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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침묵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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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이윤기
  • 출판사 : 민음사
  • 발행 : 2011년 01월 14일
  • 쪽수 : 180
  • ISBN : 978893748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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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소설가 이윤기가 풀어놓는 마지막 이야기 보따리

영원한 청춘,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이윤기의 유고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한 번도 ‘꽃’으로 피어보지 못했지만 잘 살고 있다고 표현한 그는 사람에 대한 따뜻한 감성과 유쾌한 문체로 인생에 대한 성찰을 에피소드를 통해 풀어내었다. 저자의 소소한 추억에서부터 세태 비평, 삶에 대한 깊은 통찰까지 담겨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고, 가슴 속에 스며드는 희망의 목소리를 느껴보자.

출판사 서평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성이자 소설가
이윤기 유고 산문집

깊은 인문학적 지식과 풍부한 유머 감각이 빚어낸 맛있는 에세이
이 시대의 진정한 교양인 이윤기가
마지막으로 남긴 희망의 목소리


2010년 8월 27일, 63세로 타계한 “우리 시대의 이야기꾼 이윤기”의 유고 산문집 [위대한 침묵]이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모두 5부로 구성된 이 책은 37편의 산문과 함께, 말미에 번역가인 딸 이다희가 아버지 이윤기를 추모하며 쓴 글인 「아버지의 이름」을 실어 감동을 더하고 있다.
동서양의 역사와 문화, 신화 등을 넘나드는 풍부한 인문 교양이 이윤기 특유의 해학과 재치가 어우러진 재미있는 에피소드들로 맛있게 버무려졌다. 그가 펼쳐 놓은 유려한 필치는 때로는 따뜻하고 소박한 웃음으로, 때로는 가슴 뭉클한 눈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인간에 대한 이해를 확장하고 삶의 가능성을 진지하게 탐문하는 행동하는 철학자, 또한 진정한 자유인이기도 했던 이윤기의 혜안과 주옥같은 명문을 이 책에서 만나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위대한 침묵]을 통해, 이제 이 땅의 독자들에게 마지막 희망의 메시지를 띄워 보낸다.

이야기꾼,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다
고등학교는 두세 달 만에 때려치웠고, 검정고시를 치른 후 신학대학에 입학했지만 그 역시 얼마 안 돼 그만두었다. 입대 후에는 자원하여 월남전에 참전했고 제대하고 나서는 공사판을 전전했다. 영원한 청춘이자 진정한 자유인이었던 이윤기, 그렇게 온몸으로 시대를 살았던 이야기꾼 이윤기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 영면에 임했다. 동인문학상과 대산문학상을 수상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지난 30여 년간 150여 권에 이르는 번역서를 내놓은 가장 신뢰 받는 번역가로서, 그리고 한국에 그리스 로마 신화 붐을 일으키다시피 한 최고의 신화 연구가로서 말이다.

[위대한 침묵]은 자신의 체험을 시종 명징한 언어와 유쾌하고 아름다운 문장으로 펼쳐 놓곤 했던 이야기꾼 이윤기가 마지막으로 풀어놓은 이야기보따리다. 1부 「날마다 지혜를 만나다」에서는 자연에 얽힌 단상을, 2부「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둔 열매」에서는 저자의 일상과 지인들과의 추억을, 3부 「위대한 침묵」에서는 신화와 고전, 문화에 관한 이야기들을, 4부 「부끄러움에 대하여」에서는 세태 비평과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그리고 5부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에서는 어린 시절부터 최근의 모습까지 저자의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진솔한 음성으로 들려준다.

이윤기식 유머와 빼어난 글맛에 빠지다
유고집 [위대한 침묵]은 자신의 인문학적 관심을 ‘인간현상학’이라 명명하기도 했던 이윤기의 풍부한 인문교양과 인간, 그리고 우리네 삶에 대한 깊은 사색과, 성찰, 혜안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정규교육과는 거리가 멀었던, 중학교를 졸업한 후부터는 거의 모든 것을 독학으로 배우고 익혀 왔던 이윤기.
그는 말한다. 신춘문예도 ‘당선’이 아니라 ‘가작 입선’을 했으며, 대학도 ‘졸업’이 아니라 ‘중퇴’를 한 것이라고.

소설가와 번역가 등으로 명성을 얻은 후에도, 미국 대학의 급료를 받는 ‘연구원’이 아니라 아무런 보수도 없는 ‘초빙’ 연구원이었으며, ‘교수’가 아닌 ‘객원’ 교수, ‘박사’가 아닌 ‘명예’ 박사였다고. 이윤기는 “한 번도 ‘꽃’으로 피어 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고 고백하며 “그래도 잘 살고 있”으니 “젊은이들이여, 힘들 내시라.”
고 힘껏 응원한다.

주변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하여 늘 고단하고 지친 삶으로 인해 절망하고 낙심한 이들을 위로하는 이 희망의 목소리에 빠져들게 되면, 독자들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한 채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들려주는 우리네 삶의 속내를 다시 한 번 음미하며 삶의 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게 되는 것이다.

추천의 글
선생은 쓰셨다. “나무는 나의 재산에 속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실존에 속할 것이다.” 말이 정확하고, 견결해야 하고, 또한 웅숭깊어야 한다고 하셨다. 한 분의 대가를 저세상으로 보내 드렸으나 그분이 남기신 것으로 인해 우리의 나무 그늘은 더욱 넓어지겠다. 이미 너무 넓어졌겠다. 그 그늘에서 쉬기만 할 것인가. 그러나 그분은 쉬는 것도 ‘참’이라 하실 듯하다. 쉬며 바라보고 또 건너야 할 곳을 알 터이니.
- 김인숙(소설가)

선생은 처음 만난 이 앞에서도 전에 한 번 만난 적 있었던 것처럼 소소한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 놓는다. 가끔 자신의 성공담 등으로 목소리가 커질 만한데도 선생의 목소리는 한결같이 나직나직하다. 그러다 바지 주머니에서 잘 접힌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닦는다. “이 손수건요. 소매로 쓱쓱 입이나 코를 훔치는 게 아니라 손수건을 써야 한다는 걸 알려 준 사람이 바로 제 아냅니다.” 손수건 한 장에도 사연이 있고 이야기로 풀어내는 이가 바로 선생이었다. 선생은 뛰어난 이야기꾼이었다.
선생의 돌연한 죽음이 믿기지 않는다. 선생은 어디로 간 것일까. 선생의 웃음소리와 잔잔한 목소리,겸양과 그 위트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무래도 나는 이 모든 것이 선생의 독특한 화법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기에 이 정적이 다음 말을 잇기 전의 잠깐 동안의 뜸 들임처럼 느껴진다. 여전히 나는 귀 기울인다. 선생이 다음 말씀을 꺼내 놓을 때까지.
- 하성란(소설가)

목차

1 날마다 지혜를 만나다
나무만이 희망이었다
날마다 지혜를 만나다
빈 땅에는 나무를 심어야지요
잔인한 4월, 고라니 한 마리
오, 소리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 법이거니

2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둔 열매
떠난 자리
내가 뿌린 씨앗, 내가 거둔 열매
속 깊은 친구 이야기
52년 저쪽에서 날아온 이메일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네

3 위대한 침묵
여자 때문에 망했다고?
좋은 말 몇 마디, 감옥이 되는 수도 있다
정말 그 이름들이 내게 스며들어 있을까?
나는 문화가 무섭다
위대한 침묵
터키의 '흐린 주점'에서
아름다워라, 저 울분
조르바, 지금 이 순간 뭐하는가?

4 부끄러움에 대하여
아직도 나의 옷을 입지 못하고
불편한 진실
야만적인, 너무나 야만적인
부끄러움에 대하여
이름값의 허실
'선플'이 뭡니까, '선플'이?
나도 저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한식 세계화? 좋지
사랑을 쓰려거든 연필로 쓰라니

5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
진짜 나이, 가짜 나이
나만 짠했을까?
고독은 나의 고향
없는 호랑이 만들어 내기
듣지 못하고도 살 수 있을까?
어머니는 한 번도 날 무시하지 않았다
가을 날씨가 참 좋군요
나는 추천사를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악우들이여, 안녕

아버지의 이름 -이다희

본문중에서

서판을 읽은 필리포스는 두 팔을 벌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신들의 이름을 부르고, 왕의 발치에다 몸을 던지고는, 부디 의심하지 말아 줄 것을, 부디 믿어 줄 것을 간청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침묵했다.
필리포스가 왕의 발치에 몸을 던지는 순간, 경호병들은 일제히 칼을 뽑아 들었다. 바야흐로 알렉산드로스가 탕약 그릇을 던지는 순간은 필리포스의 육신이 경호병들의 칼날에 도륙되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왕은 여전히 맑고 밝은 얼굴을 한 채 탕약 그릇을 비웠다. 시의는 가슴에다 서판을 껴안은 채 왕의 발치에 엎드려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약 기운이 돌기 시작하자 알렉산드로스의 눈빛이 흐려지면서 단호한 기운이 서려 있던 입술 주위의 힘살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곧 그는 모로 쓰러지면서 혼수상태에 빠졌다.
그러고는 얼마 후, 잿더미를 털고 일어나는 불사조처럼 그는 원기를 되찾고 병석에서 일어났다. 그의 금도는 두고두고 원정군 사이에서 얘깃거리가 되었다. 보라, 알렉산드로스는 이로써 목숨을 걸고 한 사람을 얻게 된다.
침묵의 힘이었다.
몽골 제국이 성립한 직후 카라코룸을 제국의 수도로 삼은 우구데이 칸은 칭기스칸의 셋째 아들이다. 소유의 욕망을 알지 못하는 가장 몽골적인 인간 우구데이는, 카라코룸에다 궁궐을 지어 놓고도 자신은 초원의 게르(천막집)에서 살았다는 인물이다. 그의 인품을 짐작하게 하는 이야기가 일본 작가 진슌신〔陳舜臣〕의 소설 [야율초
재]에 감동적으로 그려져 있다. 초재는 몽골 제국의 성립에 깊숙하게 관여한 금나라 출신 재상이다. 몽골 제국이 성립된 뒤에도 그의 형 야율변재와 야율선재는 몽골에의 투항을 거부하고 옛 금나라 땅에 머물고 있었다.
야율초재로서는 형들의 구명을 황제에게 탄원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
“변경에는 공자의 51대손이 살고 있다. 찾아내어 연성공 작위를 줄 것.”
황제가 칙서를 검토하면서 명했다. 칙서 초고는 초재가 작성한 것이었다.
“빠진 게 있구나. 하나 더 첨부해야 하겠지?”
황제는 조서를 쓰는 관리를 향해 천천히 말했다.
“변경에 있는 야율변재와 야율선재의 가족을 보호할 것.”
“아, 그것은…… 폐하…….”
야율초재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그 조항만은 그가 탄원했던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와 필리포스의 침묵, 야율초재의 침묵을 묵상한다. 무수한 말과 주장 들이 똥 덩어리처럼 둥둥 떠다니는 이 시대에.
(/ pp.75~77)

이 땅의 청소년들을 빌미로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쓰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너 자신을 ‘꽃’으로 규정할 자신이 없었던 모양이지? 그럴 것이다. 나는 나 자신을 ‘이류’로 규정하는 데 버릇 들어 있다.
내가 쓴 책의 저자 약력은, 1977년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하면서 문단에 나왔다고 나를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당선’한 것이 아니다. ‘가작 입선’한 것이다. 처음에는 ‘입선’이 지켜지더니 언제부터인가 슬며시 ‘당선’으로 바뀌었다. 이제는 나도 이것을 ‘입선’으로 되돌려 놓을 재주가 없다. 1970년대, 1980년대는 대학중퇴자가 건너기는 퍽 고단한 시절이었다. 나는 대학을 ‘중퇴’했는데도 언제부터인가 나의 약력에서 ‘수학’은 ‘수료’ 혹은 ‘졸업’으로 바뀌었다. 2006년 여름, 나는 모교 총장으로부터 ‘명예졸업장’이라는 것을 받았다. 하지만 그 순간까지 편집자들이 준 ‘졸업장’은 내내 나를 불편하게 했다.
1991년부터 나는 한 미국 대학의 ‘초빙 연구원(Visiting Scholar)’이었다. 직역하면 ‘방문 학자’가 되지만 학교에서는, 국내에서 쓰일 나의 직함을 ‘초빙 연구원’으로 번역하게 했다. ‘초빙 연구원’은 학교에서 보수를 받지 않는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의 약력에서 ‘초빙’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미국 대학에서 급료를 수월찮게 받는 ‘연구원’으로 슬슬 둔갑한 것이다. 내가 머물던 미국 대학은 1999년부터 나에게 '객원교수(Visiting Professor)’라는 직위를 쓰게 했다. 국내에서 몇 차례 약력에다 썼던 것 같다. 그러다 슬그머니 지워 버렸다. 편집자들이 ‘객원’을 지워 버리고 ‘교수’로 격상시킬까 봐 겁이 덜컥 났던 것이다.
나는 미국인들로부터 오랫동안 ‘이 박사(Dr. Lee)’로 불렸다. 우리 나이 또래에 미국 대학에 붙어 있는 사람치고 ‘박사’ 아닌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불릴 때마다 불편했다. 2005년 국내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그랬다. 이제는 누가 ‘박사’라고 불러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명예’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박사는 박사니까.
미국에서 잠시 얻어 가졌던 ‘객원교수’ 칭호 때문에 ‘교수님’이라고 더러 불렸다. 들을 때마다 불편했다. 2006년 9월 국내에서 ‘명예교수’ 임명장을 받기까지 그랬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교수’라고 불러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다. ‘명예’가 붙어 있기는 하지만 교수는 교수니까.
이삼 년 전, 한 신문사로부터 ‘객원 논설위원’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고 화를 발칵 낸 적이 있다. 이 나이에 또 ‘객원’을 하라고?
입선, 중퇴, 초빙, 객원, 명예…… 보라, 한 번도 ‘꽃’으로 피어 보지 못한 채 나는 ‘잎’으로만 살았다. 그래도 잘 살고 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여, 힘들 내시라. 이렇게 살아온 사람도 있으니.
(/ pp.98~100)

‘희망의 등대에 오르려면 실천의 계단을 올라야 한다.’
소년은 ‘실천의 계단’을 ‘희망의 등대’에 오르는 한 과정이라고 파악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이제 60대 중반으로 접어든 그 소년,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그는 더 이상 ‘실천의 계단’을 ‘희망의 등대’에 오르는 한 과정으로 보지 않는다. 그는 실천의 계단과 희망의 등대를 동일시한다. 희망의 등대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지, 실천의 계단 저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는 믿는다. 행복에 대해서도 그는 똑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
나에게는 ‘지금’, ‘여기’가 소중하다. 어린 시절의 나는 밤바다를 밝히는 희망의 등대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나, 지금의 나에게 그런 것은 없다. 따라서 희망의 등대에 오를 일도 없다. 계단을 오르는 순간순간이 나에게는 소중할 뿐이다. 따라서 설날은 지구가 한 주기의 공전(空轉)을 완료하고 새로운 공전을 시작하는 날일 뿐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나는 계절에도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계절의 주기를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천지불인(天地不仁). 자연은 인간에게 어질지 않다. 자연에게 인간은 추구(芻狗), 짚으로 만든 개에 지나지 못한다. 노자(老子) 말씀 이 한마디를 읽는 순간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 그때부터 나는 ‘지금’, ‘여기’만을 소중하게 여기면서 살고자 애쓴다. 나는 내 가족과의 행복 같은 것도 따로 설계하지 않는다. ‘내’가 그들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 그들이 ‘나’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로지 이 믿음에만 의지해서 살 뿐이다. 행복은 내가 덤으로 누리는 마음의 한 상태다.
(/ pp.126~127)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독자들 가운데 몇몇이, 아버지가 번역한 [장미의 이름]의 마지막 문장을 적어 추모의 뜻을 표했다.
Stat rosa pristine nomine, nomina nuda tenemus.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뿐.
이제 이름뿐이라니, 그것도 ‘덧없는’ 이름뿐이라니. 애잔한 추모의 마음을 전하려고 했을 것이 분명한 독자들의 의도와 달리 이 문장은 내 마음에 날카로운 칼날로 날아와 꽂혔다. 그러나 오래 아프지는 않았다. ‘장미’의 향기는 꽃이 지면 사라지고 남는 것은 이름뿐이지만 다행히 아버지는 이름만 남긴 것이 아니다. 아버지의 향기는 책과 글 속에 남아 있다. 새로운 소설은 더 읽을 수 없지만 아버지가 남기고 간 소설은 적지 않고 그 힘도 살아 있다. 산문도 있고 신화 이야기도 있고 번역도 있다. 이렇게 많고 귀중한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는 자식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10년 후에도 서점의 진열대에서 아버지의 책을 볼 수 있다면 그 또한 근사한 일일 것이다.
정말이지, 아버지는 ‘너무’ 멋있었다.
(/ pp.174~175)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7~2010
출생지 경북 우보면 두북동
출간도서 42종
판매수 65,896권

소설가. 번역가. 경북 군위 출생. 검정고시를 통해 고졸학력을 얻고 성결신학대 기독교학과를 수료함. 베트남전에 참가하기도 함.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하얀 헬리콥터>가 당선됨. 1991년부터 1996년까지 미국 미시간주립대학교 종교학 초빙 연구원, 미국미시간주립대학교 문화인류학 객원 교수로 재직했음. 순천향대학교 문학명예박사를 받음. 번역을 생업으로 삼아 『그리스인 조르바』(1981), 『장미의 이름』(1986), 『세계 풍속사』(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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