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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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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출판사 : 한빛비즈
  • 발행 : 2019년 06월 19일
  • 쪽수 : 312
  • ISBN : 9791157843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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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감기 빨리 ‘낳으라’는 이들을 향한 스프라이트!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의 작가 이주윤
이번에는 ‘시집가라’는 잔소리에 찌든 ‘노처녀’로 돌아왔다!

“시집가라는 잔소리에 지친 여러분! 날도 더운데 어서 이 책을 집어 들고 집에 가셔서 브라자 따위 훌렁 풀어버리고 캔 맥주나 하나 까서 안주 삼아 읽어보셔요. 처음엔 ‘작가가 우리 아버지를 어떻게 알지?’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계속 읽다 보면 명치에 맺힌 체기가 사라지고, 세상을 향한 미움이 스르륵 녹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웃다 자지러질 수도 있고, 쓸쓸함에 눈물이 날 수도 있습니다.”
-편집자 S의 아주 사적인 추천사

〈너희가 솔로를 아느냐〉 〈가자, 달달술집으로〉 등 솔직하지만 따스한 글로 연재 기간 내내 폭넓은 연령층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주윤의 칼럼이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로 묶여 출간되었다. 맞춤법 책으로는 유례없는 스테디셀러를 기록 중인 《오빠를 위한 최소한의 맞춤법》을 통해 이미 신박한 개그감과 글재주를 선보인 저자는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에서도 30대 여성이 흔히 듣고 겪는 현실들을 거침없는 입담으로 풀어낸다. 뼈를 때리는 공감과 ‘꾸밈 노동’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현실적인 캐릭터들이 읽는 맛을 더한다.

출판사 서평

생기면 하겠지요. 그 망할 놈의 결혼
그런데 영영 안 생길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결혼하라는 잔소리를 아직도 듣느냐고,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질 테니 걱정 마시라 당당히 말하라고들 하지만 속 모르는 소리다. 평소에는 ‘똑똑한 우리 딸내미’ 소리를 듣다가도 결혼 얘기 앞에서는 포승줄에 묶인 대역 죄인이 따로 없다. 작가는 제 밥벌이하며 나름대로 행복하게 사는 자신이 부모의 골칫거리가 되어버린 현실을 통탄한다. 맘에 드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결혼하면 뭐가 좋을지, 이 풍진 세상에다 애는 왜 낳는 건지, ‘내 집’도 아닌 ‘시집’에는 또 왜 가는지 의문투성이다. 오랜만에 찾은 고향 집 밥상머리에서 그녀는 오늘도 밥 대신 욕 한 바가지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아빠는 유통기한 삼십 년짜리 딸을 왜 낳았을까. 귀한 딸내미한테 쭈그렁이니 똥값이니 하는 험한 말을 하고 싶을까.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에게 나를 보내버리려고 그렇게 애써 키웠을까. 서른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평생 함께해야 할 사람을 갑자기 데려오라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일까. 결혼은 곧 행복이라는 이상한 공식은 누가 만들어냈을까. 서둘러 결혼했다가 이혼이라도 하게 된다면 그때는 누구 탓을 하려고 이러는 것일까. 나는 당신의 인생 과업을 이루기 위한 희생양일 뿐일까. 아빠가 밉다. 아빠의 마음은 그게 아닐 것을 알면서도 마냥 밉다. 아줌마 같은 얼굴을 하고서 사춘기 소녀처럼 구는 내가 더 밉다. 싫다. -본문 19쪽 〈쭈구렁방탱이〉 중에서

거침없는 아버지의 성화를 한 귀로 흘려보낼 즈음, 이번엔 속사포 랩을 방불케 하는 엄마의 잔소리가 다른쪽 귀로 진입한다. 아, 부모님은 왜 이럴 때만 손발이 척척 맞는 것일까?

>>“남들처럼 밖에 나가서 여기저기 쑤시고 다녀야 남자를 만나든 말든 하지. 집에만 처박혀 있으면 이 세상에 너라는 애가 존재하는 줄 누가 알아줘. 뭐? 힘들어? 개똥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너 이렇게 살다가 시집 못 가고 ‘버커리’ 돼서 늙어 죽으면 어쩌려고 그래. 뭐라고? 그까짓 시집 안 가도 잘 먹고 잘산다고? 아으, 내가 진짜 너 때문에 속이 터져서 살 수가 없어. 도대체가 누구를 닮아서 이 모양 이 꼴이야 너느으으으으은!” -본문 28쪽 〈연애라는 노동〉 중에서

어른들은 말한다. 인생 잠깐이라고. 사람 다 거기서 거기라고. 장동건도 똥 싸고 방귀 뀐다고. 아무리 잘생긴 얼굴도 삼 개월만 보면 질리는 거라고. 하지만 정말 아무나 만나 같이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무나 만나기 위해 이렇게 열심히 살아온 게 아니다. ‘비혼’이네 독신주의네 그런 거창한 말로 포장할 생각도 없다. 그저 함께하고픈 사람을 아직 못 만났다. 찾으러 다니기에는 바쁘고 귀찮고, 막상 찾았대도 이번에는 잃을까 겁이 난다. 그렇게 하루가 간다.

‘노처녀 히스테리’가 아니라
할 말을 하고 살기 시작했을 뿐입니다

각종 명절과 제사를 비롯해 누구 결혼식, 누구 돌잔치마다 닥치는 주변의 압박은 얼마나 더 살아야 익숙해질까?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사회생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친하지도 않은 이들의 말 같지도 않은 잔소리 몇 마디에 전보다 쉽게 불꽃이 튄다. 내 성격이 더 예민해진 것인지 사람들 오지랖이 넓어진 것인지. 혹시 이게 바로 노처녀 히스테리?!

>>“지금보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싫어도 싫은 티를 내지 못했다. 상대방이 언짢을까 봐. 그런 그가 우리를 헐뜯을까 봐. 결국에 나쁜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두려워서 말이다. 그런데 세상을 좀 살아보니 남보다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다른 이의 눈치를 살피며 행동하는 대신,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주장하게 된 것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눈에는 이런 우리의 모습이 결혼 못 한 노처녀가 괜한 성질을 부리는 것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우리는 ‘노처녀 히스테리’를 부리는 게 아니다. 그저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확실하게 밝혀도 괜찮다는 걸 이 나이가 되어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다. 우리는 정말 잘살고 있으니까.” -본문 94쪽 〈노처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다. 어디든 나가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불 속에도 재밌는 게 얼마나 많은데. 먹고 싸는 일만 어떻게 좀 해결된다면 평생을 누워서 살 수도 있을 텐데. 젊은 놈이 별소리 다 한다며 혀를 끌끌 차신다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젊은 놈도 사람이니 귀찮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씻고 머리를 말리고 옷을 골라 입고 화장을 하고 번잡한 지하철을 타고 약속 시간에 맞춰 나가는 일. 이쯤 되면 그 수고와 귀찮음을 무릅쓰는 커플들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진다.

>>나에게 연애란 곧 노동이다. 공들여 씻고 화장하는 일. 어지러운 서랍 속을 뒤져 위아래 짝이 맞는 속옷을 찾아내는 일.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에 억지웃음을 지어주는 일. 하루에도 수십 번씩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시시콜콜한 일상을 보고하는 일. 사소한 문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언제 그랬냐는 듯 화해하는 일. 가끔은 나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나의 생각을 애써 설명해야만 하는 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들이 나에게는 너무나 힘겹게만 느껴진다. 그리하여 나는 연애하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본문 30쪽 〈연애라는 노동〉

책을 읽다 보면 그래서 연애를 하고 싶다는 것인지, 하기 싫다는 것인지 아리송해진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순하다. “하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면 연애고 결혼이고 할 수 있다. 다만, 남에게 등 떠밀려 해치우기에는 내가 너무 아까울 뿐이다. 그러니 나를 좀 내버려두세요!”
이 책 《제가 결혼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의 정의대로 ‘노처녀’의 기준을 정한다면 ‘원하는 바를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는 나이’일 것이다. 혹시 내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정말 불효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자기검열 따위 이제 그만두자. ‘시집’으로 떠나버린 친구들의 빈자리가 아무리 휑할지라도, 각종 청년 대출 상품의 ‘청년’이 끝나갈지라도, 아버지의 한숨을 외면할지라도 부디 굳건하기를. 오직 ‘나’를 위한 선택으로 인생을 채워나가기 시작한 당신을 이 책이 응원한다.

목차

프롤로그

1부. 노처녀라는 재미없는 농담
쭈구렁방탱이 | 개고기 | 유부녀와 유부남 | 연애라는 노동 | 급할수록 머리를 감자 | 가정부를 쏩니다 | 이혼이 꿈입니다만 | 화성에서 온 아빠, 금성에서 온 딸 | 해물탕 | 멸치 | 로맨티시스트 | 사과문 | 즐거운 하루 | 도원결의 | 나는 아버지가 아녀유 | 이상과 현실 | 혼수 | 돈 벌기의 어려움 | I ♥ SEOUL | 노처녀는 잘 살고 있습니다 | 칵테일 사랑의 저주 | 추석 | 추석-2

2부. 전기장판 위의 사색
숙취 | 달려라 두깨 씨 | 소나기 | 침묵 추가요! | 장기 자랑 | 장기 자랑-2 | 장기 자랑-3 | 빨리빨리 | 크리스마스 다음 날 | 안티에이징 | 벚꽃택시 | 만병의 원인 | 누구 개 | 거북이 구조 특공대 | 직선과 곡선 | 쪼꼬렛뜨 | 잘 지내니? | 재혼은 미친 짓이야 | 손절매 | 아보카 | 엄마를 위한 화장실 | 맞선 사절

3부. 엄마는 내가 왜 좋아?
승차권 | 집 떠나면 개고생 | 쇼미더마미 | 마음에도 없는 소리 | 지게 | 달려라 이봉주 | 밤과 음악 사이 | 오만 원짜리 연극 | 전국 노래자랑 | 사전 | 강제 결혼 | 양자택일 | 솔직한 게 죄인가요? | 좆 까라 그래 | 시간 | 쉼표 | 시간-2 | 복숭아 | 나이 먹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 | 엉덩이 체력 | 효도란 무엇인가

본문중에서

여자는 생각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식을 낳지 않겠다. 그리하여 내 어머니처럼 자식을 궁금해하지도 좋아하지도 않겠다. 어머니의 깊은 사랑을 부담스러워하는 자신의 그릇됨에 죄책감을 느끼게 하는 일, 애초에 만들지 않겠다. 엄마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한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세상에 엄마보다 너를 더 걱정하는 사람이 어딨어, 너도 힘들겠지만 엄마는 너보다 더 힘들어, 그러니까 네가 엄마한테 잘해야지, 하는 서글프면서도 미치게 짜증 나는 그 말, 아무리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도록 자식 따위 절대로 낳지 않겠다고 다짐 또 다짐하는 그녀였다. -본문 11~13쪽 〈프롤로그〉

하루의 대부분을 산송장처럼 누워 지낸다. 늦잠 자고 일어나 낮잠 자고, 낮잠 자고 일어나 늦잠 자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훌쩍 흘러가 버린다. 반복되는 늦잠과 낮잠 사이에 이렇게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는데 그마저도 누워서 가능한 일이니 딱히 침대를 벗어날 이유가 없다. 먹고 싸는 일만 어떻게 좀 해결된다면 평생을 누워서 살 수도 있을 것만 같다. 한창때에 왜 그러고 사느냐 물으신다면, 모르겠다. 세상만사 모두 귀찮다. 젊은 놈이 별소리 다 한다며 혀를 끌끌 차신다면,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젊은 놈도 사람이니 귀찮음을 느낄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본문 27쪽 〈연애라는 노동〉

호화스러운 펜트하우스가 아니라 달동네 꼭대기 집에 살아도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것은 매한가지니 뭐 대충 벌레만 없으면 좋아하는 사람이랑 그런 곳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라 여겼었는데. 가진 능력이 부족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많이 벌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알뜰히 살다 보면 가끔 삼겹살도 구워 먹고 철마다 새 옷 한 벌씩 사 입으며 소소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거라 믿었었는데. 사는 게 지치는 날에는 광어 한 마리에 구천구백 원인 싸구려 횟집에서 맥주에 소주 말아 마시며 “당신 말고 다른 남자랑 결혼했으면 이 고생은 안 하고 살았을 텐데” 한바탕 신세 한탄을 하고 나면 다시 살아갈 힘이 날 거라 생각했었는데. 편히 살게 해주겠다는 낯선 남자의 말 한마디에 이렇게 갈팡질팡해버리다니. 나는 정녕 사랑보다는 돈이 우선인 그렇고 그런 여자란 말인가. -본문 38~40쪽 〈가정부를 쏩니다〉

내가 잘 살기를 바라는 아빠의 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아빠는 아빠고 나는 나다. 아빠가 좋다고 여기는 것을 나 역시 좋아할 수는 없다. 아빠는 팍 꼬부라진 신김치가 맛있다고 하지만, 나는 아삭아삭한 겉절이가 맛있다. 아빠는 푸른 숲을 거닐러 산에 가지만, 나는 빌딩 숲을 거닐러 광화문에 간다. 아빠는 남자라면 최불암처럼 중후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나는 남자라면 조인성처럼 훤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아빠가 원하는 대로 최불암 닮은 남자와 신김치를 먹으며 산속에서 산다면 나는 너무 슬퍼서 울어버릴지도 모른다. 내가 바라지 않는 삶을 살며 불행을 느낀다면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르는 꼴이 되어 버리니, 그것은 필경 불효 아니겠는가. -본문 75쪽 〈나는 아버지가 아녀유〉

“아뇨.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렵겠어요.” 요즘 내가 열심히 연습하는 말이다. 꽁하니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보다는 확실하게 말로 표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서이다. 여태껏 해본 적 없는 말이라서 그런지 영 입에 붙지를 않는다. 연습, 또 연습해야지.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자기 성질 더러운 거 합리화하고 있네. 아줌마! 노처녀 히스테리 그만 부리고 빨리 시집이나 가세요!’라고 딴지를 걸지도 모르겠다. 오, 드디어 연습한 걸 써먹을 때가 왔군. “아뇨.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그건 좀 어렵겠어요.” -본문 94~96쪽 〈노처녀는 잘 살고 있습니다〉

전 부치러 고향에 내려간다. 지하철을 타고서 경기도 평택시로 내려간다. 가양역에서 9호선을 타고 노량진까지 가서, 노량진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평택역에 내린다. 노량진역 에스컬레이터, 내 앞에 선 남자와 여자가 손을 꼭 잡고 있다. 남자는 회색 코트를, 여자는 분홍색 코트를 입었다. 남자는 못생겼고, 여자는 그저 그렇다. 명절 연휴 첫날에 에스컬레이터에서 손을 잡고 있다니. 지난달에 결혼한 모양이지. 아니나다를까 여자의 손가락에서 다이아 반지가 빛나고 있다. 여자여, 너는 시댁에 가는가. 시댁에 도착하면 너희는 붙잡은 그 손을 놓게 되겠지. -본문 109쪽 〈추석-2〉

사람들 참 귀엽다. 안 그래도 먹고 살기 바빠 죽겠는데, 발걸음을 멈추어 이 작은 가게에 굳이 들어와, 온갖 수모를 겪어가며 피땀 흘려 번 돈으로, 사랑하는 누군가를 기쁘게 해주려 초콜릿을 사 가지고서, 총총거리며 그이를 향해 걸어가는 모습이라니. 다들 자기밖에 모르는 것처럼 이기적으로 굴 때가 태반이기는 하지만, 가슴 한편에는 남을 위할 줄 아는 깜찍한 마음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알까? 자기들이 얼마나 귀여운 인간인지를 말이다. -본문 191쪽 〈쪼꼬렛뜨〉

“친구 별로 없어요. 대부분 혼자 지내요. 용건 없으면 연락 안 해요. 부모님한테 살갑게 못 굴어요. 가족이라고 모두 화목하란 법은 없죠. 누구보다도 가깝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 상처를 줄 수 있는 게 가족이에요. 밥 안 해요. 청소 안 해요. 집안일에 흥미 없어요. 남자랑 싸울 일 있으면 그냥 헤어지고 말아요. 선 많이 봤어요. 좋아하지 않는 사람하고 만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해요. 스물두 살 이후로 진짜 좋아서 만난 남자는 없어요. 축구 싫어요. 야구 싫어요. 요가 싫어요. 그냥 운동 자체가 싫어요. 모임 싫어요. 회식 싫어요. 드라마 싫어요. 제가 싫어하는 게 너무 많아서 대답마다 다 싫다고 하네요. 죄송해요.” -본문 279쪽 〈솔직한 게 죄인가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해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든다. 하지만 이내 그래도 된다, 는 결론을 내리고야 만다. 밥 차려줘야 할 남편 있는 거 아니니까. 기저귀 갈아줘야 할 자식 있는 거 아니니까. 하루에 한 번씩 안부 전화 드려야 할 시부모 있는 거 아니니까. 만나 달라고 사정사정하는 남자 있는 거 아니니까. 남들이 시간을 쪼개어가며 이 모든 일을 해내는 동안 나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니까. 남아도는 시간에 그깟 인터넷 쇼핑 좀 하면 어때. 아무리 해도 반나절도 채 지나지 않는 걸 무어.
이렇게 시간을 펑펑 쓴 다음 남는 시간에 일을 한다. 일이 많지도 않다. 일이 밀려들어 오는 것도 아니고 가끔 그렇게 들어와도 할 수 있는 만큼만 받기 때문에 나는 늘 한가하다. 일을 바쁘게 하지 않으니 돈을 많이 벌지도 못한다. 그럼 또 어때. 내 까짓 게 빤스나 기저귀를 사줘야 할 남편이나 자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때맞춰 선물 사다 바쳐야 할 시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쁜 옷 사 입고 잘 보여야 할 남자가 있는 것도 아닌데 무어. -본문 293~294쪽 〈시간-2〉

“진이 엄마, 우리 복숭아 사자.” 성가심이 뚝뚝 떨어지는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복숭아는 무슨 복숭아야. 됐어. 비싸.” 여자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앞질러 걸어갔다. 여자의 오른손에는 대파가 삐져나온 장바구니가, 왼손에는 대여섯 살 정도 먹은 남자아이의 조막손이 쥐어져 있었다. “내가 복숭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난데없는 고함에 뒤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벌게진 남자가 과일 가게 앞에 선 채, 멀어져 가는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사자고, 복숭아!” 받아 주는 이 없는 남자의 외침이 여름 하늘 위로 흩어졌다. 집에 돌아와 복숭아 껍질을 벗기며 생각했다. 결혼이 다 무어야. 복숭아 하나 내 마음대로 못 먹고. 애기 엉덩이 같은 복숭아를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끈끈한 복숭아즙이 턱을 타고 목으로 흘러내렸다. 달다, 달아. -본문 297~299쪽 〈복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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