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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 여덟 번째 시집. 사랑을 노래한 연시만 골라 엮은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인연과의 관계 속에서 아픈 각성과 절절하면서도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내고 있다.

이재무 시인의 저 도저한 시구처럼 전생을 바치는 사랑은 가능한가? 삶으로써, 문학으로써, 또한 사랑으로써 가능한 일인가?

사랑의 원형질에 관한 모티프는 이재무 시인의 시를 통한 홍용희의 해설에 잘 드러난 바와 같이, 그것은 무릇 신화나 전설을 매개로 하여 사랑을 주제로 한 모든 작품에 구현된다. 다만 우리가 궁금한 것은 현실적 인간으로 살다갔거나 살고 있는 시인(문학인)의 체험적 사랑은 어떠하고, 이성적 만남과 연정의 과정과 사랑이 끝난 후 애증의 정서를 통한 서정적(시적) 구현의 양상은 어떠한가라는 점일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앞 시구와 관련된 질문에 대한 답을, 사랑의 유형이 단순화되는 문제를 우리가 감안해준다면 단테의 ‘베아뜨리체’에 대한 사랑과 괴테의 ‘로테’에 대한 사랑을 통해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단테는 젊은 시절 만난 베아뜨리체 단 한사람에 대한 연정을 일평생 품고 살다 갔다. 반면 괴테는 로테로 대표되는 숱한 연인들을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고를 일평생 반복했다(심지어 팔십 고령에도 십대 소녀에게 사랑을 고백하나 실연당하기도 한다). 단테의 베아뜨리체에 대한 순정, ‘로테’들에 대한 괴테의 열정. 순정과 열정은 단순화한 사랑의 두 유형이라 할 수 있는데, 이 두 유형은 자체로 사랑의 원형질임과 동시에 인간의 이성적(異姓的) 연모와 욕망을 끌어가는 원동력일 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주목하고 있는 시인 이재무의 경우는 어떠한가? 시집『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의 전체 시편들에 서정적 사유를 제공하는 연인은 하나가 아니라는 점에서 두 가지 사랑의 유형 중 순정을 바탕으로 하나 열정에 가깝다하겠다. 근원적 관계와 사랑에 대한 결핍과 목마름의 열정이 시인의 생을 ‘연애적’ 삶으로 일이관지 흘러오게 했고, 그 열정이 또한 시인을 창작실로 데려다 놓고는 저 도저한 연시들을 생산하게끔 하였을 것이다.

하여 이 시집의 시편들은 시인의 체험을 떼어놓고는 읽힐 수 없는 성질의 것들이고, 「제부도」 「관계 혹은 사랑」 「아포리즘」 「비밀이 사랑을 낳는다」「슬픔은 늙지 않는다」 등에서 확인되는 바, 시집 전편을 흐르는 정서는 애이불비의 문학적 품격의 향이다. 또한 이재무의 시를 이재무의 시로 읽히게 하는 것은 비늘처럼 반짝이는 절묘한 비유와 경험치 만큼을 진술하는 ‘실사구시의 문법’에 있다. 이를 바탕으로 이 시집은 인연과 관계의 아픈 각성의 결과물과 절절하고 빛나는 사랑의 아포리즘을 성공적으로 구현해내고 있다.

후배 시인 김선태는 “이재무의 사랑 노래는 타고난 생태적 본능과 리듬에 충실하다. 그것은 사랑의 아픔으로 인한 깊은 성찰과 강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장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값싼 연애시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재무 시인으로 하여 우리는 오랜만에 품격 높은 연애시를 만나는 행복을 누리게 됐다.”라고 시집을 엮는 과정에서 평하였다.

문학평론가 홍용희는 오디세우스와 사이렌 신화의 모티프를 들어 원초적 모성결핍의 시적 상황이 부나비와도 같은 관계 혹은 사랑의 아픔과 슬픔을 반복하는 운명에 처해있다고 해석하며 “이재무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시적 삶은 적멸의 열반으로 집중된다. 따라서 그의 환희와 고통이 교차하는 사랑의 역정은 죽지 않고 죽음을 체험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해석된다. 다시 말해, 그의 사랑 노래는 ‘사랑을 사랑하는 것’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의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오지 않았”던 “온다던 사람”(「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과의 완전한 해후는 죽음을 지불할 때 가능하다. 이렇게 보면, “꽃그늘” 아래의 열반을 꿈꾸는 이재무의 시적 삶의 항해는 오디세우스를 죽음으로 유혹하는 사이렌의 노래를 향해 조금씩 자맥질하고 있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평하고 있다.

제1부
봄비 / 제부도 / 관계 혹은 사랑 / 석모도의 저녁 / 갑자기 찾아와서 / 연주자 / 바람
한여름 / 청승 / 아포리즘 / 토란 / 아카시아 / 누군가 나를 울고 있다면
사랑이 지나간 자리 / 유리잔 / 북한강에서 / 벼랑 / 비밀이 사랑을 낳는다

제2부
이제는 돌아가 기도할 때가 되었습니다 / 배부른 종달새처럼 / KTX
비·바람·눈·별빛·달빛이 되어 / 꽃그늘 / 남겨진 가을 / 방화범 / 삶 / 테니스 치는 여자
저 못된 것들 / 빈 그네 / 감자 꽃 / 거미의 방 / 겨울바다 / 수인囚人

제3부
모텔 /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 슬픔은 늙지 않는다 / 부부 / 숯불 / 병뚜껑 / 비디오방
채털리부인의 연인처럼 / 흙내 / 스스로 찾아오는 것 / 목련꽃
부나비들은 저렇게 사랑을 하는구나 / 봄이여, 잔인한 형벌이여 / 소풍은 끝났다

제4부
송가送歌 /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 이별 / 첫눈 / 덧나는 슬픔 / 그날 이후 / 그 해 가을·1
그 해 가을·2 / 열쇠와 자물쇠 / 대천 어항에서 / 자작나무 / 온다던 사람 오지 않았다
딸기2 / 불꽃 / 동백꽃 / 가는 비 / 그리움 / 그 해 겨울 / 버려진 꽃 / 가을비
너의 부재 이후·3

해설 /사랑 혹은 치명적인 매혹의 노래 _홍용희(문학평론가)

이재무는 야생의 습성을 타고난 시인이다. 비록 그의 몸은 문명과 제도와 관습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마음은 저 시원의 들판을 마음껏 뛰놀고픈 푸른 고집을 꺾지 않고 있다. 그러므로 문명의 울타리 안에서 그의 사랑은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일과 같다. 게다가 일찍 부모를 잃고 정처 없이 유목의 생을 살아온 그의 가슴 저변에는 사랑에 대한 허기의 구멍이 밑 빠진 독처럼 뻥 뚫려 있다.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허기로 인해 그는 늘 종달새처럼 사랑을 지저귀지만, 사실은 자신의 지독한 외로움을 울고 있는 것이다.
이재무의 사랑 노래는 타고난 생태적 본능과 리듬에 충실하다. 그것은 사랑의 아픔으로 인한 깊은 성찰과 강물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문장을 거느리고 있다는 점에서 여느 값싼 연애시와는 분명하게 구별된다. 이재무 시인으로 하여 우리는 오랜만에 품격 높은 연애시를 만나는 행복을 누리게 됐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재무 만큼 사랑에 목을 매다는 이는 흔치 않다. 그런 점에서 그는 숙명적으로 사랑의 허기를 타고난 시인이다.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구해지고 마는 지천명의 철부지 소년이다. 부디 아프도록 아름다운 그의 사랑 노래가 메마른 세상을 촉촉이 적시며 강물처럼 흐르길 바란다.

-김선태(시인. 목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의 추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