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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 : 6월항쟁의 전개 / 현대사를 바꾼 최대 동시다발 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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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
    6월항쟁의 전개,
    현대사를 바꾼 최대 동시다발 시위


    * 은폐됐던 박종철 고문 사망 진실, 어떻게 드러났나
    * 6월항쟁이 장엄한 항쟁으로 피어오른 이유는?
    * 전두환은 왜 군 출동 지시를 번복했나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19권에서는 민주대연합과 동시다발 투쟁이 박종철 추도 대회에서 결합되고,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각계각층의 호헌 철폐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변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했다. 또 국본과 자연발생적인 과감한 투쟁의 상호관계, 박종철 고문 사망 은폐 조작 폭로가 몰고 온 5·26 전면 개각과 안기부장 교체, 전두환과 노태우 측의 미묘한 갈등이 6월항쟁에 미친 영향에도 각별히 예의주시했다. 연일 계속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에 전두환·노태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세밀히 살폈다.

    출판사 서평

    한국 현대사의 세 번째 ‘해방’, 6월항쟁
    서슬 퍼런 전두환·신군부 체제 무너뜨리고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평화의 길을 열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 20권으로 완간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가 드디어 20권으로 마무리되었다. 2015년 3월에 1, 2권이 나왔으니 4년 10개월 만이다. 이 시리즈는 그동안 1945년 해방 공간에서부터 1987년 6월항쟁까지 굵직굵직한 한국 현대사를 기록했다. 그동안 나온 현대사 책들은 특정 분야에 치중하거나 비화 형태로 되어 있는 것들이 많았다. 즉 역사의 큰 흐름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다룬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와 달리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는 구체적 사실을 충분히 반영하는 것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사의 총체적 흐름을 짚는 데 주력했다.
    또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는 한국 민주화 운동사 총정리라고 봐도 좋다. 그중에서도 특히 4대 민주화 운동, 즉 4월혁명·부마항쟁·광주항쟁·6월항쟁을 독자들이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비중 있게 서술하고 알기 쉽게 구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또 역사 왜곡 세력에 정면으로 맞대응했다. 해방 후 독재 정권은 현대사의 진실을 두려워했다. 그것을 밝히려는 노력을 힘으로 막았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수많은 사람이 현대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분투했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어둠의 세력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래서 반격을 시도하는데,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이른바 뉴라이트를 앞세워 대대적인 이념·역사 공세를 폈다. 공세의 핵심은 숱한 고난을 이겨내며 민주주의를 향해 한 걸음씩 내디뎌온 역사의 흐름을 뒤집고 왜곡하는 것이었다. 그러한 왜곡을 바로잡자는 생각으로 이 시리즈를 기획했다. 수십 년간 학계가 쌓아올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역사 왜곡 시도에 진실의 빛을 비추자는 뜻이었다.
    역사에 대한 평가도 피해 가지 않았다. 보통 학자들은 사실 관계 규명에만 주력하면서 역사적 사건에 대해 평가 내리기를 부담스러워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서중석 교수는 역사 왜곡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하고 자신의 생각을 주저 없이 말하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친일파, 분단 세력, 독재 협력 세력에 대해서도 역사적 사실을 명시하면서 단호하게 평가를 내리고 있다.

    ‘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

    18~20권의 주제는 ‘6월항쟁’과 ‘도도한 민주화 물결’이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한국 현대사의 세 번째 ‘해방’이라고 평가한다. 1945년 8월 15일이 첫 번째 해방이라면 1960년 4월혁명은 두 번째 해방, 6월항쟁은 세 번째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첫 번째 해방은 크고 깊었지만 분단 속에서 거센 역풍을 맞았고, 두 번째 해방은 박정희 세력의 쿠데타에 의한 반동으로 된서리를 맞았다. 세 번째 해방인 6월항쟁도 1987년 대선에 패배하는 등 갖은 풍파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럼에도 6월항쟁으로 쟁취한 세 번째 해방은 한국 사회에 기본적 자유, 자치적 시민 활동, 절차적 민주주의의 큰 틀이 상당 부분 자리 잡게 만들었다. 6월항쟁은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을 무너뜨리고 한국 사회에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평화의 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18~20권에서는 6월항쟁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 그 전개 과정은 어떻게 되었는지, 그 이후 한국 사회는 어떻게 변했는지를 집중 조명한다. 즉 이 세 권을 통해 6월항쟁 전후사를 총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동안 6월항쟁은 민주화 운동 세력의 눈으로만 바라다본 측면이 있다. 서중석 교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전두환 정권의 움직임, 전두환과 노태우의 갈등의 순간, 그리고 그들이 남긴 자료 등을 꼼꼼히 살피며 6월항쟁이 가지는 의미를 총체적으로 분석했다.
    또 연일 계속 일어나는 대규모 시위에 전두환·노태우가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이유와 그것이 갖는 의미도 세밀히 살폈다. 특히 장세동이 안기부장에서 물러난 게 6월항쟁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 전반기 3년 7개월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 3개월은 안기부장으로 전두환을 받들어왔다. 그러나 박종철 고문 사망 은폐 조작 폭로가 몰고 온 1987년 5·26 전면 개각으로 장세동은 안기부장직에서 내려오게 되었다. 장세동이 안기부장 자리에 그대로 있었더라면 전두환 정권이 6월항쟁에 대응하는 방식이 달랐을 것이라고 서중석 교수는 분석한다. 장세동은 전두환과 이심전심으로 일체가 되어 일사불란하게 강경 일변도로 밀고 나가려고 했을 것이다.
    책에는 전두환이 비상 조치를 전제로 한 군 병력 배치 지시하고 6시간 만에 번복한 이유, 미국의 역할 등도 세세하게 담았다. 그럼으로써 전두환의 4·13 호헌 조치가 각계각층의 호헌 철폐 투쟁으로 발전하면서 역사상 최대 규모의 6월항쟁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변화 과정을 주도면밀하게 추적했다. 1987년 대선에서 패배한 이유도 세세히 분석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은 김대중과 김영삼, 민주화 운동 세력이 져야 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서중석 교수는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서 현장을 직접 목격하기도 했다. 그만큼 이 책에는 6월항쟁의 현장성과 역사성이 아주 생생하게 잘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6월항쟁,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을 되돌아보면 웅장한 대서사시나 교향악을 듣는 것 같기도 하고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거대한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독재 정권의 속성상 박종철 고문 사망은 다른 때 같았으면 한낱 억울한 죽음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박종철의 안타까운 죽음은 2·7 추도 대회, 3·3 평화 대행진, 5·18 고문 사망 은폐·조작 폭로를 거쳐 6·10 국민 대회로 불붙은 6월항쟁 내내 투쟁의 동력이 됐다. 그것과 더불어 이한열이 최루탄에 의해 중태에 빠진 것도 항쟁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또한 중대한 고비에서 전두환이 4·13 호헌 조치라는 ‘치명적인 자살골’을 넣은 것도 항쟁이 전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시민들은 각지에서 주말도 없이,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 17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계속 시위를 벌였다. 서중석 교수는 “역사상 이런 일이 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6·10 국민 대회와 명동성당 농성 투쟁을 거쳐 부산과 대전 등지에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는데, 그 지역 사람들이 지칠 만하니까 때맞춰, 마치 교대하듯이 광주, 전주에서 바통을 이어받아 대규모 시위를 전개한 것도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그토록 서슬 퍼렇던 전두환 정권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시민들이 성취한 승리였다.

    7·8·9월 노동자들은 어떻게 투쟁했나

    ‘도도한 민주화 물결’에서 7·8·9월에 노동자들이 들고일어났다. 노동자들은 석 달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의 투쟁으로 장기간 존속돼온 노동 통제 체제를 상당 부분 무너뜨리고, 대대적인 탈법 파업 투쟁으로 노동 기본권을 유린한 노동 관계법을 무력화했다. 그 이전까지 사용자 측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임금, 노동 조건을 노사 당사자의 단체 교섭으로 결정하게 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새 노조 결성, 어용 노조 민주화 등으로 노조 활동의 민주화를 이뤄냈다. 노동자 대투쟁은 광범한 노동 대중을 단련시키고 사회, 정치 의식과 자신의 조직을 진전시킨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야말로 ‘10년을 하루에 뛰어넘은’ 거대한 비약을 이뤄냈다.
    한계도 있었다. 대중적이고 대규모였지만 계획적, 조직적이기보다는 대부분 자연 발생적인 투쟁이었다. 조직적인 지도력도 약해서 투쟁 성과가 조직적 역량의 결집과 강화로 이어지지 못했다. 지역별, 재벌 그룹별, 산업별 연대 투쟁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대개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노동자 계급으로서 연대를 꾀하지 못했고, 통일된 투쟁도 대개 추진하지 못했으며, 투쟁 목표에서도 단위 사업장에서 경제적 요구를 제기하는 데 그쳤고 전 계급적, 제도적 요구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투쟁 후반기에 전두환 정권, 사업주, 언론 등 지배 세력의 ‘불순 세력 개입’, ‘좌경 용공’ 등의 케케묵은 이데올로기 공세에 노동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고, 그것에 탄압까지 있자 노동자 대투쟁은 끝을 맺었다.

    1987년 대선 패배, 누구의 책임인가

    “1987년 대선에 양김 중 한 명만 나오고 5년 후인 1992년 대선에 다른 한 명이 나오기로 하면서 양김이 협력했다면 군부 정권을 퇴진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점은 명확하다. 그뿐 아니라 지역 갈등, 그중에서도 특히 영호남 갈등을 약화시키는 데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물론 6월항쟁을 계승해 민주주의를 크게 진전시키고 수구 냉전 세력, 극우 세력의 정신적, 물질적 토대를 크게 약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말할 것도 없다.”
    서중석 교수는 6월항쟁이 가져온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에서 대선에 패배한 것은 양김과 민주화 운동 세력의 책임이라는 점을 명확히 지적한다. 특히 재야의 역할에 초점을 맞춰 그 부분을 면밀하게 분석했다. 결국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로 인해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광주를 피로 물들인 신군부 세력은 다시 살아났다. 그들은 전두환·노태우·신군부의 행위를 합리화하는 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전두환·노태우·신군부 정권에서 그래도 낫다는 얘기를 듣던 자들조차도 자신들의 협력 행위를 합리화하려고만 했지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노태우·신군부 집권으로 박정희 유신 체제, 전두환·신군부 체제를 추종했던 자나 언론에 대한 제재는 불가능하게 됐다.
    1987년 대선은 민주화 운동 세력이 6월항쟁에서 쌓아올린 위상을 현저히 실추시켰다. 민주화 운동 세력의 분열은 상당 기간 더 이상 민주화 운동 세력의 단결로 나아가지 못하게 했고, 민주화 운동 세력의 영향력을 약화시켰다. 4월혁명을 이끌었던 학생들은 이승만이 쫓겨난 후에도 사회적으로 존경을 받았다. 그러나 1987년 대선은 그렇게 되지 못했다. 그 대신 수십 년간 반공 독재에 협력한 세력들은 민주화 운동 세력을 DJ 당파, YS 당파로 명명하고 하나의 파당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몰아세웠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갈 도덕적, 정신적 지주가 약화되고, 한국 사회의 가치관이 상당 부분 방황과 혼돈에 빠지기도 했다.

    목차

    책머리에
    연표

    6월항쟁의 전개

    첫 번째 마당
    전두환의 초강경 초토화 작전,
    박종철 고문 사망으로 무너지다

    두 번째 마당
    2·7 추도 대회와 3·3 평화 대행진
    6월항쟁의 큰 틀을 제시하다

    세 번째 마당
    의도치 않게 개헌 열기 되살린
    전두환의 자살골, 4·13 호헌 조치

    네 번째 마당
    활화산처럼 타오른 호헌 철폐 투쟁
    ‘박종철 고문 사망 조작’ 폭로의 파장

    다섯 번째 마당
    박종철 이어 이한열마저
    6월 뒤덮은 함성 “한열이를 살려내라”

    여섯 번째 마당
    노태우 대선 후보 되던 6월 10일
    전국 뒤덮은 “독재 타도” 함성

    일곱 번째 마당
    계획에 없던 명동성당 농성 투쟁
    6월항쟁의 큰길을 열다

    여덟 번째 마당
    갈수록 거센 ‘독재 타도’ 함성
    “난 카드 다 썼어요” 비명 지른 전두환

    아홉 번째 마당
    6시간 만에 군 출동 지시 번복한 건
    미국 압력 때문? 그렇지 않다

    열 번째 마당
    김영삼의 영수 회담 결렬 선언으로
    전두환의 6·26 대회 분열 계획 물거품

    열한 번째 마당
    폭력으로 국민 이기려 한 전두환 헛꿈
    산산조각 낸 6·26 평화 대행진

    열두 번째 마당
    직선제 쟁취에서 멈춘 아쉬움 있지만
    세 번째 해방으로 손색없는 6월항쟁

    나가는 말

    본문중에서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 전반기 3년 7개월은 청와대 경호실장으로, 후반기 2년 3개월은 안기부장으로 전두환을 받들어왔다. 그 이전에도 1967년부터 전두환을 다섯 번이나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보좌했다. 바늘 가는 데 실 가듯이 전두환을 계속 따라다닌 그야말로 심복 중의 심복이었다. 장세동은 전두환 정권 시절 전두환을 왕으로 떠받들었고, 전두환이 물러난 후에는 전두환을 위해 감옥에 대신 들어가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안기부장 시절, 그것도 1986년 5·3 인천 사태 이후 그해 가을에 전두환과 함께 극단적인 초강경 초토화 작전을 펴 개헌 세력을 혹독하게 탄압한 장본인이었다.
    (/ pp.82~83)

    6·10 국민 대회는 민주화 운동사뿐만 아니라 근현대사에도 한 획을 그었다. 1919년 3·1운동 이후 같은 날, 여러 장소에서 이렇게 많은 시위가 벌어진 적이 없었다. 정치인과 재야인사, 학생들이 혼연일체가 돼 시위 투쟁을 벌인 것도 아주 드물었다. “호헌 철폐”, “독재 타도”라는 구호가 전국적으로 통일돼 있는 것도 크게 주목할 만한 현상이었다. 대부분의 도시에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시위 모습을 지켜보거나 시위대에 가담했고, 시위대에 음료수와 먹을거리를 건네기도 했다.
    (/ p.120)

    저자소개

    생년월일 1948.08.25~
    출생지 충청남도 논산시
    출간도서 44종
    판매수 9,216권

    1948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1988년까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했으며, 6월항쟁 당시 《신동아》 취재기자로 역사적 현장에서 그날의 사건들을 생생히 목격하고 기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이며 역사문제연구소 이사장,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회복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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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28종
    판매수 4,348권

    서울대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와 프레시안에서 기자로 일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현재 인문 기획 집단 문사철에 터를 잡고 역사와 사회에 관한 책 작업을 하고 있다. 그동안 《김기춘과 그의 시대》를 쓰고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공저했으며 《세계를 바꾸는 파업》, 《근현대사 신문》(전 2권), 《세계사와 함께 보는 타임라인 한국사》(전 5권)를 함께 쓰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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