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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콜사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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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윤천수
  • 출판사 : 필맥
  • 발행 : 2013년 02월 15일
  • 쪽수 : 242
  • 제품구성 : 전1권
  • ISBN : 978899775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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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은
1945년 일본제국주의가 패망하고 한반도가 광복을 맞던 무렵 [경성방송국]이라는 라디오 방송국에서 펼쳐진 인간적 절망과 희망의 풍경을 되살려낸 장편소설이다. 하루아침에 ‘게이죠(경성)’가 ‘서울’로 바뀐 격변의 그 시기에 운명처럼 방송국 마이크 앞에 있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혼란스러웠던 당시의 시대환경 탓에 기록으로 남겨지지 않고 역사에서 지워진 그들의 이야기가 작가의 소설적 상상력에 의해 복원된다.

한국방송공사(KBS)의 역사적 전신인 경성방송국은 일제 치하였던 1927년에 경성(지금의 서울)에서 설립되어 당시로서는 첨단매체인 라디오방송을 시작했다. 일제의 한반도 통치수단 중 하나로 개국된 경성방송국은 일본어 방송과 한국어 방송이라는 이중언어 체제로 운영되다가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1942년부터는 한국어 방송이 폐지되고 일본어 방송만으로 운영됐다. 그러는 동안 일제는 경성방송국의 라디오 방송을 식민정책과 전쟁수행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일제가 패망한 뒤에는 미군정청 공보부 방송국으로 바뀌었다.
바로 이 경성방송국이 이 소설의 역사적 무대다. 호출부호(콜사인)가 JODK인 경성방송의 조선어 아나운서인 박숭이 이 소설에 ‘나’로 나오는 주인공이자 화자(話者)다. 박숭에게는 두 명의 특별한 직장 후배가 있다. 일본인 같은 조선인 아나운서 김산일(가네야마)과 조선인 같은 일본인 아나운서 가미야다. 두 사람은 방송국 입사동기이지만 시국관이 상반되고 인생관도 다르다. 김산일은 조선인임에도 일본제국주의에 동조하고, 가미야는 일본인임에도 일본제국주의에 반대한다.
일제가 동남아시아를 침략한 데 이어 미국령 하와이의 진주만을 공격한 것을 시작으로 태평양전쟁이 벌어진다. 이에 따라 식민통치의 수단이던 경성방송국에 전쟁 승리를 위한 선전도구로서의 역할이 추가로 부과된다. 그러나 일제는 결국 서구 연합국 세력에 패배하고, 경성방송국은 남한에 진주한 미군의 점령지 공보방송이 된다. 그 격변의 과정에서 ‘나’ 박숭과 가네야마, 가미야는 방송국 선후배 동료로서 교류하고 갈등하면서 각자가 선택한 삶의 경로를 걸어간다.
작가가 그려낸 이들 세 사람의 모습은 역사와 체제에 의해 굴절된 개인의 삶의 황량함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가미야는 일본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를 받아들여 자신의 신념으로 삼고 그 신념을 실천하기 위해 자원입대했다가 결국 만리 이국의 전쟁터에서 숨진다. 가네야마는 패전국 국민으로서 일본 귀국선을 탔으나 그의 반제국주의 태도에 앙심을 품은 동족 경찰에 의해 살해된다. 그럭저럭 시대의 흐름에 맞추면서 방송국 아나운서라는 직업에 충실했던 식민지 지식인 박숭은 광복된 조국에서는 자신이 마이크 앞에 설 수 없음을 의식한다.
이와 같은 인물 설정과 이야기 전개는 이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이중의 가상체험을 하게 한다. 하나는 광복 전후의 경성방송국이라는 과거의 시공간에 투영된 당대 우리 역사에 대한 가상체험이고, 다른 하나는 삶의 무대인 체제가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야 하는 개인의 심리적 갈등에 대한 가상체험이다. 따라서 이 작품을 읽는 독자는 이 두 가지 가상체험을 하는 것을 통해 광복 전후의 역사와 체제 속 인간의 실존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얻게 될 것 같다.
이 작품에는 창경원 동물 살처분 사건, 청진방송국 폭파 사건 등 태평양전쟁 말기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도 서술돼있고, 당시 중국 중경에 본부를 두고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방송을 독립운동에 활용하던 일과 일제가 미군을 상대로 방송으로 심리전을 벌이던 일도 서술돼있다. 이런 내용은 이 작품의 주된 줄거리의 일부를 구성하는 동시에 독자의 흥미를 더욱 자극한다.

목차

방송 통폐합
제국의 아나운서(1)
제국의 아나운서(2)
파멸의 소리, 그리고 희망의 언어
사라진 전파
고별방송
두 비스트 비 아이네 블루메
작가후기

본문중에서

해방의 정오, 그 낮 12시는 전율의 시간이었다. 한순간의 시점을 기준으로 세상이 그리도 이전과 이후로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에 몸이 떨렸다. 나는 스튜디오 마이크로폰 앞에 앉아 호흡을 골랐다. 녹색의 원탁에 덩그러니 놓인 마이크를 응시했다. 마이크 받침대에 영문자로 새겨진 JODK 방송국 마크가 또렷했다. 마이크는 내 입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송 시작을 알리는 램프에 빨간불이 켜졌다. 나는 원고를 읽어나갔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송이었다.
(1권/ p.14)

하긴 ‘천황폐하’를 발음할 때 마이크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조선 아나운서도 있었다. 제2 조선어방송의 가네야마가 바로 그랬다. 가네야마는 스튜디오에 들어가 방송을 하는 중에 그 대목이 나오면 즉석에서 공손스레 고개를 숙였다. 그의 행동은 누가 시킨 게 아니고 자발적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제1방송 일본인 직원들 사이에서 칭찬이 자자했고, 상사들의 총애를 받으며 조선인으로서는 드물게 ‘올해의 모범사원’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1권/ p.34)

하라키리의 시간, 그들에게 낮 12시, 정오는 절망의 시간이었다. 정오의 항복방송을 차마 들을 수가 없어서였을까, 절망보다 죽음이 차라리 나아서였을까, 낮 12시가 되기 전 그들은 하나하나 칼로 배를 가르며 쓰러졌다. 방송 마이크 앞에서 절명사를 고하려던 소좌도, 방송국 보도국장을 심문하던 소좌도, 항복방송 녹음 레코드판을 찾아내려던 중좌도 뜨거운 태양 아래 선혈을 쏟았다. 피비린내가 바람결에 해자를 건너 성곽을 넘어 궁성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1권/ p.69)

도쿄 로즈(Tokyo Rose). 우리 미군들은 그녀를 그렇게 불렀지. NHK에서 유창한 영어로 우리를 향해 심리전 방송을 하던 아름다운 목소리의 여자 아나운서. 도쿄에 피는 장미꽃은 어떤 색깔과 향기를 지녔을까. 성이 아이바라고 했지. 로스앤젤레스 태생에 UCLA 출신의 일본계 2세 미국인. 우리와 같은 국적이지만 자신의 조국 일본을 위해 미국을 배반한 도쿄 로즈. 하지만 죽음의 전쟁터에서 듣는 그녀의 목소리와 음악은 얼마나 황홀했던가.
(1권/ p.81)

- 오호, 내가 만든 라디오에서 소리가 나온다!
그 새벽에 유럽 쪽의 단파 신호가 잡혔던 것이다. 그것도 성공이었다. 수신기 다이얼을 미세하게 조정할 때마다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와 함께 음악이 나오고 있었다. 잡음도 섞이고 말도 알아들을 수 없는 외국어였지만 그것이 로마, 런던, 베를린에서 보내오는 단파방송이란 건 분명했다. 다이얼을 돌리는 손이 흥분과 기쁨으로 떨렸다. 새삼 놀랍기도 했다. 저 밤하늘은 조용한 어둠에 묻혀 있는 것만은 아니었구나, 밤하늘은 달빛과 별빛만 흐르는 건 아니었구나! 자신이 방송기술 전문가임에도 캄캄한 밤하늘에 무수한 소리의 전파가 떠다닌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1권/ pp.142~143)

대동아전쟁 전만 해도 연말연시가 되면 방송국에선 제야의 종소리와 새해 첫닭 울음소리를 방송하기도 하고 그랬다는데 이젠 다 옛말이었다. 우리의 선배들이 쌀뒤주만 한 녹음기를 지게꾼에 지워 새소리, 맹꽁이소리를 녹음하러 산으로 들로 쫓아다니고, 소리 잘하는 권번 기생을 출연시키려 명월관으로 국일관으로 내닫곤 했다던 방송 초창기엔 그나마 낭만이라도 있었다. 그 시절 라디오는 요술부리는 신기한 소리통이었다. 지금은 라디오가 죽음과 파멸의 요술을 부리는 세상이었다.
세기의 위대한 발명, 과학기술의 결정체, 문명이기의 총아라는 찬사와 각광을 받으며 라디오가 지구상에 처음 등장한 게 지금으로부터 이십여 년 전이었다. 그 사이에 어느덧 라디오는 전쟁을 수행하는 도구로 전파의 총탄을 퍼붓는 무기가 되어 있었다.
(1권/ p.218)

함박눈이 쏟아지던 날, 조선청년 가네야마 이치로 즉 김산일 아나운서는 자원입대했다. 경성방송국은 특별히 방송국 차량을 내어 가네야마를 입대자 집결지인 용산역까지 태워다 주는 배려를 잊지 않았다. 그를 태운 차량이 방송국을 나설 때 방송국장 이하 전 직원이 현관에서부터 정동고갯길 어귀까지 양쪽으로 도열해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앞서 열린 출정 환송식에서 방송국장은 조선의 훌륭한 방송 인재, 조선의 열혈 방송원과의 결별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겠다는 그 장한 결단 앞에선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며, 가네야마는 방송국에선 모범사원이었으며 나라에서는 모범국민이었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2권/ p.88)

그들의 긴장된 목소리가 팽팽한 실내 공기를 갈랐다. 그들은 항복 방송에 대한 충격보다도 외려 천황의 육성을 직접 녹음한다는 사실에 더욱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감히 천황의 목소리 그 옥음을 일개 신민에 지나지 않는 자기들의 손으로 녹음을 떠서 방송에 내게 된다니! 지금까지는 천황의 음성은 살아 있는 신의 목소리여서 국민들의 귀에 함부로 들려서는 안 되는, 더더욱 방송 따위에는 도저히 나갈 수 없는 신성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2권/ p.151)

- 경성, 아니 서울도 이젠 안녕이군요.
가미야는 담담하게 작별을 알렸다. 다음 주라도 홀어머니와 일본으로 떠나겠다고 했다. 일단 기차로 부산까지 가야 한다고 했다. 부산항에서 귀국선을 타야 하는데, 혼란한 시기에 배편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으므로 미리 부산으로 내려가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부산은 지금 만주지역의 일본인들까지 밀려들고 있어 대혼란이라고 했다. 귀국 짐 따위는 없어서 가방 두어 개가 전부라고 했다. 본토 행선지는 전에 말했던 대로 노모의 잊힌 고향 히로시마라고 했다.
- 그러니까 부산에 가도 배편이 문제라는 얘기군.
(2권/ pp.218~219)

먹먹해진 가슴 그대로인 채 방송국 옥상에 올랐다. 우울한 날들에 나는 얼마나 이 옥상에 올랐던가. 지금 또 짙붉은 노을빛이 구름 걸린 하늘에 비끼었다. 정동고갯마루 방송국 옥상에서 하늘을 바라볼 때만큼은 내가 그나마도 행복해질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하늘의 노을아, 구름아! 하늘을 보던 나는 가만히 눈빛을 떨어뜨렸다. 옥상 아래로 광화문, 종로, 명동을 아우르는 서울의 풍경이 석양에 펼쳐졌다. 이제는 미군정청 청사가 된 총독부 건물의 꼭대기로 푸르스름한 돔 지붕이 솟은 광경은 아직도 여전했다.
(2권/ p.237)

저자소개

생년월일 1956~
출생지 충남 홍성
출간도서 6종
판매수 83권

1956년 충청남도 홍성에서 태어났다. 늦깎이로 소설가가 되었다. 2005년 [월간문학] 신인상과 2007년 [문학사상] 장편문학상 공모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해 뒤늦게 소설 쓰기에 매달리고 있다. 그전에는 방송국에서 기자로 일했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너를 반겨 놀았더라], [그해 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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