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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계보학 : 하나의 논박서[2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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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위험한 도덕 혁명가 니체 만년의 대표작

니체는 도덕의 계보학을 치밀하게 분석하여 허무주의를 낳는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와 기독교적 가치관을 비판하면서, 인간을 건강한 본능과 역동적인 힘을 지닌 강력한 동물로 회복시키려 한다. 그는 삶에 긍정적인 가치체계로의 전도를 주장하며, ‘차라투스트라’처럼 주인 도덕을 갖고 자기 자신을 극복하여 운명을 사랑하는 쪽으로 변화할 것을 촉구한다. 그러면서 남의 견해에 맹종하지 않고 스스로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 유형인 위버멘쉬를 주창하고 있다.
( '홍성광, 옮긴이의 글' 중에서)

연암서가에서 2011년에 독일어 전문번역가 홍성광 박사의 번역으로 펴내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 온 [도덕의 계보학]이 새롭게 출간되었습니다. 제2판에서는 일부 잘못된 문장과 표현들을 바로잡고,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판형을 바꾸었습니다.

출판사 서평

2천 년 도덕의 역사를 뒤엎는 혁명적인 책

도덕이란 무엇인가?

니체는 인간의 소외, 곧 허무주의를 소크라테스의 합리주의와 아울러 기독교 도덕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도덕의 기원과 전개과정을 상세히 고찰하면서, 기독교 도덕에서 발생한 선과 악을 결국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제시한다. 또한 니체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 시대에는 ‘좋음’과 ‘나쁨’의 개념만 있었지 ‘선과 악’의 개념은 없었다고 한다. 가치문제를 고찰할 때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양심과 원한인데, 니체는 그 두 가지에서 도덕의 기원을 찾고 있다. 여기서 원한을 낳는 것은 무능이고, 원한에서 신이라는 개념이 도출된다는 것이다.
강한 생명력과 용기를 지닌 고대 전사의 자리를 대신한 사제의 삶은 생명력이 결여되어 있으며, 특히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사제는 무력하기 짝이 없다. 그러므로 힘에 대한 증오심을 키우는 사제의 도덕은 무력한 자의 도덕이므로 노예 도덕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현실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니고 있는 사제가 무력하다는 니체의 주장은 정신분석학적인 관점에서 고찰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사제의 무력함이 원한을 낳고 원한은 결국 온갖 가치를 날조한다는 니체의 입장은 인간의 심층심리를 잘 꿰뚫고 있는 것이다. 또한 니체가 보기에 청빈, 겸손, 순결과 같은 금욕적 이상 밑에서 지금까지의 철학이 명맥을 이어 왔는데, 그런 금욕적 이상을 유지하는 삶은 자기모순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본래적이어야 할 인간의 삶이 가장 비본래적인 금욕적 이상을 견지하면서 그것을 절대적인 목표 내지는 근거로 삼기 때문이다.

목차

옮긴이의 글
머리말

제1논문 ‘선과 악’, ‘좋음과 나쁨’
니체의 주

제2논문 ‘죄’, ‘양심의 가책’ 그리고 이와 유사한 것

제3논문 금욕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해설 | 위험한 도덕 혁명가 니체의 삶과 작품
프리드리히 니체 연보

본문중에서

우리는 도덕적 가치들을 비판하는 일이 필요한데, 이 가치들의 가치 자체가 일단 의문시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이러한 가치들이 성장하고 발전해서 변화해 온 조건과 상황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결과와 징후, 가면과 위선, 질병과 오해로서의 도덕, 하지만 또한 원인과 치료제. 자극제와 억제제 및 독으로서의 도덕). 지금까지 그러한 지식은 존재한 적도 없었고 사람들 이 그러한 지식을 가지려고 한 적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러한 ‘가치들’의 가치를 주어진 것으로, 기정사실로,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겼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인간 일반에 관련하여(인간의 미래를 포함하여) 촉진, 유용성, 번영이라는 의미에서 ‘선한 사람’을 ‘악한 사람’ 보다 훨씬 더 가치가 있다고 평가하는 일에 조금도 의심하거나 동요하지 않 았다. 만약 그 반대가 진리라고 하면 어떠할까? ‘선한 사람’ 에게도 퇴보의 징후가 있다면, 이와 마찬가지로 어떤 위험, 유혹, 독이며, 가령 현재를 살기 위해 미래를 희생한 마취제가 있다면 어떠할까? 아마 현재의 삶이 좀 더 안락하고 덜 위험하지만 또한 보다 하찮은 방식으로 더 저열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하여 인간이라는 유형이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강력함과 화려함에 결코 이르지 못한다면 바로 도덕에 그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그 도덕이야말로 위험들 중의 위험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 p.20)

어떤 선량하고 세련되며 무관심한 표정을 하고 있는, 도덕적으로 유약한 자의 얼굴에는 심지어 피로가 섞인 염세주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이 모든 문제, 즉 도덕의 문제를 그토록 진지하게 다루어 봐야 사실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내게는 그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된다. 이를테면 그 보답으로 언젠가 그 문제를 명랑하게 다룰 수 있을 날이 올지도 모르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 명랑함, 나의 말로 하자면 즐거운 학문은 보람 있는 일이다. 물론 모든 사람의 관심사는 아니더라도 오랫동안 용감하고 근면하며 남몰래 진지하게 살아온 사람에게는 보람 있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전진하라! 우리의 낡은 도덕도 희극(喜劇)에 속하니라!”라고 진심으로 말하게 되는 날에 우리는 ‘영혼의 운명’에 관한 디오니소스적인 드라마를 쓰기 위한 새로운 갈등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장담하건대, 현존하는 위대하고 늙은 영원한 희극작가, 그는 분명 이것을 이용할 것이다.
(/ p.22)

‘좋음’이라는 판단은 ‘호의’를 받은 사람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좋은 사람들’ 자신, 즉 고상한 사람, 강한 사람, 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고매한 뜻을 지닌 사람들에 의해 비롯된 것이다. 이들은 모든 저급한 것과 저급하다고 생각되는 것, 비열하고 천민적인 것과는 달리 자기 자신과 자신의 행위를 선하다고, 즉 최상급의 것으로 느끼고 평가한다. 이러한 거리의 파토스에서 비로소 그들은 가치를 창출하고, 가치의 이름을 새기는 권리를 획득한 것이다! 공리가 그들에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공리의 관점은 등급을 정하고 등급을 분명하게 해주는 최고의 가치 판단이 그처럼 뜨겁게 용솟음치는 것과 관련해 볼 때 실로 낯설고 부적절하다. 이러한 경우 그 감정은 온갖 타산적인 영리함이나 온갖 공리적 계산이 전제로 하는 저 낮은 온도와는 반대의 결과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그것도 한 번만 그렇다든가 예외적으로 한 순간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항구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고귀함과 거리의 파토스, 보다 높은 지배 종족이 낮은 종족, 즉 ‘하층민’에 대해 갖고 있는 지속적이고 압도적인 전체 감정이자 근본 감정—이것이야말로 ‘좋음’과 ‘나쁨’이라는 대립의 기원이다.
(/ p.30)

최고의 세습 계급이 또한 사제 계급이고, 따라서 그 계급 전체를 지칭하기 위해 사제의 기능을 상기시키는 어떤 술어를 선호하는 경우, 정치적 우위를 나타내는 개념이 언제나 정신적 우위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귀결된다는 이러한 규칙에 우선 아직까지는 아무런 예외도 없다(예외가 생길 계기는 있을지라도). 그리하여 예를 들어 처음으로 ‘순수’와 ‘불순’이 신분을 구분하는 특징으로 서로 대립한다. 그리고 여기서도 나중에 ‘좋음’과 ‘나쁨’이 더 이상 신분을 나타내지 않는 의미에서 전개된다. 게다가 ‘좋음’과 ‘나쁨’이라는 이러한 개념을 애당초부터 너무 무겁거나 너무 폭넓게, 또는 심지어 상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한다.
(/ p.38)

오늘날 교회는 사람을 유혹하는 것 이상으로 소외시키고 있다…… 만약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혹시 우리들 중에 누가 자유정신이 될 것인가?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교회이지 교회의 독이 아니다…… 교회를 문제 삼지 않는다면 우리도 그 독을 사랑하는 셈이다…….” 이것은 어느 ‘자유정신’이, 자신의 생각을 충분히 드러낸 한 정직한 동물이, 게다가 어느 민주주의자가 내 말에 덧붙인 에필로그이다. 그는 그때까지 내 말에 귀 기울였지만 내가 침묵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이 지점에서 나는 침묵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 p.47)

청동 시대는 가혹하고 차갑고 잔인하며, 인정사정 보지 않고 양심이 없으며, 모든 것을 부수어 버리고 피투성이로 만든다. ‘인간’이라는 맹수를 잘 길들여서 온순하고 개화된 동물, 즉 가축으로 만드는 데에 모든 문화의 의의가 있다는 것이 오늘날 어쨌든 ‘진리’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만일 그것이 맞는 말이라면, 고귀한 종족의 이상과 함께 그들에게 결국 치욕을 안기고 그들을 제압한 원동력이 된 저 모든 반동 본능과 원한 본능이야말로 실질적인 문화의 도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런 본능의 소유자가 동시에 문화 자체도 내보인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까울 뿐만 아니라, 아니! 이것은 오늘날 명백한 사실인 것이다! 이들 억압적이고 보복을 갈구하는 본능의 소유자들, 유럽과 유럽 이외의 모든 노예 계급의 후손들, 특히 아리아계 이전에 살았던 모든 주민의 자손들—이들이 인류의 퇴보를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의 도구’는 인류의 치욕이며, 오히려 문화 전반에 대한 의혹이자 반론인 것이다! 사람들이 모든 고귀한 종족의 밑바탕에 있는 금발의 야수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경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 p.56)

일정 양의 힘이란 바로 그와 같은 양의 충동, 의지, 작용이다. 오히려 그것은 바로 이러한 활동, 의욕, 작용 자체와 다를 바 없다. 그것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모든 작용을 작용자, 즉 ‘주체’의 제약을 받는 것으로 해석하고 오해하는 언어의 유혹(그리고 언어 속에서 돌처럼 굳어버린 이성의 근본적 오류)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일반 사람들이 번개를 그 섬광과 분리하여 섬광을 번개라 불리는 어떤 주체의 행동이며 활동이라 생각하는 것처럼, 군중 도덕도 강자를 강한 모습을 나 타내는 것에서 분리하여, 마치 강한 것을 나타내거나 나타내지 않는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떤 중립적인 기체(基體)가 강자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기체란 없다. 행동, 작용, 생성의 배후에는 어떤 ‘존재’도 없다. ‘행동자’란 행동에 그냥 상상으로 덧붙인 것이다.—행동이 전부인 것이다.
(/ p.60)

‘좋음과 나쁨’, ‘선과 악’이라는 대립되는 가치는 이 지상에서 수천 년간 끔찍한 싸움을 해왔던 것이다. 그리고 후자의 가치가 오래 전부터 확실한 우위를 점했다 하더라도 아직도 승패를 결정짓지 못하고 싸움이 계속되는 곳도 없지 않다. 그 동안 싸움이 더욱 격화되고 그로써 더욱 더 심화되어 점점 더 정신적으로 되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그 결과 오늘날 ‘보다 높은 본성’, 보다 정신적인 본성을 나타내는 표시로서 이러한 의미에서 분열되었다는 사실과 그리고 사실상 아직 이러한 대립되는 가치의 전쟁터가 되고 있다는 사실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인간의 전체 역사를 통해 오늘날까지 읽을 만한 것으로 남은 어떤 저서에 의하면 이 싸움의 상징은 ‘로마 대 유대, 유대 대 로마’를 뜻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이 싸움보다, 이 문제 제기보다, 이 불구대천의 대립보다 더 큰 사건은 없었다.
(/ p.72)

사실 망각이 하나의 힘, 억센 건강의 한 형식을 나타내는 어쩔 수 없이 망각하게 마련인 이 동물은 반대 능력, 즉 기억의 도움으로 어떤 경우에, 말하자면 약속해야 하는 경우에 망각을 제거하는 기억력을 길렀던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일단 새겨진 인상에서 다시 벗어날 수 없다는 단순히 수동적인 상태가 아니고, 일단 명예를 걸고 약속한 말을 지킬 수 없다는 소화불량이 아니라, 다시 벗어나지 않으려는 의욕의 능동적인 상태이고, 일단 하려던 것을 계속하려는 것이며, 본래적인 의지의 기억인 것이다. 그리하여 본래적인 ‘나는 원한다’, ‘나는 할 것이다’, 그리고 의지의 본래적인 표출, 그 의지의 행위 사이에는 새로운 낯선 사물과 상황의 세계, 심지어 의지 행위인 하나의 세계가 의지의 이러한 긴 연쇄 고리를 단절시키지 않고 서슴없이 끼어들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처럼 미래를 미리 마음대로 하기 위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과 우연히 일어나는 일을 구별하는 법을, 연관 관계에 따라 사고하는 법을, 먼 앞일을 현재의 일처럼 보고 예견하는 법을, 무엇이 목적이고 무엇이 그 수단인지 확실히 정하고 대충 계산하며 예측할 수 있는 법을 먼저 배웠어야 하지 않는가! 약속하는 사람이 그렇게 하듯이, 결국 그런 식으로 자신의 미래를 보증할 수 있기 위해, 인간 자신이 먼저 자기 자신의 표상에 대해서조차도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이며 필연적인 존재가 되었어야 하지 않는가!
(/ p.84)

‘자유로운’ 인간, 즉 오랫동안 지속되어 잘 망가지지 않는 의지를 소유한 자는 이처럼 소유하는 것에 또한 자신의 가치 척도를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을 기준으로 남을 바라보며, 존경하기도 하고 경멸하기도 한다. 그는 필연적으로 자신과 동등한 자, 강자, 신뢰할 수 있는 자(약속할 수 있는 자)를 존경한다. 그러므로 주권자처럼 묵직하고 드물게 천천히 약속하는 자, 쉽사리 남을 신뢰하지 않고 신뢰를 할 때는 눈에 띄게 하는 자, 불행한 일에 맞서, 심지어 ‘운명’에 맞서 의연한 자세를 취할 만큼 자신이 충분히 강함을 알기 때문에 신뢰할 만한 약속을 하는 자, 이런 모든 사람을 존경하는 것이다. 또한 그는 지키지도 못할 거면서 거짓 약속하는 한심하고 경솔한 인간에게는 분명 발길질을 할 것이고, 입에 침이 마르기도 전에 이미 약속을 저버리는 거짓말쟁이에게는 회초리로 응징할 것이다. 책임이라는 이례적인 특권에 대한 자부심, 이 진기한 자유에 대한 의식, 자기 자신과 운명을 지배하는 이러한 힘에 대한 의식은 그의 깊디깊은 심연에까지 내려가서 본능, 지배적인 본능이 되었다. 만일 그가 이 지배적 본능에 걸맞은 이름을 붙일 필요를 느낀다면 그것을 뭐라고 부를까? 그러나 그 주권적 인간은 의심의 여지 없이 그것을 자신의 양심이라 부를 것이다…….
(/ p.87)

잔인함이 고대 인류의 축제에 어느 정도로 커다란 즐거움을 주었는지, 그들의 거의 모든 즐거움의 구성 요소에 어느 정도로 섞여 있었는지, 다른 한편으로 잔인함에 대한 그들의 욕구가 얼마나 순수하게, 얼마나 순진무구하게 나타났는지 그리고 바로 ‘사심 없는 악의’(또는 스피노자의 표현을 빌자면 악의적인 동정sympathia malevolens)를 그들이 얼마나 원칙적으로 인간의 정상적인 속성으로 간주했는지—따라서 양심이 진심으로 긍정하는 어떤 것으로 여겼는지, 이러한 사실에 대해 온 힘을 다해 머릿속에 그려보는 일은 잘 길들여진 가축(말하자면 현대인인 우리를 가리킨다)의 섬세한 감각에, 더욱이 그들의 위선에 혐오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생각된다. 보다 깊은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 오늘날에도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근본적인 축제의 즐거움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 p.97)

남의 고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남을 고통스럽게 만들면 더욱 기분이 좋아진다. 이것은 하나의 냉혹한 명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닌 게 아니라 어쩌면 원숭이마저 동의할지도 모르는 오래되고 강력한,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주요 명제이다. 왜냐하면 원숭이는 괴상하기 짝이 없는 잔인한 짓거리를 생각해냄으로써 이미 인간의 모습을 미리 충분히 보여 주고 있으며, 마치 인간의 ‘서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축제에는 반드시 잔인함이 뒤따르는 법이다. 인간의 가장 오래되고 가장 장구한 역사가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형벌에도 축제적인 요소가 적지 않게 들어 있는 것이다!
(/ p.98)

양심의 가책의 기원에 대한 이러한 가설의 전제는, 첫째 그러한 변화가 점진적인 변화나 자발적인 변화가 아니고, 새로운 조건에 유기체의 발육처럼 적응해가는 것으로 나타나지도 않고, 오히려 단절과 비약, 어떠한 투쟁이나 아무런 원 한조차 없었던 피할 수 없는 숙명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둘째로, 지금까지는 구속을 받지 않고 형태가 없던 주민을 고정된 틀 속에 끼워 넣는 작업이 폭력 행위로 시작되었듯이 순전히 폭력 행위로만 끝을 맺게 되었다는 점이며, 그에 따라서 가장 오래된 ‘국가’는 끔찍한 폭정으로, 인정사정없이 으깨 버리는 기계장치로 드러났고, 그런 행위를 계속한 결과 민중과 반(半) 동물이라는 그러한 원료는 마침내 충분히 반죽되어 유순해졌을 뿐만 아니라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는 것이다.
(/ p.131)

오, 인간이라는 이 미쳐 버린 가련한 짐승이여! 짐승처럼 행동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방해받기만 하면, 그대들은 어떤 생각이 들며, 어떤 부자연스러움이, 어떤 어처구니없는 발작이, 어떤 관념의 금수성(禽獸性)이 곧바로 폭발해 버리는 건가!…… 이 모든 일은 지극히 흥미로운 일이지만, 또한 암담하고 음울하며 쇠약해지게 하는 슬픔을 띠고 있기도 해서, 어떻게 해서든 이 심연을 너무 오랫동안 바라보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의심할 것 없이 여기에 병이, 지금까지 인간 속에서 맹위를 떨쳤던 가장 무서운 병이 있는 것이다. 이 고통과 불합리의 어둠 속에서 사랑의 외침이, 그리움에 불타는 환희의 외 침이, 사랑을 통한 구원의 외침이 어떻게 울려 퍼졌는지 아직 들을 수 있는 사람(그러나 오늘날에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은 이겨낼 수 없는 전율에 휩싸여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리라……인간 속에는 이처럼 끔찍한 것이 너무 많다!…… 지상은 너무 오랫동안 이미 정신병원이었던 것이다!…….
(/ p.143)

금욕적 사제는 그러한 이상에 자신의 신념뿐만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힘이며 자신의 관심까지도 포함시켰다. 그의 생존에의 권리는 저 이상과 더불어 서 있을 수도 쓰러질 수도 있다. 말하자면 만약 우리가 저 이상에 적대적인 자라면, 우리가 여기서 무서운 적대자, 즉 저 이상을 부정하는 자와 맞서 자신의 생존을 위해 싸우는 그러한 자와 맞닥뜨린다고 해서 뭐가 놀랄 일이겠는가?…… 다른 한편 애당초부터 우리의 문제에 대해 그 정도로 편향적인 입장을 취하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별로 유익할 것 같지 않다.
(/ p.188)

지금까지 우리가 알게 된 금욕적 사제의 수단—생활 감정의 전체적 약화, 기계적인 활동, 조그만 즐거움, 무엇보다도 ‘이웃에 대한 사랑’이 주는 즐거움, 무리의 조직, 공동체가 번영하고 있다는 쾌감으로 개개인의 자신에 대한 불쾌감은 느끼지 못하게 만드는 공동체의 힘의 감정에 대한 자각—현대의 척도로 잰다면 이것은 불쾌와 싸울 때 사용하는 그의 순진무구한 수단이다. 이제 좀 더 흥미로운 ‘죄 있는’ 수단으로 눈을 돌려 보자. 그것들 모두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감정의 무절제함이라는 한 가지 사실이다. 이것은 무지근하고 꼼짝 못하게 하는 오래된 통증을 잊게 해주는 가장 효과적인 마취 수단으로 이용된다. 그 때문에 “무슨 수단으로 감정의 무절제함을 초래하는가?”라는 한 가지 질문을 생각해내는 사제의 창의성은 실로 무진장했던 것이다…….
(/ p.222)

오늘날 정신이 엄격하고 강력하며 거짓됨이 없이 활동하고 있는 그 밖의 모든 곳에서는 진리에의 의지를 제외하고는 이제 대체적으로 이상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금욕을 나 타내는 대중적인 표현은 ‘무신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지, 이상의 이러한 잔재는, 사람들이 내 말을 믿어 준다면, 가장 엄격하고 가장 정신적으로 정식화된 저 이상 자체이고, 모든 외벽이 제거된 상태의 대단히 비의(秘義)적인 것이므로, 저 이상의 잔재라기보다는 오히려 그것의 알맹이인 셈이다.
(/ p.261)

인간은 이제 더 이상 바람에 흩날리는 가랑잎 같은 존재가 아니었으며, 불합리, ‘무의미’의 노리갯감이 아니었다. 인간은 이제 무언가를 의욕할 수 있었다—어디로, 무엇 때문에, 무엇으로 인간이 의욕했는가는 우선 아무래도 상관없다. 의지 자체가 구원받았던 것이다. 금욕적 이상에 의해 방향을 얻은 저 의욕 전체가 사실 표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사람들은 도저히 숨길 수 없게 된다. 즉 인간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 더욱이 동물적인 것, 물질적인 것에 대한 이러한 증오, 감각이며 이성 자체에 대한 이러한 혐오, 행복과 미에 대한 이러한 두려움, 온갖 가상, 변화, 생성, 죽음, 소망, 욕망 자체에서 벗어나려는 이러한 갈망—이 모든 것은, 이것을 감히 파악해 보고자 시도한다면, 무(無)에의 의지, 삶에 대한 반감, 삶의 가장 근본적인 전제에 대한 반항을 의미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의지이며 하나의 의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내가 처음에 말했던 것을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의욕하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무를 의욕하려고 한다…….
(/ p.266)

저자소개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844.10.15~1900.08.25
출생지 독일 작센주
출간도서 91종
판매수 33,544권

독일 철학자이자 문화 비평가. 오늘날 가장 널리 읽히고 있는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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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59~
출생지 강원도 삼척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서울대학교 인문대 독문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토마스 만의 장편 소설 『마의 산』의 형이상학적 성격」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역서로는 토마스 만의 장편 『마의 산』,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 중단편 소설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도덕의 계보학』, 카프카의 중단편 소설집 『변신』, 장편 『소송』, 『성』,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 헤세의 『싯다르타』, 『내게 손을 내밀다』, 레마르크의 『서부전선 이상 없다』, 미카엘 엔데의 『마법의 술』, 하이네의 『독일·겨울동화』, 그림 형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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