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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말하고 슬퍼하고 사랑하고 : 청각장애인이고 싶었는데 수어통역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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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수어라는 독특한 언어와 감수성을 매개로
조용하지만 거침없고, 육체적이고, 따스한 청각장애의 세계를 만나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삶을 상상할 수 있을까? 이 책은 손으로, 몸짓으로, 표정으로 자유롭게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아름다운 문체로 그려낸 자전적 에세이다.
청각장애인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둔 저자는 아버지가 교사로 일하는 청각장애 학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청각장애의 세계를 접한다. 그곳은 소리 없이 이해되는 말들의 온기로 가득한 세계였다. 그 온기가 좋았던 저자는 귓속에 작은 돌멩이를 보청기처럼 끼워 넣을 정도로 청각장애인이 되기를 바라지만, 어떻게 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걸 알고 수어통역사가 되기를 꿈꾼다. 그게 청각장애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방편이라고 여긴 것이다.
저자는 이런 각별한 애정을 바탕으로 담담하지만 아주 구체적으로 청각장애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 중심 무대는 미국 최초의 구화학교 렉싱턴 청각장애 학교. 저자는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경험한 청각장애의 세계, 그 학교 졸업생인 할아버지, 그리고 같은 청각장애인인 할머니의 삶, 렉싱턴 청각장애 학교 교사였던 아버지와 그곳 학생들의 이야기를 세세하게 풀어내면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대다수인 세상에서 느끼는 단절감, 관계에 대한 갈증, 그렇기에 같은 청각장애인을 만나면 헤어지기 싫어하는 마음, 희미한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라도 서로의 눈을 쳐다보고 손을 움직이며 나누는 깊은 대화, 기나긴 작별 인사….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청각장애 문화의 본질이라고 말한다. 그 간절함은 수어라는 거침없고, 육체적이고, 따스한 의사소통 방식으로 드러나고, 세상이 밀어낼수록 이들은 더욱 결속하며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이 책은 수어라는 독특한 언어와 감수성을 매개로 청각장애의 세계를 보여주며 그것을 우리와 다르지 않은 또 하나의 문화로, 청각장애를 문화적 정체성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출판사 서평

■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모르는 조용하게 반짝이는 청각장애의 세계
수화를 사용하는 언어적 소수민족에 관한 이야기


청력을 잃은 사람의 세계는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세계와는 아주 다르다. 결코 깨어나지 않는 철저한 침묵 속에서 살아가거나 혹은 도무지 해독되지 않는 희미한 소음에 둘러싸여 살아간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의 청각장애를 힘들게 여기고 좌절하기만 할까?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그 세상에서는 청력 대신 시각에 기반한 언어, 즉 수어를 사용한다. 를 사용한다. 바로 수어다. 몸짓, 손짓, 표정이 모두 언어인 것이다. 몸의 여러 부위에 손을 얹고, 이런 저런 표정을 짓고, 간간이 입술과 이가 부딪히며 나는 소리, 낮고 쌕쌕거리는 기식음으로 마음을 드러내고 생각을 펼친다. 의사소통 방식도 다르다. 대화할 때는 반드시 서로를 쳐다봐야 하며, 누군가를 부를 때는 팔을 톡톡 두드리거나 발을 굴러 진동을 전한다.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때에는 큰 소리로 말하는 대신 조명을 껐다 켰다 하거나 발을 구른다. 여러 사람이 대화할 때는 말하는 사람의 수어를 보기 위해 모두가 기꺼이 앉아있는 의자의 방향을 조정하거나, 무릎을 꿇거나 뒤를 향해 앉고 몸을 모로 꼬고 외로 비틀기도 한다. 비밀 이야기는 손을 허리 밑으로 내려서 하거나 옷 속이나 등 뒤로 숨겨서 한다.
신체적인 접촉도 빈번하다.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의 세계에서는 어색하거나 무례하게 느껴질 수 있는 행동이 청각장애의 세계에서는 암묵적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수어는 빠르고 맛깔스럽고 육체적이다.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때 수화의 그 빠른 리듬,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눈썹과 손가락과 어깨와 입술의 움직임, 저절로 우러나오는 듯이 우아하면서도 의미로 충만한 동작. 저자는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좋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이처럼 조용하게 반짝이는 청각장애의 세계를 생생하고도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저자가 만난 청각장애인들은 수어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소수민족이다. 그 세계에서 청각장애는 장애가 아니며,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 ‘청각장애인은 듣는 것 말고는 뭐든지 할 수 있어!’
청각장애인의 자부심, 그리고 청각장애 문화의 산실인 청각장애 학교에 관한 이야기


청각장애인들은 다른 장애 집단과 달리 그들만의 모임과 경기연맹, 극단과 대학, 잡지를 가지고 있으며, 국제올림픽도 독자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들만의 언어가 있기 때문이다. 수어는 생각을 발전시키고, 정체성과 자긍심을 형성하며, 그들만의 문화를 형성하는 매개인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청각장애 학교가 있다.
이 책에는 렉싱턴 청각장애 학교를 다닌 실존 인물인 소피아와 제임스의 이야기가 나온다.
날 때부터 소리를 듣지 못했던 소피아는 러시아에서 다섯 살 때부터 집에서 여덟 시간 거리에 떨어져 있는 청각장애 기숙학교에 다녔다. 그 학교는 건청인(들을 수 있는 사람)과 비슷해지도록 구화(상대의 입모양으로 말을 알아듣고 자신도 그렇게 소리 내어 말하는 것)를 강요했다. 소피아의 집은 학교였고, 가족들 사이에서는 사실상 제외된 존재였다. 미국 빈민가 출신인 제임스는 미혼모인 엄마와 열여섯 살 때부터 경찰서와 교도소를 드나드는 동생을 두었고,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귀까지 들리지 않는 그의 삶은 사람들이 긴급 상황이라고 부르는 그 자체였고, 추락하는 삶을 중단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없기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냥 자신이 넘어지도록 내버려두는 것뿐이었다.
두 아이의 삶은 렉싱턴 청각장애 학교에 오면서 변화하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수어를 할 줄 몰랐지만 렉싱턴에서는 친구와 선생님은 물론이고 그 누구와도 수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청각장애가 그들을 가로막는 법은 없었다. 소피아는 배구부와 모의재판 팀, 졸업 앨범 편집 위원과 학교 매점 관리자를 맡았고, 제임스는 흑인문화동아리 회장과 레슬링 팀 주장, 통학버스 대기실 관리를 맡았다. 청각장애학 수업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알고, 청각장애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청각장애인은 듣는 것 말고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청각장애인의 자긍심을 얻는다. 고개를 들고 당당히 세상을 마주 볼 수 있게 된 두 아이는 그동안 단지 청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거부당하고 잃어버렸던 삶의 조각들을 되찾아 나간다. 제임스는 자신의 발목을 붙잡는 과거를 끊고 대학에 진학하며 미래를 향해 한 걸음 나아간다. 소피아 역시 청각장애 공동체라는 더 큰 얼개 속에서 자신의 개인사를 새롭게 쓰기 위하여 청각장애인을 위한 인문대학인 갤로뎃으로의 진학을 꿈꾼다.
저자는 청각장애는 장애가 아니라, 이들의 핵심적인 삶의 정체성라고 말한다. 그리고 청각장애 문화를 전수하고 전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건 학교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증거로 갤로뎃 대학에서 있었던 청각장애인 총장 운동의 일화를 전한다. 당시 갤로뎃의 대학생들은 청각장애 문화에서 박수에 해당하는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만들어냈는데, 그것은 팔을 높이 들고 손가락을 펼친 채로 손을 흔드는 동작이었다. 조용하게 반짝이는 그 박수는 청각장애 공동체 전역으로 퍼져 나갔고, 너무나도 빨리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저자는 그런 점에서 반짝이는 박수는 청각장애 문화가 학교로부터 꽃을 피우고 확산된다는 완벽한 증거라고 이야기한다.

■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서로 소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대한 찬사
청각장애의 세계를 다루지만 소통에 대한 비유로도 읽을 수 있는 책


이 책은 청각장애의 세계 이면에 있는 그림자도 보여준다. 간간이 나오는 저자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는 눈시울을 붉히게 만든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지긋지긋한 짐’처럼 여겨졌고, 직장에서는 청각장애라는 이유만으로 늘 해고 1순위였으며, 심장마비로 쓰러졌을 때는 수어통역사가 있어야만 환자의 상태를 제대로 알 수 있다는 가족들의 주장을 병원 측에서 무시해버려서 아무런 수어통역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이틀 만에 생을 마감한다. 할머니는 귀머거리 엄마가 아이들을 키운다는 사실을 마뜩하지 않아 하는 친척들에게 사사건건 간섭을 받았고, 심지어 자신이 낳은 아이들의 이름조차 지을 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 각박하던 시절을 지나 청각장애인의 인권이 훨씬 향상된 오늘날에도 편견과 차별은 존재한다. 소피아는 즐거워서 웃음이 터져 나와도 고개를 돌리고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애써 웃음을 삼킨다. 흔히 청각장애인들은 웃음소리가 이상하고 거북하다는 타박을 듣고, 혐오의 빛을 담은 시선을 받기 때문이다. 제임스 또한 우등생이 되어 대학에 진학해도 사람들의 눈에는 그저 말귀를 못 알아듣는 조금 모자란 젊은이로 비치기 십상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청각장애 부모 밑에서 태어난 건청인으로서, 렉싱턴 청각장애 학교의 학생상담실장, 교장, 그리고 교육처장으로 살아온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수어를 둘러싼 편견과 차별에 대해서도 다룬다. 건청 사회에 적응하려면 건청인과 비슷해질 수 있도록 구화를 해야 한다는 주장과 청각장애인들은 청력을 쓸 수 없기 때문에 시각을 기반으로 한 수어가 제1언어일 수밖에 없고, 모국어인 음성언어는 제2언어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에게 묻는다.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다면, 혹은 모든 사람이 같은 언어로 말하고 듣고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질까? 인류에게 더 많은 희망이 생겨날까?
저자는 신체적으로 멀쩡한 것과 누군가의 얘기에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건 아무 상관도 없다고 말한다. 건청인들 사이에서도 소통이 단절되는 건 다반사이고, 사소한 차이와 균열이 수없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그 틈을 메우려는 노력은 언제나 우리들 각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어는 아름다운 힘을 가진 언어이다. 의사소통을 향한 청각장애인들의 의지를 상장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의학기술의 발달로 청각장애인의 수가 급속히 줄어 청각장애 문화가 사라진다고 해도 수어가 지닌 이러한 상징성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서로 소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바치는 찬사이다.

추천사

이 책은 우리와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통해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는 것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해준다. 포용 사회를 지향하면서도 실제로는 나와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본 경험이 적다면, 그래서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할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 정희원 / 국립국어원 어문연구실장

인간은 누구나 서로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배운다. 이 책은 우리들 중 일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러한 노력을 아끼지 않으며, 끝끝내 위대하고 감동적인 승리를 거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소통을 위한 노력 중에서도 대단히 특별한 사례를 힘 있고 통렬하게 다룬 책이다.
- 로버트 콜스 / 하버드대 정신의학과 교수, 퓰리처상 수상 작가

나고 자란 가족과 청각장애 공동체라는 또 다른 가족 사이를 오가며 성장하는 청각장애아들의 삶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그려냈다.
- 킹 조던 박사 / 갤로뎃 대학 총장

놀라울 정도로 통찰력이 뛰어난 작품이다. 청각장애의 세계를 다루지만, 소통에 대한 비유로도 읽을 수 있다. 마치 연애소설처럼 아주 살갑고 다정하면서도 절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 뉴욕타임스 북리뷰

기존의 시각을 완전히 깨부수는 책. 제대로 된 지식과 애정으로 청각장애라는 세계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
- 시카고 선타임스

목차

추천사 _ 손으로 마음을 드러내고 생각을 펼치는 세상으로의 여행
저자의 말 _ 소리 없이 이해되는 말들의 온기

비밀의 언어
과도기 수업
백마 탄 왕자님
거대한 침묵
미처 하지 못한 말
아주 특별한 축복
소리의 바나나
바벨탑
기억의 주인
두 가족 사이에서
기차, 떠나다, 미안
갈채의 바다 
제3의 언어 
빛의 뗏목을 타고
기나긴 꿈을 접고
작별을 예감하며
그리고 졸업

본문중에서

우리가 속한 세계에서는 들을 수 없는 사람과 들을 수 있는 사람, 이렇게 둘로 나뉘었다. 하지만 우리는 어느 쪽에도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집에서부터 그런 문화적 차이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유대인이고, 엄마는 개신교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소리를 듣지 못하셨지만, 나머지 식구들은 들었다. 입양한 내 동생 앤디는 흑인이고, 나머지 식구들은 백인이었다. 우리는 청각장애인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특별한 행동이나 방식을 배웠다기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저절로 습득했다.
( '비밀의 언어' 중에서/ p.16)

그들의 작별 인사는 늘 그렇게 길었다. 헤어지기 싫은 마음, 관계의 고리를 끊고 공허한 밤 속으로 들어가길 꺼려하는 그 마음, 바로 이것이 청각장애 문화의 본질이다. 직장에서, 지하철과 시장에서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하루를 보냈는데, 다른 청각장애인들과 저녁에나 잠깐 어울리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다. 문가에서 서성대며 아쉬워하는 그 짧은 시간은 관계에 대한 갈증 때문이었다.
( '비밀의 언어' 중에서/ p.19)

한쪽에서는 우비를 입고 구부정한 자세로 쇼핑백을 움켜쥔 여자 세 명이 버스를 기다리면서 호기심과 경계심이 뒤섞인 눈빛으로 학생들을 바라봤다.
길 건너편에서는 웬 괴팍스러운 집주인이 현관에 나와 길모퉁이에서 얘기 나누는 렉싱턴 학생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리들 가!” 그러더니 낡은 실내화 바람으로 집 계단을 중간쯤까지 내려왔다. “거기들 서있지 말라니까!” 학생들은 차분한 얼굴로 집주인의 무의미하게 오물거리는 입술과 붉으락푸르락한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러다 이내 고개를 돌려 하다 만 얘기를 계속했다.
… (중략)…
수화는 빠르고 맛깔스럽고 육체적이다. 우비를 입은 여자들이나 길 건너 집주인을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한 학생이 구내매점에서 사 입은 티셔츠엔 ‘청각장애인의 자긍심’이라는 글귀가 박혀 있었다.
( '과도기 수업' 중에서/ p.41~42)

제임스는 생각했다. 나라고 해서 왜 운동화가 여덟 켤레면 안 된단 말인가? 왜 필라, 리복, 패트릭유잉, 뉴밸런시스를 오렌지색과 청록색, 보라색과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갖춰 신으면 안 된단 말인가? 왜 친구들과 연락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면 안 된단 말인가? 이제 일도 하고 돈도 벌어서 그럴 능력이 생겼을 뿐인데, 금붙이를 찬들 뭐가 대수란 말인가? 강하고 냉철하고 제 의지대로 살아가는 주변의 건청 또래들처럼 하고 다니면 왜 안 된다는 건가? 왕자에겐 금장식이 어울리는 법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다니니까 꼭 마약 장사꾼 같다.▝ 그러면 비단 같던 눈동자가 얼음처럼 싸늘해졌지만, 다른 태도는 여전히 느긋했다.
( '백마 탄 왕자님' 중에서/ pp.61~62)

다른 장애 집단과 달리 청각장애인들에겐 그들만의 고유한 언어가 있다. 그들만의 모임과 경기연맹, 극단과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고, 그들만의 대학과 잡지가 있으며, 심지어 국제올림픽도 독자적으로 개최한 바 있다. 소수인종과 달리 청각장애인들은 부모에게서 문화를 물려받지 않는다.
( '거대한 침묵' 중에서/ pp.71~72)

아버지는 이걸 ‘공인된 광란’이라고 불렀다. 10년 전부터 렉싱턴의 전통으로 자리 잡은 무지개 올림픽은 보름간의 방학을 앞두고 학생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시작됐다. 많은 아이들에게 다가올 방학은 거대한 침묵, 끝 모를 심연을 예고했다. 앞으로 보름 동안 꼼짝없이 들을 수 있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외로움 속에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생들은 맹렬한 기세로 게임에 임한다.
… (중략)…
초롱초롱한 그 눈망울 속에는, 그리고 서로를 가만히 지켜보는 그 온기 속에는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학교에 나올 수 없다는 서늘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었다.
( '거대한 침묵' 중에서/ pp.80~82)

이식수술만 받으면 청각장애인이 건청인으로 ‘통하거나’, 청각장애가 ‘치료’될 것이라고 간주하는 건 옳지 않다. 그 수술만 받으면 외롭고 고립된 세계에서 활기찬 의사소통이 가능한 따뜻한 세계로 기적처럼 옮겨갈 수 있다고 가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청각장애인들은 자신들의 공동체 안에서 이미 그런 따뜻함과 활기찬 의사소통의 세계를 누리고 있다. 청각장애인이라는 정체성과 자긍심은 공동체 안에서 대단한 가치를 지닌다. 그렇기 때문에 인공와우 이식수술을 받는 건 공동체 전체를 모욕하고 ‘보다 건청에 가까워지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
… (중략)…
안타깝게도 전문의 훈련을 받는 동안 대부분의 의사(그리고 청능치료사와 언어치료사, 그리고 수많은 교육자 역시도)가 청각장애를 오로지 병리학적으로 접근하도록 학습받을 뿐, 청각장애를 문화로 보는 시각을 되살리지 못한다.
( '소리의 바나나' 중에서/ pp.143~144)

늦은 오후, 숨죽인 어둠 속에서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얘기했다. 진실하지만 쓰라린 그 얘기의 결론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귀머거리 아이를 갖느니 차라리 아이를 낳지 않는 게 더 낫다’는.
“엄마를 원망하지 않아요.” 얘기를 다 들은 소피아가 마음을 추슬러서 한 말이었다. “원망하지 않아요. 엄마도 많은 고통을 겪었다는 걸 아니까요. 나도 그래요. 그리고 나는 청각장애인이라는 게 자랑스러워요. 이제 그걸 받아들이셔야 해요.”
( '두 가족 사이에서' 중에서/ p.204)

청각장애인들은 항상 불이익을 당할 것이다. 그 현실을 바꾸려면 ‘정상’에 대한 사회적 정의부터 바꿔야 한다. 어쩌면 이런 불이익의 무게 때문에 공동체 내의 모임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함께 모여 정보를 공유해야 한다는 특별한 필요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접촉을 통해 지식이 싹트고 문화가 전수된다. 청각장애인들은 특수학교를 다니고 모임에 나가 활동하면서 잃어버렸던 소중한 조각들을 되찾는다. 이건 교육뿐만 아니라 정체성과 자긍심이라는 면에서도 중요하다.
( '갈채의 바다' 중에서/ p.239~240)

청각장애인 총장 추진운동이 전개될 무렵 갤로뎃의 학생들은 청각장애 문화에서 박수에 해당할만한 새로운 시각적 표현을 만들어냈다. 그건 팔을 높이 들고 손가락을 펼친 채 손을 흔드는 동작이었다. 조용하게 반짝이는 그 박수는 청각장애 공동체 전역으로 널리, 그리고 빠르게 퍼져나갔다. 이제는 너무나 뿌리 깊이 정착한 나머지 그 전통이 생겨난 게 실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점에서 반짝이는 박수는 청각장애 문
화가 학교로부터 꽃을 피우고 확산된다는 완벽한 증거라고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깨 너머로 킹 총장의 마지막 발언이 불러일으킨 반응을 바라봤다. 어둑한 강당 곳곳에서 조용히 들어 올려 앞뒤로 흔드는 그 많은 손은 보이지 않는 흐름에 몸을 맡기는 희미한 바닷속 생물 같았다. 그것은 들리지 않는 갈채의 바다였다.
( '갈채의 바다' 중에서/ p.246)

내일이면 소피아는 자신의 진짜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곳이 자신의 진짜 집이라는 걸 소피아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죄책감과 안도가 뒤섞인 씁쓸하면서도 달콤한 생각 사이로 가족들이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갤로뎃 진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떠올랐다.
가족들은 소피아를 보내줘야만 할 것이다. 소피아가 문화적 가족에 대해 배우도록 허락하고, 이해해야 한다. 또한 그렇게 하더라도 소피아가 타고난 가족을 잊지 않으리라는 것을 믿어야 할 것이다. 소피아는 두 가족을 모두 사랑할 수 있다. 두 가족을 모두 사랑하는 건 소피아의 권리이다.
( '빛의 뗏목을 타고' 중에서/ p.287)

문화적 감수성을 말해주는 것은 공통의 언어, 그 언어의 습득이다. 건청인들은 존경스럽다 못해 거의 신비롭다는 투로 수어가 너무 아름답다고 감탄하곤 한다. 어느 정도는 언어 자체에 움직임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수어가 지닌 아름다움의 힘은 그것이 상징하는 것에서 나온다.
그것은 의사소통을 향한 이들의 의지를 뜻한다. 그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서로 소통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바치는 찬사이다. 청각장애 문화가 지금의 모습으로 존속할 수는 없을지 몰라도 이 상징성에 잠재된 힘만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우리의 필요 역시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 '작별을 예감하며' 중에서/ p.324~325)

“위대한 사회 운동의 훌륭한 점은 우리 ▝모두▝가 그것으로부터 이익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제임스는 연설자 바로 앞에 서있는 통역사를 보고 있다. 무대 건너편 연단에 있는 어른들을 위해 수어통역을 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빛의 물결과 소리의 물결 속에서도 그 메시지는 강당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전해지고, 그것이 모두에게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수화와 말은 섞이면서 일종의 주문이 되었고, 두 개의 집과 두 개의 가족을 하나로 합쳐주었다.
… (중략)…
오늘 제임스가 얼마나 부자가 된 기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전 처음으로 그의 양쪽 가족들이 한 지붕 아래 모였다.
( '그리고 졸업' 중에서/ p.351)

저자소개

리아 헤이거 코헨(Leah Hager Cohen)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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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권의 소설을 집필했으며, 그 중 하나인 [타인의 슬픔(The Grief of Others)]은 오렌지문학상 후보에 올랐다. 또 뉴욕 타임스의 주목할 만한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컬커스 리뷰, 캐나다의 글로브 앤 메일이 선정한 올해 최고의 책 리스트에 올랐다. 새로운 소설 [책에는 없는 세상(No Book but the World)]은 곧 출간될 예정이다. 코헨은 뉴욕 타임스 북 리뷰에 자주 기고하고 있으며, [반짝이는 박수소리(Train Go Sorry)]를 비롯해 세 권의 논픽션을 집필했다.
작가의 다른 작품
소설 [히트 라이트닝(Heat Lightning)], [사랑, 그 상처와 아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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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를 졸업한 후 출판사와 잡지사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시스터스 - 우린 자매니까>, <모비 딕>, <마지막 기회라니?>, <베아트릭스 포터의 집>, <신도 버린 사람들>, <여기, 우리가 만나는 곳>, <우리 시대의 화가>, <보르헤스에게 가는 길>, <그랜드마더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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