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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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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고전적 스타일과 현대적 플롯을 절묘하게 접목시킨, 당신이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
환상문학 웹진 [거울]의 대표작가 곽재식이 선사하는 소설의 진정한 재미와 참맛

대한민국에서 가장 독창적이고 흥미로운 장르 단편소설들이 모이는 집합체라 할 만한 환상문학웹진 [거울]. 2003년 창간 이후 1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 소위 주류 문학계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스타일상으로도 주제상으로도 뛰어난 개성적인 작가들을 탄생시킨 환상문학웹진 [거울]의 또 다른 대표작가 곽재식의 첫 장편소설이 알에이치코리아를 통해서 출간되었다.

곽재식은 2005년 환상문학웹진 [거울] 24호에 단편 [달과 육백만 달러]를 게재한 이후 필진에 합류하여 현재에 이르기까지 130여 편이 넘는 단편을 써오며 탄탄한 기본기를 갖춘,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성실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는 그동안 주목받았던 곽재식의 단편소설을 모아 엮어 2013년 발간된 소설집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모살기]에 이은 곽재식의 세 번째 출간작이자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이다.

2005년부터 꾸준히 집필 활동을 해온 곽재식이 그동안 발표한 단편소설에서 보여주었던 기상천외한 플롯과 신선한 캐릭터, 독특한 감성과 사회비판적 메시지가 총집결된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는 작가 곽재식의 절대적 지지자뿐만 아니라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하는 기존 문학 독자들에게도 새로운 재미와 시각을 선사할 작품이다.

스쳐지나갈 수도 있었던 찰나의 순간을 놓치지 않은 한 사내, 그리고 그의 모든 인생은 근간부터 바뀌었다
당신은 이런 작가를 만난 적이 있는가, 세상 그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가장 창의적인 한국 작가의 탄생

출장 중 우연히 알게 된 신기한 사실, 그리고 그 비밀로 인해 한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과 인간관계와 세계관과 인생은 송두리째 바뀐다. 상상력이 없는 이들은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비밀과 함께 시작된 한 남자의 환상적인 모험담. 연애담과 범죄극, 코믹과 풍자, 짧은 시간 동안 한 남자의 인생을 모두 경험한 듯한 알싸한 여운까지. 이제 '절대 흔들리지 않는' 한 사기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이 작품을 한 문단의 줄거리로 요약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작가 곽재식이 작품 말미의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프랑스의 풍자 소설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을 패러디한 [사기꾼의 심장은 천천히 뛴다]의 소제목에서부터 독자들은 내가 집어 들은 이 책이 이제껏 보아오던 일반적 소설과는 그 기저부터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기 때문이다. (1장 어떻게 북회귀선을 통과한 태양의 고도가 기이한 이야기의 채록과 전파에 도움이 되었는가? / 2장 어떻게 제목이 뜯겨져 나간 고문서가 깊은 밤의 암흑 속에서도 관찰자의 관심을 끌었는가? / 3장 어떻게 의욕을 자극하는 강의와 지친 교수의 조합이 사라진 문서의 발견에 도움을 주었는가? - '목차' 참조)

"한 평범한 남자가 대학 때 그저 개인적인 목적으로 공부하고 잊은 내용을 직장인이 된 후 출장길에서 발견한 신비한 책으로 인해 다시 떠올리고, 그 한 조각의 기억이 변화의 시발점이 되어 그의 인생은 근간까지 변화한다."는 한 줄의 시놉시스를 곽재식은 결코 단순하게 다루지 않는다. 카이스트 출신의 공학도이자 현재도 관련 일을 하고 있는 작가 곽재식은 자신의 전공을 십분 활용한 듯 이 한 줄의 이야기를 58개의 챕터로 나누고 그 하나하나의 챕터가 완성된 꽁트 형식을 갖추게 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다시 모여 거대한 모험담을 이루게 한다. 소위 분해해도 합쳐도 그 생명을 잃지 않는 유기적인 소설을 집필한 셈이다.

평범한 삶을 살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절대 흔들리지 않는 도박사'의 인생으로 접어든 남명식이 조사관 이유선에게 담담하게 자신의 삶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주인공 남명식의 아스라한 연애담, 기발한 판타지, 코믹적 범죄물 요소까지 장르를 정의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소재들로 버무려져 있다. 지극히 이성적이면서도 건조하게 자신의 입장을 묘사하는 남명식과 그의 기상천외한 모험담을 흥미진진하게 들으면서도 독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듯 중간중간 기가 막힌 질문들을 던지는 이유선의 모습은 화자와 청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고전적인 서술 기법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곳곳에 배치된 장르적 요소들로 인해 신선한 느낌을 준다. 고전적 스타일과 젊고 야심 찬 작가의 현대적 플롯이 절묘하게 결합된 이 작품은 또한 남명식의 모험 중간중간에 만나는 많은 등장인물들을 통해 현 사회의 문제점과 비판적인 메시지를 보여주는 것도 놓치지 않음으로써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한다.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소재와 독자들도 모르는 틈에 가슴을 아리는 듯한 감성적 요소, 그리고 우리 사회의 가려운 곳까지 긁어주는 문제제기까지, 이제껏 접하기 힘들었던 창의적 (풍자)오락소설로서 강력히 추천할 작품이다.

승자의 역사 대신 패자의 역사를 다룬 팩션 추리소설인 곽재식 작가의 또 다른 신작 장편 소설 [역적전] 역시 2014년 12월 알에이치코리아를 통해 출간될 예정이다.

목차

01 어떻게 북회귀선을 통과한 태양의 고도가 기이한 이야기의 채록과 전파에 도움이 되었는가?
02 어떻게 제목이 뜯겨져 나간 고문서가 깊은 밤의 암흑 속에서도 관찰자의 관심을 끌었는가?
03 어떻게 의욕을 자극하는 강의와 지친 교수의 조합이 사라진 문서의 발견에 도움을 주었는가?
04 어떻게 공무 재직권을 통화 표기 가격으로 표시하는 방법이 남녀관계를 발전시키는가?
05 어떻게 5월 강수량은 대뇌의 장기 기억 능력을 촉진하는가?
06 어떻게 실물 경제에 활발히 참여하는 통화주의자가 시간 경과의 효과를 평가했는가?
07 어떻게 유령을 보고 사람이 미치게 하는 원리에 대한 연구와 전쟁 위기 상황이 연계되어 있는가?
08 어떻게 공간과 시간의 적절한 평형이 평범한 공간에서 특이한 시간을 발생시키는가?
09 어떻게 공간과 시간의 적절한 평형이 커피의 소비를 증가시키는가?
10 어떻게 정치적인 격변이 시민들에게 알려지는 과정에서 미적인 향상이 이루어지는가?
11 어떻게 뜨거운 물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찬물을 낭비하는 것이 심리적인 충동을 부르는가?
12 어떻게 정부실패의 결과로 발생한 암시장이 감정적 고양을 불러일으켰는가?
13 어떻게 국한문 혼용체가 독서의 속도를 증가시켰는가?
14 어떻게 민관 합작 사업이 효율과 공정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가?
15 어떻게 범죄자가 갖고 있는 범죄 기술에 대한 악명이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는가?
16 어떻게 문명의 진보를 평가하는 수단이 지루함을 달랠 수 있는가?
17 어떻게 원반의 회전 운동을 기술하는 효율적인 기법이 고증학적으로 재발견되었는가?
18 어떻게 안드로메다 완구의 구형 완구의 즉각 처분용 재고품 공급망이 발견되었는가?
19 어떻게 광전 연구의 방법론이 최초의 비밀주의를 확립시켰는가?
20 어떻게 주류 관리법의 기준을 피한 탄산음료들이 시장을 개척했는가?
21 어떻게 피곤과 쇠약을 극복하고 밤을 새고 깨어 있을 수 있는가?
22 어떻게 관료제의 부산물은 그 본질적인 무의미함에서 벗어나 의미를 부여받았는가?
23 어떻게 '신곡'의 묘사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이룩한 자아성취를 나타낼 수 있는가?
24 어떻게 정밀 기계의 도입이 겸손한 삶의 태도를 존중하게 만들었는가?
25 어떻게 고의적으로 수익을 포기하면서 격조 있는 동작으로 시간을 확인할 수 있는가?
26 어떻게 적외선 장비의 형태가 안분지족의 삶에 대한 가치를 돌이키게 하였는가?
27 어떻게 16세기 소설 도입부의 영향력이 전기 충격 장치의 소형화를 막아냈는가?
28 어떻게 불활성 기체를 이용한 조명이 예기치 않은 방식으로 복원문화재의 가치를 높였는가?
29 어떻게 급격한 도시화가 야생 맹금류의 생태를 바꾸었는가?
30 어떻게 태풍이 그 진행방향 왼쪽 지역의 습도를 변화시키는가?
31 어떻게 균형을 이루는 삼자논의가 무너졌을 때 두 사람만으로 신속히 평형상태를 찾을 수 있는가?
32 어떻게 영국인의 홍차 마시는 예절이 극동 지역의 기후와 조화되었는가?
33 어떻게 곤충의 보호색이 폐기용 의류의 판매를 활성화시켰는가?
34 어떻게 지도에 표시되는 기호의 형태가 관광 산업에 공헌할 수 있는가?
35 어떻게 태양광을 피할 그늘진 곳이 일광욕을 위한 시설에서 가치를 얻을 수 있는가?
36 어떻게 도심 지역의 지대가 개인의 경제적 선택을 위한 비교 지표로 활용되었는가?
37 어떻게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의 재정적 불균형이 세 명의 학생에게 여흥을 제공했는가?
38 어떻게 유명한 고전파 음악가의 동상이 광장의 밤풍경과 어울리는가?
39 어떻게 생맥주 주문량의 적합한 단위를 공기와의 접촉 시간을 고려하여 결정할 수 있는가?
40 어떻게 형편없는 비유법이 잘못된 이해를 야기하는가?
41 어떻게 데이비드 코퍼필드가 잘 알려진 흡혈귀 이야기에 인용되어 있는가?
42 어떻게 안면부에 타격을 가하는 행위로 낯선 사람의 신원을 조회할 수 있는가?
43 어떻게 해변의 식당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저녁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가?
44 어떻게 일이 마침 그렇게 되려고 그랬는가?
45 어떻게 고용 촉진 제도가 고학력 실업자에게 매우 적합한 일자리를 창출하는가?
46 어떻게 상하이에서 만든 샤오롱바오를 식지 않은 상태로 맛볼 수 있는가?
47 어떻게 비난하는 문구를 써놓을 수 없는 문서에서도 강한 혐오감을 나타낼 수 있는가?
48 어떻게 난처한 양자택일 문제에서 항상 효율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가?
49 어떻게 자선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다 박진감 넘치는 색채로 정의할 수 있는가?
50 어떻게 과세 표준액을 계산하는가?
51 어떻게 복잡한 질문과 난처한 요구사항의 핵심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가?
52 어떻게 탄성 충돌이 운동량을 보존하는 움직임을 보이는가?
53 어떻게 귀납적 지식을 신뢰하여 보편적인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54 어떻게 아름다운 표현으로 날씨가 좋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해줄 수 있는가?
55 어떻게 해변의 도시들로부터 해양 문명이 남긴 고대 전설의 흔적이 발견되는가?
56 어떻게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는 낯선 장소에서 여흥을 돋울 수 있는가?
57 어떻게 하나의 문장만으로 57장을 채울 수 있는가?
58 어떻게 모든 일들이 항상 선을 권하고 악을 벌하는 섭리가 되어 정의로운 결말을 맺을 수 있는가?

작가의 말

본문중에서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딱 거기까지였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그 후로도 가끔 그녀와 마주치기도 했지만, 그 학기보다 더 친해진 적은 없었습니다. 오늘 처음 남에게 솔직히 이야기해봅니다만, 사실 저는 그 학기에서 1년쯤이 지나자 일부러 그녀를 좀 피해서 다니기도 했습니다. 혹시 그녀가 다른 남학생과 그 사이에 사귀어 지내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되면, 정말 괴로워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자연스러운 멍청함 때문에 저는 그렇게 피해 다니면서도 오히려 그녀가 다른 남학생과 사귀고 있다는 사실은 신속히 잘 알게 되었고, 예상한 만큼 의미도 없는 마음의 괴로움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하느라 고민도 하고, 다른 다툴 일도 생기고, 갑자기 큰돈을 구해야 할 당황스러운 일도 문득 생기고, 그렇게 저렇게 시간이 지나가다 보니, 또 그냥저냥 시간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하기야, 그녀와 내가 무슨 대단한 운명의 사랑으로 보이는 관계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같이 다니면서 또 많은 추억을 만들고 잊히지 않는 경험을 나누고 뭐 그랬던 것도 아니지 않았겠습니까.
나중에 제가 뉴질랜드에서 만난 한 돈세탁업자가 그런 말을 해 주었습니다.
"다 나이 들면 들수록 재미없고 흐지부지되는 겁니다."
그녀에 대해서 제가 생각한 것도 그냥 그렇게 된 것입니다.
(/ 본문 중에서)

"그래, 수고했고. 이거 하느라 고생했으니까, 오늘은 법인 카드로 저녁때 먹고 싶은 거 마음대로 맛있는 거 사 먹으라고. 일단 이 내용을 한번 소장님께 올려 보고, 이거 누구 연구 결과로 학회에서 발표할지는 투자심의회에서 결정돼서 나올 거야. 직접 연구한 사람이 자기 이름 달고 발표할 수 있으면 제일 좋기는 한데... 이게 회사 사람들 승진 문제도 있고, 또 외부 투자 받으려면 소장하고 임원들 연구 결과가 계속 꾸준히 발표되어야 요건을 만족하는 게 있으니까 그분들 이름으로 발표가 나가야 하는 거거든."
저는 그 정도야 알고 있다면서 고개를 끄덕끄덕거렸습니다. (중략)
"사실 그것 때문에 어느 정도 이득을 본 게 있는 것도 사실은 사실입니다. 우리 회사가 디지털 카메라 센서 연구를 하는데, 이 센서가 군사용 정찰 카메라나 유도 카메라, 야시경에도 사용이 되어서 군수품으로 분류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보니까, 우리 회사가 개성 공단에 세운 공장이 군사, 무기 분야에서도 남북이 협력하는 사례로 부풀려져서 언급이 되고, 이쪽 분야에서 주목을 받는 일이 엄청 많았습니다. 이것 때문에 사실 여기저기서 투자랑 지원금도 많이 당겼고요."
팀장이 다시 끼어들어 말했습니다.
"애초에 억지로 개성 공단에 공장을 만든 것도, 딱 그런 광고 효과를 노리고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에게 눈길을 끌려고 그런 거 아냐."
(/ 본문 중에서)

그 마지막 한 장만은 그게 굳이 마지막에 눈에 뜨여서 그런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눈에 확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저는 그 한 장을 보고 있던 아주 짧은 동안에 그 내용을 똑똑히 읽고 기억하려고 애썼습니다. 바랜 종이, 오른쪽 아래에 무엇인가 얼룩이 졌는지 습기가 찼는지 약간 색깔이 다른 부분, 전체적으로 오른쪽으로 약간 비뚤게 기울어져 있는 배치, 처음 막 갈아 놓은 진한 먹으로 똑똑히 써놓은 글자들, 먹이 말라갈 때 물을 묻혀 조금 희미하게 그려진 그림들. 그 내용들은 지금도 똑똑히 외고 있습니다.
제가 보고 기억한 그 [봉이비결], 단 한 장의 제목은 닳고 해져서 '언제나... 이겨서 돈을 버는 법'이라고 보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전혀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아래 내용의 뜻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그 내용을 다시 떠올려서 하나하나 옮겨 놓을 때 닳은 제목 부분이 원래 뭐라고 되어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 쪽에 나와 있었던 것은 바로 '언제나 노름에 이겨서 돈을 버는 법'이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이렇게 지내다 보니, 벌 수 있는 돈은 더 적게 보였습니다. 한번은 잠깐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인천공항에 들어오다가, 문득 이렇게 살며 지내도 정작 손에 쥐는 현금은 예전에 직장 생활을 할 때에 비해 별로 많지도 않다는 계산을 얻었을 때 실망도 크게 했습니다. 몇 분 동안이기는 했지만, 이젠 뭘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나 싶어서 인천공항의 대기 의자에 앉아 그냥 멍하니 망연히 있었습니다. 커다란 청사 안을 바쁘게 지나다니는 그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갖고 있을 일과 계획들을 생각하니,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따져 보자면, 저는 호텔에서 생활하고 매일같이 이 나라 저 나라를 건너 다니고 여행을 하면서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비용을 제하고 나서도 남는 수입이 예전과 같다면 이것은 그렇게 문제가 있는 금액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만큼 제가 정착해서 사는 데 드는 방세나, 자동차 유지비를 따로 쓰고 있지도 않았고, 정확한 직장과 사는 곳 없이 지내다 보니, 경조사비나 아는 사람 만나 술 한잔하며 쓰는 돈도 없었습니다. 꼼꼼히 따져보면 따져 볼수록, 저축액에서부터 삶의 질까지, 적어도 경제적인 면에서는 예전보다 확실히 생활이 윤택해진 것이었습니다. (중략)
이 수법을 얻고 이렇게 사는 세상으로 넘어오면서 저는 제가 세상을 보는 방향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것은 큰 변화였습니다. 밥 한 끼, 차 한 잔을 사 마실 때 그 가격을 보고 받는 느낌에서부터, 매월 통장에 쌓인 잔액을 보고 받는 느낌까지 모든 생각의 바탕이 바뀌어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저는 나중에 알게 된 돈세탁업자에게 이런 사업을 한번 해 보라면서, 실업자들에게 실업 기간 동안 적당한 병이 있어서 쉬고 있었다는 핑계를 만들어 주는 서비스를 팔아 보라는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습니다.
돈세탁업자는 아는 병원 관리업자에게 그 이야기를 해서 정말로 그 서비스를 합법적인 사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실제로 있을 수 있는 증세와 의학적으로 말이 되는 이유를 의견으로 제시하여 실업기간이 오히려 취업 기회를 떨어뜨리는 악순환을 끊을 길을 보여 주는, 사회에 큰 도움을 준다는 사명감으로 일을 진행했던 것입니다.
얼마 후에 이 사업을 시작한 회사는 '실업자로 있었던 기간이 오래 걸리지 않아 보이게 돈은 안 주지만 직함은 걸어 놓고 고용된 것처럼, 또는 중요한 일을 하는 것처럼 꾸며 주는 사업'이란 것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기도 했습니다.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19종
판매수 1,239권

카이스트문학상을 2회 수상했으며, 2006년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 영상화되면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등 다수의 소설집과 장편소설을 출간, 인공지능 논픽션 『로봇 공화국에서 살아남는 법』 집필, 블로그에 『한국 괴물 백과』를 연재하여 국내 최고 수준의 DB를 구축 및 출간했다. 팟캐스트 ‘과학하고 앉아있네’에 출연 중이며, 여러 대중 과학 강연을 하고 있다. 환상문학웹진 <거울>에 매달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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