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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기이한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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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은 16세기 전반에 베트남의 문인 완서(阮嶼)가 창작한 『전기만록』(傳奇漫錄)을 번역한 단편소설집이다. 『전기만록』은 한문으로 씌어진 전기소설(傳奇小說)로서 전 4권, 각 권 5편씩 모두 2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14세기 중국의 구우(瞿佑)가 지은 『전등신화』(剪燈新話)에 영향받아 씌어진 이 책은, 15세기 김시습(金時習)이 창작한 『금오신화』(金鰲新話)에 비견되는 베트남 고전소설의 걸작으로 평가된다. 요괴의 유혹, 남녀간의 사랑과 이별, 천상 혹은 지옥 등의 별계 방문담, 동물의 변신 등 시공간을 넘나들며 펼쳐지는 기이하고 환상적인 이야기 속에는 베트남 민족의 드높은 자주성과 현실비판 의식, 전통문화와 풍속 등이 담겨 있어 베트남의 고전문학뿐 아니라 고유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는 데 단초를 마련해 준다.

전기소설은 동아시아 중세에 성립하여 발전해 온 소설 양식이다. 시와 산문을 독특하게 교직(交織)하면서 남녀의 사랑이나 기이한 사건을 흥미롭게 펼쳐 보이며, 환상적인 내용 속에 현실에 대한 작가의 감정과 태도를 가탁(假託)하기도 한다. 『전기만록』의 저자 완서 역시 다양한 주제와 소재를 활용한 옛이야기 속에 권선징악, 인과응보, 음사(陰祀)에 대한 비판 등 중세시대의 보편적 세계관을 담고 있다. 완서가 『전기만록』을 통해 투영하고자 한 핵심적 메시지는 왕위 찬탈과 부패한 현실사회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다. 이 책의 배경은 베트남의 진조(陳朝, 1225∼1400) 말, 호조(胡朝, 1400∼1407), 여조(黎朝, 1428∼1788) 초 연간으로, 저자 완서가 생존해 있던 시대보다 1, 2세기 앞선다. 1527년 여조의 신하 막등용(莫登用)이 왕위를 찬탈한 사건이 있은 후 완서는 진조의 신하로 왕위를 찬탈한 호조에 빗대어 현실 속의 막씨 정권을 우의(寓意)적으로 비판하였으며(「기이한 나무꾼」·「변신」·「항우의 변명」 참조), 무능하고 부정한 위정자들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하였다(「천상 구경」·「이장군」 참조). 이 책의 핵심적 메시지 중 또 다른 하나는 중국의 침략주의에 대한 반대와 비판이다. 반전(反戰)을 주장하는 『전등신화』나 스토리텔링의 한 장치로만 병란을 이용하는 『금오신화』와는 달리, 『전기만록』에서는 중국[明]의 침략전쟁으로 인한 베트남 인민의 참상을 강조하면서 침략전쟁 반대와 저항적 민족주의의 면모를 강하게 띠고 있다(「열녀 예경」·「두 신령의 다툼」·「죽음보다 깊은 사랑」·「야차들의 장수가 된 사나이」 참조).

『베트남의 기이한 옛이야기』는 작품에 내포된 우의와 상관없이 이야기 자체만으로도 매우 흥미로운 소설이다. 불교와 도교를 바탕으로 기이하고 신비롭게 펼쳐지는 작품의 줄거리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들은 소설적 재미에 푹 빠져들게 된다. 우리와 직접적 교류가 없는 저 먼 남쪽나라 베트남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사람 사는 방식과 사람이 느끼는 애환과 희비가 비슷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특히 저자의 유교적 세계관이 반영된 각 작품 말미의 평어(評語)를 통해서는 같은 유교 문화권으로서의 동질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이는 중국의 변방으로서 유사한 역사와 문화적 영향을 받은 한국과 베트남, 양국의 비슷한 처지에서 오는 공감과도 같은 것이다

목차

1장.
1. 항우의 변명
2. 열녀 예경
3. 목면나무로 들어간 남녀
4. 환생
5. 유유랑과 도홍랑

2장.
1. 용궁의 재판
2. 원한
3. 두 신령의 다툼
4. 모란꽃으로 맺은 사랑
5. 천상 구경

3장.
1. 요괴의 모함
2. 기이한 나무꾼
3. 황폐한 절
4. 재회
5. 변신

4장.
1. 촛불 그림자
2. 이장군
3. 죽음보다 깊은 사랑
4. 한밤의 정담
5. 야차들의 장수가 된 사나이

5장. 傳奇漫錄』 原文

- 부 록 -

1. 한국·중국·베트남 傳奇小說의 미적 특질 비교
2. 이조 진조의 왕들 및 베트남 주요 연표

본문중에서

완씨염은 동산의 거족인 진갈진의 외사촌 누이다. 그녀는 상업에 종사하는 금강 출신의 여인 이씨와 서도 성 밖에 화장품 가게를 나란히 열어 늘 서로 접했으므로 정분이 날로 도타워졌다. 하지만 둘 다 아이가 없었다. 두 사람은 어느날 호공동에 가 신령에게 자식을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 있는 완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 둘은 성시에서 알게 된 사이로 서로 약속하지도 않았건만 오늘 똑같이 여기 왔으니 혹 신령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어 자식을 점지해 준다면 꼭 서로 혼약을 맺도록 합시다. 어찌 의혼이 최씨, 노씨, 이씨, 정씨 만의 것이겠어요? 산신령께 맹세컨대 꼭 약속을 지키겠어요."

과연 두 사람에게 태기가 있어 완씨는 딸을 낳아 여랑이라 이름짓고, 이씨는 아들을 낳아 불생이라 이름지었다. 장성한 두 남녀는 모두 글을 좋아했다. 부모가 서로 친한 사이여서 두 사람 또한 왕래하며 스스럼 없이 지냈다. 둘은 늘 시를 지어 읊으며 서로 화답했다. 비록 아직 결혼할 나이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몰래 서로의 마음을 허락하여 부부나 진배없었다. 이생은 여랑이 진 말 건신연간에 진갈진의 화를 만나 궁녀가 되는 바람에 크게 낙담했다.이러구러 시간이 흘러 한 해의 마지막 밤인 제야가 되었다. 이생이 5경까지 밤을 지키다가 바야흐로 취침하려는 참이었다. 문득 문 밖에서 길을 비키라고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가 싶어 급히 문을 열어보니 백여 대의 화려한 수레가 길게 대열을 지어 지나가고 있었으며 난간에는 웬 편지가 던져져 있었다. 펴 보니 곧 여랑의 글씨였다. 편지의 내용은 이러했다.

||^들으니, 하늘에는 음양이 있어 천도가 그로써 갖추어지고 사람에게는 부부가 있어 인도가 그로써 이루어진다고 합니다. 아아, 저는 얼마나 오래 당신과 만나지 못하고 있는지.... 제 마음을 옛날에 이미 당신께 주었건만 지금 이렇게 헤어져 그리워하고 있군요. 누대 앞의 해는 속절없이 지고 뜨락의 봄은 지루하기만 합니다. 늘 짝 잃은 난새의 신세를 서글퍼하며, <별학>의 곡조를 타고 있답니다. 봄날 도성에 해는 저물고 한식날 불어오는 동풍에 버드나무는 하늘거립니다. 궁궐을 돌아 흐르는 도랑물은 궁녀의 애를 끊는군요. 수심은 쌓이고 쌓여 눈물이 하염없이 흐릅니다. 평소의 소원이 어그러짐을 슬퍼하고, 인생을 헛되이 보내기에 쓴웃음을 짓습니다. 다시 돌아가겠노라다짐하지만 다시 만나기란 기약하기 어렵군요. 옥소는 다시 태어나 님을 만났지만, 내세의 일을 모르겠군요. 바라건대 당신은 자중자애하여 다른데 장가들도록 해 한때의 사랑으로 평생을 그르치지 말았으면 해요. 그립고 보고픈 마음을 어찌 글로 다 말할 수 있겠어요. 당신의 마음을 알 수 없지만 먼저 제 생각을 전합니다.||^ 이생은 편지를 보고 몹시 상심하여 침식을 폐하였다. 그러나 여랑과 다시 만나는 것도 이제 글렀다고 여겨 마침내 동쪽 지방으로 이사했다. 그렇지만 여랑의 마음을 생각하니 차마 다른 데 장가들 수가 없었다.

죽음보다 깊은 사랑 /p.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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