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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80년대 학자이자 통일운동가였던 무기수 안재구씨의 아내가 쓴 자전적 회고록. 남편이 자유의 몸이 된 이듬해부터 틈틈이 자신의 삶을 담담히 되돌아보며 써온 글들을 묶은 것이다. '남민전'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남편과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아들을 감옥에 보내고 험난한 세월을 감당해야 했던 한 여인의 인생담과 가족의 고난과 시련 등을 담았다.

쥐어지지 않는 양산은 1970-80년대 학자이자 통일운동가의 아내가 쓴 자전적 회고록이다.
필자 장수향 씨의 남편 안재구 선생은 전 경북대, 숙명여대 교수 출신의 세계적인 수학자였다. 하지만 남편은 유신정권 시절, 이에 저항하는 활동을 하다 1979년 '남민전'사건으로 구속되어야만 했다. 1심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2심에서 가까스로 무기로 감형된 남편은 1988년까지 약 10년 간 감옥살이를 했다.

어느 날 갑자기, 교수의 아내에서 어린 4남매의 생계를 걸머진 수인(囚人)의 아내로 전락한 삶은 어떠했을까. 더구나 남편은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 간첩으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남편의 구명운동, 이어진 무기수 남편의 옥바라지와 석방운동, 남은 가족의 생계와 4남매의 교육, 여기에다 가까운 지인들에게까지 받아야만했던 소외와 냉대. 이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감당해야만 했던 아내의 이야기가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제까지 1970-80년대 민주화와 통일운동가들의 이야기는 많이 공개됐지만 정작 그들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그들 이상으로 고난과 시련을 감내해야만 했던 아내들의 이야기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다. ?신념?에 초점을 맞춘 민주화,통일운동가의 기록이 아니라, ?생활?에 초점을 맞춘 그 아내의 구체적인 삶의 기록이란 점에서 이 책은 더욱 돋보인다.

게다가 장수향 씨의 이야기는 남편에 대한 기록으로 그치지 않는다. 1990년 대학생이었던 아들의 1차 구속, 여기에다 1994년에는 남편과 아들이 같은 사건으로 함께 구속되는 일마저 겪어야만 했다. 남편은 다시 끝 모를 무기수의 길을 걸었고, 아들은 남편과는 또 다른 깊은 슬픔을 자신에게 남겼다.

아내의 자리와 어머니의 자리는 어떻게 다른 것일까. 남편을 감옥에 둔 아내와 자식을 감옥에 둔 어머니의 입장은 같은 듯 하면서도 분명히 다를 것인데 필자는 뼈아픈 체험을 통해 이를 생생하게 그려내 보이고 있다.

민주화,통일운동가의 아내이자 어머니가 쓴 수기라는 점에서 그가 겪었던 세월이 언뜻 딱딱해 보일 수도 있지만 필자는 1970-90년대의 시대적 상황을, 건조한 관찰자(역사가)의 눈이나 능동적인 주체(운동가)의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닌, 한 걸음 비켜선 가족의 입장에서 생동감 있게 전달하고 있다. 특히 그의 이야기 속에는 통일운동가의 가족이 겪어야만 했던 삶의 주름이 함께 배어 있어 더욱 생생하다.

물론 통일운동가의 가족들 중에서도 당사자 못지않게 뛰어난 신념이나 행동의지를 지닌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본디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러한 성격으로 감수해야만 하는 고민과 갈등, 삶의 버거움이 안쓰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읽혀진다. 애써 역사적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하느님이 원망스럽다.

혼자의 몸으로 갖은 고생을 하며 자식들을 훌륭하게 교육시킨 어머니들의 이야기는 항상 감동적이다. 그러나 필자의 경우에는 여기에 '역사성'이 보태어져 있다. 생활고는 물론, 남편의 신념이 선택한 '역사적 의미'까지 받아들이며 자식들을 교육시키고 남편의 뒷바라지를 하여야 했다. 우리의 현대사가 낳은 독특한 '어머니상(像)'인 것이다.

필자는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2년여에 걸쳐 자필로 대학노트 대여섯 권을 빽빽하게 메운 글은, 칠순이 다된 노인의 서투르지만 소박한 글쓰기의 맛을 느끼게도 해준다. 게다가 그의 이야기는 진솔함이란 글의 생명력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남편에 대한 가감 없는 애증과 세상에 대한 원망도 오히려 그의 따스한 필체를 통해서는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그런 면에서 필자의 칠십 인생이 오롯이 담긴 〈쥐어지지 않는 양산〉은 자서전 혹은 기록문학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민주화,통일운동가의 가족이기 이전에 팍팍한 우리 현대사를 헤쳐 나온 여성이자 아내, 어머니로서 살아온 필자의 삶이 우리의 오늘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1장 짧은 봄, 긴 겨울
인연의 시작 / 양철대문 집 / 젊은 이학박사 / 불길한 예감
해직 / 네 아이들 / 1979년 10월 5일 / 삼엄한 포위
어마어마한 사건발표 / 검은 세단 차에 실려 / 남편의 체포

2장 사형입니다
응답 없는 하늘 / 마지막 지푸라기 / 무서운 사람
감옥으로부터의 첫 편지 / 1980년 5월 2일 / 사형 선고
살려야 한다 / 서명운동 / 쥐어지지 않는 양산 / 학문의 힘
삶과 죽음의 갈림길

3장 그리운 기억 저편
첫 기억 / 까다로운 아이 / 대문 밖 세상 / 외로운 어머니 / 헌칠하신 아버지
단아한 이모님 / 아쉬운 지리공부 / 단발머리 중학생 / 참혹한 광경
전쟁의 소용돌이 / 졸업을 앞두고 / 첫 직장, 소년세계 / 두 번째 직장, 도청 학무과

4장 뒤바뀐 일상
반가운 우체부 / 첫 행상 / 고마우신 선생님들 / 우산 / 지워진 문패
문화 아파트 / 보험회사 / 잊을 수 없는 친구들 / 신앙

5장 편지 한 장의 그리움
전주교도소 (1981년 1월-1982년 2월)
광주교도소 (1982년 2월-1986년 8월)
대전교도소 (1989년 9월-1989년 12월)
대구교도소 (1986년 12월-1988년 12월)

6장 팔자가 센 모양이지요?
‘팔자’와 ‘인연’ / 명동성당 농성 / ‘남민전’ 사건 가족
국회의사당 농성 / ‘민가협’ 결성 / 조선일보 앞 시위
국제사면위원회, 엠네스티 / 그리운 문목사님
잊을 수 없는 김신부님 / 빗나간 기대 / 석방

7장 소박한 바램
아버지를 닮은 막내아들 / 잦아들지 않는 바람 / 쓸쓸한 병실
또 한 번의 무기징역 / 젊은 아내들 / 신림동 꼭대기 / 소박한 행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