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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 대재앙, 정보권력 :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새로운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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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기에 처한 현대 민주주의가
새롭게 직면할 미래를 상상하다

현대 민주주의는 상상도 못했던 방법으로 무너질 것이다!
은밀한 쿠데타, 돌이킬 수 없는 대재앙, 정보 기술의 독점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다


케임브리지대학 정치학 교수 데이비드 런시먼이 현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진단하고 다가올 미래를 다각도로 통찰하는 책.
영국 정치학계의 석학으로 꼽히는 저자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논할 때 쿠데타와 같은 정치적 사건에만 초점을 맞추던 기존 정치학 논의의 한계에서 벗어나, 현대 사회를 한순간에 무너트릴지도 모르는 대재앙이나 기술에 의한 사회 장악까지 다양한 문제점을 고루 살핀다. 독재자의 등장에만 신경을 곤두세우던 과거와 달리 현대 민주주의에는 많은 위협들이 존재한다. 2020년 들어 전 세계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키는 코로나19 판데믹과 같은 통제하기 어려운 전염병이나, 지구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기후변화나 핵전쟁, 혹은 네트워크의 붕괴 같은 참사가 일어나면 사회뿐만 아니라 민주주의도 함께 무너질 것이다. 또한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기계 그 자체, 혹은 기술관료가 대중의 정치적 의사를 왜곡할 가능성도 있다.
저명인사를 초청하여 정치 이슈를 논하는 팟캐스트 <토킹 폴리틱스>의 진행자인 런시먼은 폭넓고 깊이 있는 시각으로 미래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변화하며 어떻게 실패할 것인지, 그리고 대안은 있는지 알아본다.

출판사 서평

현대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질 것인가
중년의 위기에 처한 민주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다


현재 민주주의는 세계 곳곳에서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인다. 2017년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고, 2016년 영국은 국민투표를 통해 유럽 경제 공동체에서 이탈하기로 결정했다. 한때 국가 부도 사태까지 몰렸던 그리스는 여전히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으며, 터키에서는 전 총리이자 현 대통령 레제프 에르도안이 개헌을 통해 18년째 장기 집권을 하고 있다. 과연 이 모든 징후가 민주주의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들일까?
영국 정치학계의 석학 데이비드 런시먼은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협을 다각도로 분석하면서, 21세기 민주주의가 과거처럼 노골적인 국가 전복의 방식으로 무너지리라는 고정관념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그는 민주주의가 이미 뿌리내리고 성숙한 선진 민주국가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할 경우 그 실패의 모습은 과거 우리가 상상하던 모습과 전혀 다른 방식이 되리라 경고한다.
데이비드 런시먼은 현대 민주주의가 처한 위기를 ‘중년의 위기’로 비유하면서 민주주의의 종말을 크게 세 가지 측면으로 상상한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언급되는 쿠데타다. 민주주의가 견고하게 자리 잡은 선진 민주국가에서 쿠데타는 역사책에서나 등장하는 일처럼 느껴지지만, 현대에도 쿠데타의 위협은 그 형식을 달리할 뿐 여전히 존재한다. 두 번째는 기후 변화, 핵전쟁 혹은 네트워크의 붕괴와 같은 대재앙이다. 민주주의는 그 체제가 기초하고 있는 사회가 붕괴해도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들어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코로나19의 판데믹은 보건 분야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미 서구권에서는 외출금지령이 발령되는 등 비상 체제에 돌입했으며, 이러한 사태가 지속될 경우 사회 전체가 무너져 민주주의도 함께 실패할 수 있다. 세 번째는 급격한 기술 발전이 불러오는 인간의 소외와 민주주의의 왜곡 가능성이다. 현대에는 구글,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들이 등장함에 따라 이전에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또 다른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마지막으로 민주주의의 대안을 생각해 본다. 우리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지 모를 정도로 취약하다면 다른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21세기식 실용주의적 독재체제부터 지식인에 의한 정치를 의미하는 에피스토크라시, 기술 발전으로 인한 새로운 대안의 출현 가능성까지 모든 측면을 검토한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호 하나, 은밀한 쿠데타
현대의 민주주의를 소리 없이 전복하는 쿠데타의 음모를 분석하다


흔히 민주주의의 실패라고 하면 쿠데타의 광경을 떠올리기 쉽다. 거리에 군인과 탱크가 늘어서 있고, TV에서는 정부의 대국민 선전이 흘러나오는 모습 말이다. 과거 한국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으며, 지금도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못한 개발도상국에서는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의 서구 사회처럼 민주주의가 이미 오래전에 정착해 성숙한 나라에서도 이와 같은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을까?
데이비드 런시먼은 현대에는 정치적 폭력이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실제로 현대 민주국가에서 과거 같은 국가 전복 쿠데타를 찾아보기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쿠데타의 위협이 완전히 종식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런시먼은 민주주의가 정착한 선진 민주국가에서 쿠데타는 노골적인 국가 전복 형태가 아니라 보다 은밀한 방식으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일부 권력집단이 민주주의 제도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사실상 자신의 입맛에 맞게 조종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잘 굴러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부 엘리트 집단에 의해 민의가 왜곡되어 민주주의가 사실상 파괴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 쿠데타를 어떤 방식으로 분류하든, 모든 쿠데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민주주의가 확실하게 종식되어야만 성공할 수 있는 쿠데타가 있는가 하면, 겉으로는 민주주의가 훼손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쿠데타가 있다. 국가를 전복하는 쿠데타는 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공약성 쿠데타, 행정권 과용, 전략적 선거 조작은 후자다. 이런 쿠데타는 외견상 민주주의 형태를 유지한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이긴 자에게 권위를 부여하므로, 참여자들은 선거를 조작한다. 공약성 쿠데타와 행정권 과용은 민주적 제도들이 그대로 유지되어야 하는데, 사람들이 권력을 지닌 이들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을 때에만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낸시 버메오의 정의에 따르면 일부 쿠데타에서는 민주주의가 적이 되지 않는다. 쿠데타 공모자들은 민주주의의 파괴를 은폐하고, 민주주의를 자신들의 친구로 만든다.
(/ p.63)

저자는 이처럼 엘리트 집단이 대중에게서 민주주의를 빼앗았다는 생각이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를 대중에게 되돌려준다는 명목 하에 정치적 편집증을 유발하고, 그 결과 곳곳에서 음모론이 판을 치게 된다. 음모론의 황금기였던 20세기 초에는 민주적 개혁과 세계대전의 여파로 엘리트 집단과 대중이 서로 협력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여성의 참정권까지 보장하는 보통 선거가 정착되는 등 민주주의는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에는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폭력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낮고, 과거와 달리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정치적 영역도 훨씬 적다. 데이비드 런시먼은 만약 민주주의가 현대에 쿠데타로 무너진다면, 과거처럼 폭력적인 방식은 아닐 것이라고 추측한다. 민주주의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며 불안정하게 표류하다 쇠퇴할 것이고, 결국 더 나은 방법을 찾아낼 때까지 계속해서 민주주의를 실험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이다.

- 오늘날 민주주의는 과거처럼 발전시킬 영역이 없다. 민주주의는 더 이상 젊지 않다. 지금은 100년 전처럼 실현되지 않은 거대한 가능성의 시대에 존재했던 흥분이 없다. 선거권을 확대하기 위한 싸움은 거의 성 공했다. 정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수준에 맞춰 광범위하게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공공과 민간의 부채 규모는 커졌다. 세율은 더 높일 수 있지만(지난 100년간 세율은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국민들이 더 내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국민들이 정착된 민주주의에 반발하는 지역은 한 때 최선을 다해 민주주의를 발전시켰던 나라들이다. 국민들은 미숙해서 가 아니라 낡아서 반응이 없는 제도들에 화가 나 있다.
(/ p.100)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호 둘, 통제할 수 없는 대재앙
기후변화, 핵전쟁, 네트워크 붕괴의 위협이 도사리는 미래를 상상하다


저자는 민주주의의 실패를 단지 정치체제의 실패로만 바라보지 않는다. 그는 우리 사회 전체가 무너져도 민주주의는 함께 파괴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가령 냉전 시대에 전 세계인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핵전쟁의 위협이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른 기후변화, 생화학 테러나 살인 로봇의 등장이 민주주의를 끝장낼 수도 있다. 최근에는 사회 전반의 상호연결성이 극대화되어 어느 한 분야만 무너져도 연쇄적으로 전 시스템이 무너질 위험이 존재한다.
런시먼은 기후변화의 위기를 대표적인 예로 꼽는다. 20세기에 살충제의 남용을 경고했던 레이철 카슨의 『침묵의 봄』은 크나큰 파장을 일으켜, 실제로 정치권의 행동을 이끌어 냈다. 그러나 현대에 가장 긴급한 문제인 기후변화 이슈를 앞두고 세계는 사분오열되고 있다. 런시먼은 이러한 현상의 이유를 재앙의 직접성에서 찾는다. 기후변화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지금 행동해야 하지만, 행동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킬 직접적인 결과가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양한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따라 행동하면서 끊임없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그 결과 현대의 정치는 더욱 극단적으로 분열된다.

- 기후변화에 대한 두려움은 이전 세대가 살충제에 느꼈던 공포와 같은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위협은 좀 더 흔하고 광범위하며 불확실하다. 여기에는 필수 요소인 자극적인 면이 없다. 기후변화는 의심과 음모를 해소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를 강화해 왔다. 오늘날 상당히 복잡한 음모론은 기후변화와 관련된다. 이런 음모론은 종종 짓궂은 장난처럼 묘사된다. 추리 방식은 다음과 같다. 세계 정부를 세우고 싶은 비밀 엘리트 집단은 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집단행동이 필요한 문제를 원한다. 기후변화는 그런 문제에 적합하다. 그러므로 틀림없이 엘리트 집단은 은밀히 문제를 날조해서 과학자들을 매수했을 것이다. 이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인 ‘누가 이익을 얻는가’에 대한 답이 된다.
(/ p.126)

기후변화와 같은 비극은 언젠가 실제로 발생해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전 인류의 생존이 걸린 이런 거대한 위협 앞에서 민주주의는 하찮은 문제처럼 보인다. 당장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순간에 정치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나 데이비드 런시먼은 이런 ‘실존적 위협’이 닥쳤을 때 가장 두려운 부분은, 위협 그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이 생존투쟁에 몰려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투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역사를 통틀어 볼 때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대재앙의 문제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1962년 소련과 미국을 핵전쟁 직전까지 몰아넣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무사히 넘긴 케네디 대통령은 그 직후에 열린 중간선거에서 보상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민주당 의석수를 잃었다. 이를 통해 런시먼은 대중이 민주주의를 실존적 위험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으며, 선거의 의제는 실존적 위험 같은 중대한 문제가 아니라 ‘대중이 특정 후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의 문제에 불과하다고 신랄하게 지적한다. 결국 민주주의는 실존적 위험과 공존하겠지만, 서로를 이해하거나 길들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 민주주의는 실존적 위험이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먹고사는 문제의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발전할 수 있었다. 실제 선거 이슈는 세상의 종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아니다. 선거에서는 중요도와 상관없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정책을 결정하는 정치인들을 유권자가 어떻게 생각하는가가 주요 관건이다.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질문은 언제나 다음과 같다. 우리를 대신해서 의사결정하는 ‘이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현안이 무엇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핵으로 인한 종말일 수도 있고, 물가일 수도 있다.
(/ pp.146~147)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신호 셋, 정보 기술의 독점
정보 기술을 관리하는 소수 엘리트가 민주주의를 왜곡하다


런시먼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마지막 요소로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정보 기술을 꼽는다. SF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하려면 아직 멀었지만, 자연스레 우리의 삶에 간섭하는 반지능 기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계는 엄청난 정보의 홍수 속에서 우리에게 유용한 정보를 찾아주며, 사람들은 그 유용성에 매혹되어 지나치게 기계에 의존하고 있다.
런시먼은 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결국 이러한 기술을 다룰 줄 아는 사람, 즉 기술관료들이 결정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투표를 통해 선출되지 않은 인물이 기술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정치적 문제에 영향을 행사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구글과 페이스북 등의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이미 우리 삶에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 정치판에서도 기계에 의존하다 보면 우리 스스로 부당하게 착취당할 여지가 생긴다. 살인 로봇이 우리를 노예로 만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자기 입맛에 맞게 기계를 사용할 줄 아는 무자비한 인간이 그렇게 한다. 기술에 의존하는 세상에서는 그 기술에 대해 정통한 정치꾼이 곧 왕이다. (중략) 기술이 부당하게 이용되는 확실한 증거로, 개인의 편견을 조장하고자 특정 성향의 유권자를 겨냥해서 기계가 메시지를 보내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 내는 행위가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반응을 유도해 내는 능력이 오용되면 민주주의가 종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
(/ pp.170~171)

한편으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거대 기술 기업이 제공하는 소셜 네트워크 기술이 어쩌면 순수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를 실현케 해줄지도 모른다는 전망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프랑스 앙 마르슈의 에마뉘엘 마크롱이나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등이 바로 그러한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급부상한 정치인이다. 인터넷 혁명이 일어난 초기에는 정보의 비대칭으로 인해 발생하는 정치권력과 대중의 갈등이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낙관론이 대세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런시먼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한 직접민주주의가 정당이라는 타협 기구를 제거함으로써 마녀사냥과 같은 극단적인 사태를 불러일으킬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또한 인터넷의 보급이 정보의 평등한 접근을 보장하지도 않는다며 정치인들이 국가기관을 이용해 국민들을 감시하여 권력을 강화하는 예를 보여 주기도 한다. 심지어 인터넷 기술은 대중의 교육 수준에 따라 그 기술에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만들기도 한다. 런시먼은 기술이 발전한 시대에 대한 낙관론과 비판을 모두 제시함으로써 멀지 않은 미래에 민주주의가 치명적인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 디지털 기술은 여러 비민주적 체제가 장악한 권력도 강화해 왔다. 독재자는 디지털 기술을 대단히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그 기술은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의 결정적 무기가 되기는커녕 이들을 추적하는 도구가 되었다. 에티오피아나 베네수엘라 같은 나라의 반국가단체들은 자신들이 독재정권에 침투하는 것보다 독재정권이 자신들의 활동에 더 쉽게 침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번 더 말하지만 이는 시간과 인력이라는 자원의 문제다. 부패하고 비효율적인 정부조차도 뭐든 즉석에서 만들어 써야 하는 반국가단체보다는 시간과 인력이 더 많은 법이다. 이런 점에서 인터넷은 독재를 무너뜨리는 기계가 아님이 입증되었다. 인터넷은 결국 권력의 또 다른 도구가 되었다.
(/ p.209)

민주주의가 끝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면
더 나은 대안은 있는가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가 직면한 위와 같은 위협을 상정하고 그 대안을 살펴본다. 만약 우리가 더 이상 소생 가망성이 없는 체제를 억지로 잡아 유지하고 있다면 그보다 더 나은 방법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
데이비드 런시먼은 이미 시도되고 있거나 과거 저명한 학자들이 제안했던 민주주의의 대안들을 살펴본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시도되고 있는 실용주의적 독재체제, 150년 전 존 스튜어트 밀이 주장했던 지식인에 의한 정치, 그리고 미래에 우리를 해방시키는 기술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실용주의적 독재는 현재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단기간에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루는 등 큰 성과를 가져온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체제가 민주주의를 왜곡한다고 비판한다. 현실에 존재하는 실용주의적 독재 노선을 취하고 있는 국가들, 즉 중국이나 러시아의 예를 볼 때 이러한 체제는 민주주의의 필수 가치인 자유주의를 박탈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이러한 모습이 민주주의의 대안은 아니다. 그저 대중에 영합해서 민주주의를 왜곡한 것이다. 스스로 ‘반자유주의적 민주주의자’라고 지칭하는 빅토르 오르번 헝가리 총리처럼, 겉으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독재자는 중국 공산당보다는 블라디미르 푸틴에게서 영감을 얻는다. 헝가리와 러시아 같은 나라에서 실용주의는 정치적 희생양을 찾고 복잡한 음모론을 기획하는 것에 비해 한참 우선순위가 밀린다. 여전히 선거는 치러진다. 그러나 민주주의는 필수 가치인 자유주의를 박탈당한 채 실제보다 부풀려진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거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몇몇 정치학자는 지금 벌어지는 현상을 설명하고자 ‘경쟁적 권위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국민들에게 선택권은 있지만 실상은 무의미한 권리다.
(/ pp.237~238)

두 번째 대안인 지식인에 의한 정치, 즉 에피스토크라시는 정치적 문제에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식과 자격을 갖춘 이들에게만 참정권을 주거나 그들에게 더 많은 정치적 결정권을 주는 방식을 의미한다. 대표적으로 『자유론』을 저술한 존 스튜어트 밀은 직업에 따른 차등 투표권을 주장했다. 폭넓은 지식과 경험이 필요한 정치적 문제를 두고 무지한 대중에게 결정권을 줄 수는 없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는 결국 소수에 의한 권력 집중을 부른다는 점에서 큰 위험을 지닌다. 일부에게만 권력이 집중된 상태에서 일이 잘못된다면 도대체 누가, 어떻게 그 사태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런시먼은 지금처럼 보통 선거를 기반으로 한 민주주의는 최선의 선택을 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최악을 피하는 능력은 뛰어나다는 점을 언급한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만약 에피스토크라시를 선택한다면 누구에게 어떻게 정치적 결정을 내릴 권리를 부여한단 말인가?

- 정치학자 래리 바텔스와 크리스토퍼 애컨은 2016년에 출간한 『현실주의자를 위한 민주주의』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고학력자를 포함해서 교육받은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만큼 자주 도덕적·정치적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인지적 편향은 학문적 자질로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자신의 신념보다 브레넌이 설계한 어려운 시험에 따라 이민 문제를 판단할 사회과학도들이 얼마나 될까? 아이러니하게도, 만약 브레넌의 시험을 통해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더 많은 표를 가질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다면, 엄격히 말해서 답은 ‘아니오’가 될 것이다. 그 시험은 채점자가 누구인가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 p.267)

혹은 고도로 발전된 기술이 더 나은 민주주의를 가능케 할 수도 있다. 현재 사물인터넷은 아직 걸음마 수준이지만, 이러한 기술이 더욱 발전하면 기계가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줄 것이고, 그 사이에 사람들은 정치에 더욱 신경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런시먼은 이렇게 기술이 발전해 정치에 영향을 미칠 경우, 최종적으로는 기술 거버넌스가 등장하고, 현재의 정부는 낡은 것이 되어갈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술 발전은 결국 개인을 몰개성화하여, 인격을 갖춘 개인을 그저 수많은 데이터 중 하나로 전락시킬 것이다.

- 자유로운 네트워크 세상에 대한 몽상의 대부분은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개인들이 전혀 피해를 입지 않는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인터넷이 확장한 무한대의 세상에서도 여전히 우리는 누구와 어떻게 함께하고 싶은지 선택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이 개인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대단히 부적합하다고 밝혀질 가능성도 있다.
개인들이 어디에 소속되고 싶은지 선택하기는커녕, 기계는 우리가 개인으로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정하지 않을지 모른다. 우리는 단순히 측정점들의 집합일 뿐이므로, 광활한 인터넷 세상에서 데이터가 나누어질수록 우리도 점점 작아진다. 냉장고가 전구에 말을 거는 세상에서 우리가 아무런 의식적 명령도 하지 않는다면, 냉장고와 전구에게 우리는 신용카드와 일관성 없는 태도의 집합 외에 무엇이겠는가? 이스라엘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용어를 사용해서 말하자면, 디지털 혁명은 우리를 ‘몰개성화‘하겠다고 위협한다.
(/ p.271)

그러나 이 모든 대안에도 불구하고 결국 런시먼은 민주주의보다 더 나은 제도를 찾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미래에 등장할지 모를 기술은 장밋빛 미래를 약속할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쉽지 않으므로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가기를 선택할 것이라고 말이다. 저자는 현대 민주정치가 지닌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은 없다면서 솔루셔니즘을 비판하고, 21세기 민주정치에 필요한 제언을 던진다. 풍부한 사례와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민주주의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이비드 런시먼의 논의는 현대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경고를 던지는 한편으로 미래 정치 모습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은 현재 우리의 민주주의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장차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뇌하는 많은 이들에게 깊이 있는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한 미래에 도달하려면, 최악의 시나리오가 퍼붓는 공격을 견뎌야 한다. 게다가 우리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시작해야 한다. 현재는 다가올 시대의 전조가 보이는 한편 과거의 흔적에 지배당하기도 한다. 민주주의를 싫어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지만, 예상 가능한 미지의 선택지와 비교하면 민주주의는 여전히 편안하고 친숙하다. 지금은 중년의 위기를 겪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민주주의 안에 사는 것을 더 선호할 것이다.
(/ pp.277~278)

목차

프롤로그 |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생각하다
서론 | 2017년 1월 20일

제1장 쿠데타의 위험은 현존하는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전통적 방식
쿠데타의 시대는 끝났다
음모론은 왜 사라지지 않는가
21세기에도 민주주의가 작동할 것인가

제2장 민주주의는 대재앙을 막을 수 있는가
현대 민주주의에 드리운 재앙의 그림자
대재앙의 위기가 경시되다
민주주의는 실존적 위험을 제어할 수 없다
상호연결된 세계는 취약하다

제3장 기술의 발전이 더 나은 정치를 불러오는가
기계화되어 가는 민주주의
기계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네트워크 기술이 순수 민주주의를 실현시키다
인터넷이 파놉티콘을 만들다

제4장 더 나은 대안이 있을까
민주주의의 현실적 대안을 물색하다
실용주의적 독재가 대안이 될 수 있는가
지식인에 의한 정치는 정의로운가
발전된 기술이 유토피아를 실현시킬 수 있는가

결론 | 민주주의는 이렇게 끝난다
에필로그 | 2053년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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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런시먼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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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런던에서 태어나 이튼스쿨을 거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정치사상을 전공했다. 박사논문은 마이클 벤틀리의 지도 아래 주권론과 다원주의를 다루었으며 [다원주의와 국가의 인격성]Pluralism and the Personality of the State(1997)으로 출간됐다. 이후 이라크 침공 당시 블레어와 부시 등의 정치적 선택을 분석해 9·11 이후 정치 변화를 이야기한 [선의의 정치: 새로운 세계 질서에서의 역사와 공포, 그리고 위선] The Politics of Good Intentions:History,Fear and Hypocrisy in the New World Order(2006)을 비롯해 주로 정치사상, 국가론 및 대표제론,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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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행정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 학위를 받았다. 독서와 글쓰기에 마음을 뺏겨 10년 가까이 다니던 안정된 직장을 그만두고 전문 번역가의 길로 들어섰다.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상식] [이코노미스트 2017 세계경제대전망](공역) [여자들에게, 문제는 돈이다] [괜찮은 남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계간지 [뉴필로소퍼] 번역에 참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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