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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동화작가였던 현덕의 작품들을 모은 전집. 1930년대 후반에 집중적으로 활동한 현덕은 계급적 도식이나 주관의 전망을 내세우지 않고 현실의 모순을 한층 깊이 있게 드러내는 독특한 서술 원리를 창안하였다. 이 책에는 현덕이 쓴 소설, 소년소설, 동화, 수필 분야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대표준어로 바꾸었지만, 작가의 독특한 문체는 되도록 살리고자 했다. [양장본]

현덕 탄생 100주년 기념, [현덕 전집] 발간
노마의 작가 현덕(玄德, 1909~?)의 문학전집이 작가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나와서 눈길을 끌고 있다. 현덕은 1909년 2월 15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인천 근해의 대부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으며, 단편소설 <남생이>가 1938년[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됨으로써 단박에 문단의 기린아로 떠올랐다. 하인천 부둣가의 이농민 출신 도시빈민의 세계를 어린 노마의 눈으로 포착한 <남생이>는 안회남으로부터 “현 문단의 최고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박태원은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한갓 부끄럽다”고 고백했고, 해방 직후 현덕 소설집[남생이]의 발문을 쓴 김남천은 “경이적 신인의 출현에 문단이 온통 환호했다”고 이 작가를 회고했다.

[현덕 전집]은 현덕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인하대 원종찬 교수가 편집한 것으로 도서출판 역락에서 출간되었다. 전집은 소설집[남생이]와[수확의 날], 동화집[포도와 구슬]과[토끼 삼형제], 소년소설집[집을 나간 소년]을 비롯해서 작품집에 실리지 않은 중편 <녹성좌>와 수필, 평론들을 모두 모아서 갈래별, 연대별로 수록했다.

기억해야 할 작가, 현덕
김유정과도 절친한 사이였던 현덕은 해학적이고 토속적인 체취가 물씬한 ‘노마 연작소설’로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일제시대 조선일부 출판부에 근무하던 동요시인 윤석중의 권고로[조선일보] 부록[소년조선일보]에 노마가 등장하는 유년동화를, 잡지[소년]에는 가난한 고학생들이 등장하는 소년소설을 잇달아 발표함으로써 유년동화와 소년소설의 개척자로도 주목되었다. 고인이 된 아동문학가 이오덕은 현덕의 유년동화를 가리켜 “현덕 이전은 말할 것도 없고 현덕 이후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이만한 유년동화를 쓴 작가는 나오지 않았다”고 평가했으며,[강아지 똥]과[몽실 언니]의 작가 권정생도 “우리 동화작가들이 현덕의 동화를 진즉에 읽을 수 있었다면 좋은 작품을 더 많이 쓸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처럼 높은 평가를 받은 현덕은 6.25 동란 때 월북함으로써 사람들 기억에서 사라진 작가가 되었다. 그는 북한에서 “구수하고 유머러스한 농촌단편소설들로써 우리 문단의 색채를 다양하게 함에 기여”([조선문학] 광고문)했다고 평가된 단편소설집[수확의 날]을 1962년에 펴냈지만 뒤에는 숙청된 것으로 보여 북한문학사에서도 전혀 언급이 없고 지금까지 생사조차 알 수 없는 상태이다. 2006년 10월 30일 금강산에서 열린 ‘6.15 민족문학인협회’ 결성식에 참가했던 인하대 한국어문학과의 원종찬(元鍾讚) 교수는 북한이 자랑하는 금속재료 분야의 여성과학자 현영라가 작가 현덕의 딸임을 대회에 참가한 북측 원로 동화작가들로부터 확인했다고 한다.

아동문학의 중심 ‘노마’를 아시나요?
현덕은 월북했기 때문에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가 창조한 대표적인 캐릭터 ‘노마’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노마는 마당쇠, 돌쇠, 놈이처럼 ‘이놈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서 유래한 토속적인 이름이다. 장난꾸러기이지만 속이 깊고 영리한 노마는 영이, 기동이, 똘똘이 등 또래친구들 사이에서 늘 창의적으로 놀이를 주도하는데, 그 매력적인 캐릭터를 잃어버린 채로 후대의 아동문학 작품들에서 이름만 간간히 이어져 왔다. 심지어 어느 제약회사의 상표로도 등록되어 사람들은 노마를 외국 이름으로 알고 있기 일쑤이다. 그러다가 원종찬 교수가 발굴한 현덕의 ‘노마 시리즈 동화’들이[너하고 안 놀아](창비, 1995)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뒤로 ‘노마’ 캐릭터는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 동화집은 지금까지 초판 45쇄에 이르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아 작가 현덕을 다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노마’가 주인공인 현덕의 유년동화는 그림책으로 재탄생한 것만 해도 현재 5종을 넘어선다.

현덕동화집이 새로 출간된 이후 아동문학 쪽에서 현덕의 위치는 확고해졌다. 아마도 현덕의 동화와 소설에 나오는 ‘노마’는 한국문학이 창조한 가장 매력적이고 잊을 수 없는 캐릭터의 하나로 오래도록 살아남을 것이다. 이번 전집 출판을 계기로, 유년 시점의 독특한 서술방법을 창안하여 우리 근대소설의 자산을 풍부하게 하는 데 기여한 현덕의 문학세계에 대한 조명이 새롭게 이뤄질 것이라 기대된다.

1. 소설
작품집 [남생이]―경칩(驚蟄)
남생이
두꺼비가 먹은 돈
잣을 까는 집
골목
군맹(群盲)
발(跋)
기타―녹성좌(綠星座)
층(層)
이놈이 막내올시다

2. 소년소설
작품집 [집을 나간 소년]―하늘은 맑건만
잃었던 우정
나비를 잡는 아버지
군밤장수
고구마
월사금과 스케이트
집을 나간 소년
모자(帽子)
권구(拳球)시합
방송극 눈사람
방송극 꿩과 닭
기타―행진곡
아름다운 새벽

3. 동화
작품집 [포도와 구슬]―물딱총
바람은 알건만
옥수수 과자
새끼 전차
싸전 가게
맨발 벗고 갑니다
내가 제일이다
아버지 구두
과자
귀뚜라미
싸움
포도와 구슬
여자 고무신
대장 얼굴
둘이서만 알고
암만 감아두
바람하고
기차와 돼지
뽐내는 걸음으로
너하고 안 놀아
잃어버린 구슬
의심
고양이와 쥐
용기
실수
어머니의 힘
땜가게 할아범
조그만 발명가
실망
동정
우정
큰소리
고양이
두꺼비가 먹은 돈
고무신
작품집 [토끼 삼형제]―조그만 어머니
토끼 삼형제
토끼와 자동차
강아지
큰 뜻
기타―달에서 떨어진 토끼

4. 수필, 기타
자서소전
내가 영향 받은 외국 작가
부엉이
살구꽃
장발기(長髮記)
지연(紙鳶)
잊을 수 없는 그대여
할미꽃
시 봄
말을 더듬다 쥐어박혀
입병이 나서
쓰레기통을 뒤지는 옛 동무
숨어서 다 들은 할머님의 욕
새사람이 됩시다

5. 월북 이후
작품집 [수확의 날]―수확의 날
전진하는 사람들
부싱쿠 동무
불붙는 탄광
싸우는 부두
기타―소설 복수(復讐)
평론 작가는 금 간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평론 생활의 진실과 단편소설
평론 단편소설에 대한 나의 생각

[해설] 기억해야 할 작가, 현덕_원종찬
작가 연보
작품 연보

호두형으로 조그만 항구 한쪽 끝을 향해 머리를 들고 앉은 언덕, 그 서남면 일대는 물미가 밋밋한 비탈을 감아 내리며, 거적문 토담집이 악착스럽게 닥지닥지 붙었다. 거의 방 하나에 부엌이 한 칸, 마당이랄 것이 곧 길이 되고, 대문이자 방문이다. 개미집 같은 길이 이리 굽고 저리 굽은 군데군데 꺼먼 잿더미가 쌓이고, 무시로 매캐한 가루를 날린다. 깨어진 사기요강이 굴러 있는 토담 양지쪽에 누더기가 널려 한종일 퍼덕인다.
냄비 하나에 사기 그릇 몇 개를 엎어 놓은 가난한 부뚜막에 볕이 들고, 아무도 없는가 하면, 쿨룩쿨룩 늙은 기침 소리가 난다. 거푸 기침 소리는 자지러지고, 가늘게 졸아들더니, 방문이 탕 하고 열린다. 햇볕을 가슴 아래로 받으며, 가죽만 남은 다리를 문지방에 걸친다. 가느다란 목, 까칠한 귀밑, 방 안 어둠을 뒤로 두고 얼굴은 무섭게 차다.
“노마야－”
힘없는 소리다. 대답은 없다. 좀 더 소리를 높여 부른다. 세 번째는 오만상을 찡그리고 악성을 친다. 역시 대답은 없다. 다시금 터져 나오는 기침에 두 손으로 입을 싼다.
길 하나 건너 영이 집 토담 밑에서 노마는 그 소리를 곰보 아버지가 곰보를 부르는 소리로쯤 들어 넘기고 만다. 마침 영이가 부엌문 옆에 붙어 서서 손을 뒤로 돌려 숨기고,
“이게 뭔데.”
조금 전 영이 할머니가 신문지에 떡을 싸 들고 들어간 것과 영이가 투정을 하던 것까지 아는 일이니까, 노마는 그 손에 감춘 것이 무언지 의심날 게 없는 터다. 그러나,
“구슬이지, 뭐야.”
“아닌데 뭐.”
“물뿌리지, 뭐야.”
“아닌데 뭐.”
“석필이지, 뭐야.”
“이거라구.”
마침내 영이는 자신이 먼저 깜짝 놀라는 표정을 하고, 턱 밑에 인절미 한 쪽을 내민다. 금세 노마는 어색해진다. 두어 번 어깨를 졌더니, 슬며시 뒷짐진 손이 풀려 받는다.
영이보다 먼저 먹어 버리지 않을 양으로 적은 분량을 잘게 씹어 천천히 넘기며, 차츰 노마는 곰보를 부르던 소리는 기실 아버지가 저를 부르던 음성이던 것을 깨달아 간다. 그러나 일부러 대답하지 않은 그 일이 목을 넘어가는 떡 맛보다 더 고소하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