와 사회 현상 그리고 옛 이야기와 민담, 문학 작품을 심층심리학의 관점으로 풀어내는 작업을 활발히 했다. 펴낸 책으로 『심리학이 만난 우리 신화』, 『다음 인간』, 『융,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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