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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음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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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 함정임
  • 출판사 : 이마고
  • 발행 : 2002년 05월 31일
  • 쪽수 : 196
  • ISBN : 8995266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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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함정임은 스스로를 일컬어 '그리움 없이 부끄러움 없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라 한다. 육신의 고통이나 마음의 괴로움과 마찬가지로 먼 곳을 향하는 그리움과 절로 고개를 숙이게 만드는 부끄러움이야말로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문학을, 생을 이끌어가는 빛이라고. 이 산문집에 실린 50편의 글들은 바로 그 '그리움과 부끄러움'의 진솔한 기록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하는 그리움일 때도 절로 고개 숙이게 만드는 부끄러움일 때도 늘 작고 소박한 것, 한눈에는 들어오지 않지만 자꾸만 눈을 끄는, 하찮아 보이지만 결코 하찮지 않은 것들에 가서 머문다. 이미 그 이전에 한두 권쯤은 있었을 법한 산문집을 등단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묶어내면서 이 책의 제목을 [하찮음에 관하여] 라고 붙인 이유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그는 말한다. "한눈에 마음을 사로잡고, 빼어나게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기는 쉽다. 반면 몇 번 보아야 겨우 눈에 들어오는 일상의 대수롭지 않은 것들을 사랑하기란 얼마나 쉽지 않은가."라고. 이 책에 실린 글과 사진에 등장하는 모든 대상과 장소는 저자가 이와 같은 마음으로 보고 느끼고 가본 곳들이다. 때로는 아스라한 추억이 되어, 때로는 깨진 병조각에 찔린 것 같은 아픔이 되어 고스란히 저자 자신의 삶이 된 것들이다.



아침이면 창문을 열듯 항아리의 뚜껑을 여는 작은 청동 항아리가 그렇고, 헤세의 숨결이 스며 있는 독일의 작은 마을 칼프가 그렇고, 벚꽃에 홀려 건너던 현해탄이 그렇고, 취리히 미술관 율리문에서 우연히 맞닥뜨렸던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의 사진전' 포스터가 그렇고, 아이와 함께 오지 않는 새를 기다리던 정발산이 그렇다. 이 책은 지난 12년 동안 그를 지켜내고 보듬어온 바로 그 '하찮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두겹의 슬픔'을 지나 지금 여기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작가 함정임의 생생한 기록이다. 때로는 아스라한 추억으로, 때로는 깨진 병조각을 밟은 것 마냥 쓰라린 아픔으로 다가온다.



첫번째 장은 집을 떠나 새로운 세상에서 머물렀던 기억을 풀고 있다. 로마, 베네치아, 파리 등지로 떠나면서 마음 먹은 생각과 그곳에서 발견한 삶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두번째 장은 그녀의 문학인생에 영향을 준 사람들에게 바쳐진다. 김윤식, 오정희, 김치수, 김소진, 기형도에 이어 한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거울이 거울을 보듯 저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외면해야 했던" 어머니가 소개된다. 세번째 장은 생활의 면면과 일상을 풍경을 펼쳐낸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후 습관적으로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아들을 보며 "어쩌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나에게 그러했듯이 생을 보다 웅숭깊게 만드는 불행한(?) 축복일지도 모른다"고 고백한다. 아이와 보낸 즐거운 나날들이 엄마로서의 함정임을 부각시킨다. 네번째 장은 영화, 사진, 그림, 책 등 그녀가 즐겨다루는 예술 전반에 대해 이야기한다. 특히, 사진에 대한 관심과 애착이 강하다. 앙드레 케르테츠의 사진이 심장 뛰듯 하다고 표현하고, '고엽'의 시인 자크 프레베르와 여고시절 심한 부끄러움을 안겨준 김승옥의 [무진기행] 에 대해 털어놓는다.

목차

1. 지워지다, 살아나다

이완의 포즈들

그래도 봄날은 간다

여름을 위한 소행들

베네치아, 매혹

빛 항아리, 바람 항아리, 마음 항아리

지워지다, 살아나다

본 조르노, 조제피나!

내 영혼의 악마

브라보 마이 라이프!

한 그루 나무의 마음

우리가 떠나야 하는 이유



2. 운명을 엿본 자의 표정

방랑, 부끄러움의 이름으로

운명을 엿본 자의 표정

한 우물이 있었네

오어사, 당신의 물고기

하늘 바퀴를 타고 간 사람

부테의 호수

프로방스 가는 길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당신의 바다는 어디입니까



3.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

새를 기다리며 다시 부르는 삶의 노래

바람의 아내

꽃빚

풍경의 이면

내 마음의 보석

오차드와 요시에

마틴의 수

여름밤 축몽, 우몽

예의에 대하여

극성 엄마의 궁핍한 변명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가



4. 푼크툼, 하찮고도 하찮은

단절 이후 다가온 불온한 천국

사진전을 나오면서

푼크툼, 하찮고도 하찮은

아줌마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미술관에서 길잃기

퐁피두, 백남준 그리고 미로

음식으로 쓰는 유럽 문명사

소박한 음식이 아름답다

얼음에 갇히다

순정의 미학

그래도 사랑밖에 없다

이야기하기의 방식

그리움의 형식

일기, 글쓰기의 유혹

이방인의 계보

사진과 문학의 황홀한 공존

가을 저편에서 들려오는 생성과 소멸의 노래

부끄러움의 미학, 반항의 시학

본문중에서

아빠가 저 세상으로 훌쩍 떠난 후부터 아이는 그리워하는 버릇이 생겼다. 곁에 없는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이끌리고, 보고 싶고, 생각하는 마음, 생각하다 못해 섬기는 마음이 깊어지는 것이 그리움의 실체라면 다섯 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너무 일찍 내려진 가혹한 형벌이다. 그러나 한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아버지란 존재의 그늘을 전혀 체험하지 못한 내 유년기를 돌이켜보면 그리움이란 단지 형벌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아이에게 그리움이란 나에게 그러했듯이 생(生)을 보다 웅숭깊게 만드는 불행한(?) 축복일지도 모른다.



늦도록 어둠이 찾아오지 않아 더 늦도록 잠 못 이루는 여름밤, 아이를 자동차에 태우고 한강으로 임진강으로 내달린다. 강도 들도 산도 어둠에 싸이고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우주의 주인이 되는 시간. 아이는 그저 즐거워 종달새처럼 재잘거리다가 차가 앞으로 전진하며 매초마다 눈앞에 새롭게 펼쳐놓는 존재의 이름과 이름뜻을 알기 위해 묻고 또 묻는다. 아이의 물음은 지칠 줄 모르고 흐르는 강물과도 같이 이어진다. 아이란 신령한 그 무엇을 자기 존재 속에 담고 있는 또 하나의 우주이다.



아이는 밤마다 오래 생각한 우주론을 힘겹게 띄엄띄엄 나에게 전한다. 아이는 그리움으로 기다림을 알게 되었고, 우리가 사는 지구를 알게 되었고, 지구 밖의 무수한 지구 별로 이루어진 우주를 알게 되었다. 아이의 말을 대충 추스려보면 이렇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이 지구이고, 이 지구는 지구 밖 다른 무수한 지구 별과 함께 공존하며 우주를 이룬다. 아빠는 그 우주로 잠시 볼일 보러 갔다. 우리도 아빠처럼 우주에 살고 있는 한 우리는 같은 세계에 함께 있는 것이다.



(그리움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다/ p.89~9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4.02.07~
출생지 전북 김제
출간도서 35종
판매수 12,343권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소설집 『버스, 지나가다』 『저녁 식사가 끝난 뒤』, 중편소설 『아주 사소한 중독』, 장편소설 『춘하추동』 『내남자의 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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